김환기 사관 칼럼
좋은 부모와 좋은 자녀
오늘은 Mother’s Day, 한국은 어버이 날이다. Mother’s Day의 유래는 미국 버지니아 주에 있는 웹스터 교회에서 시작되었다. 그 교회 주일학교에서 26년간이나 꾸준히 봉사해 온 ‘앤 자비스(Ann Reeves Jarvis)’라는 부인이 있었다. 훌륭한 주일학교 교사였던 그녀가 나이들어 세상을 떠났을 때, 그녀의 가르침을 잊지 못한 제자들이 선생님인 자비스 부인을 기념하기 위한 추도식에 딸인 ‘안나 자비스’가 초청을 받아 말씀을 전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1930년 6월 15일 구세군에 의해 어머니 주일을 지키면서부터 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어머니 주일의 정신을 일반 대중에게도 전한다는 의미에서 1956년 국무회의를 거쳐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공포하였다. 그 후 1974년에 이르러 ’어머니 날‘을 ’어버이 날‘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호주는 5월의 둘째 주일을 Mother‘s Day, 9월의 첫째 주일을 Father’s Day로 지킨다.
1. 부모는 공경의 대상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부모공경’은 일반인이 말하는 ‘부모공경’과는 차이가 있다. 일반인의 효도는 인본주의 도덕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신앙인은 하나님의 계명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신앙인의 부모 공경은 바로 하나님의 계명에서 출발한다. 성도가 부모에게 효도하지 못하면 불효의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시드니에 워킹홀리데이로 온 청년과 대화한 적이 있다. 그는 직업을 찾던 중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상관이 없는데, 인간답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믿음이 없던 그가 믿음이 생기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쯤에 이런 고백을 했다. “사관님, 이제는 그리스도인답게 살겠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잠3:9)는 말과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부모를 공경하되 마치 하나님을 공경하듯 섬기라는 것이다. 공경이라는 말의 원어는 ‘카페트’로서 무겁다는 뜻이다. 우리 몸의 내장 중에 가장 중요한 간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모든 지체가 중요하지만 간이 망가지면 생명을 이어갈 수 없다. 그만큼 부모를 귀중히 여기고 잘 보살피라는 것이다. 공경이란 말은 부모가 나이 많아 이제 얼마 살지 못하실 것이니까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으로 부모를 존경하며 자랑할 수 있어야 한다.
서울에 ‘효자동’이 있다. 지명의 유래는 이렇다. ‘할아버지가 여름에 손자를 옆에 재우다가 질식사를 시켰다. 너무 놀라서 며느리에게 이야기 하자, 며느리는 죽은 아이를 안고 울면서 밭에서 일하는 남편에게 갔다. 남편은 아이를 안고 “이 나쁜 자식아 너 때문에 할아버지가 얼마나 근심하시겠냐”라며 사정없이 볼기를 치자 아이가 살아났다.’ 이 사연이 널리 퍼지면서 그 지역에 효자, 효부가 산다하여 ‘효자동’이라 불려 졌다고 한다.
2. 약속이 있는 첫째 계명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신 계명은 약속이 있는 첫째 계명이다. 그 약속은, 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은 복을 받고 땅에서 오래 살리라는 것이다. ” (엡6:2-3) 구약의 율법은 613가지이다. 하라 248개와 하지 말라 365개이다. 이것을 요약한 것이 10계명이다. 10계명은 1-4계명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5-10절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이다. 인간관계의 첫째 계명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이다. 첫째란 단어는 프로테(πρώτη)로 순서로서 첫 번째가 아니라,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빌립보를 “마게도냐 지경의 첫 성'(행16:12)이라고 하였다. 바울이 방문한 첫 번째 성이란 뜻이 아니라 마게도냐 지방에서 ‘가장 중요한 성’이란 뜻이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은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다.
3. 자녀는 사랑의 대상이다.
사랑에는 4가지 종류가 있다. 남녀 간의 사랑인 에로스, 형제간의 사랑인 필레오, 그리고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스톨게, 그리고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아가페가 있다. 아가페 사랑에 가장 가까운 사랑이 바로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스톨게 사랑이다. 유태인의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하나님이 천사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3가지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천사는 꽃과 어머니 품에 안긴 아이의 웃음과 부모의 변함 없는 사랑을 가지고 왔다. 시간이 가면서 꽃은 시들고 아이는 성장하여 그 모습이 변했지만 부모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는 것과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르다. 보통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10분의 1만 알아도 효자라고 불린다. 대학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가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부모가 자식을 데리고 오면 ‘돈 상관하지 마시고 꼭 살려 주세요’ 애걸복걸하는데, 자식이 부모를 모시고 오면 ‘얼마나 더 사실 수 있냐’고 묻는다.” 다윗의 아들인 압살롬은 왕위를 찬탈하고 아버지를 죽이려고 했다. 다윗은 전열을 재정비하고 전투에 나갈 때 요압 장군에게 부탁한다. “내 아들 압살롬만큼은 죽이지 말라”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압살롬이 죽은 것을 알고 다윗은 통곡한다. “내가 너 대신 죽었어야 하는데”(삼하18:33) 이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부모중심의 사랑이 자녀에게 상처를 줄 때가 있다. 자녀는 남과 비교 당하면 큰 상처를 받는다. 하나님은 나를 나로 만들었는데, 부모가 남과 비교하면 자존심에 금이 간다. 공부하지 않는 아이에게 아버지가 “예야 링컨은 너 만한 나이 때 뭐 했는지 아니” 하면서 자녀를 꾸짖자. 자식도 지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아빠, 아빠 나이에 링컨은 뭐한 줄 아세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가장 중요한 계명이다. 우리는 대부분 부모이자 자식이다. 자식으로 부모에게 순종하며 공경하고, 부모로서 자녀에게 상처주지 말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사랑으로 잘 양육해야 한다.
김환기 사관(구세군 본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