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세대 윤석영 목사 칼럼
새 생명이 기적
인터넷 게임 등을 통해 살인을 연습하는 아이들. 끊임없이 키보드를 누르며 죽어 ! 죽어 ! 죽어 !를 아무 의미 없이 외쳐대며 살기를 품은 듯한 눈동자를 의식도 하지 못한 채 게임에 빠져 있는 아이들…
“한 생명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인간들을 안내하는 악의 세력들. 이런 영적세계의 흐름들을 인식하지 못한 채 그저 아이들의 놀이로만 치부하는 어른들. 교회, 학교 등.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세상. 이런 세상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목숨이 파리 목숨처럼 여겨지는 테러와 전쟁, 살인 등 놀라운 뉴스들을 거의 매일 접하며 살아가는 우리들. 이제는 느껴야 하고, 가슴을 쳐야 하고, 누군가는 이 물줄기를 바꿔야 한다. 바로 독자들이 그 일을 해야 한다.
생명은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우며 순결하고 소중하다. 이 세상 모든 것보다 소중한 생명. 그런데 그 생명이 너무도 쉽게 취급받고 있는 이 시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계획하심 가운데 이 땅에 보내진 크리스천들이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그 사랑을 통하여 생명의 회복이 가득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생명은 어미를 통해 이 세상에 얼굴을 내민다. 그러나 그 어미의 태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또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된다. 어미보다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 하나님께서 이 땅에 생명의 역사를 위하여 교회를 세우셨고, 그 교회들인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 생명의 능력을 행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려면 교회가 먼저 생명을 품을 수 있는 어미로 자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의 여정을 통해 생명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을 간직하게 된다.
그 능력은 사람의 힘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생명의 능력을 삶 가운데 녹여내야 가능한 일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던 예수님처럼 말이다. 교회가 어미로서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생명이 되는 말씀이 끊임없이 선포되어야 하고, 말씀이 성도들의 삶 속에 뿌려져야 하고, 자라나야 하고, 성숙해져서 또 다른 생명을 탄생시켜야 한다. 그 생명을 교회를 통해 이 땅에 심게 하기 위하여 세우셨다.
생명이신 말씀이 중심 되는 교회, 그 말씀이 가득한 교회, 말씀의 권위만이 나타나는 교회, 말씀의 능력이 충만한 교회. 그런 교회가 바로 생명을 품을 수 있는 어로 성장할 수 있기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그렇게 어미로서의 생명력을 간직하기까지 많은 시간동안 말씀의 양식을 통해 영적인 공급이 끊이지 않아야 한다. 그 책임은 바로 목회자에게 있다. 그러기에 목회자들이 먼저 말씀 앞에 처절한 영적 싸움을 위한 몸부림이 있어야 한다. 그 말씀을 통해 말씀하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날마다 삶으로 살아내야 한다는 말이다. 삶 속에서 실제로 말씀을 살아내는 모범을 보이는 목회자로 서야 한다. 그렇게 한 후에야 성도들에게 진정한 생명으로서의 말씀의 능력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 역사하신다. 목회자와 성도가 말씀의 능력으로 온전히 세워져 갈 때,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가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는 어미의 모태로 자라가게 된다. 그리고는 어미로서 알을 품는 생명에 대한 애정, 열망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생명의 빛을 보게 되는 것이다. 생명을 위한 기다림 즉, 인내를 터널을 통과해야만 생명의 빛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교회들이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시대의 사상과 사조들의 유행에 교회가 속절없이 무너진 채 좌절과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속전속결, 단기완성, 심지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엄청난 구원사역에 있어서도 이런 것들을 적용하고 있다. 생명이 아닌 기계로 찍어내는 듯한 과정들을 만들어 놓고 그 단기과정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만들어 내려고 하는 경향들이 있다. 결코 생명은 단기간에 만들어질 수 없다.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과 가을을 거쳐 열매를 맺는 많은 곡식이나 열매들도 1년이란 시간이 필요하다. 심지어 인삼은 종자에 따라 수년이 걸려서 인삼으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인간답게 세워지는 것이 거져 되겠는가? 이런 듯 자연이 섭리 앞에 교회가 더 이상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을 이벤트화 하거나 쇼를 하듯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많은 시간을 기다리며 생명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인내함으로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생명이 탄생될 때까지 자리를 지켜야 한다.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지 그 알을 품고 있던 그 자리에서 생명이 탄생될 때까지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움직이면 생명은 여전히 알 속에 갇혀있게 된다. 이것은 생명에 대한 사랑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요즈음 자녀를 출산하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생명에 대한 존엄 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않고 단지 키우기 어렵다는 이유로, 가족이나 주변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는 이유 등으로 갓 태어난 생명을 내다 버리는 일들이 너무 많이 벌여진다. 이것은 사랑이 부족해서 생기는 일이다. 생명이 탄생하기까지 그 자리를 지키며 어떤 위험이나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가 있어야 할 그 생명의 자리를 지키는 사랑의 믿음이 필요하다. 생명이 탄생되기 전의 상태 알. 그 알은 여전히 알일 뿐이다. 생명으로서의 역할은 전혀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생명을 품고 있는 닭처럼 그 자리를 지킬 때 새 생명의 기적을 만들어 내게 되는 것이다. 바로 우리들이, 아니 내가 그 생명의 기적을 위해 지켜야 할 사랑의 자리가 어디인가? 이제부터 우리들을 통해 이 땅에 새 생명의 기적이 곳곳에서 탄성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윤석영 목사(다음세대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