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란트 칼럼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좇으라!
우리시대에 많은 스타들이 있는 것 같다. 스타라는 말은 어두운 밤하늘에 반짝반짝 빛나는 별과 같이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 된 사람을 말한다. 혹시 여러분에게도 그러한 스타가 있습니까? 지금의 저에게 있어서 스타는 하나님의 아들로써 인간의 육신을 입고 겸손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입니다.
인간이 인간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누군가에게 있어 스타란 단지 구경꺼리의 대상이 아니다. 흉내 내고 싶고 닮고 싶고 더 나아가 그렇게 나도 되고 싶은 존재이다. 안타깝게도 젊은 한때가 아닌 나의 삶 전체를 걸만한 그러한 롤모델이 될 스타가 인간 가운데 있기는 할까 의문이 앞선다. 인간이 인간을 좋아하고 영원히 사랑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느 유행가의 가사처럼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일 참 어렵다’는 말에 동감이 된다. 나 역시 인간이지만 인간은 인간에게 그러한 대상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이러한 나의 생각에는 이유가 있다. 성경 로마서 3장 9-18절에 있는 말씀 때문이다.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러한 모습이 하나님 눈에 비춰진 죄인 된 우리의 모습이다.
아름답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아담과 하와가 자신들을 지으신 창조주의 명령,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말씀을 거역함으로 죄를 얻게 되고, 그 죄의 결과로 말미암아 아담은 더 이상 하와를 사랑할 수 없게 되었다. 아담이 처음 아내 하와를 만났을 때에 그의 사랑의 세레나데는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세기 2:23)는 고백이었다. 지금의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그러한 아름다운 표현과는 동떨어진 정육점 냄새가 나는 것 같지만, 그러나 아담에게 있어서는 진정한 한 몸 사랑의 표현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이러했던 그가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다시 말해 선악과를 따먹고 자신이 벌거벗은 것이 부끄러워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나무 사이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숨어있던 아담을 부르신 하나님께서 왜 선악과를 따먹었는지에 대해 물어보셨다. 그 때 아담의 대답은 너무 의외였다.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2) 놀라운 대답이지 않는가! 그 자신의 실패에 대해 하나님과 사랑했던 아내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죄의 바이러스는 더 이상 인간을 사랑할 수 도 그리고 용서할 수 도 없게 만들고 말았다. 심지어 마땅히 사랑해야 할 사람들과 하나님까지도…
사람을 좇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으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세상에서도 스타가 있는 것처럼 기독교 교계 안에서도 유명 스타인 설교자들이 있는 것 같다. 유창한 웅변술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하여 많은 성도들로부터 인기와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설교자를 섬기고 따르며 동역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어느 날 그렇게 존경하고 따랐던 그들에게서 실망하고 심지어는 하나님까지도 버리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무엇 때문일까…
초대 사도시대에도 많은 주의 제자들이 각자에게 맡겨진 복음 사역을 위해 흩어져 복음을 전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진 것 같다. 주의 종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겠지만 그들을 통하여 복음을 전해 듣고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각자의 스타 사역자들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이 공공연히 외치기 시작하였다. ‘나는 바울 파다! 나는 아볼로 파다! 나는 게바 파다!’ 심지어‘나는 그리스도 파다!’그러면서 그들은 분쟁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것이 고린도전서 1장 10-17절에 있는 이야기이다. “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 글로에의 집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이는 다름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14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15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이 이야기는 그 시대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시대에도 똑같이 재연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교회 다니시는 어떤 분이 나에게 찾아와 하시는 말씀이, 과거에 어느 목사님께 은혜를 크게 받았는데… 늘 그 때가 아쉽고 그립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으면 과거의 그 목사님과 자꾸만 비교가 되어 은혜를 못 받으신다는 것이다. 그 분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시기를 권면해 드렸던 적이 있었다. 사람을 좇는 일을 멈추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 누군가가 나에게 은혜를 끼친 것이 아니다! 그 누군가가 훌륭한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하여 나를 감동시키신 이는 오직 하나님 한분 외에는 없다. 죄 된 우리네 인간이 누군가에게 과연 영적인 은혜를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단지 택하신 사역자들과 하시고자 하시면 어린아이의 입을 통하여서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어떤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 3:3-9). 아멘!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간의 슈퍼스타이십니다!
어두운 세상 가운데 빛으로 찾아오신 주님은 우리 인생의 슈퍼스타가 되기를 원하시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예수님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이것은 필수적인 것이다. 오직 그 분만이 인생의 위로자가 되시면 치유자가 되시며 또한 영원한 생명의 구원자가 되신다! 그래서 그 분을 사랑하고 섬길 때에는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하여 좇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내 말이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한 15:7). 주님의 말씀만을 좇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용호 목사(시드니달란트교회, 호주 나눔선교회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