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란트 칼럼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마 5:1-3)
인생에 있어서 과연 복이란 무엇을 말하는 지, 그리고 그 복을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는지 여러분은 아십니까? 오랫동안 고난과 가난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인의 가장 큰 주제는 ‘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장판, 가구, 이불보, 애들 노리개, 심지어 숟가락에 까지 한자로 복이라고 새겨 넣는 민족은, 아마 우리 민족이 독보적일 것이다. 한문의 복(福)자의 모양을 보면 一 口 田 衣인데, 이 낱말의 뜻은 하늘 아래서(一) 입(口)에 먹고 살 양식을 가꿀 수 있는 밭(田)하나 있고 걸칠 수 있는 옷 한 벌 있으면 복(福)이라는 뜻이다. 요즘말로 바꾸면 밥 벌어 먹을 수 있는 일터가 있고 벌거벗지 않고 살아가면 복 받은 인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는 것 같다. 아무리 먹을 것, 입을 것, 잘 곳이 있어도 스스로 복 받은 인생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의 ‘욕심(慾心, greed)’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 자아의 문제는 곧 욕심의 문제이다.
욕심이란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으로써, 한마디로 가진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 원하는 목마른 현상이다. 욕심(慾心)이란 한자어의 뜻과 같이 인간의 마음상태와 연결되어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자유의지의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류 태초의 인간이었던 아담과 하와가 죄가 없던 시대에 선악과를 따먹게 된 이유가 바로 이 욕심 때문이었다. 사단은 선악과를 따먹지 않으려는 하와를 미혹할 때에,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라고 했다. 결단코 생각할 수 없는 생각, 즉 욕심으로 하와를 미혹케 한 것이었다. 누가 어떤 아들에게 네가 아버지를 내쫓고 아버지가 되라고 한다면 누구도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말도 안 되는 말이, 말이 될 수 있으려면 인간의 욕심을 자극 할 수 있다면 가능한 말이 되기도 한다. 요즘 한국 뉴스에서 현직 검사장인 진경준 검사장이 현직에서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처음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사회의 부패척결과 잘못된 일을 바로 잡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본인이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대부분의 국민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한다. 진경준 검사장이 그 일을 해서는 않되는 줄 몰랐던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는 그 순간에 욕심을 선택한 것이다.
복 있는 인생은 소유가 아니라 선택이다.
성경을 근거로 볼 때에 인류의 문제는 죄보다도 인간의 욕심이 더 문제였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 (약 1:14-17)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영적인 존재인 우리가 필요로 해야 하는 것은 세상적인 육적인 것들이 아니라 영적인 신령한 것이어야 했다. 이 땅에서 필요로 하는 육적인 것은 인간의 노력에 대한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당연한 배려와 의무였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마 6:25-34)고 약속하고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지 않는 이유는 인간의 죄로 인한 불신 때문이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의 내적 변화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숨어버렸던 증상이 바로 그것이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인간의 실질적인 정체성(正體性, identity)은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에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에 육은 이 땅의 재료인 흙으로 만드셨지만, 우리의 영혼은 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 하나님과 같은 영적인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세기 2:7)이란 말씀이 그것이다. 인간이 영적인 존재라는 의미는 영혼의 만족 없이는 육적인 그 무엇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의 첫 설교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 오늘 본문의 말씀이다. 예수님의 첫 설교의 주제는 ‘복’에 대한 것이었다. 무엇이 영적인 존재인 인간의 복인지를 말씀하시는데, 그 첫 번째 말씀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태 5:3)였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Blessed) 이란 이 단어에 대해 우리는 매우 자비로운 표현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God bless you! (하나님이 당신을 축복하시기를…)라고 하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 ‘bless’는 무서운 유래를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고대에 사용된 이 말의 기원은 ‘피로 붉게 물들이다’, ‘피로 신성하게 하다’의 뜻인 ‘bledsian’에서 온 것이다. 이것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 피의 희생물로부터 온 말인데, 후대 영어에서는 ‘blessen’으로 변했고 마침내 ‘신성하게 된’이란 뜻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God bless you!는 God bathe you in blood!(하나님이 당신을 피로 목욕시키길…)라는 뜻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좋아는 ‘복(bless)’이라는 단어의 실제적인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너무 놀랍지 않는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인간의 첫 번째 복은 “가난한 심령”이라고 하셨다. 이 “가난하다”고 번역된 원어인 헬라어 “프토코스”는 “파산을 당하거나, 남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파산 당한 사람처럼 스스로 설 힘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또 다시 말해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자가 복된 자라는 것이다. 선뜻 이해되지 않는 말로 들릴 수 있다. 어째서 이러한 가난한 심령의 상태가 복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러나 복된 이유가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곧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지는 구원의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홀로 완벽하고 강하게 지어진 존재가 아니었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창 2:25)고 태초의 인간 모습을 묘사한 내용이 성경에 있다. 말 그대로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나 벌거벗고 있는 것이 원래는 부끄러워해야할 모습인데 부끄러워하지 않고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뜻밖에도 죄를 범한 직후 인간은 눈이 밝아져 자신들이 벌거벗고 있음을 보게 되고 부끄러워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게 된다. 여호와께서 부르실 때에 벌거벗고 있음이 부끄럽고 두려워 동산나무 사이에 숨어 있다가 들키게 되는 일(창 3:7-11)이 기록되어있다.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은 이유도,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었던 능력과 권세도 다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을 때에 가능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간의 삶은 복 있는 삶이라 말할 수 없다. 어느 것도 참 만족을 할 수 없기 늘 목마른 욕망의 삶 속에서 악한 영의 종노릇을 하며 살다가 허무가 죽어가게 될 뿐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외에는 나 자신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주님의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그리고 주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복된 인생이 되어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시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용호 목사(시드니달란트교회, 호주나눔선교회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