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발로 지구 한 바퀴
두 번째 이야기: 베트남 호치민
1편 타이완 타이페이 / 2편 베트남 호치민 / 3편 일본 도쿄
베트남은 동남아시아 중 대한민국과 비슷한 점을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다.
사람들의 손재주, 과거 유교주의적 사상, 전쟁을 많이 치른 나라, 근면 성실 등이다.
호치민은 경제성장이 가파른 여느 동남아시아와 함께 나날이 지도가 바뀌고 있다.
필자는 베트남 방문이 4회 이상 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베트남 여행박사는 아니다.
많은 곳을 다니더라도 안전을 우선시하기에 비교적 치안이 좋지 않은 곳은 꺼린다.
호치민의 입,출국 수속도 비교적 빠른 편이다.
아주 작은 국제공항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용하기도 쉽고 시내의 접근성도 매우 뛰어난 편이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입국장 밖으로 나오면 세 번 놀라게 된다.
첫 번째는 호치민 특유의 냄새…
두 번째는 기차역 대합실 같이 사람들이 마구 마구 모여서 바닥에 널부러져들 있다. 호치민 입, 출국 때마다 왜 저렇게 사람들이 모여들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언뜻 보면 환송과 환영을 나온 것 같기도 한데, 도무지 시간이 지나도 일어날 기미가 없다. 실제로 호텔 픽업차량을 기다리면서 1시간 정도 우연찮게 지켜 볼 수 있었는데, 떠들고 노느라 정신이 없고 일어날 생각도 없다. 그저 신기한 광경이다.
세 번째는 오토바이 풍경이다.
교차로에서 빨간 불 신호를 받고 대기하다가 파란 불로 바뀜과 동시에 눈앞으로 오토바이 수백 대가 나타난다. 마치 곡예를 부리듯…
1인 탑승자가 있는 반면, 때로는 5~6명 온 가족이 그 작은 오토바이에 모두 타고 이동을 한다.
한국과 호주 같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특히, 이 곳 호주는 모든 법이 엄격하지만 교통법규 또한 대단히 엄격해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다. 그 광경을 직접 보지 않고서는 절대 머리로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오토바이 매연 가득한 이 도시를 하루 종일 얼굴을 감싸고 돌아 다녀도 즐거울 일은 아주 많다.
호치민 떤썬넷 국제공항은 도심과 1분 거리에 위치한다.
차로 1분 거리에 슈퍼볼이라 불리는 한인타운이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
이곳에서 다소 입맛에 맞지 않았던 기내식으로 입이 불편했다면 슈퍼볼 인근 한인식당에서 배를 채우고 여행을 시작해도 좋다.
참고로 필자는 호치민 입국하는 날과 출국하기 전 무조건 한식당 ‘대청마루’를 찾는다.
혼자 여행 할 때도… 가족과 함께 여행 할 때도…
이곳을 찾는 이유는 생활했던 곳과 방문지와의 갑작스런 충돌을 막기 위한 나만의 습관이다.
필자는 호치민에 도착하면 공항에서부터 상대적으로 번잡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런 복잡한 생각과 불안한 마음들이 교차할 때 때로 일을 그르치기도 할 수 있어 언젠가부터 고안해 낸 습관적인 방법이다. 해외에서 일시적 혼란이 왔을 때 평안함을 주었던 지역이나 공간을 첫 번째 목적지로 찾아 가는 일.
그 곳을 필자는 개인적으로 메모할 때나 일기를 쓸 때 ‘모스(MOS-My Own Space)’라 표현한다. 호치민에서 그러한 모스가 바로 한식당 ‘대청마루’다
또, 이곳은 고급레스토랑은 아니지만 음식이 맛있고 모든 직원들이 친절하다.
부모님을 모시고 호치민을 일주일 정도 여행 한 적이 있는데, 일흔이 넘으신 두 분도 차려진 음식에 대단히 만족해 하셨고, 일정 중 몇 번을 다녀오기도 했다.
TV 등 언론에 갖가지 맛 집, 멋 집들이 소개되는 세상 이지만, 언론에 소개되지 않은 이 식당도 정말 맛있다.
저렴하면서 사장내외 뿐만 아니라, 베트남 현지 직원들도 매우 친절하게 까다로운 한인손님들을 반갑게 맞아 준다.
나는 대청마루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마지막 날에도 어김없이 이곳에 들렀는데, 그날따라 무지하게 허기가 졌다. 찌개, 삼겹살 등 이것저것 주문하고 주위를 돌아볼 틈 하나 없이 허겁지겁 엄청나게 먹었다.
커피한잔 마시며 계산을 하려는데 아뿔싸!
환전해간 베트남 화폐 동은 물론이거니와 호주 달러까지 현금을 다 쓴 상태였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을 즈음, 느닷없이 여 사장님께서 하시는 말씀.
“맛있게 드셨나요? 혼자서 매번 방문하시다가 이렇게 부모님 모시고 여행 하시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이고 부럽습니다. 저는 바쁘다는 핑계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훌륭한 밥상은 아니지만 저희 부모님 모셨다는 마음으로 오늘 저녁은 제가 대접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여행을 다니면서 처음으로 느끼는 또 다른 감동이었다.
서로간의 깊은 내면적 교류가 없어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함께 나누며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했다.
아무리 선을 베푼다 한들 선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관계도 있지만, 특별함 없이 툭 한번 오가는 마음이 서로의 마음을 따뜻하게 할 수 있다는 것에 나로 하여금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사장님의 허락도 없이 지면에 상호를 게재한 점, 양해를 바라면서 지면을 빌어 다시 한번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호치민의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한국의 70년대 풍경이 자주 눈에 뛴다.
허름한 간판 하나 걸고 자전거를 수리하는 자그마한 낡은 가게, 주스 믹서기 하나 달랑 놓고 음료를 판매하는 곳 등등.
이렇게 낙후되어 보이는 호치민 시내에 대한민국의 현대건설이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어버린 ‘비텍스코 파이낸셜 타워’를 지난 2010년 쌓아 올렸다.
이는 ‘베트남판 63빌딩’이다. 베트남 여인들의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를 연상케 하는 빌딩은 현대건설의 첨단기술이 집약되어 있다.
총 68개 층을 가진 타워는 47층 전망대에서 호치민 시내를 360도로 조망할 수 있다.
해질녘 전망대에서 모히또 한잔에 사이공 강을 내려다보는 야경은 대낮의 후텁지근한 날씨와 오토바이 매연이 언제였냐는 듯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특히 1층에서 타워를 올려다보면 47층 전망대 부근에 빌딩을 쏙 뚫고 나온 헬기장이 압권이다.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비텍스코 타워 여
직원의 말에 의하면 빌딩을 올리면서 헬기장을 함께 만든 것이 아니라 헬기장만을 따로 지상에서 제작 후 크레인으로 연결했다는 후문.
호기심 많은 필자가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현대건설에 연락을 취했다.
결과는 담당자와의 통화연결시간이 너무 길어 대답은 듣지 못했다.
대한민국의 기라성 같은 건설기업들이 매일매일 베트남에서 새로운 지도를 써 내려간다.
하노이에 하늘높이 솟은 ‘랜드마크 72’ 또한 경남기업의 작품이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기업들이 꾸준하게 베트남의 하늘을 아름답고 멋있게 수놓고 있다.
참으로 자랑스럽다.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현재의 화려한 베트남 뒤에는 비운의 역사도 함께 공존하고 있다.
약 1000년간의 중국 지배, 30년 간 프랑스 식민지, 6년간 일본의 속국, 미국과의 전쟁.
제네바 협정으로 통일을 이루지만 30여년간 남북분단이라는 아픔을 겪는다.
끝이 아니다. 또다시 캄보디아와 국경다툼.
우여곡절이 많은 베트남이다.
꾸찌터널은 프랑스 식민지 당시 식민통치를 반대하기 위해 게릴라전을 펼친 곳이다. 이후 베트남 전쟁이 벌어지고 미군과의 효율적인 전쟁을 벌이기 위해 이 땅굴을 극대화 시킨다.
단면도를 보면 마치 개미집을 연상케 한다.
이곳은 체구가 작은 베트남 인들이 숨어서 게릴라전을 치르기에 성공적이었다.
상대적으로 체구가 컸던 미군들이 감히 땅굴을 생각지도 못했고, 땅굴 위에 미군기지가 있었음에도 미군들은 알아채지 못했다.
당시 터널의 총 길이가 200Km 이상에 달했고, 깊이 또한 10여미터까지 파내려 갔다 하니 실로 대단했다.
현재는 관광용으로 복원한 땅굴을 체험할 수 있는데, 사람 한 명이 내려가기에도 굉장히 협소하다.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지하 터널 내부
에는 각양각색의 방들과 식당, 음식저장소, 무기 제조실 등이 만들어져 있었다.
잠시 터널을 체험하러 입장하긴 했는데, 좁아서인지 왠지 모를 불안감이 찾아 든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숨 막혔을까?
갑자기 현기증이 일어난다. 서둘러 밖으로 나가고 싶은데, 빨리 나갈 수도 없다.
터널 통로는 앉아서 기어가는 수준으로 다녀야 하고, 입 출구 또한 매우 협소해 이동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1시간도 채 머무르기 힘든 이 곳에서 어떻게 20여년을 살았었는지…
혹독함과 처절함, 치열한 전투를 생생하게 알고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조금이나마 베트남 인들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 곳곳에 개미굴을 연상케 하는 공기구멍과 부비트랩 등 숲 속에서 전쟁을 치르기 위한 만반의 준비에 철저했던 베트남 인들의 지혜를 단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이다.
호치민의 도시명은 원래 사이공이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남북을 통일 한 후,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을 건국한 초대 대통령 이름이 호치민이다.
호치민 하루의 마무리는 오토바이의 행렬이 끝나야 한다.
하루의 시작 또한 밤새 잠이나 자긴 했는지 오토바이 행렬이 하루를 깨운다.
다들 어디로 가는지 새벽 일찍부터 부산이다.
호치민의 도로형태는 바둑판 구조로 도보 여행하기에도 편리하다.
호치민 여행의 중심지이자 최고급 쇼핑거리인 동코이. 성모 마리아 성당에 아침 일찍 기도하러 온 예배자들, 가로수 길에서 아침부터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 가로수 길을 따라 사이공 강으로 향하는 관광객들. 특급 호텔들이 즐비하고 야자수가 거리거리에 심겨진 이곳에
서 커피 한잔 마시며 호치민의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는 기분은 이곳이 동남아인지 유럽인지 헷갈리게 하는 묘한 매력을 선사한다. 길 따라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건축물들을 구경하고, 전쟁기념관에 들러 꾸지 터널을 체험하지 못한 아쉬움도 달랠 수 있다. 우체국에서는 마치 유럽지역의 기차역 같은 분위기 속에 친구나 가족에게 스탬프가 찍힌 엽서나 편지를 바로 보낼 수도 있다. 과거 남베트남 군 사령부였던 통일궁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벤탄시장에 들러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물건을 헤집으며 기념품을 구입하면서 현지인들과 왁자지껄 흥정하는 재미, 다니다가 배고프면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도 들렀다는 베트남 쌀 국수 집에서 허기를 채우고, 한국에서는 비싸서 엄두도 못 내지만 시내 곳곳에서 판매하는 망고스틴과 망고주스를 마음껏 음미할 수 있다.
비교적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들도 호치민에서는 자유로움을 한껏 만끽할 수 있기에 모든 것이 즐겁기만 하다.
2,000개 이상의 기암괴석이 솟아있는 하롱베이까지 가기 힘들다면, 호치민에서 가까운 해변 도시붕따우, 무이네 혹은 나짱을 단기코스로 다녀와도 좋다.
독자들 중 베트남 항공을 이용해 본 적이 있다면 독특한 빨간 의상을 입은 스튜어디스를 만날 수 있다.
바로 그 베트남 항공 승무원 유니폼이 ‘아오자이’다.
아오자이는 베트남 여인의 상징이기도 함과 동시에 많은 역사와 이야기 거리들을 가지고 있다.
베트남 역사에 따라 아오자이도 오르락내리락 했다.
대한민국의 전통의상 한복이 개량한복으로 나오듯, 아오자이 또한 수많은 시도가 이루어 졌었고, 현재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
목에서부터 치마처럼 발목까지 길게 내려와 온 몸을 덮는 상의와 바지로 이루어진 아오자이는 한때 ‘선정적’이라는 좋지 않은 이미지와 노동자들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고 불편한 의상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면서 베트남 여성과 멀어지기도 했었다. 또, 베트남 여성에게 매우 실용적인 의상 ‘옘-비키니형태의 전통의상’이 있는데 왜 아오자이를 입어야 하냐는 볼멘소리들도 급기야 나오게 됐다. 사실 현대식 ‘아오자이’나 ‘옘’은 몸매의 곡선이 그대로 드러나 베트남 여성을 더욱 매력적으로 표현해준다.
그러던 중 이러 저러한 화두를 멈추게 한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국제미인대회가 1995년 일본 도쿄에서 개최되었다.
당시 ‘최고 민속의상’에 아오자이가 수상을 하게 되고, 그 수상작이 바로 6년 전 ‘호치민시 미스 아오자이 대회’에서 출연자가 입고 나온 파란색 실크 아오자이였던 것이다.
파란색 실크 아오자이는 미스 아오자이 대회에서도 최고의 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러한 까닭이었을까?
이후 다시 황금기를 맞은 아오자이는 디자인과 옷감 등 다양한 변화들이 계속해서 시도되었고,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현대식 아오자이에 베트남 여인들은 환호하게 된다.
모든 베트남 여성이 예식 때 꼭 입는 의상 아오자이는 나아가 국영기업의 유니폼, 여자고등학교의 하얀색 아오자이 교복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서구에서도 아오자이 착용에 대한 시도가 있었지만, 전혀 어울리지가 않았다.
어깨가 좁고 마른 체형인 베트남 여인들에게 안성맞춤인 아오자이.
아오자이는 영화 <인도차이나>, <연인>에서도 그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베트남 여인의 모든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아오자이.
그 아오자이는 베트남의 아픈 모든 과거를 덮어 내린다.
<송준영 기자>
※ 본 글의 소유권은 송준영 기자와 크리스천라이프에 있음을 알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