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강단
성령님의 역사에 대하여 혼돈하지 말자(행 2:1-4) <2>
<목 차>
Ⅰ. 성령세례와 충만(감화 감동)은 어떻게 다른가?
Ⅱ. 성령세례란 무엇인가?(행 1:4-5)
Ⅲ. 성령세례는 왜 받는가?(행 19:2-6; 고전 12:3)
Ⅳ. 성령 충만이 무엇인가?(행 2:1-4; 엡 5:18)
모든 성도는 우리 주님의 명령(행 1:4-5)에 따라서 아버지의 약속(욜 2:28-32) 즉 성령의 불세례를 받을 자격이 있다(마 3:11). 이것은 사명 감당을 위한 능력을 덧입는 체험이다. 이 놀라운 체험은 중생 후에 나타나는 체험이다(요 7:37-39).
그러면 성령세례가 무엇인가?
1. 예언(약속)의 성취이다
예수님은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4)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 1:4-5) 하셨다.
성령에 대한 약속은 두 가지다. ①아버지의 약속(욜 2:28-29; 눅 24:49)과 ②아들의 약속(요 14:16-18)이다.
이 약속들은 같은 한 성령이시지만 기능(역할)면으로 다르다. ①아버지의 약속은 “능력이요”(눅 24:49), ②아들의 약속은 “생명의 영이다”(요 14:16-18, 23-26).
그리고 ①아버지의 약속하신 “능력의 영”은 승천 후 주님의 분부대로(행 1:4-5)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기다리며 기도하다 오순절에(행 2:1-4)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 2:17)하신 말씀처럼 성도들의 육체에 부어졌고, ②주님이 약속하신 “생명의 영”(요 14:16-18)은 주께서 부활 후 첫날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21-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요 20:19-23) 하신 말씀대로 입으로 불어 넣어 제자들이 영접했다.
이런 경험이 성령세례였다는 것은 베드로의 경험에 의한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사도행전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①고넬로 집에서 베드로가 예수님과 구원에 대한 설교를 할 때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44)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45)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 이러라”(행 10:44-46). ②사마리아 교회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14)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15)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16)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행 8:14-17).
③에베소 교회도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5)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행 19:5-6).
따라서 오순절에 두 약속이 이루어졌다. ①아버지의 약속은 “능력의 상징”으로 “불”로 임하셨고, ②아들의의 약속은 “생명의 상징”으로 “바람과 호흡”으로 임하셨다(행 2:1-4). 그러므로 모든 육체에 부어진(행 2:17)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은, 부활 후 주님이 숨을 내시며 입으로 명하신(요 20:22), 그 영과는 기능 면으로 다르다. ①전자는 믿는 자들의 사명 감당을 위하여 그들 위에 부어진 권능이요(행 2:17), ②후자는 생명의 영으로 안으로 호흡되었다고 본다. ③그러므로 안에는 생명과 관련이 있고, 반면 위에는 능력을 위한 외적인 요소와 관련이 있다.
2. 성령세례란 임마누엘(임재)이다(요 14:23)
주전 700년 전에 이사야를 통하여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이 예언의 말씀을 마태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3)라고 번역을 했다.
그리고 예수님도 미리예언을 하셨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16) –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6-18).
그러므로 지금 성령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는 하나님을 모시는 성전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16)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19)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이런 상태가 바로 성령 세례다.
그러므로 성령세례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보혜사가 오셔서 우리 몸을 성전삼고 함께 계시는 것이다.
교인들 중에는 성령을 받으면 성령께서 영원히 떠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유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6) 이 말씀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씀 잘 읽어보라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하셨지 안 떠난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러니 성령께서 떠나실 수 있음을 성경은 여러 곳에 암시 하신다. 마 7:21-23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21)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 하였나이까 하리니(22)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히 6:4-6에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4)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5)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마 12:31-32에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31)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하셨다. 이들이 성령 받지 아니한 자들인가? 그들이 분명하게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능력을 행하고 성령에 참여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성경은 “새롭게 회개할 수 없고”, 예수님께서도 “나는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한 자라 나를 떠나가라” 하신다. 그럼으로 우리가 용서(회개)받지 못할 죄를 지으면 성령은 떠나신다.
요일 5:16-17에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17)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사망에 이르는 죄는 구하지 말라”하셨다.
여기에 “사망에 이르는 죄” 또 “사망에 이르는 죄”는 무엇일까 ①“사망에 이르는 죄”는 “성령 훼방 죄”(마 12:31-32)이고, ②“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는 “계명을 어긴 죄”다(마 18:21-22), Ⓐ계명을 범하는 죄는 회개할 수 있어도(고전 5:1-5), Ⓑ성령님을 모독하고 성령님의 일을 훼방 죄는 회개할 수 없다(마 12:31-32; 히 6:4-6). 그럼으로 우리는 성령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절대 순종해야한다.
3. 성령세례는 인(소유권)치는 것이다(엡 1:13-14; 4:30)
고후 1:21-22에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22)그가 또한 우리 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엡 1:13-14; 4:30)
가축이나 노예를 사면 소유 표시로 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피로 사신 자기 자녀(교회)들”(행 20:28)에게 반드시 성령으로 인을 칩니다.
“인”은 소유표시이다, 즉 집을 사면 내 이름으로 등기를 해야 한다, 그래야 내 것이라 주장할 수 있다. 그와 같이 성령세례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인을 치신다, 그때부터 우리는 참 하나님의 자녀요, 참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이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 잘 모른다. 이단들이 “거듭났나”(요 3:3, 7; 벧전 1:23), 혹은 “중생”(딛 3:5) 했냐고 물어보면 대답을 잘 못한다. 그러나 성령 세례를 받으면 확실해 진다.
베드로는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시니이다(1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17)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8)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6-19)했지만, 그렇게 믿음 좋은 베드로도 주님을 저주하며 세 번이나 부인했다(마 26:69-75).
그러나 성령세례 받고 충만하니, 대적들 앞에서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19)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 4:19-20)라고 담대했고, 십자가를 거꾸로 지고 순교했단다(전설).
그럼으로 믿음이 중요하지만 성령세례는 더 중요하다. ①믿음은 하나님을 앙망하고 의지하는 것이지만, ②세례는 직접 우리가 모시고(요 14:16) 지배 받고 보호와 인도 받고 사는 삶이기 때문이다(요 16:13).<다음호에 계속>
윤병이 목사(한국 반여제일교회 원로목사, 한국기독교기도원총연합회대표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