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영광마을 이야기
고르고 맑은 가난으로 더불어 함께
두 곳 모두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버스에서 울린 전화벨 소리 너머로 장권사님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전도사님! 박선이 성도님! 께서 오늘 오전 돌아가셨답니다.” 갑작스런 소식에 실감이 나질 않았다, 전화를 끊고도 몇 분 간은 멍하니! 그렇게 창밖 만을 바라 보았다. 지난 주일 배웅하던 길! 할머님께서 다리에 영 힘이 없으시가 했고, 나는 이내, 그 분을 등에 엎었다. 뒷태 골짜기를 넘어설 때, 할머님은 숨이차다 하셨다. 등에 엎히고도 하셨던 말씀! “네가 숨차니더…”
“애는 잘 크니껴! 사모님 몸조리 잘해야 하니더….” 뒷태 언덕을 넘어설적 마다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으시던 할머님! 그 할머님 말씀하시던 그 아이 출산을 맞이하러 가는 전도사에게 할머님은 천국에 드셨다는 소식을 전해오셨다.
순간, 차에서 내려 되돌아가야 할까? 나게 맡기신 하나님의 영혼! 그 영혼이 간절히 기다리는 그곳에 내 돌아가야 할 것이 아닌가? 마지막 보내드리는 그 순간 함께 해야 할 터인데…. 너무 부족한 모습, 부끄러운 모습으로 할머님을 보내드리는 예배를 집례하지 못했다. 겨우 동료 목사님께 박선이 성도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맡겨드렸다. 무슨 면목으로 그분을 대할 것이며, 우리 영광교회 성도들을 대할 것인가? 차에서 내려 발길을 옮기지 못한 네겐 참 부끄러움이 그렇게 몰려왔다. 그리고 오늘 오전 장집사님과 함께 할머님의 묘소에 찾아가 예배를 드리고 온 지금까지도 말이다…. 하지만, 바람에 실려 하늘에서 울려오는 한 올 음성이 있었다. “새생명이 새롭게 태어나듯, 박선이 성도님! 하나님 나라의 새생명이 되셨으니!” 두 곳 모두는 생명이 살아 숨쉬는 곳이리….나 보다 앞서 하나님이 먼저 함께 하셨습니다. 내가 아닌 그 분이… (임마누엘)
“처음 사람들의 이름 짓기”
1890년대 후반, 강화도 북단 ‘홍의 마을’이란 곳에 복음이 처음 들어왔을 때였답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이 땅 믿음의 처음 사람들에게“세례”는 참으로 의미가 깊은 성례였지요.
“예수 믿고 교인이 된 것은 옛 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라.”고백했던 신앙의 선진들은 새로 태어난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주듯 거듭난 새 이름을 갖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강화교인들이 선택한 새 이름은 천주교인들의‘프란체스코’와 같은 서양 이름도‘요셉’과 같은 성경이름도 아니었지요. 그들은 한국의 전통 작명(作名)법을 따라‘돌림자’로 개명(改名)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집안은 다르지만 한 날 한 시에 세례를 받아 한 형제가 되었고, 우리가 이 마을에서 처음 믿었으니 모두 한‘일’(一)자를 돌림자로 하여 이름을 바꾸자.”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성(姓)은 그대로 두고 돌림자를 한‘일’자로 통일한 후 가운데 이름자만을 남겨 두기로 한 것이지요. 그 가운데 이름자로 그들이 정한 것은 믿을 신(信), 사랑 애(愛), 능력 능(能), 은혜 은(恩), 은혜 혜(惠), 충성 충(忠), 거룩할 성(聖), 바랄 희(希), 받들 봉(奉), 착할 순(純), 하늘 천(天) 같은 이름자였고, 글자들을 적은 쪽지를 주머니에 넣고 기도한 후에 한 사람씩 그 쪽지를 꺼내는 제비뽑기를 통하여 이름을 짓기 시작한 것입니다.‘능’자가 뽑히면‘능일’, ‘신’자가 뽑히면‘신일’… 이런 식으로 이름을 지어 나간 것입니다. 이러한 개명 현상은 이내 강화 전 지역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흡사 한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는 한국교회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새로운 삶을 살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가? 를 보여 주는 좋은 증거가 되었지요. 어떠하신지요? 이름까지 바꾸면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려했던 이 땅 옛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이, 저 푸른 새싹을 움트게 하는 이 봄 저희에게는 얼마나 의미 있게 다가오시는지요?
백남호 목사(영광감리교회)
경북 울진의 매화리 영광마을에서 현재 14년째 목회 하시고 계신 백남호 목사님께서 섬기고 계신 교회 주보에서 발췌한 내용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