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영광마을 이야기
고르고 맑은 가난으로 더불어 함께
흠뻑! 아파야 아무는 상처가 있답니다(?)
요 몇 일 볼 때 마다 안스러운 모습이 있다. 장권사님의 뒷 목덜이 모습이다. 이만한 하얀 붕대를 오려 붙인 부위가 열기에 흠뻑 달아있다. 여름 불볕 더위에 아물기 만무한 상처! 왠 사서 고생인가 싶어 그 이유를 물은 즉은 한방치료 요법이라 하셨다. 장권사님은 근 몇 개월 전부터 신경통에 절은 다리와 무릎 관절통에 꽤나 시달리셨다고 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바로, 이 아픔을 이기고자 처방을 내린 것이 목덜미에 일부러, 썽을 내다시피 침을 놓은 다음, 그 상처 부위에 약초를 덮어 놓으셨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 상처에서 나쁜 물(?)이 흘러나와 그것이 무릎과 다리 관절을 고칠 수 있는 원인병을 치료하는 특효가 된다고 하는 것이다.
처방을 듣고 나자, 뒤 늦게 나마 권사님의 상처 부위가 무작정 다 아물기만 위해 기도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인지 주위의 몇몇 성도들이 말씀하신다. 걱정과 염려섞인 말씀으로 건네는 말씀들이다.
“낳으려면 어쩔 수 없지! 그래 몇 일 고생 더 좀 해야 겠니더….”
모든 상처라고 그저 아물기만 바라는 것이 최선은 아니라는 것을 권사님의 병치레에서 배우게 된다. 그런데, 어찌보면, 목회자의 일이 그저 아물기만 바라고 깨끗이 낳기만을 바라는 때가 적지 않음을 보게 된다. 어쩌면, 고통스럽게 아프고 나서야 아무는 상처가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 상처 앞에서 함께 아파할 수 있다면, 그 아픔 상처를 함께 나눌 수 있다면, 혹 그것이 주님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온전히 아프고 나서야 강건해 질 수 있는 모습을 위해 잠자리들기 전 성도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 마음자리, 그것이 그 분의 모습이 아닐지? 그 모습이 닮고 싶다.
“인생: 올실과 날실로 짓는 무늬 옷”
하나님의 택함 받은 민족이라 자부하는 유대인들의 새해(로쉬 하샤나Rosh Hashanah) 맞이는 이삭의 탄생이야기(창21장)를 마음에 새기는 것으로 시작되지요. ‘이삭’이란 이름이 뜻하는 바대로 일 년 내내 하나님께 주시는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하나님의 약속은 더디더라도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백성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맞이하는 나날과 현실이 언제나 꽃밭일 수는 없다는 것을, 만수무강, 만사형통의 꿈은 언제라도 좌절될 수 있다는 사실을…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면 허물 때도 있으며, 웃을 때가 있으면 울 때도 있으며, 찾아 나설 때가 있는가 하면 포기해야 할 때도 있다는 사실을…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에게 일러주는 산에서 그를 번제물로 바쳐라.”(창22:2)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다 알 수 없었던 아브라함이 보여 주었던 삶의 모습은 하나님을 향한 무한 신뢰였지요.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길 뿐….
유대민족의 새해 첫날 아브라함과 이삭 이야기를 마음에 새기며, 이삭의 탄생에 서린 기쁨과 이삭의 희생에 서린 슬픔과 고통을 함께 미리 앞서 헤아려 보는 뜻 싶은 시간을 마련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삶이란, 그리고 인생이란, “시간이란 올실에 기쁨과 슬픔, 빛과 어둠의 날실을 교차하며 만들어 내는 무늬라”는 사실을,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간다면 우리가 짜내는 인생의 무늬는 실로 아름다울 것이라는 사실을…. 아직 한 해맞이 다짐이 늦지 않은 때 새겨 두고 싶은 이야기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