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강의 지상중계(6)
하나님은 누구신가?
정미연 박사(몰링 칼리지 교수_조직신학, 윤리학)
기독교 신앙과 윤리 가운데 가장 독특하며 중요한 점은, ‘하나님은 누구신가?’가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유일성은 성경에서 사용되는 여호와라는 하나님에 대한 호칭에서도 나타난다. 히브리 언어는 모음을 따로 기록하지 않는다. 자음만으로 글을 쓴다.
현대 히브리어는 모음을 자음 주위에 발음기호로 표기한다. 그러나 고대 히브리어 성경에는 이런 모음 기호조차 없었다. 특히 당시 성경은 암기하도록 되어 있었고 단어, 문구 또는 의미를 바꿀 수 없었기 때문에 자음만으로도 그 의미 파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야훼 또는 여호와 (יהוה, YHWH, LORD)
하나님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야훼 또는 (יהוה, YHWH) 이다. 이는 하나님의 고유 이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히브리어에는 하나님을 지칭하는 또 다른 이름들-아도나이, 엘로힘, 엘샤다이 등-이 등장한다(영문으로는 야훼를 대문자 LORD로, 아도나이를 소문자 포함한 Lord로 표기한다). 그런데 이는 하나님의 고유 이름이 아닌 하나님의 성품이나 능력을 나타내는 호칭일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호칭들은 다른 종교에서도 사용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야훼는 구약에서 하나님자신이 인간에게 알려주신 가장 거룩한 명칭이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야훼’라는 거룩한 하나님의 고유 명칭을 차마 직접 부를 수 없었다. 따라서 성경을 읽는 중 야훼(יהוה)가 나오면 소리를 내지 않고 묵음으로 대처했다. 그로 인해 오랜 역사가 흐른 후에 그만 이 단어의 고유 발음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오늘날엔 그 발음을 ‘야훼’로 추정하여 사용하고 있다. 라틴어로 제 구성한 발음은 ‘여호와’이다.
이 하나님의 고유 명칭에 대한 의미를 추정할 수 있는 성경 본문이 바로 출애굽기 3장이다.
출애굽기 3장에, 불이 붙은 떨기나무에 타나나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위하여 부르실 때, 모세가 5번 거절하는 장면이 나온다. 모세는 애굽의 공주에게 입양되어 귀하게 자랐다. 그러나 그의 친엄마가 유모였다. 누나도 곁에 있었으므로 모세 자신은 ‘히브리 민족’이라는 의식을 가질 수 있었다. 그의 친엄마와 누나가 그의 어릴 시절에 가장 많이 해준 말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 아기들이 죽어갈 때, 네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것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너를 예비하신 것이다”이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또 요셉과 자신의 백성이 애굽에서 살게 된 이야기도 들었을 것이다. 모세가 이러한 말을 듣고 자랐다는 것을 증명하는 장면이 있다. 바로 애굽 사람이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 모세가 그 애굽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다.
모세는 자신의 친엄마와 누나로부터 어렸을 적부터 무수히 들어온 말, 사명을 각인시키던 말이 섬광처럼 스쳤다.
“너는 히브리 백성에게 자유를 주고 번영을 위한 도구가 될 것이다.”
그러자 자기 백성이 고통 받는 모습을 보자 ‘거룩한 분노’가 치솟았다. 그만 성급하게 자기 식으로 대처하고 말았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애굽과 이스라엘 모두로부터 배반당하고 광야로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는 왕자 신분이었지만 애굽 사람 한명 죽였다는 사실로 두려워하여 도망한 것을 보면, 그가 애굽 왕실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명감을 가지고 한 일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그를 원망만 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미디안 광야로 쫓기듯 도망할 수밖에 없었다.
모세는 퍽 우울했을 것이다. 이전까지 그는 왕자로서 왕실에서 풍족하게 자랐고 세련된 여성만을 만났을 것이다. 그런데 광야로 쫓겨나 양치는 현장에서 거칠어진 십보라를 만나 척박한 환경에서 40년을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야곱의 경우 20년의 기간 동안 엄청난 부를 이루고 4명의 아내를 얻었으나, 모세에게는 그런 소유는커녕 그야말로 맨주먹 빈손이었다.
족장이었던 이드로의 딸과 결혼하였으므로, 양치는 일은 궁중에서 성장한 그가 할 일도 아니었으며, 전혀 격에 맞는 일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가 양을 치러 다닌 것을 보면, 그는 삶에 대한 의욕도 없이 많이 우울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부르시는 하나님
그런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다. 아마도 우울하고 암울한 삶을 살던 모세에게 관심을 끄시기 위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시청각 교육’을 실시하셨다. 친히 떨기나무에 불을 붙이시고 “모세야, 모세야!”하고 두 번이나 크게 부르셨다. 하나님은 자신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심을 밝히심으로 모세의 조상을 먼저 상기시키시고, 모세에게 사명을 주셨다.
“내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약속의 땅으로 가라!”
그러나 모세는 이에 5번이나 거절한다. 하나님께서 이 상황에서 모세에게 주신 사명은, 모세가 기대했던 종류의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추측을 해보자면, 그는 아마도 “모세야, 바로가 죽었고 후계자가 없으니 네가 가서 애굽의 왕이 되라!”라고 하셨든지, “강력한 이스라엘 군대가 너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 군대를 이끌고 가서 애굽을 공격하라!”라는 식의 멋지고 거대한 사명을 주셨다면, 5번 거절은커녕 곧 바로 순종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은 어떤가? 인간의 생각으로는 합당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들뿐이었다. 그는 지팡이 하나 들고 가서 이스라엘을 이끌어 와야 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내 백성을 이끌어 와서 이 자리에 다시 섰을 때 내가 너를 불렀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즉, 하나님께서 조상 아브라함을 통해 주신 언약과 현재 모세를 부르심을 믿고 이 모든 것은 일단 순종한 후 미래에 가서 증명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약속에 근거하며, 그 내용을 행동으로 옮길 때 비로소 결실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이것이 안 되었다. 오래 전, 처절하게 실패를 경험했던 그는, 눈으로 확인되는 구체적인 증거나 근거 없이 행동하는 것이 두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출애굽기 3장 13절을 보면, 모세는 또다시 하나님께 여쭈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너를 보내신 이가 누구냐’고 질문한다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습니까?”
이 질문이 담고 있는 의미는 참으로 크고 심각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앞서 모세에게 자신이 바로 모세의 조상(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섬기던 신이심을 밝히셨기 때문이다.
애굽에서 보낸 400년 동안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잊은 것일까? 이 질문은 또 한 ‘당신이 누구라고, 무슨 권한과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수 있습니까?’ 라는 의문을 내포하고 있을 수 있다. 그 당시 상황 상 이스라엘 백성, 곧 노예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감히 대제국 애굽이 섬기는 신들 보다 강할 수는 없다는 이성적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미연 박사 (몰링 칼리지 교수_조직신학, 윤리학)
미국 이민 1.5세 출신의 차세대 신학자. 사우스웨스턴침례신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의 여러 신학교와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교수생활을 했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 몰링 칼리지 전임교수로 봉직하고 있다. 여름과 겨울방학기간 동안에는 콩고, 인도, 케냐, 말레이시아, 미얀마, 네팔, 르완다. 우간다 등지의 신학교와 교회에서 사역한다. 세계침례교연맹, 아태침례교연맹, 로잔회의 세계선교글로벌 디아스포라 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