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강의 지상중계(15)
기독교윤리, 가장 좋은 일을 생각할 수 있는 틀
황금률, 의무론
임마누엘 칸트는 황금률(Golden Rule) 즉, 그는 의무론을 주장한 윤리철학자로서 ‘모든 법은 나와 남에게 일관성이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먼저 그 배경을 이해하자면 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과 가언명령(hypothetical imperative)을 알아야 한다. 정언명령이란 어떤 조건에도 좌우되지 않는 무조건적인 명령을 말한다. 가언명령은 조건이나 상황에 따라 적용되고 요구되는 도덕 명령을 말한다.
칸트의 정언명령에는 크게 2가지 원리가 있다. 보편주의 원리는 “네 의지의 격률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는 것이다. 인격주의 원리는 “너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을 결코 단순히 수단으로 취급하지 말고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우하도록 행위하라”는 것이다.
이로써 칸트는 목적론이나 결과주의적인 윤리를 부정했다. 그래서 어떤 행동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낸다고 해도 좋지 못한 동기나 의도로 인한 것이라면 그 행위는 부도덕하다고 판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령 “내가 외딴 섬에 혼자 있을 때에도 내 물건이 아닌 것을 사용하는 것은 도둑질이다” 라는 주장이다. 또한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은 굶주림으로 인하여 울고 있던 동생을 위하여 빵을 훔친 결과로 인해 감옥으로 보내졌다. 이런 경우 동기나 인격을 우선으로 보는 윤리철학에서는 그가 빵을 훔친 행위의 비윤리성이 완화된다. 그러나 칸트의 주장에 의하면 장발장을 감옥으로 보내는 것이 옳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인간적인 동기도 죄의 형량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러한 철저한 일관성을 현실에서 지켜나가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양심의 법’은 존재한다. 이 법이 ‘성령’에 의해 깨달아지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지키지 않는다 해도 나는 지킬 수 있게 된다.
생존과 공존
예전에 아프리카 킬리만자로에서의 삶에 대한 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사람이 살기에는 어려운 지형이나 그 일부분은 생물들이 생존하기 적합하여 여러 형태의 생태계가 보존되었다. 그 중 산의 베이스에는 특정 부족들이 농사를 짓고 살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오랜 세월 지형과 기후가 변화하면서 그들의 옥수수 밭이 코끼리들의 정규적인 이동 통로가 된 것이다. 그 이유는 코끼리들이 이동할 때 그 밭에 있는 옥수수와 물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끼리 떼가 지나갈 때마다 그들의 옥수수 밭은 엉망이 되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코끼리는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이기에 죽이는 것은 불법이므로 농부들이 코끼리 떼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농부들은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정부에 건의했다. 정부에서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한 청년을 마을에 보냈다. 이 청년은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옥수수 밭을 지켜보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마을 사람의 원성은 점점 높아져 갔다. 급기야 마을 사람들은 그 청년에게 사람과 코끼리 중 하나를 택하라고 압박하기 시작했다.
궁지에 몰린 청년은 코끼리가 후각에 민감하다는 것에 착안하여 마지막 방법을 고안해 냈다. 아프리카에는 에이즈 감염을 막기 위해 콘돔이 널리 보급되고 있었는데, 그 콘돔들을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이 청년은 콘돔들을 가져다가 그 속에 후추 가루를 넣었다. 코끼리 떼가 옥수수 밭을 지나갈 때, 그 콘돔들을 터트려서 옥수수 밭을 우회하여 가도록 만드는 작전이었다. 이 계획이 성공하면 옥수수 밭을 온전히 지킬 수 있겠지만, 자칫 후추 가루가 코끼리를 패닉 상태에 빠뜨려 밭을 더 엉망으로 만들 수도 있는 위험성이 있었다. 다행이 작전은 성공했고, 코끼리 떼는 더 이상 옥수수 밭을 지나가지 않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과 코끼리는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 청년이 한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인간과 동물이 공존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들이 너무 많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과 동물이 생존을 위해 경쟁하는 상황 속에서 아무도 동물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나는 인간과 동물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앞으로 이를 위한 방법들을 찾아낼 것이다.”
양심의 법, 성령의 법
이렇듯 공존하는 방법에 있어서 정치적, 율법적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 그보다는 각자 개개인이 양심에 따라 행동할 때 그 파급 효과가 크며, 커다란 무브먼트 (movement)가 되어 세계적으로 퍼져나갈 수도 있다. 간디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평화 운동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제도적인 방법이 문제 해결보다는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킬 확률이 더 높다. 이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이 일정한 기본 틀 안에서 자원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성령’에 의하여 우리의 ‘양심의 법’이 살아나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독교 윤리에 있어서 신학자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을 생각할 수 있는 테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학자들이 모든 윤리적 상황들과 그 대처 방법들을 일일이 언급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때로는 신학자들이 실천은 못하면서 이론만 제시하는 이상주의자일 뿐이라고 비판받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학자들이 모든 실천에 관한 규칙을 제시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논리적인 사고를 통하여 그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고, 그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신학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정미연 박사 (몰링 칼리지 교수_조직신학, 윤리학)
미국 이민 1.5세 출신의 차세대 신학자. 사우스웨스턴침례신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의 여러 신학교와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교수생활을 했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 몰링 칼리지 전임교수로 봉직하고 있다. 여름과 겨울방학기간 동안에는 콩고, 인도, 케냐, 말레이시아, 미얀마, 네팔, 르완다. 우간다 등지의 신학교와 교회에서 사역한다. 세계침례교연맹, 아태침례교연맹, 로잔회의 세계선교글로벌 디아스포라 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