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소개
폴 고갱(Paul Gauguin)의 ‘노란(황색)색의 그리스도’(The Yellow Christ)
1889년, 얼브라이트-녹스 미술 갤러리(뉴욕 버팔로)
폴 고갱(Paul Gauguin, 1848년 6월 7일~1903년 5월 8일)은 프랑스의 후기인상주의 화가이다. 파리에서 태어났다.
미술사상 가장 철학적인 제목의 작품이라고 하는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작품으로 잘 알려진 고갱은 그의 친근한 그림과 함께 그의 특이한 생애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1848년 파리에서 태어나서 증권브로커로 성공하였으나 중년에 그림에 몰두하면서 직장도 버리고 가족들과도 헤어져 도시의 문명을 벗어나 프랑스의 서부해변에서 자연을 벗삼아 작품활동을 한 그는 마네, 드가, 르노아르, 피사, 밴 고흐 등과 같은 인상파 거장들과 교류하면서 영향을 주고 받았으나 그는 상징주의와 색상의 종합 등 자신의 개성적인 특성을 고집하면서 후기인상파나 상징주의 화가로 구분된다.
생전에는 그리 평가받지 못하였으나 오늘날에는 인상주의를 벗어나 종합주의 색체론에 입각한 작품을 남긴 화가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생의 마지막 10여년을 타히티를 비롯한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서 생활하며 작업하였고 이 시기 작품이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고갱의 작품은 파블로 피카소나 앙리 마티스와 같은 프랑스 아방가르드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고갱 사후 파리의 아트딜러 앙브루아즈 볼라르는 두 번의 유작전을 파리에서 개최하였고 그제서야 명성을 얻게 되었다. 고갱은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로 회화뿐만아니라 조각, 판화, 도예, 저술 등의 다방면에서 작품을 남겼다. 고갱의 화풍은 클루아조니즘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대표작들의 주제는 원시주의에 바탕을 두었다.
고갱은 1891년 물질주의적이고 인위적인 서구문명을 피해서 남태평양의 프랑스영토인 타히티를 찾았다. 그는 적도의 검푸른 자연풍광과 순박한 토착민들인 폴리네시안들에게 매료되어 그곳에 정착하고 작품활동을 하였으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았고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굴곡이 심했다. 이곳에서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제작하기도 하였지만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불란서의 대표적인 후기 인상파 화가 폴 고갱, 그의 강렬한 색깔, 장식적인 평면 구도와 그의 상징주의는 20세기 초 현대미술의 태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고갱은 1848년 파리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남미 페루에서 자라고, 불란서로 돌아와 한때는 남대양에서 항해를 즐기기도 하였다. 젊어서 증권 중개인으로 성공하고, 결혼을 하여 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어렸을 때부터 집념하던 미술에 심취되어 가족과 친지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도시문명을 혐오하여 남태평양의 타히티 섬에 이주하여 작품활동을 하였다. 원시적인 자연풍경과 그곳 원주민의 생활상을 흠모하며 고갱 만의 새로운 상징주의를 개척하였으나 가난과 질병과 싸우다가 자살을 시도하였고 결국 병고로 그의 생은 끝이 났다.
“노란색의 그리스도”는 고갱의 상징주의의 중요한 작품중의 하나이다. 고갱은 1888년에 밴 고호와 잠시 같이 작품생활을 하면서 고호의 영향을 받아 그의 특허 색이며 정열적인 노란색으로 십자가의 예수와 그 주변을 그린 것이다.
전통적인 십자가의 종교화의 틀을 벗어나 어둡지 않고 화사한 노란 색의 가을 풍경으로 재구성하고 십자가의 예수도 노란색으로 평면화하였다. 십자가 주변에 둘러앉은 여인들도 비탄하는 대신 생각하는 모습으로 단순화하여 그 구도가 작가가 시도한 상징성을 보여 주고 있다.
고갱의 상징주의는 그로 하여금 보다 종교적인 주제를 추구하게 되었고 “노란색의 그리스도” 는 비탄하는 대신 긍정적으로 그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고갱의 명작중의 하나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