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뜨락
아름다운 노을을 꿈꾸며
고전 읽기 반에서 ‘우아하게 늙으려면’이라는 주제로 각자 소신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거의가 70, 80이 가까운 분들로 그간 생활 경험과 고전읽기를 통한 배움을 바탕으로 좋은 말들이 많이 나왔다. 그 중 발표내용을 종합하여 추려본다.
우아하게 늙으려면 건강과 경제적인 면에서는 한계가 있으나 행동적인 면에서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그 중 먼저 인사하기, 말을 적게 하기 우기지 말기, 생각 많이 하기, 주변의 즐거움 누리기, ‘지금, 여기’ 살기 등등이다. 언급한 대로 살면 진정 우아하게 늙어 가리라. 이를 계기로 지난 생활을 뒤 돌아보며 나는 역사에 등장하는 두 인물을 떠 올려본다.
김득신은 조선 중기의 대표 시인이다. 시문집 ‘백곡집’과 시 비평집 ‘종남총지’를 남기는 등 오늘날 국문학사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머리가 나쁜 그는 안 되면 될 때까지 부단히 책 읽기에 매진했다. 주변 사람들이 김득신을 바보라고 손가락질할 때에 아버지는 그를 독려하며 대기만성의 교훈을 일깨워 주었다.
그가 많은 책을 읽기도 했지만, 한 권을 수천 수만 번 반복하여 읽었다. 노자전, 분왕, 벽력금 등은 2만 번 넘게 읽었고, 백이전은 무려 11만 3천 번을 읽었다고 한다.
책에 너무 몰두하여 생긴 웃지 못할 일화가 꽤 있는데 그 중 한가지를 소개해본다.
김득신이 어느 날, 길을 가다가 글 읽는 소리를 듣고 “저 글이 익숙한데 무슨 글인고?” 하니 하인이 김득신이 매일같이 읽어 자신도 아는데 어찌 모르냐며 되물었다고 한다. 그 글은 김득신이 11만 3천 번을 읽었다고 스스로 기록한 백이전이었다. 김득신의 아둔함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노력하고 또 노력해 마침내 59살에 과거에 급제했다. 김득신은 자신의 묘비에 이런 글을 남겼다고 한다.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 짓지 마라. 나처럼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결국 이루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 데 달렸을 따름이다.’
아둔함을 이겨 내고 위대한 시인으로 이름을 떨친 김득신과 상반되는 인물로 고사에는 방중영이 등장한다.
평민으로 자란 방중영은 태어난 지 다섯 살이 되도록 글 쓰는 도구를 알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울면서 글 쓰는 도구를 달라고 졸라댔다. 아버지는 이상하다 생각하며 그를 빌려다 주었다. 신기하게 곧 시 네 구절을 쓰고 거기에다 자기 이름까지 썼다. 부모를 봉양하고 집안을 잘 거두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로부터 시제를 주면 중영은 글을 완성하였는데 그 시의 문사나 내용이 모두 훌륭했다.
고을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방중영이 훌륭한 시를 짓는 사실을 신기하게 여겨 그 아버지를 손님으로 대접했으며 때로는 돈이나 비단을 내주기도 하였다. 그러한 일에 재미를 붙인 아버지는 날마다 중영을 데리고 고을 사람들을 두루 찾아다녔으나 배움엔 소홀히 하였다. 방중영은 청소년으로 성장하며 그냥 보통사람이 되어버렸다. 방중영이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과 총명을 받고 태어났건만 결국 보통사람이 된 것은 교육이 불충분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선천적으로 총명과 재질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라도 배움과 노력이 없다면 그 재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방중영의 인생 이야기가 내 삶의 지침이 되고 끈기와 노력으로 아둔함을 이겨 내고 뒤 늦게 위대한 시인으로 태어나 이름을 떨친 김득신의 성공담이 위로를 준다. 책을 읽거나 배우고 돌아서면 망각의 늪에 빠져들지라도 두 인물을 생각하며 용기를 가진다고나 할까?
나의 일상을 얘기하자면. 매주 월요일에 고전읽기 반에 나간다. 그리고 매달 한번 북 클럽에 나가 공동으로 읽은 책의 내용을 나누고 토론하기를 즐겨 한다.
이민생활의 여건 상,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택하여 작은 일에 봉사하며 이웃과 공동체 안에서 낮은 자세로 소금의 역할과 썩는 한 알의 밀알이 될 수 있게 기도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이쪽 저쪽 양자의 유익을 위해 가교 역할에 힘쓰며 이에 기쁨과 보람을 갖기도 한다. 이러한 나의 일상이 내 안에 녹아 들어 문학에 이바지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하며 발표주제인 ‘우아하게 늙는 다는 것’은 감히 생각하지는 못할 지나 내 인생 노을이 곱게 물 물들기를 꿈꾸어본다.
최옥자 문인(글무늬문학사랑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