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보리농사(1)
시드니의 7월 초순은 한국의 엄동설한에 해당하는 계절이다. 미국 독립기념일인 지난 7월 4일 시드니 지역(2016-07-04)의 기온은 최고기온 14℃에 최저기온 8℃로 괘 쌀쌀한 날씨다. 필자의 텃밭에는 쌀쌀한 날씨를 반기기라도 하는듯 새파란 보리싹이 생기 있게 치솟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에 고추장을 담그는데, 엿길음용으로 쓰다 남은 보리씨를 뿌렸더니 싹이 나서 그림처럼 어울렸다. 한국의 연로한 분들의 대부분은 현대[現代]의 창업자 고[故] 정주영 회장이 보리싹을 가지고 잔디처럼 보이게 캄프라지[Camouflage]한 에피소드[episode]를 알고 있을 것이다. 1952년 12월 한국전쟁 중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34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아이젠하워가 한국전쟁에 참전중인 미군들을 위로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겠다는 통보가 주한 미8군 사령부에 떨어졌고, 주한 미8군사령부는 비상이 걸렸다. 전쟁 중이라 호텔같은 시설도 없고 대통령이 묵을 숙소가 없었다. 미8군사령부는 한국정부와 상의해서 옛날에 왕이 살던 운현궁을 대통령 숙소로 사용하기로 했으나 운현궁에는 현대식 화장실, 보일러 난방시설, 샤워실 등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방한일자는 15일밖에 남지 않았었다. 정부에서는 급히 현대 정주영에게 공사를 요청했다. 일주일 이내에 공사를 완료하라고 했는데, 정주영은 현장에서 24시간 감독을 하며 4일만에 공사를 멋지게 끝마쳤다. 미군관계자가 “현다이 넘버 원”이라고 극찬을 했다고 한다. 아이젠하워의 방문일정 중에 유엔묘지 참배가 들어 있었다.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참전용사들의 묘가 있는 부산 유엔군묘지는 전쟁중에 조성되어 풀 한포기 없는 맨땅에 팻말만 꽂아놓아 황량하고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주한 유엔군사령부에서도 묘지를 꾸밀 시간적 여유가 없었지만 특히 겨울철이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젠하워가 유엔묘지를 가보겠다니 또 비상이 걸렸다. 황량한 묘지에 대통령을 모시고 갈 수 없었던 사령부는 한국 측에 푸른 잔디를 덮을 방법이 없겠느냐고 문의했다. 하지만 겨울철에 푸른 잔디를 입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당시는 아직 인공잔디 같은 것은 개발되지도 않았었던 때다. 한국의 여러 건설업체에 문의했지만 도저히 불가능 하다는 답변이었다. 단, 그 중에 한 업체에서만 할 수 있다는 답변이 왔다. 바로 현대의 정주영이었다. 정주영은 사령부 관계자를 만나 공사 내용을 상의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겨울철에 파란 잔디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니 대통령이 다녀가시는 동안 파랗게 풀이 덮인 묘역을 만들기만 하면 되지요?”, “예. 대통령이 유엔묘지에 갔을 때만 묘역이 파란 풀로 덮여있으면 됩니다. 공사비를 3배를 드릴테니 꼭 해주세요.” 정주영은 그날 바로 낙동강 하구 지역으로 내려갔다. 남쪽 바닷가의 많은 보리밭에는 늦가을에 심은 보리싹이 5~6cm쯤 파랗게 자라고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파랗게 잘 자란 보리밭 주인을 만나서 보리밭 전체를 통째로 사버렸다. 정주영은 바로 대형트럭 30대를 동원하여 삽으로 보리싹을 흙 채로 떠서 유엔묘지로 실어 날랐다. 다음날 유엔묘지는 파란 보리싹으로 덮였다. 흙먼지가 날리던 유엔묘지가 “푸른 공원”으로 바뀐 것이다. 미사령부 관계자들이 보고는 “브라보, 브라보”를 외쳤다고 하며, 그 후부터 미군부대 공사는 현대가 독차지했었다고 한다[m.blog.daum.net/susanhoa/에서].
식량증산, 보리
보리 파종시기가 지역에 따라 약간 달라 질 수 있으나 농사꾼들은 입동(立冬) 전에는 보리파종이 끝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입동(立冬)은 24절기의 19번째로 태양 황경이 225도가 될 때이다. 겨울이 시작하는 날이다. 양력으로는 11월 7일경에 해당한다. 시드니 지역의 요즘 날씨가 한국의 입동 전후의 날씨가 아닌가 생각된다. 입동전에 파종한 보리가 싹이 나서, 월동 전에 보리의 본엽이 5∼6개 나올 수 있게끔 파종하는 것이 보리농사의 기본 원리이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의 기상을 분석하고 수량성을 검정하여 각 지역에 알맞은 파종적기를 준수한다 하더라도 그 해의 기상조건이 이론과 실제가 딱 부합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월동 전 생육기간이 길어지면 월동 전에 유수[幼穗-어린 이삭)가 형성되어 동해의 우려가 있고, 반대로 추위가 일찍 오면 보리의 생육단계가 늦어져 동해는 물론 감수가 우려된다. 50여년전, 유신정권 시절에 식량증산을 국가안보적인 차원이라며 총동원령을 내리다 시피 하며 법석을 떨던 때도 있었다. 학생들도 행정기관의 통제를 받으며 공부도 집어 치우고 농사일에 동원 되었었다. 모심기에서 볏논에 피뽑아주기, 장마때 쓰러진 벼포기 일으켜 세우기, 벼베기 등 군청의 과장이며 면장, 모든 공무원들이 학교에 와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을 끌어냈다. 겨울철에는 보리밭 밟기를 하러 다녔었다. 주인은 내다보지도 않는데 학업을 중단하고 나온 학생들이 농사일을 감당하는 형국이었다. 주로 국도변에 사람들, 눈에 많이 뜨이는 논밭의 농사일이라 전시행정의 일환으로 마구잡이 동원을 시킨 것이다. 현재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 일 것이다.
보리 밭, 밟기
늦 가을에 뿌려진 보리싹이 겨울동안 흙속에서 자라고 있다가, 입춘[立春]이 되면 언 땅과 찬 서리에 의해서 뿌리가 들떠서 영양분 섭취를 바로 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상태의 뿌리를 땅에 바로 내리게 하기 위해서 밟아 주는 것이다. 단단히 밟아 주면 뿌리가 바로 내리고 입춘을 지나면서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봄철 한발시 밟아주면 뿌리의 발달과 조직의 건생화[乾生化]로 보리가 건조에 견디는 힘[내건성]이 증대되고 토양수분도 보릿골 가까이로 옮겨져서 토양의 균열도 메워져 한발 피해가 경감된다. 또한 식물체가 단단해져서 쓰러짐을 방지해 주고, 뿌리가 토양에 잘 고착하여 양분과 수분의 흡수 이용이 좋아진다. 그리고 먼저 분얼[分蘖-가지가 나오는 것]한 가지의 유수[幼穗-어린 이삭] 발육이 억제되고 분얼이 조장되어 이삭수[穗數]가 많아지고 이삭이 나오는 것이 균일해 진다. 농사꾼들은 겨울철을 견디는 보리의 생리작용을 잘 알고 있었기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부지런 한 사람은 농한기에 통상 해오던 농사일이었다. 보리는 열매껍질이 씨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느냐, 쉽게 떨어지느냐’에 따라 크게 껍질보리(겉보리)와 쌀보리로 구분한다. 겉보리가 추위에 더 잘 견딘다. 겉보리는 주로 영남에서, 쌀보리는 주로 호남에서 많이 재배된다. 또 열매에 줄이 두 개 있는 두줄보리와 여섯 개 있는 여섯줄보리 등으로 구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원전 5-6세기 것으로 보이는 여섯줄보리의 일종인 껍질보리가 경기도 여주군에서 출토된 바 있어, 오래전에 중국을 거쳐 들어온 것으로 보고있다. 쌀보리는 일본을 거쳐 들어온 것으로 여겨지는데 껍질보리에 비해 추위에 견디는 힘이 약하다. 보리는 춘·추파성 및 내한성의 정도에 따라 겨울보리가 대부분이고 봄보리는 겨울이 지나치게 추워서 겨울보리의 재배가 어려운 경기 북부, 강원도 및 중부 산간지대의 일부에서 재배한다. 한반도에서 재배되고 있는 보리는 중국으로부터 2가지 경로를 통하여 도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중국북부로부터 만주를 거쳐서 한국의 북부지방으로 전래되는 육상경로와 양자강유역에서부터 황해 및 남해에 면한 한반도지역에 전래되는 해상경로이다(농촌진흥청, 1979). 보리가 한반도지역으로 전파되어 재배되기 시작한 시기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려진 바 없지만, 선사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유적에서 출토된 종자를 포함한 농경흔적에서 간접적으로 찾아 볼 수 있다.
오곡백과[五穀白果] 풍성한
세계4대 식량작물 하면 벼, 밀, 옥수수, 감자를 말하며 보리는 들어 있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오곡이라고 해서 쌀, 보리, 조, 콩, 기장, 다섯 종류의 곡식을 들고 있다. 가곡 ‘조국찬가’[祖國讚歌]에 “오곡백과[五穀白果] 풍성한, 금수강산 옥토낙원 완전통일 이루어 영원한 자유평화…”가 있어서 오곡[五穀]이라는 어휘는 친근해 졌지만 그 종류를 정확하게 열거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많을 것이다. 그 중에서 기장(黍-기장서)은 특수한 경우에나 접할 수 있는 자취를 감춘 곡식이다. 벼과 기장속의 한해살이풀로 학명은 Panicum miliaceum이다. 나쁜 조건에도 잘 적응하고, 빠른 기간 안에 크며 물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 특성때문에 기원전부터 인류가 재배해온 식물의 하나로 약 7000년 전 남코카서스와 중국에서 서로 비슷한 시기에 곡식으로 재배하기 시작했다. 인도, 러시아, 중동, 터미, 루마니아에서 많이 기른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재배했다는 기록이 있다. 오곡중에 쌀이 밥을 지으면 부드럽고 맛이 있어서 단연 최고의 곡식으로 자리잡고 있었지만 겉보리는 과거에 도정하기가 힘들고 꺼칠꺼칠해서 맛으로는 쌀밥에 따라 갈 수가 없었다. 겉보리는 길쭉하고 색이 짙고 쌀보리는 둥글고 알이 쌀처럼 하얗다. 쌀보리는 밥에 넣어 먹기 좋지만 겉보리보다 씹는 맛이 덜하다. 버석버석하고 억세다. 겉보리는 한 번 삶아 밥에 넣어 먹으면 부드럽고 구수하다. 이름에서 엿보이듯 겉보리는 씨방 벽에서 분비되는 점액물질로 인해 익은 후에 껍질이 씨알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고, 쌀보리는 껍질이 씨알에서 잘 떨어진다. 1970년대에 춘곡 수매를 하면 쌀보리가 훨씬 비쌌다. 껍질이 없다시피 하니까 방아를 찧으면 양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한 가마 찧으면 쌀보리는 50되 정도 나오는 데 비해 겉보리는 40되도 채 안된다. 대신 돼지먹이로 좋은 등겨는 많이 나온다. 최근에는 간편한 가정용, 도정기搗精機]까지 나와서 겉보리고 쌀보리고 간에 보리밥에 거부감은 사라지고 건강식으로 인기가 상승하는 추세이긴 하다. 과거, 도정[搗精]시설이 취약하였던 시절에 보리로 밥을 지어 먹으면 껄끄러워서 서민들의 음식으로 대접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오병이어[五餠二魚]의 오병은 보리떡
중동지방은 보리재배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성경에 보리에 관한 구절이 많이 나온다. 오병이어[五餠二魚]의 오병은 보리떡을 말하는 것 아닌가? 보리는 영어로 “Barley”라고 하는 것을 보면 동서양이 공통적인 곡식으로 출발한 것 같다. 보리에 관한 언급이 성경에 자주 등장하듯이 성경시대나 지금이나 팔레스타인 지방의 중요한 농산물이다. 한반도에서는 보리로 밥은 지어 먹었지만 중동에서 처럼 보리떡을 해먹지는 않았을 것 같다. 요새는 벌이가 좋은 마늘이나 양파를 심는 농가가 많지만 예전엔 양념작물보다는 오로지 보리나 밀 중심으로 식량작물을 심었다. 밀보다 보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보리 한 포기는 보리밥 세 숟갈이 된다. 그러니 다른 걸 심고 말고 할게 아니다. 보리가 한국의 농사꾼들에게 불가분의 관계를 갖게 된 데에는 중요한 이유도 있었다. 화훼나 과수, 원예보다 먹고살 식량을 생산하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보리농사를 중히 여긴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소작료 때문이다. 지주의 논을 부쳐 먹는 소작농이 반 이상 차지하던 시절, 소작료는 소작쟁의의 불평 원인이었다. 그러나 이모작 농사에는 소작료가 없었다. 벼농사를 지으면 보통 50%에서 70%나 되는 소작료를 내야 했지만 이모작 농사는 모두 소작인 몫이니 양식 마련하기 절박한 농부들이 보리농사에 전념하는 게 당연하다. 쌀보리는 추위에 약해 남부 지방에서 많이 재배하지만 작황이 좋을 때도 소출량이 겉보리를 따라가지 못한다. 70~80% 수준이 안된다. 월동작물인데 추위에 약하니 수확량이 적은 것이 당연하다.<다음호에 계속>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