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스페인과 포르투갈 여행(3)
포르투갈 땅을 밟다
잠시 잠깐 포르투갈의 땅을 밟았다. 리스본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중 하나인 제로니모스 수도원(Jerónimos Monastery)을 관람했고 포르투갈의 땅끝 마을이라고 하는 “까보다로까”를 방문했으니 포르투갈 땅을 밟기는 한 것이다. 먼저 “제로니모스”수도원을 소개해 본다. 몇 차례에 걸친 유럽여행을 통해 어마어마한 성당을 많이 봐 온터라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일행에 이끌려 수도원 건물에 들어섰다. “제로니모스 수도원”도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건물이니 심상치 않음은 명백하다. 그라나다 파밀리아 성당의 파사드[프랑스어: Façade]를 언급 하였었는데 대부분의 성당이 파사드 장식에 치중하지 않은 반면 가우디는 파사드에 많은 정성을 들인 것 같고 제로니모스 수도원도 파사드가 단번에 눈에 들어 왔다. 파사드는 건물의 출입구로 이용되는 정면 외벽부분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수도원은 리스본의 벨렘(Belém)지역에 위치한 수도원이다. 이곳은 고딕양식과 이탈리아, 스페인, 플랑드르의 건축양식을 띤 포르투갈 전통양식인 마누엘린양식으로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고딕양식이나 마누엘린양식이라고 하는 것은 건축이나 미술의 한 장르로 설명되는 것이기에 언급하기는 너무 복잡하지만 사전적인 의미로 설명한다면 고딕건축은 첨탑으로 인해 수직선이 강조되어 나타나는 특징을 보이며, 육중한 벽과 기둥보다는 가냘픈 기둥과 넓은 창을 가진 내부는 신비롭고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누엘양식은 포르투갈이 해양 진출을 하는 포르투갈 역사 중 황금기인 16세기에 꽃핀 건축양식이라고 한다. 마누엘이라는 이름은 포르투갈 해양 진출 전성기 때의 왕인 마누엘 1세에서 유래했으며 마누엘양식은 고딕양식이 퇴조하고 르네상스양식이 싹 트기 전, 두 양식 사이에 나타났다고 한다. 이 양식은 1490년부터 약 50년간 포르투갈에서 지속되었다. 마누엘양식의 특징은 고딕 양식의 기반에 해산물과 항해용구를 주제로 한 장식으로 꾸며진 것이다. 이것은 포르투갈의 해양진출에 대한 결과가 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제로니모스 수도원
마누엘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이 제로니모스 수도원이다.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자로 컬럼버스를 추앙하고 있는것 못지않게 포르투갈은 “바그쿠다 가미”를 추앙하고 있다. 제로니모스 수도원은 황금의 땅으로 상상했던 인도로 바스쿠 다 가마[Vasco da Gama]가 인도로 출발하기 전에 머물렀던 곳이었다고 한다. “바스쿠 다 가마”는 과거 포르투갈의 화폐에 묘사되기도 했었다. 수도원안에 들어서니 가우디의 파밀리아 성당과 유사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성당안의 기둥들이 일직선으로 뻗어 올라간 것이 아니고 나무줄기가 펼쳐지듯 분산되어 천정을 떠받치고 있었다. 수도원이라 복합적인 구조로 이루어 졌으며 관람객이 들어가는 곳은 예배당 건물이다. 처음에 마주한 파사드는 교회의 남쪽문이다. 북쪽문은 접근하지 못하고 남쪽문에서 압도당하고 말았다. 가까이 가 보니 그 어떤 문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우아했다. 제로니모스 수도원은 포르투갈이 자랑하는 마누엘양식으로 꾸며져서 섬세하고 아름다운게 특징이다. 바스쿠다 가마가 황금의 땅이라고 생각했던 인도로 떠나기 전에 이곳에 머물르며 기도를 하던 장소이기도 하며, 그는 3년 만에 항해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 왔음은 물론 금은보화를 잔뜩 싣고 돌아 왔으니 그를 믿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마누엘1세 왕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에 마누엘왕은 그때까지 있었던 예배당을 헐고 그 자리에 오늘날의 제로니모스 수도원을 건축하게 되었고 이 건물을 통해 포르투갈의 위업을 만천하에 들어내 보이려고 한 것이다. 예배당의 파사드가 아니라면 정부 청사처럼 보이는 좌우로 길죽하게 연결된 외관은 특색이 없는 것 같으나 막상 예배당안에 들어서니 높고 깊은 실내 공간에 압도당하고 호화찬란 하기까지한 구석구석의 묘사는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였다. 예배당 제단의 뒷벽에는 예수의 고난을 표현한 그림으로 채워져 있고 뒷편에는 “마누엘 1세” 때 해양왕의 칭호와 함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바스크다 가마와 포르투갈의 활약상을 대서사시로 읊은 이 나라 국민시인 “루이스 데 까몽에스”의 석관이 안치되어 있다. 석관의 두 영웅의 조각에서 특이한 것은 칼을 차고 있는 것인데 그가 살았던 15-6세기경까지만 해도 십자군 전쟁의 영향으로 신부 직분이기도 했던 두 사람이 칼을 차고 다녔기 때문이고 칼은 신부의 상징이었다고 한다. 수도원은 한 변의 길이가 300m에 이르며 화려하고 장엄한 건축물로 한 눈에 보기조차도 힘들어 시야를 나누어 조곤조곤 살펴야 제대로 된 수도원을 감상할 수 있다. 새로운 대륙 개척을 열망하던 대항해 시대에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항해의 장도에 나서는 선원들이 배에 승선하기 전에 기도를 올리기 위해 들렀던 곳이 이곳 수도원이다. 수도원 성당에는 희망봉을 돌아 인도 항로를 발견한 ‘바스코 다 가마’, 대항해 시대 포르투갈 활약상을 대 서사시로 읊은 포르투갈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루이스 데 까몽이스’, 국왕 마누엘 1세 등 포르투갈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의 잠들어 있다.
벨렘탑
제로니모스에서 가까운 거리에 포르투갈 발견의 시대를 상징하는 “벨림탑”이라는 이름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건축물이 있다. 현지 가이드의 숨돌릴 새 없이 계속되던 해설을 기억해낼 재간이 없어서 검색을 통해 그 정체를 밝혀 봤다. 이 기념탑에도 포르투갈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벨렘탑 동쪽에 날개가 2층으로 된 수상 비행기가 전시돼 있는데 1922년 가규 코티뉴[Gago Coutinho,1869-1959]의 독특한 기록물은 가구 코티뉴(Gago Coutinho, 1869~1959) 대위와 사카두라 카브랄[Sacadura Cabral, 1881~1924] 대위가 세계 최초로 남대서양을 횡단에 성공한 비행기라는 것이다. 또한 이때 두 비행사가 작성한 남대서양 횡단의 보고서는 “베림탑”과 함께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 되었으며 원본은 포르투갈 마리나 역사 기록 보관소(Arquivo Histórico da Marinha)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두 비행사는 육본의[六分儀, 항해중에 천체와 수평선 혹은 지평선과의 각도를 측정함으로서 현재의 위치를 알아내는 도구]에만 의지한 채 수상비행기를 타고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까지 남대서양 횡단에 성공한 것이다.
까보다로까
대서양을 마주하고 있는 포르투갈은 대서양을 발판 삼아 15~16세기 당시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지니며 해양 왕국으로 대성했다. 이 포르투갈에서 대서양이 가장 먼저 시작되는 곳이 땅끝 마을로 알려진 까보다로까다. 까보다로까에 서게 되면 대서양의 시작을 먼저 느낄 수 있다. 포르투갈의 까보다로까는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유럽 서쪽 땅끝 마을이다, 실제로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서사시인 카몽이스(Camoes)는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Aqui Ondi a Terra se Acaba e o Mar Comeca)’이라 칭송하였고, 이 글귀는 서쪽 땅끝 마을을 상징하는 십자가 돌탑 뒤에 새겨져 있다. 이 곳이 유럽 최서단임을 나타내는 십자탑이 우뚝 솟아있다. 그 글귀가 새겨진 곳을 관찰하다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까보다로까의 위치가 우리나라 38선과 같은 위도인 38도라는 것. 까보다로까를 방문한 한국인들 중에는 그 모습이 마치 제주도의 섭지 코지와 닮았다고 표현하는 이도 있다. 제주도의 섭지 코지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에 위치한 해안이다. 제주 방언으로 ‘좁은 땅’이라는 뜻의 ‘섭지’와 ‘곶’이라는 뜻의 ‘코지’가 합쳐져서 섭지 코지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이곳에 봉화를 올렸던 연대가 있고, 다른 해안과 달리 붉은 화산재 송이로 덮여 있으며 많은 기암괴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섭지 코지를 유심히 살펴 본 사람이라면 포르투갈의 까보다로까에서 비슷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대서양의 관문이자 지중해가 만나는 곳, 까보다로까의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 까보다로까는 대서양을 품은 아름다움 때문에 일찍이 예부터 영국과 스페인 귀족들의 여름 휴양지로 사랑받아 왔다. 지금도 가까운 거리에 있는 도시인 신트라에서 굽이굽이 까보다로까로 올라가는 산중턱에는 유명인들의 별장들이 가장 좋은 전망을 가진 위치에 간간히 숨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까보다로까의 절벽에 서서 탁트인 대서양을 내려다 보는 감회는 누구나 벅차오르게 될 것이다. 호주 시드니 지역의 해변이 깍아지른 절벽이 많지만 까보다로까의 절벽도 꽤나 높아서 까마득하게 바다표면이 내려다 보인다. 그런데 과거엔 이 적벽위의 꼭대기에는 안전용 목책[木冊]이 없었다고 한다. 어느해인가 한국 순양함이 이곳에 들렸다가 병사들이 하선하고 이 자리에 올라와서 관광하는 중에 병사 하나가 실족하며 바다로 추락하였다가 가까스로 생명을 건지는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이때까지 자연 경관 훼손 등의 이유로 목책 설치를 거부했던 행정당국이 서둘러 목책을 설치하게 되었다고 한다. 8박9일의 짧은 일정속에 포르투갈의 유서 깊은 도시이기도 한 신트라의 페나성이라는 관광명소를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어찌됐던 유라시아[아시아+유럽] 대륙의 최서단 끝에 서 있다는 사실은 여행객들에게 있어 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벅찬 경험이다. 까보다로까는 포르투갈에서 빼놓아서는 안될 최대의 관광명소지만 규모가 작은 만큼 볼거리나 편의시설이 많지 않다. 유럽에서 3번째로 오래된 빨간지붕의 등대가 있으며 등대건물엔 우체국이 있고 관리사무실이 있으며 작은 기념품 가게에서 이곳을 다녀갔다는 증명서를 발급해 주기도 한다. 한때 대항해 시대에 신대륙 개척에 앞장섰던 강대국이었던 포르투갈은 그 명성을 잃은 것은 사실이지만 포르투갈의 경제는 서서히 되살아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유럽의 변방국가 포르투갈
포르투갈은 지역적으로 유럽의 변방에 속하며 국토면적도 92,391km²로 대한민국의100,210km²보다 약간 적은 작은 나라에 속한다. 포르투갈 경제회복은 최대 호황을 누리는 관광산업이 주도하고 있다. 포르투갈 통계청은 “지난해 관광 수입은 전년보다 10.7% 늘어난 126억8000만유로를 기록했다”며 “이 같은 성장률은 10년 내 최고 수준”이라고 밝혔다. 관광 산업은 지난해 포르투갈 전체 GDP의 6.9%를 차지했다. 관광산업의 호황은 프랑스와 터키, 이집트 등 기존 관광 대국이 잇따라 테러 공격을 받으면서 스페인·그리스·포르투갈 등 상대적으로 안전한 남유럽 국가들이 각광을 받았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내수 시장의 활성화도 경기 회복의 원동력이 됐다. 포르투갈 정부관계자는 “2016년 9월부터 올해 2월 사이 소비자 신뢰지수는 지난 2000년 3월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며 “경제 위기 이후 포르투갈 소비자들의 소비 심리가 뚜렷하게 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고액 투자자에게 투자이민 비자를 주는 ‘골든비자’(Golden Visa) 제도를 통해 외국인 투자를 적극유치한 것도 해외자금이 국내에 들어오는 통로 역할을 했다. 포르투갈은 50만유로 이상 부동산을 구입하거나 100만유로 이상을 주식 등에 투자한 경우 그리고 10명 이상 고용을 창출한 경우에 골든비자를 주고 있다. 포르투갈은 올 1~2월 이 제도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88.2%가 늘어난 2억4000만유로의 해외 자금을 끌어들였다고 한다. 포르투갈을 리스본에서 까보다로까까지 말 그대로 주마산산[走馬看山]이었지만 축구팬인 필자는 2002월드컵과 함께 포르투갈을 연상하게 된다. 2002년 6월 14일 스물 한살의 박지성이 포르투갈과의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에서 터뜨린 골은 전설이 되다싶이 되었다. 박지성은 후반 25분 이영표의 크로스를 가슴으로 받아 수비수를 속인 뒤 왼발로 상대 골망을 흔들었음은 물론 붉은악마들을 미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서야 포르투갈을 제대로 보기 시작하게 된 참으로 소중한 여행이었다.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