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 칼럼
국민정신교육의 발상[發想] (4.19 혁명 54주년에 즈음하여)
일본식민지 시절, 소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해방[1945년 8월 15일]을 맞았다. 4개월 정도의 1학기를 마친 상태지만 그때 받은 교육내용이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다. 일본어 국어책의 문장과 황국신민선서는 입에서 저절로 쏟아져 나올 정도로 오랜 동안 나의 뇌리에 박혀 있었다.
한때 스파르타 교육방식의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며 일부 교육현장이나 선수 훈련에 응용하기도 하였다. 스파르타 교육은 근본적으로 존엄한 인간을 키우려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 충성하며 헌신하는 전사를 양성하려는 훈련이다. 스파르타의 국민으로서, 부적합하다고 판단 되는 영아[嬰兒]는 가차없이 산에 내다버리고 건강한 아기 만을 키워 7세부터 국가가 관리 하여 양육하고 훈련시켜 국가를 위해 헌신 할 수 있는 전사를 길러 내려는 것이 스파르타교육이다. 기원전 5세기경의 교육방식인데 아직도 이를 답습[踏襲]하고 싶어 하고 있는 일부 계층[階層]이 있다. 50년대후반에 학교에서 모의 목총[木銃] 을 메고 제식훈련, 총검술, 행군 등 군사교육을 받았다. 후반기에 령관급 현역장교를 단장으로 한 검열단이 학교에 와서 하루 종일 사열에서부터 훈련전반에 걸쳐 검열을 하였다. 검열평가가 잘못 나오면 배석장교의 호된 기압을 각오 하여야 했다.
권력자들의 의도 한데로 잘 훈련된 예비전사들이 적[敵]과 맞서기에 앞서,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를 응징하는 4.19혁명을 일으켰다. 그 후에는 또 어떠하였는가? 1949년에 향토 방위를 한다는 명목으로 중고등학교와 대학까지 학생전원을 대상으로 조직한 학도호국단이 있었으나 철저한 관변 단체였으며 4.19혁명후 해체 되었었다. 그러나 군사정권은 침략을 노리고 있는 적군에 대처 하여야 한다며, 해체 된지 15년이 지난 학도호국단을 재 조직하고 학교에 실총[實銃]까지 지금하며 군사교육을 시켰다. 그 학생들이 권력욕의 중독자들을 응징하는 민주화 운동에 앞장 서지 않았는가? 1922년에 춘원 이광수는 한민족[漢民族]의 정신을 개조 하여야 한다는” 민족 개조론 “이라는 논문을 발표한바 있다. 논란이 있는 내용 중에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를 불식[拂拭]하고 국가에 충성하는 국민이 되여야 한다는 것이다. 90여년전과는 상황이 달라 졌으나 이광수의 주장과 같이 자유를 유보하고 권력집단에 순응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래야 신출귀몰의 능력을 가진 적을 물리 칠 수 있고 그 선봉인 자기네 집단만이 가능 하다는 것이다.
1972년 3월 24일 대구에서 “전국교육자대회” 가 열린 일이 있다. 필자도 명단에 포함 되여, 도 교육청에서 마련한 버스를 타고 대구로 가, 일류 호텔에 투숙하며 칙사 대접을 받 았다. 이 대회는 박정희 와 국무위원, 전국 77개 대학 총장, 전문학교장, 중고등학교 교장, 국민학교(초등학교) 교장 및 문교부 공무원 등 8.000이 참가하는 전무후무한 ‘교육자대회’였다. 대회 전날 참가자들은 대구 체육관에 입장하여 앉았다 일어서는 동작에서부터 박정희 대통령의 입장 시, 박수 치는 요령, 무릎 위에 두 손을 얹고 앉아 있는 자세까지 예행연습을 하였다. 그날 박정희 대통령의 훈시는 “국적 있는 교육”을 하 라는 것이었다. 한국 현실에 맞는 민주주의, 한국적 민주주의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그 후에 유신헌법을 공포하기 위해서 국민투표[1972.11.21]를 하였으며 찬성유도 활동을 위해 전국의 교사들을 동원 하였다. 투표율 91.9%, 찬성율 은 91.5%이었다. 1972년 12월 27일 유신헌법을 선포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며 영구집권 하려고 하였으나 물거품이 되었다. 일본군국주의가 써먹던 통치방법을 원형 그대로 활용하여 백성들의 정신까지 개조시키려고 하였지만 갈등만 조장 시켰을 뿐이다. 한국의 교육이 구체적인 교육이념이 없다며, 1968년 12월 5일 〈국민교육헌장〉을 제정,선포 하였다. 이 국민교육헌장도 일본군국주의 자들이 국민들의 정신적 통제를 위해서 만들었던 “교육칙어”와 유사하다는 것이 학자들의 의견이다. 5.16을 일으키면서 내세웠던 혁명공약을 외워야 했고
국민교육헌장을 만들어 백성들의 생활 신조로 삼으라고 강요 하였지만 종당엔 폐기 처분 되었다.
그 동안 학교에서, 군대에서, 연수교육에서, 수많은 정신교육을 받았으나 허황된 일임을 알았을 뿐이다. 얼마 전에 치안 총 책임자였던 사람이 부하직원들에게 정신교육을 한다고 떠 들다가 헛소리 하는바람에 대법원의 유죄 확정판결을 받고 감옥에 있다.
어찌 이 사람뿐인가? 높은 자리라고 올라 가면 그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예하 조직원들의 정신까지도 개조 할 수 있을 것이란 망상에 젖어서, 특강이니 안보강연이니 하는 명목으로 “있는 소리” “없는 소리”하며 아까운 시간을 빼앗고 있다. 학교에서 학교장의 훈화가 있는 날, 몇 시간이 지난 후에, 무작위로 학생들이 훈화 내용을 기억하고 있는 지를 조사 해보면 80%이상이 기억을 못 하고 있었다. 기억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훈화 자체에 대해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 하였다. 각종명목의 강연도 분석해 보면 비슷할 것으로 본다.
독재자들은 백성들을 잘 훈련시키면 사냥개처럼 마음대로 부려먹게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이 해방이 된 후에,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백성들을 괴롭히던 자들을 단죄하지 못한 한[恨]을 안고 있다. 주변에는 아직도 일제의 향수에 젖어 있는 사람들을 보면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통신매체가 벌로 없던 과거에는 육성에 의한 강연이나 훈화로 대중을 사로 잡을 수 있었으나,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주옥 같은 말은 주변에 널려 있고 지식획득의 수단이 너무나 다양해 졌다. 강연이나 훈화 없이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독재자들이 공통적으로 거추장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자유” 라는 개념이다. 유신헌법이라는 것도 자유와 관련된 조항을 종전에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 를 “모든 국민은 법률에 의하지 아니 하고는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 받지 않는다”로 고쳤었다. 그 의미는 법률만 정하면 제한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 속에 모든 생명체는 자유이다. 자연에는 법률 조항은 없지만 수 억년을 자연질서를 유지하며 생존해 가고 있다.
시인 조지훈은 고려대학교 학생들의 1960년 4. 18 의거 기념탑에 다음과 같은 비문을 남겼다. “自由! 너 영원한 活火山이여! 壓制의 사슬을 끊고, 憤怒의 불길을 터트린, 아! 1960년 4월 18일 천지를 뒤흔든 正義의 喊聲을 새겨 그날의 噴火口 여기에 돌을 세운다.”
권력자들이여, 국민들의 정신을 뜯어 고치 겠다는 망상을 버리고 자유케 하라. 자유는 방종이 아니다.
박광하 (전 여주 대신고 교감, 전 수원 계명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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