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 칼럼
송사리 떼를 보며
송사리 떼에 관심이 가기 시작한 것은 나이가 꽤 들어서 이다. 어린 시절에는 주변이 자연환경 그 자체였다. 야산인데도 울창한 나무가 꽉 차있어 산짐승이라고 나올 것 같아 두려움을 갖게 하였었다. 꾀꼬리, 때까치, 딱다구리, 콩새, 물총새 등 온간 종류의 새들의 천국이었던 같았는데 이젠 거의 자취를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개울 물에도 고기 종류가 많아서 송사리는 고기로 보이지 않았다. 그 흔하던 이 송사리 떼가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한국에서 살아져 버린 송사리 떼가 호주 집 앞 계곡의 냇물[stream] 에 살고 있었다. 이 곳 에는 개체수가 많지는 않지만 진한 검은 색의 작은 뱀장어도 보이고 한 뼘은 됨 즉 한 가제도 보였다. 집 앞 냇물에 서식 하는 송사리는 겉모양만 비슷하지, 한국의 송사리 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이겠지만 떼를 지어 몰려 다니는 것이며 사람이 다가가면 우르르 숨어 버리는 것이 그렇게 비슷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송사리 떼가 작년[2013]에 하천 수해복구 공사로 시멘트 옹벽을 치며 물을 오염 시킨 탓인지 금년에 자취를 감춰 버렸다. 언제 다시 돌아 오려는지…
민물고기 연구로 평생을 바친 최기철박사[1910-2002]는 송사리 묘사를 다음과 같이 하였다. “몸의 길이가 5cm 이상이면 송사리는 아니다. 보통은 3-4cm, 최대형이 4.8cm다. 눈이 얼마나 큰지, 머리가 눈인지 눈이 머린지 모를 정도로 크면 송사리이다. 눈보, 눈쟁이, 눈치라는 별명이 붙는 것도 이 때문이다. 꼬리지느러미 끝이 제비 꼬리처럼 갈라 져 있으면 송사리가 아니다. 끝이 갈라지지 않고 일자로 되어 있으면 송사리다. 등지느러미가 갈라 진 것은 수컷이고 갈라지지 않은 것은 암컷이다.”
필자의 고향에선 20여년전부터 송사리 떼가 사라지기 시작 하였다. 농약 살포에도 원인이 있지만 결정적인 것은 경지 정리로 웅덩이가 없어지고 논 귀퉁이에 물 고일 곳이 없어 졌기 때문이다. 송사리 떼를 보려면 경지정리가 불가능한 산골짜기에서나 가능하게 되었다. 실제로 수원 이목동 계곡 논도랑에서 송사리 떼를 보았다. 경지정리를 할 수 없는 곳이고 200m정도 높이의 산자락에서 가뭄 때도 물이 졸졸 흘러 내리고 있는 곳이다. 송사리뿐만 아니라 1급수에나 살 수 있는 가제도 서식하고 있었다. 10여년 전 일이라 현재도 송사리 떼가 근심 없이 살아 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한국에선 송사리를 어항의 완상용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같다. 어항이라고 하지만 송사리가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어항 속에서 물고기가 살려면 기본적으로 몇 가지 조건이 갖추어 져야 한다. 어항 속을 작은 우주로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물이 크로르칼크[Chlorkalk]가 섞인 수돗물은 안될 것이고 모래도 있고 자갈도 있어야 할 것이며 송사리가 좋아할 수초가 있어야 할 것이다. 어항에서 송사리가 자손을 퍼트리며 살아 간다면 작은 우주가 어항 속에 형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어항 속에는 생태계[ecosystem]가 구축 된 것이다. 생태계에는 생산자[producer]가 있어야 하는데 수초와 눈에 보이지 않는 식물성 플랑크톤이다. 이들은 햇빛을 받아 물과 물속에 녹아 있는 이산화탄소[CO2]로 유기물을 합성 할 것이고 이렇게 만들어진 유기물을 소비해 주는 소비자[consumer]가 송사리와 동물성 플랑크톤이다. 그리고 배설물 시체 등 쓰레기가 쌓이게 되는데 이를 청소해줄 분해자[decomposer]도 있어야 한다. 주로 박테리아나 곰팡이가 하게 되는데 이들이 부산물을 분해 해주어야 수초가 이를 흡수 해서 유기물을 만들어 생물들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며 순환이 되풀이 되는 것이다. 자연 속에는 오묘[奧妙]한 질서가 있는 것이지만 인간은 이 질서를 끊임 없이 파괴 있는 것이다. 송사리도 민물 속에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것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한국의 4대강 사업으로 모래사장이 사라지고, 자갈 밭이 사라지고, 늪이 없어 지고, 샛강이 없어 지면서 수 없는 많은 종류의 물고기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집단 자살[?]을 하였을 것이다. 우주 만물 중에 인간이 가장 기고만장한 폭군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호주의 원주민인 애버리진, 미국의 인디언들은 초기의 정복자들 눈에는 하 잘 것 없는 송사리 떼로 보였을는지 모른다.
바다나 강등 물 걱정이 없는 환경에서 서식하는 물고기들은 물의 변화에 민감할 필요가 없겠으나 민물고기는 다르다. 그 중에도 송사리는 물 흐름에 가장 민감한 종류라고 할 수 있다. 수 억년의 장구한 세월 속에서 온갖 풍파를 견뎌 내고 생존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경외[敬畏]감이 들며 함부로 송사리 떼를 바라 볼 수 없는 것이다. 권력자들이 무슨 일을 굉장한 power를 자랑 하듯 그가 내세우는 일들을 밀어 부치는 것을 보면, 서민[庶民]들을 송사리 떼처럼 함부로 대하 는 것 아닌가 생각 될 때가 있다. 송사리가 떼지어 노는 것을 보며 생명의 고귀함을 인식하는 지도자라면 개인의 인권도 무시하지 않고 자유와 평화의 사회를 구축[構築]할 수 있을 것이다.
박광하 (전 여주 대신고 교감, 전 수원 계명고 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