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 칼럼
한국 소나무와 호주의 유칼립투스
추석의 아이콘은 송편이다. 3-4년 전에 앞집에서 공터에 리기다소나무 묘목을 심었다. 경사지에 땅이 비옥해서인지 성장이 빨라 3m정도로 자랐고 균형잡힌 수형에 봄 날씨가 되면서 물이 올라 싱싱해 보인다. 이번 추석에 그 나무의 솔잎은 따다 송편을 쪄서 차례[茶禮]를 지냈으나 솔향이 별로 나지 않아 실망하였다. 시드니의 주택가나 공원에도 소나무 종류는 있지만 한국소나무는 찾아 볼 수 없고 대부분 리기다소나무다. 한국 소나무는 천박한 땅에도 잘 자라고 수명이 오래가고 소나무 향내가 진하게 풍긴다. 목재의 재질이 좋아서 한옥 건축에 으뜸으로 쳤지만 나무가 곧게 뻗지 않고 구부러지는데 단점이며, 나무가 잘리면 새순이 돋지 않는다. 반면에 리기다소나무는 움이 잘나오고 줄기에도 새순이 돋는다. 한국 소나무, 잣나무와 리기다소나무는 비슷한데 자세히 관찰하면 확연하게 다르다. 한국 소나무는 잎이 두개씩 붙어 있고 잣나무는 다섯 개, 리기다송은 세개다. 호주의 곳곳에 대규모 소나무 조림지를 볼 수 있는데 거의가 북미산 리기다소나무다. 나무껍질도 한국 소나무는 붉은빛을 띠고 리기다소나무는 검은색이며 잣나무는 흑갈색이다. 솔방울을 학술용어로 구과 [毬果]라고 하며 소나무류를 구과식물이라고 한다. 한국소나무는 솔방울이 적고 규칙적인 반면에 리기다소나무는 불규칙하고 많이 달린다. 소나무류의 잎이 지지 않고 늘 푸른것 같아 상록수라고 하지만 2년만에 잎이 떨어지지 때문에 1년 된 잎이 있어 항상 푸르게 보인다.
나무를 땔감으로 하던 5-60년 전에 한국의 산들이남벌[濫伐]로 민둥산이 되고 장마가 때가 되면 토사가 쓸려 내려 강을 침식하는 등 재해가 속출 하였었다. 당시 정부는 거의 강압적으로 농촌인력을 동원하여 사방공사[산림녹화사업]라고 해서 리기다소나무, 오리나무, 아카시아를 심고 산림법을 강화하여 벌목을 억제하며 산을 가꾸었다. 이때 심었던 나무들은 산림으로서의 가치보다는 척박한 땅에도 잘 자라는 나무들이었으며 산을 푸르게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한국소나무도 척박한 땅에 잘 자라지만 재생력이 없어서, 산림녹화용으로 식재하지 못했다. 그런 연유로 고산지대를 제외한 야산에는 현재까지도 한국소나무 보다 리기다소나무가 많다. 필자의 선친께서도 나무 가꾸는데 정성을 쏟았었는데 속성수인 낙엽송과 리기다소나무를 30여년 가꿔서 사랑채를 짓고 사시다가 돌아가셨다. 한국인이면 애국가에 ‘남산 위에 저 소나무…”로부터, 사육신인 성삼문의 시조[時調] “이 몸이 주거가사 무엇이 될고하니, 봉래(蓬萊)산 제일봉에 낙락장송(落落長松) 되였다가, 백설이 만건곤(滿乾坤) 할 제 독야청청(獨也靑靑)하리라”를 모를 사람이 있겠는가? 인간의 문화가 자연속에서 이루어지기에 어느 나무보다 많은 소나무는 한국의 상징적인 나무가 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이 있다. 굶주리던 시절에 물이 오른 소나무를 베어 속껍질을 갉아먹기도 하고, 일부 지방에서는 멥쌀가루와 섞어 송기떡이라고 해서 떡을 해먹기도 하였다. 한국인의 기근을 달래주며 겨레와 함께 하고 있는 나무이기도 하다. 예로부처 오래 살거나 죽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십장생[十長生]중에 소나무도 포함시켜 장수의 상징으로 삼으면서 최고의 그림의 소재가 되었고 명작으로 꼽히는 문학작품에도 곳곳에 소나무의 주옥같은 묘사들이 있다.
최명희의 “혼불”에 등장하는 “고리배미 마을”의 소나무 숲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마을 초입에 성성한 바람소리를 내며 검푸른 구름머리를 이루고 있는 솔밭, 적송 숲이었다. 이솔밭은 고리배미의 장관이요 명물이었다.” 고리배미 마을만이 아니고 솔밭으로 유명한곳은 많다. 서울에서 안양을 거쳐 내려오는 경수간국도, 수원시 초입에 지지대고개를 넘으면서 약 5km정도의 노송지대[老松地帶]가있다. 1800년대 후반인 정조대왕 때 조성된 소나무 길인데 개발후유증으로 노송은 몇 그루 남지 않았으나 보존노력으로 전형적인 한국 소나무의 멋을 보이는 노송들이 국도 양편으로 서있다. 여주에 있는 세종대왕능은 1977년 성역화 사업에 힘입어 유물전시관인 세종전과 야외전시장등이 갖추어 지고 주변의 환경을 잘 정비하여 관광명소가 되었으며 무엇보다 주변의 노송들은 찾는 이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고 역사의 정취를 흠씬 느끼게 한다. 소나무는 북향이나 서향을 선호하므로 동해안쪽 고산계곡에 빼어난 소나무 숲이 많다. 영동고속도로가 터널을 뚫기 전에는 대관령을 넘어서면 구절양장[九折羊腸]의 고갯길 주변에 소나무 숲은 미지의 관광지를 찾는 설레임을 갖게 한다.
태백산맥 자락에 자라는 길게 뻗은 재질이 우수한 한국 소나무를 금강송이라고 해서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울진군 서면 소광리 일대의 소나무 군락지를 1959년에 육종림으로 지정 보호 관리 하다가 2009년부터 탐방신청을 받아 1일 80명의 제한된 인원이 탐방할 수 있게 공개하고 있다고 하며, 인기가 대단한 것 같다. 2274ha에 수령이 50-500년된 금강송 160여만 그루가 하늘을 찌를 듯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니 장관이 아니겠는가? 사계절 인체에 그 좋다는 피톤치드가 쏟아질 것이다. 호주를 대표하는 나무 유칼립투스는 특이한 향이 있는 기름을 배출한다. 이 기름으로 향수, 비누, 의약품, 세제와 같은 많은 생산품으로 유용하게 쓰이고 있지만 나무 자체로서는 기름성분의 살균 살충작용으로 자기 방어 생존전략이다. 유칼립투스 군락지에는 이 기름의 증발현상으로 산전체가 푸른빛이 감돈다고 해서 Blue Mountains라는 산 이름이 생긴 것이라고 한다. 소나무도 유칼립투스와는 성분이 다른 것이지만 송진이라는 기름을 함유하고 내뿜으면서 향기로운 솔향을 방출하고 있는 것이다. 소나무 숲에서 풍기는 솔향을 마시면 신선이 된 것 같은 환상에 빠지게 한다.
오랜 세월 한국인은 태어날 때 금줄을 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송기떡을 해먹고 소나무 대들보로 집을 지으며 죽어서는 소나무 칠성판 위에 누어 소나무관과 함께 생을 마감 하였다. 나라마다 그 지역의 생태적 특성에 맞는 나무들이 산을 뒤덮고 있다. 호주는 대륙전체가 유칼립투스로 뒤덮인 것 처럼 보인다. 호주의 문화를 유칼립투스 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호주에 처음 왔을 때 시가지의 전신주가 유칼립투스 나무로 세워져 있는 것이 이색적으로 느껴졌고 주택가에 다듬어 지지 않은 나무들이 중구난방으로 서 있는 것 같아서 세련미가 없는게 아닌가 생각하였다. 밤깎듯이 말끔하게 다듬어 놓은 한국의 정원수와 대조적이다. 핀랜드는 산들이 온통 자작나무 숲이였다. 카나다는 단풍나무, 일본에는 삼나무 문화가 있다.
껍질을 벗고 눈이 부신 회백색의 몸통을 드러내며 곧게 뻗어 올라간 호주의 유칼립투스가 귀공자 같다면 한국의 적송 무리는 붉은 갑옷을 입고 말위에 높이 앉아 출정하는 승리에 찬 용사들의 모습이라고 할까? 풍기는 이미지는 서로 다르다. 호주의 유칼립투스는 인간 외에 자연속에 강적이 별로 없이 태평성대[太平聖代]를 누리고 있으나 한국 소나무는 중병을 앓고 있는 것 같다. 송충이, 솔잎혹파리, 소나무재선충 등의 만연으로 치명적인 병충해 피해를 입고 있으며, 생태적인 천이[遷移]현상으로 참나무와의 싸움에서 밀리고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이다. 호주정부는 일찌기 호주대륙의 원산지 동식물이 멸종될까바 갖가지 정책으로 보호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으며 집안에 있는 나무 하나도 재래종[native tree]이면 허가 없이 베어 버릴 수 없게 하는 것을 한국이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유칼립투스가 호주대륙에만 있는 특수성도 있고 재목으로나 잎, 기름등 나무전체가 보고처럼 간주하고 육성과 연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을 보며 한국 소나무도 못지않게 유용한 특성을 갖추고 있는 나무임에 분명하다. 특이한 소나무 향과 함께 재질이 아름다워 궁궐, 사찰 등의 건축재나 가구재로 활용되어 왔고 그 부산물은 또 얼마나 다양한가? 살아있는 소나무뿌리에서만 자라는 송이버섯, 송화가루, 송진, 솔잎차등 개발여하에 따라 나라경제의 상당한 축을 담당할 잠재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한국 소나무나 호주의 유칼립투스, 모두 인간과의 상생관계를 위해 존중하고 아껴 주어야 할 지구상의 주인들이다.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