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훈 목사의 BOOK REVIEW
BOOK REVIEW와 요약 : “기다림은 길을 엽니다”
(저자: 강준민, 토기장이, 2012)
기다림은 우리 모두에게 가장 힘든 훈련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기다림은 신비이며 능력이다.” 특히 기다림은 하나님의 성품이며 하나님의 본성이기에 우리는 기다림을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
필자는 호주 땅에 와서 진정 배워가는 것이 있다면 바로 “기다림’이다. 필자에게 있어 기다림은 고통이고 아픔 이였다. 그러나 그 시간이 나를 강하게 하고 나를 유연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기다려야만 했기에 기도를 배웠고, 기다려야만 했기에 인내를 배웠고, 기다려야만 했기에 주님 만(ONLY JESUS) 붙드는 시간을 보내었다.
놀라운 것은 바로 “기다림은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오래 전 이 책을 읽었다. 내용 하나 하나가 강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언젠가 소중한 한인 디아스포라 성도들과 함께 이 책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 4주간에 걸쳐 책의 내용을 정리하고자 한다.
아무쪼록 이 글을 통해 우리들의 일상이 크로노스의 시간에서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문을 여는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
1부 : 기다림의 대가들
기다림은 은혜 가운데 거하게 합니다. 기다림은 꿈을 준비시킵니다. 기다림은 길을 엽니다. 기다림은 건지시는 하나님을 알게 합니다.
‘기다림’은 제 마음속에 오랫동안 품고 살아온 씨앗입니다. 그 씨앗이 이제 발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기다림의 영성’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기다리시는 하나님입니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기다림의 신비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다리시는 까닭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어느 날 이사야 30장 18절을 읽다가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 복되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이사야 30:18).
기다림은 신비입니다. 역설입니다. 영어로 수동적이라는 뜻의 ‘passive’와 열정이라는 의미의 ‘passion’은 ‘참는다’는 뜻을 지닌 라틴어 어근 ‘pati’에서 나왔습니다. 오래 참고 기다리는 것은 수동적인 느낌을 줍니다. 그렇지만 그 안에는 능동적인 열정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아이를 잉태한 어머니는 기다립니다. 어떻게 보면 아이를 잉태한 어머니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출산하기까지 그냥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 사이 아이는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점점 성장하고 있습니다. 열정적인 강한 생명력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이라는 씨앗의 신비이며 또한 기다림의 신비입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기다림의 신비는 복음을 통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예수님은 수동적이 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수동적으로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토록 능동적으로 가르치시고,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셨던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두 손을 펴고 모든 것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께 맡긴 채 수동적이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셨던 사흘은 어두움의 시간이었습니다. 온 인류는 숨을 죽인 채 기다렸습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부활의 생명이 예수님 안에 약동했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하나님은 열정적으로 일하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기다림의 신비입니다.
그러므로 기다림은 궁극적으로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기다리게 되고, 사랑하는 것만큼 기다리게 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딥니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인내하고,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어려운 상황도 견딥니다. 기다림은 사랑의 동경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으로 충만해집니다. 사랑하는 대상으로 충만해질 때 우리 가슴은 벅찬 사랑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우리는 빠른 속도에 집착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속도 중독증에 걸려 있습니다. 모든 것이 빨리, 즉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생은 속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영혼은 세상의 속도만큼 빠른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영혼은 느린 것을 좋아하고, 조용한 것을 좋아합니다. 내면의 부요는 고요함 속에 있습니다. 고요함과 평안은 기다림을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기다림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놀라운 약속을 주십니다. 그러나 약속은 주셨지만 그 약속을 당장 이루어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아브라함은 시험에 듭니다.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해진 그가 만들어 낸 것이 이스마엘입니다. 아내인 사라가 아닌 여종 하갈에게서 난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만든 불신의 열매입니다. 그의 불신은 조급함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모든 죄는 조급함에서 시작된다는 프란츠 카프카의 말을 기억하십시오. “인간에게 큰 죄가 두 가지 있으며 다른 죄도 모두 여기서 나온다. 조급함과 게으름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기다리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믿음에 근거한 소망은 영혼의 닻처럼 튼튼하고 견고합니다. 약속을 붙잡고 기도할 때, 우리의 믿음은 강해지고 소망은 튼튼하고 견고해집니다. 성경에는 많은 약속이 있습니다. 그 약속을 받는 길은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그 약속이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것이 된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때 그 약속이 우리의 삶 속에서 성취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20).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기다리는 기술은 정말 중요한 삶의 기술입니다. 기다릴 때 중요한 것은 태도입니다. 조급함이나 원망이 아니라 앞에 있는 즐거움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태도는 우리가 기다리는 중에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을 때 소유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다시 오래 참음으로 웃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나이 100세에 아들을 주시고 이름을 이삭이라고 짓게 하셨습니다. 이삭의 뜻은 ‘웃음’입니다. 기다리면 웃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기다림은 자신뿐만 아니라 전 인류에게 웃음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이삭은 예수님의 모형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바친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독생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과 같은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인류 최초로 부활을 믿었던 사건입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이 그의 아들 이삭뿐만 아니라 장차 오실 예수님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은 이삭 대신 숫양을 예비하셨습니다. 그 숫양은 장차 이 땅에 오실 어린양, 곧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예수님의 때를 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요한복음 8장 56절에서 강조합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기다렸던 것처럼, 인류는 이 땅에 오실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셨던 사흘은 어둠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두움 중에 하나님은 부활을 준비하셨습니다. 사흘 후에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하나님 곁으로 가심으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다리를 놓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길을 열어 놓으셨다는 기쁜 소식인 복음은 우리에게 웃음을 줍니다. 웃음은 기다림의 열매입니다. 지금 칠흑같이 어두운 현실 가운데 있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다리십시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돕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져 내심으로 그를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도움이 되신 것입니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시 40:2). 이것이 구원입니다. 구원이란 말의 뜻 중 하나가 ‘건져 내다’입니다. 구원은 스스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함으로 쟁취할 수 있는 것도, 도를 닦는다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늪에 빠진 사람의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그는 스스로 늪 속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그 늪 속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가 와서 건져 주어야 합니다. 인간의 노력, 철학, 도덕, 윤리로 구원에 이를 자는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인간은 죄인이며, 죄의 늪은 깊고도 깊습니다. 그리고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구원은 은총의 사건입니다. 우리가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져 있을 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윗은 그가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진 이유가 자신의 머리털보다 많은 죄 때문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저도 제가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져들었을 때 아무도 탓할 수가 없었습니다. 원망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제 자신의 부족함과 죄된 모습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하나님께 구한 것이 있다면 은혜와 긍휼과 인자하심이었습니다. 다윗도 하나님께 은혜를 구했습니다. 또한 그는 진리로 그를 항상 보호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진리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신약에 오면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 진리의 본체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십니다. 우리를 해방시켜 주십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 8:36).
* 기다림은 길을 엽니다(저자: 강준민). 1장에서*
박성훈 목사
총신신학대학원(M.Div)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D.M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