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서
죽었다 다시 사는 것에 대하여(부활에 대하여)
부활이라 하면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사는 것이겠다.
우리는 모두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대로, 공부하는 학생들은 공부하는 대로, 일하는 사람은 일하는 사람대로, 직장을 찾는 사람은 직장을 찾는대로, 아이를 기르는 부모님들은 부모님대로, 은퇴를 한 노인네들은 노인대로, 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걱정이 많은 사람대로, 걱정이 없는 사람들은 걱정이 없는대로, 사랑을 찾는 사람은 사랑을 찾는대로 무엇인가 활동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구조적으로 조직이 갖추어진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사회활동 속에는 죽음도 같이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어떤 어린아이는 병으로 죽고, 어떤 젊은이는 교통사고로 죽고, 어떤 노동자는 산업재해로 죽고, 어떤 노인은 기력이 다하여 죽고, 어떤 곳에서는 총기사고로 죽고, 어떤 곳에서는 전쟁으로 죽고…
부활이 이러한 죽음들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이라면 어떤 사람들이 부활 육체가 다시 살아 돌아옴을 바라고 원하고 기릴까? 고생만하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슬퍼서 안타까운 자식들이! 사랑하는 자식들을 잃은 부모님들이!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내를 잃은 중년부부들이! 열애에 빠진 젊은 청춘 남녀들이!
다들 그런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지금 나이가 오십이 넘은 내가 병으로 죽었거나, 일하다 산업재해로 죽었거나, 교통사고로 죽었거나, 혹은 재수없어 날아가던 새가 갈긴 똥을 맞고 찍하고 죽었다가 다시 산다면 그 의미는 무엇일까?
결혼을 해서 부인을 두고 있는 남편으로서의 의미일까! 자녀를 가지고 있는 아버지로서의 의미일까! 노부모님이 살아계신 아들로의 의미일까! 같이 일하며 우정을 다져가던 친구로서의 의미일까! 그 어느 것이든 나에게는 그렇게 특별한 일은 아닐 것 같다! 차라리 내가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그런 믿기 어려운 일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내게는 더 중요하고 위대한일 같다!
아내가 나한테 원하는 일이 있다면 조금은 힘들고 귀찮아도 해주고, 자녀가 나한테 바라는 일이 있다면 조금은 서운하고 만족하지 못해도 믿어주고 격려해 주며, 힘들고 지친 후배나 동료가 있으면 다가가 어깨동무하며 친구가 되어주는 일. 마음은 있으되 가난하여 보람있는 성금 한번 못하는 이웃을 위하여 조금이나마 물질을 나누는 마음을 베풀 수 있는 용기! 만나는 사람마다 서로 공유할 수 있는 확 열린 마음과 자신감… 이런 것이 내게는 더 소중하고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주시는 분에게 감사드린다!
권태원 활동가jpainter5@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