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경제의 진실 : 갤브레이스에게 듣는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 지식의날개 / 2007.6.10
“약 70년간 나는 주로 경제학에 관련된 공무와 정치적 업무를 맡았으며, 한때는 언론계에 몸담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올바르고 유익한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통념(conventional wisdom)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인식해야 한다는 사실과 실제 현실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의 마지막 저서 『경제의 진실』은 이렇게 시작한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의 도덕적 비판자인 갤브레이스는 그동안 여러 저서에서 현대사회의 공룡이 된 거대기업의 문제에 대해 경종을 울려 왔다. 이 책도 그와 같은 문제의식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다. 갤브레이스는 이 책에서 어떻게 거대기업들이 실제로는 사기를 저지르면서도 처벌받지 않을 수 있는지 그 비밀을 밝힌다. 그는 그 원인을 현실과 사회적 통념 사이의 괴리에서 찾는데, 사회적 통념으로는 죄가 되지 않지만 실제로는 사기라는 것이다.
○ 목차
추천의 글 -현대 자본주의 경제의 도덕적 비판자, 갤브레이스
독자에게 드리는 글 -내 인생을 함께한 경제학, 그 마지막 기록
머리말 -우리 시대의 명백한 모순
1장 시장이라는 표현은 공정한가
2장 소비자 주권 뒤에 숨은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손
3장 근로라는 말에 숨은 이데올로기
4장 관료주의, 대기업의 품에 안기다
5장 고삐 풀린 기업 권력
6장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그 위험한 환상
7장 숫자 속에 감춰진 금융 사기
8장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우아한 현실도피
9장 기업 권력을 통제하지 못하는 경제에 미래는 없다
10장 베트남에서 이라크까지 드리운 군산복합체의 그림자
글을 마치며
○ 저자소개 :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John Kenneth Galbraith, 1908 ~ 2006)
20세기를 대표하는 진보적 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1908년 10월 15일 캐나다 온타리오 주(州)에서 태어났다. 토론토 대학, 캘리포니아 대학과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1934년 이후 하버드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정부의 물가청에서 근무하다 전후에는 대학에 복귀했다. 케네디 대통령 시절이었던 1961~1963년 인도 대사를 지냈으며, 미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에서 빌 클린턴까지 미국 민주당 대통령 자문역으로 일하는 등 민주당 지도자들의 사고와 노선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 케네디 대통령 취임연설문을 쓰는 등 명문장가로서도 명성을 날렸다. 경제학뿐만 아니라 경영학, 역사학, 사회학에도 밝았다.
정부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쓴 ‘트라이엄프’ (1968) 등 소설 3편을 포함해 모두 33권의 저서를 남겼다. 주요 저서로는 ‘풍요로운 사회 : The Affluent Society’ (1958), ‘새로운 산업국가 : The New Industrial State’ (1967), ‘불확실성의 시대 : The Age of Uncertainty’ (1977) 등이 있다.
2006년 4월 29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의 마운트 오번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 번역, 감수 : 장상환
국립경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장. 옮긴 책으로 『갤브레이스가 들려주는 경제학의 역사』, 『갤브레이스의 자본주의, 공산주의, 그리고 공존』 등이 있다.
– 역자 : 이해준
중앙대학교 졸업. 전문번역가. 번역전문기업 (주)트래니 대표.
○ 출판사 서평
– 거짓되고, 거짓되고, 거짓되도다!
갤브레이스가 보는 오늘날 시장경제는 모든 것이 거짓된 사기의 세계다. 우선 오늘날 자본주의를 시장경제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는 것부터 사기라고 말한다. 자본가의 지배력과 노동자의 종속성을 함축하는 동시에 착취적일 뿐만 아니라, 공황을 거치면서 자기파괴적이라는 부정적 의미까지 담게 된 ‘자본주의’라는 용어 대신, ‘시장체제’라는 개념으로 체제의 이름을 새로 짓는 것부터가 사기다. 자본주의 대신 시장체제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경제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기업의 실체를 감추려는 변장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갤브레이스가 열거하는 사기의 목록은 정말 길다. 실질적으로는 거대기업의 광고가 지배하는 소비자의 선택을 이른바 ‘소비자 주권’이라고 이름 붙이는 개념도 현실을 호도하는 사기일 뿐이고, 거대기업 조직 자체가 이미 관료주의화된 상황에서 관료제의 폐해를 들먹이며 ‘시장 자율’을 외치는 것도 사기고, 실제로는 숫자놀음에 지나지 않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행하는 공개시장조작의 거짓된 명성도 사기라는 것이다. 갤브레이스는 이 책에서 10개 장에 걸쳐 경제 각 분야에 만연된 거짓과 사기를 고발한다.
– 기업 권력을 통제하지 못하는 경제에 미래는 없다!
특히 그는 경영진이 행사하는 기업 권력에 주목하는데, 기업 권력은 현대 사회에서 민간부문을 지배할 뿐만 아니라 공공부문으로까지 확장된다. 기업 권력은 이미 국방정책, 환경정책, 조세정책도 좌우한다. 그는 이처럼 경제 전반에 만연한 사기 행위가 죄없는 사기(innocent fraud), 즉 형벌을 받지 않는 사기라는 데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죗값을 치르지 않는 사기는 국민경제와 정부, 기업 모두를 희생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엔론을 비롯한 미국 대기업들의 충격적인 비리를 언급하면서 “유익한 경제적 행위를 위한 경영진의 자율성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자율성이 착복과 축재의 구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업 경영진의 권한은 인정되어야 하나 겉보기에만 선량한 절도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 미국 경제의 모순과 치부를 통렬히 비판하다!
갤브레이스 교수는 20세기 미국의 경제발전사를 연구하면서 거대기업의 활동이 어떻게 시장의 자유경쟁을 억압하고 대체하는지에 대해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1952년 저술한 『미국 자본주의』에서는 “광고가 소비자들의 욕구를 자극해 불필요한 상품을 소비하게 한다”고 지적하면서 과점기업들의 폐해를 비판했고, 1996년 발표한 『풍요한 사회』 개정판에서는 “빈곤층이 점점 더 공정한 경쟁의 장에서 배척되면서 미국은 부자들만의 민주주의 국가가 되어가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미국 경제가 공공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고 개인의 부만 만들어낸다고 통렬한 비판을 가해온 갤브레이스 교수는 늘 ‘개인’보다는 ‘공공’의 중요성을 일관되게 역설한 경제학자였다.
– 미국 경제학계의 이단자, 갤브레이스의 경고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
“경제는 도덕이라는 바다에 떠 있는 섬”이라며, 윤리와 도덕에 토대를 두지 않는 경제발전은 사상누각일 뿐이라고 주장한 갤브레이스는, 현대 경제학이 숫자놀음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 일관되게 역사적인 관점을 강조했다. 20세기 미국의 발전 과정과 권력의 본질을 분석하면서 자유주의 주류 경제학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해, 미국 경제학계의 ‘이단자’로 불리기까지 했다.
이런 미국 경제학계의 이단자 갤브레이스 교수의 경고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국 경제는 이제 한미 FTA를 통해 더욱더 미국 경제 시스템과 유사해질 것이고, 미국 거대기업의 영향력은 한층 강화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경제학계의 거두로 98세를 일기로 타계할 때까지 줄곧 주류 경제학에 대해 비판적 자세를 견지해 온 갤브레이스의 마지막 목소리는 한국사회가 분명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경고인 셈이다.
○ 독자의 평 1
갤브레이스에 붙은 양심적 경제학자라는 말에서 나는 자본주의의 어떤 대안을 기대했던 것 같다. 마치 우리나라의 장하준이나 김상조와 같은, 미쳐 돌아가는 신자유주의 자본에 대해 착한 자본주의로 돌아설 수 있는 소소하거나 거창한 대안을 제시하는 모습을 기대한 것이다. 책을 들었을 때, 생각외로 무척 얇은 분량을 보며, 얼마나 명쾌한 대안을 제시하였길래 이렇게 분량이 적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사실 이것은 나의 갤브레이스에 대한 철저한 무지때문이다. 갤브레이스는 자본주의의 행보에 이런저런 땜빵식의 대안을 제시하는 그런 경제학자는 아니었다. 경제학의 엘리트이자 미국의 수뇌부와 학계에서 중요한 일들을 모두 경험하고 지휘하고나서 늘그막의 말년에서야 이런 분명한 에세이를 써내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얄밉고 허탈하기도 하지만, 그는 분명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자본주의는 사기라고 말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자본주의는 용어의 선택에서부터 자본의 운용까지 치밀하게도 소수의 경제권력을 거머쥔 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고 있고, 이들이 다수의 인민에게 행사하는 모든 행위는 명백한 사기이지만 현실적으로 법적인 제재가 가해지지 않는 ‘처벌받지 않는 사기’라 설명한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이야기되는 ‘권력은 자본에게로 넘어갔음’과 일맥상통한다. 기업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일반 소비자로 표현되는 다수 인민을 현혹하고 조종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정부의 공적영역에까지 마수를 뻗침으로서 정부의 정책까지도 옆에서 간섭하고 조종하기까지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실제로 효율성이라는 명목아래 정부가 통제해야 할 공적영역을 민영화라는 미명아래 민간기업에게 넘겨 위험한 자본의 본능아래 국가시스템의 근간까지 맡겨두려 한다. 방식이야 어찌되었든 이런 현상은 결국 자본의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국가시스템의 대부분을 포함한 인간의 삶 전반을 지배하게 만든다. 그것은 법적으로도 제지가 불가능한 방법으로 즉, 합법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결론적으로는 전체 인간의 삶을 파국으로 치닫게한다는 명백함때문에 ‘처벌받지 않는 사기’라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다. 말년의 갤브레이스의 축적된 경험은 사기극일 뿐인 현대의 경제시스템에 대해 명백하고 명쾌한 고발과 비판을 날린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동의하는 데 크게 어렵지 않은 내용이다. 현재의 자본주의는 소수를 위한 다수의 피해가 극심하며, 지구전체의 계 안에서 인간의 파괴행위가 극대화된다는 점에서 비판적 시선을 가지고 있고, 자본과 국가를 넘어선 대안에 대한 일말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한가지 좀 더 새롭게 받아들인 것이 있다면, 갤브레이스가 이 책에서 언급한 기업의 국방에 대한 간섭인데, 국민의 간섭이 비교적 적고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국방사업에 기업이 관여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것은 정부의 국방정책과 군수산업에 간섭과 투자를 함으로서 정부가 명분을 세운 전쟁행위에 기업의 이윤추구행위가 덧붙여진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이라크 공습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습이 미국의 전쟁물자와 기업이 고용하고 훈련시킨 용병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면에서 자본의 이윤추구는 이제 인간의 생명보다도 더욱 중요한 사안이 되어가고 있으며, 이는 결국 자본주의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지구 어디에선가는 반드시 전쟁이 일어나야만 한다는 논리가 성립이 된다. 세상의 미래는 알 수 없음이 자명하지만, 그 방향은 분명 친인류적이거나 평화적인 것은 아님 역시 자명한 일이다.
갤브레이스의 마지막 저서인 이 책은 명쾌한 고발과 비판은 분명하나 아쉽게도 대안은 없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저자가 일부러 이야기하지 않았거나 하나의 숙제로 남겨두었을 수도 있지만, 저자의 비판의 대상이 현대의 큰 기둥의 하나인 자본이라는 점에서 언급된 대안은 없지만서도 대안은 분명해보인다. 그것은 자본을 거부하는 것이다. 물론 막연하다. 개인적으로는 녹색평론을 읽으며 반자본적 대안에 대한 힌트와 접근법을 하나의 시선으로서 받아들이고 있어 자본거부라는 막연함은 조금 덜한 느낌이다. 조금 돌려 말하자면 갤브레이스는 우리에게 숙제를 하나 내 준 셈인데, 그것은 자본의 반인간성과 패악을 깨달은 사람들이라면 조금씩이라도 시작해야하는 당위가 아닐까? 이 역시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권해보는 고민의 시작은 ‘불필요한 편리’를 깨닫고 지양하는 일, 그리고 삶에 ‘실질적 필요’는 얼마만큼인가를 생각해보는 일이다. 작은 고민의 시작이지만 커다란 의미를 지닐 것이라 단언한다.
○ 독자의 평 2
텔레비전이 떠올리게 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광고이다. 현대 사회에서 광고는 너무나 세련되고 드라마적인데 그것은 광고가 그만큼 미시적인 조작 – 갤브레이스(John Kenneth “Ken” Galbraith: 1908 – 2006)의 용례에 따르면 소비자 조종 – 의 혐의를 많이 지닌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얼굴이 너무나 잘 알려진 유명 여배우가 화면에 나와 자신이 쓰는 물건이 마치 이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다는 암시를 하지만 실상 그 제품은 수 천 수 만 개나 생산된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이 익숙한 현상은 당연히 사기이다. 갤브레이스는 이 현상을 무엇이라 표현할까?
‘갤브레이스에게 듣는 경제의 진실’은 우리 사회의 통념으로는 죄 또는 사기가 아니지만 엄연히 죄이고 사기인 현상들을 속속들이 파헤친 책이다. 그 죄 내지 사기의 목록들은 이렇다. 자본주의라는 용어 대신 시장 체제라는 무난한 용어를 쓰는 것, 소비자 주권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어휘, 근로에 얽힌 허구, 기업 경영에 관한 허구, 고삐 풀린 기업 권력에 얽힌 이야기,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이 별개라는 환상, 숫자 속에 감춰진 금융 사기,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의 우아한 현실 도피, 기업 권력을 통제하지 못하는 경제 현실, 군산복합체 국가인 미국의 어두운 현실 등이다.
이 책에서 갤브레이스가 다룬 현실은 미국의 부패하고 왜곡된 경제 현실이지만 우리 나라와도 결코 무관할 수 없다. 아니 추천의 글을 쓴 경상대학교 장상환 교수에 의하면 우리 나라에는 미국에는 없는 총수 1인 지배 체제가 존재하는 나라이다. 저자에 의하면 자본주의란 용어는 특히 유럽에서 소유주의 권력과 노동자들의 종속성을 거칠게 인정하는 표현이다.(22 페이지) 이에 비해 시장 체제라는 말은 자본가 권력의 불미스러운 역사를 감추는 표현이다.(29 페이지) 한편 서두에서 말했듯 현대 사회는 광고의 현란함 속에 경영자들의 저의를 감춘 체제이다. 갤브레이스는 이를 “소비자를 조종하고 통제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어떠한 물건도 팔 수 없기 때문”에 사기라고 말한다.(35 페이지)
만일 갤브레이스 교수가 간접세 비중이 더욱 늘어난 최근의 우리 현실을 본다면 무어라 말할지 궁금하기 그지 없다. 관료주의를 다룬 章은 이 책의 핵심에 속하는 부분이다. 저자에 의하면 자본주의가 경영 및 관료제에 자리를 내주면서 소유자가 중요한 듯한 외관상의 모습을 꾸며낸 것은 사기이다. ‘갤브레이스에게 듣는 경제의 진실’에는 장하준 교수의 저서와 관련해 읽을 만한 흥미로운 대목이 하나 있다. 바로 주주 자본주의에 대한 부분이다. 장하준 교수에 의하면 주주 자본주의는 주주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단기 투자에 집중하는 과정에 비정규직 양산 문제가 불거진다.
그런데 갤브레이스 교수는 자본주의가 주주에 대해 복무한다는 담론을 신화라 말한다. 저자는 기업 권력은 경영진에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 물론 갈브레이스, 장하준 두 분 가운데 어떤 관점이 맞든 현재의 신자유주의 체제가 노동자와 국민 경제 전반에 부정적이고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한편 두 분의 일치하는 견해를 확인할 수 있는 영역은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은 별개라는 담론을 환상이라 주장한 章이다. 거의 예외 없이 공기업 민영화를 주장하는 IMF 같은 신자유주의적 세력들에 대해 장하준 교수는 공기업의 주인인 국민이 공기업 사정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것이 불가능하듯 주식회사의 주인인 주주 역시 민간 기업의 속사정을 꿰뚫듯 아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갤브레이스 교수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차이는 별 의미가 없다는 말을 한다.(60 페이지) ‘베트남에서 이라크까지 드리운 군산복합체의 그림자’라는 章과 관계된 이야기이지만 저자는 각종 무기 도입과 신무기 개발 프로젝트에 군수산업계의 로비가 작용한다는 말을 한다.(61 페이지) 이런 이야기는 김동춘 교수의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이라는 책을 통해 확인 가능한 사실이다. ‘숫자 속에 감춰진 금융 사기’라는 章에서 저자는 “경제, 특히 금융계에서는 알지 못하고 알 수도 없는 일에 대해 예측하는 작업이 호응을 얻고 종종 두둑한 보상을 받는다.”는 말을 한다.(68 페이지)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 우아한 현실도피’라는 장에서 우리는 2008년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야기된 미국발 금융 위기에 대한 선견적 지적을 만날 수 있다.(‘갤브레이스에게 듣는 경제의 진실’이 나온 것은 2004년이다.) 한편 ‘글을 마치며’란 부분에서 저자는 “최근에 그 필요성이 강조되어 채택된 세금 감면 정책이 경기 침체를 호전시킨 조짐은 찾아볼 수 없다.”는 말을 했다.(96 페이지) 즉 “세금 감면은 이미 충분한 소득을 갖고 있는 기업 엘리트들에게 그것을 더 늘려줄 뿐“이다. 저자는 경기 침체기에 사회 지출을 삭감함으로 인해 전반적인 시민들의 복지 수준이 저하되고 이로 인해 효과적인 구제책이 없는 불경기가 지속된다는 말을 한다.
경제에 대한 허상 내지 사기(詐欺)에 대한 책이기에 기대 한 것이 하나 있다. 맨더빌의 ‘꿀벌의 우화’를 번역한 최윤재 교수는 부자가 돈을 써야 가난한 사람이 일할 수 있다는 이른바 낙수효과에 대해 이야기 하며 꼭 이 대목에만 오면 케인즈 경제학을 싸잡아 비판하는 신자유주의자가 생뚱맞게 케인즈 경제학을 끌어다 대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는 말을 했다. 이 부분에 대해 상세한 해설을 들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했지만 답을 얻지 못했기에 다른 책을 통해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더 긍정적인 글을 쓸 수 있었다면 훨씬 유쾌했을 것”(98 페이지)이라는 말을 하는 저자는 문명이 부른 대량 살육, 전쟁이라는 인간의 결정적인 실패를 해결할 것을 과제로 제시했다. 어렵지만 따뜻한 결론이 아닐 수 없다.
○ 독자의 평 3
20세기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제외하면 거의 가장 ‘역사적’인 접근, 즉 경제사적 접근과 통찰력 있는 접근을 했던 미국의 경제학자가 갤브레이스였을 것 같다. 그의 마지막 저작인 ‘갤브레이스에게 듣는 경제의 진실’을 읽었다. 책은 가볍고 딱 정확하게 100페이지이고, 글자의 행간과 줄간격은 넓다. 즉 1시간 정도 가는 버스로의 이동이 있으면 왕복이면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학적 지식이 별로 없어도 읽을 수 있다. 정말 고등학교 졸업한 수준이면 이해할 수 있게 글을 쓴다는 것. ‘내공’에서 묻어나오는 것일 수밖에 없을 거다. 이 책은 ‘고백’이다. 자신이 겪었던 일들에 대한 ‘진심’이 여기 저기서 묻어 난다.
갤브레이스가 가장 강하게 성토하는 것은 ‘사기들’에 대한 것들이다. ‘신화’ 정도로 번역했으면 온건했을 테지만, ‘사기’라고 강하게 힘주니까 선동투가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약간 투박해 보인다고 할까. 그리고 그 ‘사기’에 대한 주요 주장이 좀 ‘밍밍’하다. “현대 경제 사회에서는 기업이 엄청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 기업의 권력이 소유자, 즉 오늘날 투자자라는 우아한 이름으로 불리는 주주에게서 경영진에게로 넘어간다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p.11). 그리고 이 대기업-경영자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여러가지 ‘사기’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기의 일부는 1)전통적인 경제학과 그 가르침에서 생겨났고 일부는 2)경제 생활의 타성에 젖은 태도에서 나왔다. 또한 이런 사기 행위는 3)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데, 특히 정치적으로 힘이 있으며 부유한 자들의 이익을 명료한 견해를 바탕으로 지지한다. 그래서 이 사기 행위는 4)일상적 지식 가운데서 권위를 획득한다. 이는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꾀하는 전략이 아니라 개인 또는 집단의 이익에 가장 잘 부합하는 것을 5)자연스럽고 당당하게 표명한 결과이다”(p.18, 숫자와 밑줄은 내가).
정리하자면 고전파 경제학의 문제, 일상의 경제화, 지배계급의 경제학(부르주아 경제학), 일상적 담론의 획득(회계기법과 경리기법의 일상담론화), 공공연한 프로젝트(공공연하게 주창되는 신자유주의적 담론) 뭐 이렇게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몇 가지 문제들을 ‘에세이’를 통해서 지적하는 게 이 책의 윤곽이라 말할 수 있다.
이 책이 통찰을 주는 부분은 이런 것으로 보인다.
1)자본주의라는 말이 ‘시장경제’라는 아름다운 말로 대치되어서 그 ‘지배’와 ‘피지배’의 갈등의 권력관계가 소거되었다.
2)소비자 주권이라는 말이 외쳐지지만 그것은 허상이다.
3)한동안 미국에서는 ‘소비’가 중요하고 가처분소득이 중요했는데, 다시 ‘생산’의 시대가 되어서 GDP 등의 지표가 개발되고 ‘소비’의 중요성이 망각되었다.
4)근로에 대해 강조하는 이데올로기가 낙오된 자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기제가 되고, 공공부조와 복지의 대상을 탈락자로 만든다.
5)대기업의 관료주의가 여전히 강고하다. 그 핵심에 ‘경영자 자본주의’가 있다.
6)군산복합체가 강화되고 예산에서의 비중이 높아지고 정관계의 ‘회전문 인사’등을 통해 전쟁을 원하는 군비경제로 진행하게 된다.
그런데 이것들에 대해서 분석적으로 접근해볼 필요가 있겠다. 조금 따져볼 수 있는 부분이 2)항과 5), 6)항정도가 될 것 같다. 먼저 2)항을 따져보자면. 이렇게 질문할 수 있을 것 같다.
2)”대중이 과연 ‘조종’만 당하는가?” 내가 묻는 것은 대중이 능동적이고 소비자 주권의 시대가 왔다고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분명 여러가지 상징들과 고액의 모델들, 그리고 여러가지 장치들을 통하여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조종’ 기제를 극대화하고 이를 통해 이윤을 창출한다. 그것은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해석할 경우 어떤 경우에 ‘소비자 운동’이 성공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작동했었는지를 설명하지를 못한다. 구체적 사례없이 ‘소비자 주권’이 망했다 혹은 흥했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이 책은 ‘에세이집’이고 어떤 데이터가 뒤에 있을 수도 있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5) 이것을 과연 ‘경영자 자본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예컨대 사모아 펀드 등으로 조성된 ‘초국적 자본’은 경영자들을 자신들의 힘으로 선임하고, 끌어내리기를 반복한다. 회사에 대한 전망들을 통해서, 구조조정에 대한 평가들이 경영자 개인은 물론, 기업 내부의 ‘경영자 관료제’를 흩어버리고 있는 것이 지금의 기업정치가 아니었던가? 물론 미국의 주요 대기업이라고 설정할 경우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 수 있지만, 단순화된 아이디어가 좋은지는 모르겠다. 즉 자본의 구성을 소거한 상태에서 누가 주인인지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 하다는 것이다. 금융화된 신자유주의의 메커니즘에 대해 우리는 좀 더 정교하게 볼 필요가 있다.
6) 조금 더 명료하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군산복합체’일 텐데. 간략히 이야기하자면, 이제 정계의 힘보다 자본의 힘이 정계를 디자인하는 방향으로 가버린 것 같다(2009/12/18 – [헨드릭스의 책읽기] – 신자유주의적 전쟁 – 피터 W. 싱어, 전쟁 대행 주식회사). 힘의 배분을 고려해야할 것이다.
물론 2), 5), 6)항에 대해 최근의 연구들이 있고 각자의 길들을 잘 가는 중이고, 후학의 몫이기도 하다. 이건 오로지 내 ‘독서 능력’ 향상을 위한 분석일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신자유주의적인 입장들이 한 번 물을 먹었을 때 아마 갤브레이스를 잠시라도 조명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이 책에도 그런 통찰은 조금 보인다. 물론 ‘너무나 일반적’이라 그 만의 주장이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그는 케인즈주의자의 전제와 처방을 가지고 있다. “기업 체제의 실적, 특히 호황과 경기 침체가 언제 교대되고 기간은 얼마나 될지는 예측할 수 없다. 또한 그 원인과 그 다양한 파급 효과를 미리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이 글에서 미지의 것을 묘사하고 싶지는 않다. 반면에 치유할 수 있거나 혹은 피해를 입히는 행위들은 밝힐 수 있다”(p.96). 정부의 재정정책이 취해야 할 처방이 이런 것으로 귀결된다. “경기 침체에 대해 전적으로 확실한 한 가지 구제책은 소비자 수요가 굳건하게 지속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흐름이 중단되는 현상이 바로 경기 침체다”(p.97). 결국 문제는 ‘유효 수요’가 된다. 온건하면서도 가장 확실한 효과가 있는 유효 수요. 문제는 그 ‘재원’이고 증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데 그것에 대해서 특별히 갤브레이스의 언급은 없다.
그래도 밀턴 프리드만 등의 시카고 학파들의 ‘조감도’를 이용한 신자유주의자들이 설칠 때 그나마 개념을 잡고 통시적인 접근을 할 수 있던 몇 안 되는 갤브레이스가 있었기에 미국 경제학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지금까지 겨우 살기라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곧 다 싹 우파 경제학이 죽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이 늙은 경제학자의 초상은 간지가 난다.
○ 독자의 평 4
– 갤브레이스, 인간성 회복을 갈구했던 반역의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지난 4월 29일 97세로 타계한 이 경제학자에게 세계 언론이 존경을 표했다. 1950~70년대가 전성기였으니 어떻게 보면 무려 30~50년이나 된 ‘구닥다리’ 학자다. “몇 년만 손을 놓아도 흐름을 놓친다”는 말이 정설일 정도로 변화의 폭이 큰 경제학계여서 이례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왜일까? 70~80년대 갤브레이스 소개에 힘을 썼던 최황렬 당시 경북대 교수가 79년 ‘새로운 산업국가’ (홍성사)를 번역하며 규정한 대목에서 어느 정도 답을 찾을 수 있다. ‘인간성 회복을 갈구했던 반역의 경제학자’. 이렇게 규정한 것이다. ‘비판’과 ‘진실’을 무기 삼아 혈혈 단신으로 경제학계 전체에 반발했던 그는 엄격하게 말해 어느 학파에도 속하기 어려운 ‘반역자’였음이 분명하다.
빈자·약자에 대한 애정과 부자·강자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던 그였다. 전통 경제학은 물론 마르크스 경제학까지 비판의 도마에 올려놨다. 그럼에도 무시하기 어려운 것은 그의 행동에 무게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령의 나이에도 끊임없는 연구·출판으로 존경심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대부분의 명저가 그렇듯 그의 대표작 ‘풍요로운 사회’ (Affluent Society)도 수차례 개정판이 나왔다. 58년 처음 출간된 후 69년, 76년에 개정됐고 갤브레이스가 90의 나이를 바라보던 98년에 마지막으로 한 차례 더 개정됐다. 또 많은 석학이 그렇듯 그 역시 죽기 직전까지 연구했고 책을 냈다. 2년 전 일반인이라면 거동조차 어려운 아흔다섯의 나이에도 책을 냈다. 어딘지 모르게 경영학의 석학 피터 드러커 교수를 떠올리게 한다.
아흔다섯에 낸 책도 그냥 편안하게 쓴 에세이나 주변 잡기에 대한 것이 아니다. 제목부터가 묵직하다. ‘순수한 사기의 경제학: 우리 시대의 진실’이다. 삶의 말년에 낸 책은 대부분 자신의 철학을 정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그가 평생 어떻게 경제를 봐 왔는지를 알 수 있다.
제목부터 정리해보자. 경제학은 ‘사기’라는 얘기다. 하지만 악의에 찬 사기는 아니다. ‘순수한’ 사기, 즉 죄를 짓지 않는 사기라는 의미다. 부제도 이채롭다. 경제학이 사기니까 진실은 따로 있다는 것 아닌가? 그러니 ‘진실’을 찾아보지 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진실’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그의 얘기는 충격을 준다. 두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우선 “자본주의는 시장경제가 아니다”고 말한다. 시장경제는 말 그대로 시장이 지배하는 경제다. 애덤 스미스가 얘기하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작동되는 경제인 것이다. 우리 시대의 경제가 그렇다고? 갤브레이스는 고개를 젓는다. 현실 경제는 독점적 대기업과 다국적 기업들이 좌지우지하는 경제다. 시장경제는 교과서에만 있을 뿐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현실 경제가 바로 자본주의다. 그러니 자본주의를 시장경제로 얘기하는 것은, 비록 순수하다고는 해도 ‘사기’일 뿐이다.
‘소비자가 왕’이라고? 그것도 ‘사기’다. 비록 소비자가 상품, 서비스에 대한 선택권이 있다 해도 소비자의 자유의지가 발동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광고와 판촉 공세에 시달리고 신문, 방송의 홍보전략에 말려 들어가기 십상이다. 소비자는 불필요한 제품을 구입하게 되고 돈을 낭비하게 된다. 그런데 어떻게 소비자가 왕이라는 말인가? 기업은 소비자를 ‘왕’이라는 착각에 빠뜨려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킬 뿐이다.
세계적 석학이 알려주는 ‘우리 시대의 진실’에 대한 폭로는 쉽게 접할 수 없다. 국내 번역서가 없는 탓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발간된 몇몇 번역서에서도 그의 혜안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10년 전 또는 50년 전에 쓴 책, 했던 얘기도 전혀 옛날 얘기 같지가 않다. ‘좋은 사회’ (영림 카디널, 1997)는 비교적 최근에 나왔다. “인간 중심의 좋은 사회를 만들자”는 계몽주의적인 이 책으로 지금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는 “좋은 사회는 경제적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나 “좋은 사회”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소득원이 있다. 그는 “부와 상속을 얻은 사람의 경제적 기여가 없거나 미미한 경우가 많다”며 “상속과 증여, 자본시장에서 얻는 비정상적 불로소득은 사회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반성할 필요를 느끼게 해 준다.
일본 시사지에 낸 원고와 일본 학자들과의 대담을 엮은 ‘실제성의 시대’ (청림, 1993)에도 비판적인시각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세계화와 반세계화가 치열하게 싸우는 가운데 그는 “중요한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닌 실용주의”라고 말했다. “시장에 맡겨 놓으면 잘 돌아가는 것도 많지만 정부의 기능이 필요한 것도 많다”는 것이다. “선진국이 환경에 가장 나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선진국 비판 역시 그의 근본 취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초기 저작 ‘풍요로운 사회’ (현대사상사, 1972)와 ‘불확실성의 시대’ (범우사, 1978) 역시 그가 평생 지켜온 ‘진실 추구의 철학’을 보여준다. “풍요로운 사회”에서 그는 전후 최대 호황으로 부유해졌지만 사회의 그늘에 대한 관심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강조한다. “인간의 욕망은 조작된 것”이고 “광고과 판매술이 없다면 더 이상의 생산 증가는 없을 것”이라는 말은 대량생산 시대의 착각을 일깨워준 뼈아픈 ‘진실’이었다. “불확실성의 시대”는 대기업과 정부 비판에 상당량을 할애했다. “현대의 대기업과 국가는 권력과 보수를 나누는 공생관계”라는 주장은, 냉전기였던 탓에 ‘반체제적’이라고 비판받았음직하다.
‘경제학의 역사'(책벌레, 2002)는 “경제학을 알려면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자신의 평소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쓴 것이다. 이른바 ‘경제학사’는 교재든 교양서든 수도 없이 많이 나왔지만 62년 출간된 그의 경제학사는 40년을 뛰어넘어 아직 우리 곁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약 70년간 나는 주로 경제학에 관련된 공무와 정치적 업무를 맡았으며, 한때는 언론계에 몸담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올바르고 유익한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통념 (conventional wisdom)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인식해야 한다는 사실과 실제 현실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의 마지막 저서 ‘경제의 진실’은 이렇게 시작한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의 도덕적 비판자인 갤브레이스는 그동안 여러 저서에서 현대사회의 공룡이 된 거대기업의 문제에 대해 경종을 울려 왔다. 이 책도 그와 같은 문제의식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다. 갤브레이스는 이 책에서 어떻게 거대기업들이 실제로는 사기를 저지르면서도 처벌받지 않을 수 있는지 그 비밀을 밝힌다. 그는 그 원인을 현실과 사회적 통념 사이의 괴리에서 찾는데, 사회적 통념으로는 죄가 되지 않지만 실제로는 사기라는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