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나의 생활과 사색에서
알베르트 슈바이처 / 일신서적 / 1986.9.1
“다른 모든 생명도 나의 생명과 같으며 신비한 가치를 지녔고 따라서 존중하는 의무를 지닌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내부에서 빛이 꺼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안에 빛이 있으면 스스로 밖이 빛나는 법이다.” _ 알베르트 슈바이처
의사이자 신학자, 음악가인 슈바이처는 프랑스 알자스(당시 독일지방)의 카이저스베르크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하며,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은 이 세상에서 자신이 누리는 행복이 과연 당연한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21세에 중대한 결심을 햇다. 30세까지는 학문과 예술을 전공하고, 그 후부터는 인류에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는 것이다. 철학과 신학 박사 학위를 받고 나서 그는 스트라스부르 대학부 교수이자 성 니콜라이 교회 목사로 봉직하다가 29세에 아프리카 선교 봉사 인력이 부족하다는 기사를 보고 아프리카로 갈 것을 결심했다. 그래서 30세라는 늦은 나이게 의대에 들어갔다. 1914년 그는 부인 헬레네와 함께 아프리카 랑바레네로 향했다. 그리고 1965년 90세의 나이로 눈감을 때까지 50여 년간 젊은 시절의 이상을 실천하며 아프리카 사람들의 건강을 돌보는 데 여생을 바쳤다. 주요 저서로는 ‘음악가.시인. 요한 제바스타인 바흐(1905)’, ‘문화 철학(1923)’ 등이 있다.
○ 저자소개 : 알베르트 슈바이처
교회 오르가니스트인 할아버지와 목사인 아버지 밑에서 음악과 신앙의 영향 속에서 자랐다.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 1899년 칸트의 종교철학 연구로 철학 박사 학위, 1900년 성만찬 연구로 신학 박사학위를 받고 신학부 강사로 활동하다 1904년 의료 선교에 대한 뜻을 정하고 1905년부터 의박 공부를 시작, 1913년 예수의 정신질환 이론에 대한 비판 논문으로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곧바로 아프리카 가봉의 랑바레네로 떠나 의료 선교를 시작했다.

의학 공부 증 1906년에는 ‘예수 생애 연구사’를 출판하여 역사적 예수에 대한 신학 연구에 위대한 공헌을 하였다. 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독일인이었던 슈바이처는 1917년 프랑스령이었던 랑바레네에서 포로로 잡혀 프랑스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었으나 의사로서 활동을 계속하였다. 1918년에 석방되어 연주, 강연 등으로 모금활동을 하고 1924년 아프리카로 돌아가 생을 다할 때까지 의료 선교에 힘썼다. 1952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그는 1965년 91세에 랑바레네에서 딸의 바흐 연주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의사로서 유명하지만 본업은 신학박사로서 강단에 선 학자였고 동시에 프로 음악가이자 파이프오르간 전문가였다. 각각의 분야에 책을 냈다.
“아프리카 봉사에 한정한” 대표 저서로는 ‘나의 생애와 사상'(판본에 따라 노벨상 수상때의 연설문이 번역돼 있다),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람바레네 통신’ 등이 있다. 성장기와 병원 운영과 수술 이야기만 있지는 않고 다양한 주제로 쓴 단편이 때로는 몇 쪽, 때로는 한 챕터를 할애해 들어 있다. 책에 따라 신학적인 주제, 음악적인 주제를 다루기도 하고, 현지에 와서 다양한 백인과 흑인을 만나며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적어 놓았다. 적도 아프리카에서 지성인으로서 살아남기, 이상적인 선교 사업, 재정 문제, 아프리카 의료의 현실, 열강의 식민지 정부 운영 문제, 식민지의 수출과 수입, 목재 산업, 강제 노동, 흑인 사회 비평, 아프리카의 자연, 병원 반경 약 2백 km 지역에 사는 부족들과 그들의 관계 등.. 약 100년 전 서아프리카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들이다. 그 외 사후 서한집이 국문으로 출판됐고, 철학서로는 “문화와 윤리”도 번역된 적 있다.
– 역자 : 권미영
○ 출판사 서평
의사이자 신학자, 음악가인 슈바이처는 프랑스 알자스(당시 독일지방)의 카이저스베르크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하며,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은 이 세상에서 자신이 누리는 행복이 과연 당연한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21세에 중대한 결심을 햇다. 30세까지는 학문과 예술을 전공하고, 그 후부터는 인류에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는 것이다. 철학과 신학 박사 학위를 받고 나서 그는 스트라스부르 대학부 교수이자 성 니콜라이 교회 목사로 봉직하다가 29세에 아프리카 선교 봉사 인력이 부족하다는 기사를 보고 아프리카로 갈 것을 결심했다. 그래서 30세라는 늦은 나이게 의대에 들어갔다. 1914년 그는 부인 헬레네와 함께 아프리카 랑바레네로 향했다. 그리고 1965년 90세의 나이로 눈감을 때까지 50여 년간 젊은 시절의 이상을 실천하며 아프리카 사람들의 건강을 돌보는 데 여생을 바쳤다. 주요 저서로는 ‘음악가.시인. 요한 제바스타인 바흐(1905)’, ‘문화 철학(1923)’ 등이 있다.
○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명언
–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내부에서 빛이 꺼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안에 빛이 있으면 스스로 밖이 빛나는 법이다.
– 나는 나무에서 잎사귀 하나라도 의미없이는 뜯지 않는다. 한포기의 들꽃도 꺾지 않는다. 벌레도 밟지 않도록 조심한다. 여름밤 램프 밑에서 일할 때 많은 벌레의 날개가 책상 위에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창문을 닫고 무더운 공기를 호흡한다.
– 나는 살려고 하는 생명에 둘러싸인 살려고 하는 생명이다.
– 나는 살려고 하는 여러 생명 중의 하나로 이 세상에 살고 있다. 생명에 관해 생각할 때, 어떤 생명체도 나와 똑같이 살려고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다른 모든 생명도 나의 생명과 같으며, 신비한 가치를 가졌고, 따라서 존중하는 의무를 느낀다. 선의 근본은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보호하고 높이는 데 있으며, 악은 이와 반대로 생명을 죽이고 해치고 올바른 성장을 막는 것을 뜻한다.
– 나는 오직 한 가지 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 진실로 행복한 사람은 섬기는 법을 갈구하여 발견한 사람이다.
– 나만 이렇게 행복해도 좋은 것인가?(이 세상에는 행복한 사람보다는 불행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닫고 이런 의문을 가지게 된다.
– 나무에는 해마다 같은 열매가 달리지만 실은 그것은 매번 새로운 열매다. 마찬가지로 사색에 있어서도 모든 항구적인 가치있는 사상이 늘 새롭게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현대도 회의주의라는 열매맺지 못하는 나뭇가지에 진리의 열매를 매달고 익혀 보려고 애쓴다.
– 낙천주의자는 모든 장소에서 청신호밖에는 보지 않는 사람이다. 비관주의자는 붉은 정지신호밖에는 보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정말 현명한 사람이란 색맹을 말한다.
당신은 당신의 동료들을 위하여 잠시라도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비록 작은 것이라고 해도, 당신은 남들을 위하여 어떤 것을 해야 한다. 그것은 당신에게 돈을 안겨주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당신의 자존심을 강화시켜 주는 것이다.
– 독서는 단지 지식의 재료를 공급할 뿐이다.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사색의 힘이다.
– 사색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정신적 파산 선고와 같은 것이다.
– 삶을 바라보는 인간의 방식은 그의 운명을 결정한다.
– 생명의 외경(畏敬)의 윤리는 주위의 모든 사람과 그들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고, 사람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인간으로서 봉사하라고 요구한다.
– 생생한 진리는 인간 사색에 의하여 산출된 것 뿐이다.
– 어린 시절의 이상주의 가운데에서 인간의 진리가 발견될 수 있으며, 어린 시절의 이상주의야말로 이 세상의 아무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의 부(富)이다.
– 우리는 모두 한데 모여 북적대며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고독해서 죽어 가고 있다.
– 우리들 성인(成人)들이 청년들에게 가르쳐야 할 처세에 대한 지식은 현실을 너희들의 이상(理想)에 살아야 하며 생활에 뺏기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 우리들이 언제나 소년기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느낄 수 있도록 생애를 통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확신은 충실한 조언과도 같이 나의 인생 항로에 힘을 주었다. 나도 세상이 성숙한 인간으로 보아주는 그런 것이 되는 것에 본능적으로 반항했다.
–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것은 우리 자신 속에 빛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면 남들은 우리의 노력을 인정할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그들 자신 속에 빛을 가진다면, 그것은 그들로부터 비쳐 나올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거나, 서로의 마음을 괴롭히지 아니하고 암흑 속을 어떻게 걸어다녀야 할 지를 알게 될 것이다.
– 이상(理想)의 힘은 계산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떨어지는 물방울에서는 힘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이 바위틈 속으로 들어가서 얼어 붙는다면 그것은 바위를 파괴시킨다. 물은 증기가 되면 가장 강한 엔진들의 피스톤을 움직인다. 이처럼 아이디어 속에는 막강한 힘이 있다.
– 이 세상에서 가장 비극적인 삶이란 살아 있는 동안 인간의 정신이 죽어 있는 삶을 이른다.
– 인간의 미래는 인간의 마음에 있다.
– 진리에 대한 의지와 마찬가지로 성실성에 대한 의지도 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성실성에 대해 박수를 쳐줄 수 있는 시대만이 그 속에서 정신력으로 살아 움직이는 진리를 소유할 수 있다. 성실성이란 정신 생활의 기본이다. 성실성이 튼튼히 자리하는 곳에 평온이 깃든다. 평온은 성실성의 깃발이다.
– 원자력 전쟁에서는 승자가 없다. 있는 것은 패자뿐이다.
– 적십자는 어둠을 밝히는 등불입니다. 이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입니다.
– 하나님의 영혼이 세상의 영혼을 점령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그 기적이 일어나기 전에 우리 마음속에 먼저 일어나야 합니다.
– 한마리 곤충을 괴로움으로부터 구하는 것으로서 나는 인간이 생물에 대해서 줄곧 범하고 있는 죄의 얼마간을 격리 하는 것이다.
– 행위의 영웅이란 없다. 다만 체념과 고뇌와의 영웅이 있을 뿐이다.
○ 독자의 평
알자스, 내가 읽었던 오래 전의 ‘나의 생활과 사색에서,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랑바레네 통신’의 앨버트 슈바이처 고향과 ‘별’의 알퐁스 도데를 떠올리게 하는 먼 저곳 알자스로 정해지니 내 가슴이 잔잔히 떨리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19세기 당시 교회의 냉담한 반응 속에서 자연주의적 교육이념을 펼쳤던 페스탈로치를 재정적으로 지원했고, 서구 그리스도교를 향해 신의 죽음을 선포한 니체에게 강의를 허락할 만큼 포용력을 보였으며, 또한 2차 세계대전 도중 나치의 횡포를 피해 망명한 칼 바르트와 칼 야스퍼스라는 두 사상가에게 자기 사상을 펼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기도 했다는 바젤 대학의 스위스 바젤을 거쳐 들어가는 알자스 여정은, 이제 말라붙어 떨릴 가슴살도 없는 나의 심중을 잔잔히 물결치게도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가보지 못한 유럽을 구경시켜주려 동행하는 딸들과 사위들, 감동이다.
로마 다빈치 공항에 내리면 그때부터 처지지 말고 아이들 뒤를 쫄쫄 잘 따라다니자고 편과 나는 손가락 걸어 다짐했다.
물론 아이들은 부모인 우리의 걸음을 감안하여 일정을 느슨하게 짰다.
작가 박이현은 “바다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프랑스와 독일 국경의 산골마을” 알자스를 “그곳의 산과 들은 농부의 땅이었고 그들의 음식도 농부의 음식”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곳을 다녀온 사람들이 잊지 못하는 것은 “그 시골스러움” 때문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시골스러움’, 내가 머무는 섬진강-지리산 기슭 동네인 악양 동매마을도 시골이다.
그 시골스러움에 젖어 있는 나는 육신은 밭일에 땀 흘려도 정신은 한없이 편하다.
알자스의 시골스러움을 섬진강변 산기슭 내 처소 길뫼재의 시골스럼과 비교해 볼 기회가 눈앞에 왔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