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대지 (하) 분열된 일가 : A House Divided
펄 S. 벅 / 출판사길산 / 2014.05.27
새 시대를 밝히는 희망의 빛 ‘분열된 집안’은 왕후의 외아들 왕옌이 주인공이다. 장래의 대장군으로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옌은 아버지 왕후로부터 엄격한 교육을 받지만, 본인은 군인생활을 싫어한다. 그의 마음의 고향은 드넓은 하늘 아래 상쾌한 대지에서의 생활이며, 시인 기질의 그는 평화로운 땅에서 영원한 행복의 경지를 추구한다.

아버지의 압력에 견디지 못한 옌은 말다툼 끝에 아버지의 관저를 뛰쳐나와 남쪽 해안의 대도시로 간다. 그곳에는 의붓어머니인 아버지의 본처가 아름답게 성장한 이복여동생 아이란과 함께 살고 있다. 친아들처럼 맞아준 의붓어머니는 응석받이로 자라 진중하지 못하고 경솔한 딸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성실한 청년 옌에게 큰 기대를 건다. 옌은 외국에서 6년 동안 농업을 공부하면서, 은사의 딸 메리와 사랑을 나누는 관계가 된다. 그러나 자신은 오랜 역사를 지닌 중국의 아들임을 떠올리고 물보다 피가 진함을 깨달으며 메리를 떠나 마침내 귀국한다. 귀국을 재촉한 것은 조국의 격렬한 배외운동과, 새 중국의 탄생이었다.
의붓어머니의 양녀 메이린은 의학을 공부하며 어머니를 도와 고아원 일에 전념한다. 그 부지런하고 청순한 모습에 옌은 깊은 사랑을 느끼지만, 메이린은 연구에만 전념하며 옌의 사랑을 물리친다. 그런데 마지막 몸부림을 치던 군벌 대항자들이 성 안으로 들이닥친다. 왕 일가의 저택은 잿더미로 돌아가고, 왕후는 그가 태어나 자라고 큰 성공의 기초를 다졌던 흙집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된다. 패배한 군벌의 모습 그대로 늙어버린 왕후는 임종의 병상에 눕고, 옌은 머리맡에서 마지막 효도를 다한다. 그 자리에 달려온 사람은 의붓어머니와 메이린이었다.
여기서 대작「대지」는 흙집으로 다시 돌아감으로써, 인간과 역사의 덧없는 변전 속에서도 묵묵히 영원을 살아가는 ‘대지’를 암시적으로 그린다. 영원한 대지와 농업기술을 익힌 옌, 새 의술을 익힌 새 시대의 여성 메이린, 새 중국의 탄생, 구 군벌의 붕괴, 사양의 길을 걷는 옛 특권계급, 복잡한 양상을 보이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어렴풋이 희미하게 밝아오는 새로운 중국 안에서도―대지의 불멸을 믿고, 옌과 메이린의 미래를 암시하며 이 거작은 장대한 막을 내린다.
– 저자소개 : 펄 S. 벅 (Pearl Sydenstricker Buck, 1892 ∼ 1973)
펄 S. 벅 (Pearl Sydenstricker Buck, 1892년 6월 26일 ∼ 1973년 3월 6일)은 미국에서 태어난 지 수개월 만에 선교사였던 부모를 따라 중국에서 10여 년간 어머니와 왕王 노파의 감화 속에서 자랐다.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우등으로 대학을 마친 그녀는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남경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1917년 중국의 농업기술박사인 John L. Buck과 중국에서 결혼하여 정신지체인 딸을 낳았는데, 그 딸에 대한 사랑과 연민은 그녀가 작가가 된 중요한 동기였다. 1950년作 [자라지 않는 아이]는 그 딸에 대해 쓴 작품이었다. 그 외에도 중국을 배경으로 한 다수의 작품이 있다. 1931년作 [대지 : 大地]로 1938년 미국의 여류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1964년 ‘출생으로 인해 고통 받는 아동들을 위한 비영리 국제기구’ 펄벅인터내셔널을 창시했고, 국내에서는 부천에 보호자가 없는 혼혈 아동과 일반 아동을 위한 복지시설 ‘소사 희망원’을 건립한 바 있다.
인간의 삶과 숙명적 굴레를 리얼리즘 서사로 표현하였으며, 중국인보다 중국을 더 사랑했던 사람이다. 그녀는 미국 여성작가 최초로 노벨상과 동시에 퓰리쳐상을 수상하였으며, 인도주의적인 부분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세계 평화를 이루기 위한 한 방편으로 인종간의 이해를 위한 가교 형성에 헌신해 왔다.
1892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에서 태어나 생후 3개월 만에 장로회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전도사업에만 열중했기 때문에 집안 일은 어머니가 도맡았다. 펄 벅은 1910년 대학을 다니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가, 1914년 랜돌프 매콘 여자대학을 졸업하고 중국으로 돌아갔다. 열여덟 살 때까지 중국에서 자란 펄 벅에게는 중국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고향이요, 미국은 바다 저편에 있는 꿈의 나라에 지나지 않았다.

1917년, 뒤에 중국농업연구의 세계적 권위자가 된 존 로싱 벅 (John Lossing Buck) 박사와 결혼을 하였다. 이때 성이 “Buck”이 된 것이다. 그들 사이에는 두 딸이 있었는데, 큰 딸은 극도의 정신박약아였다. 자서전에서 펄 벅은 큰 딸이 자신을 작가로 만든 동기 중 하나라고 밝혔다 (백치 딸은 『대지』에 왕룽의 딸로 그려져 있다).
중국에서 사는 동안 겪었던 역사적인 사건과 중국인 유모에게서 들은 많은 이야기들이 미국인인 그녀가 중국의 영혼을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정확하고 예리한 작품을 그려내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국공내전의 와중에서 1927년 국민당 정부군의 난징 (南京) 공격때 온 가족이 몰살당할 뻔했던 위기를 체험하여 피치 못할 균열을 깊이 자각한 일도 그녀로 하여금 창작활동을 시작하게 한 동기였다. 이 균열은 작품의 바닥에 숨겨진 테마로 흐르고 있다. 그녀는 이 균열을, 자기가 미국인이라는 입장에 서서 제2의 조국 중국에 대한 애착서 평생을 두고 어떻게 해서라도 메워 보려고 애썼다.
1930년 중국에서 동/서양 문명의 갈등을 다룬 장편 데뷔작 『동풍 서풍』을 출판하였는데, 출판사의 예상을 뒤엎고 1년이 채 안 되어 3판을 거듭하였다. 이어 빈농으로부터 입신하여 대지주가 되는 왕룽 (王龍)을 중심으로 그 처와 아들들 일가의 역사를 그린 장편 『대지』 (1931년)를 출판하여 작가로서의 명성을 남겼다. 이는 『아들들』 (1932년), 『분열된 일가』 (1935년)과 함께 3부작을 구성한다.
1934년 이후로 그녀의 저서들을 출판해 온 J.데이 출판사의 사장 R.J.월시와 재혼, 미국에 정착하였다. 1938년에는 미국의 여류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이 『대지』 3부작에 수여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에도 평화를 위한 집필을 계속하였는데, 중국에서 내란이 일어나 공산 정권이 들어서자 본의 아닌 귀국을 할 수밖에 없었던 펄 벅은 전후의 황폐한 사회에 내던져진 전쟁고아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전쟁고아와 혼혈 사생아들을 위하여 펄 벅 재단을 설립하고 전쟁 중 미군으로 인해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태어난 사생아 입양 알선사업을 벌이는 등 직접 봉사 활동에 나선 것도 이 무렵부터의 일이다.
2차 대전으로 미국의 OSS에 중국 담당으로 들어오면서 한국과의 인연을 맺게 되었으며, 유한양행 창업주인 유일한과 중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에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후에,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스스로 박진주 (朴眞珠)라는 한국어 이름도 지었다.
한국 전쟁 후에 한국의 수난사를 그린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 (1963년)와 한국의 혼혈아를 소재로 한 소설 『새해』 (1968년) 등 한국 관련 소설을 쓰기도 했으며, 1965년에는 다문화아동 복지기관인 펄벅재단 한국지부를 설립하였다. 1967년 경기도 부천군 소사읍 심곡리 (현 부천시 소사구 심곡본동)에 ‘소사희망원’을 세워 10여 년 동안 한국의 다문화아동들을 위한 복지활동을 펼쳤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무명의 어머니를 통해서 영원한 모성상을 그린 『어머니』 (1934), 아버지의 전기인 『싸우는 천사들 : Fighting Angels』 (1936), 어머니의 전기인 『어머니의 초상 : The Exile』 (1936)과 『애국자 : Patriots』, 『서태후 : Imperial Woman』 (1956), 자서전인 『나의 가지가지 세계 : My Several Worlds』 (1954) 등이 있다.
펄 벅은 일생동안 소설과 수필, 평론, 아동서적에 이르기까지 80여 권의 책을 집필하였으며, 5개의 장편소설만 존 세지스라는 필명으로 출간하였다. 또한 전 세계 다문화아동들을 위한 차별없는 사랑을 몸소 실천하다 1973년 3월 6일 81세로 사랑하는 아이들의 곁을 떠나 생가가 있는 그린힐즈 농장에 묻혔다.
– 책 속으로
“사랑이 없으면 공포만 있을 뿐” _ 장영희 (옮긴이)
펄 S. 벅은 1892년 6월 26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州 힐즈보로에서 태어났다. 부친 앤드류 사이덴스트리커Andrew Sydenstricker는 일곱 형제 중 여섯이 목사가 된 독실한 기독교 가문 출신으로서 중국에 파견된 선교사였다. 앤드류의 집안은 또한 언어적 재능이 뛰어나서 그 자신도 선교 활동을 하는 한편 중국어는 물론이고 한학에도 일가견을 갖고 있었고, 희랍어로 된 신약성경을 중국어로 번역하기도 하였다. 그는 오랫동안 중국에 살면서 펄이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세 자녀를 잃었으며, 그의 아내도 콜레라에 걸렸다가 겨우 회복은 되었으나 건강이 좋지 않아 의사의 지시에 따라 휴가를 얻어서 잠시 본국에 돌아와 있는 동안에 펄이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생후 3개월 만에 펄의 부모는 다시 그녀를 데리고 중국으로 돌아갔다.
당시 중국은 청조말기淸朝末期로서, 안으로는 관료들의 부패가 심하고 사회의 불안이 극심하였고, 밖으로는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으로 국토는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근대 자본주의국가들의 세력권으로 나누어져 착취를 당하고 있었다. 이 사태에 반발한 서태후西太后는 펄이 여덟 살 되던 해인 1900년에 의화단義和團을 육성하여 각지에서 백인들을 살해케 하였다. 그 당시 펄의 가족은 중국인 이웃들이 숨겨 주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중략)
1926년에 북경 소재의 군벌 정권은 남쪽의 혁명가들과 민중들의 노여움을 샀고, 드디어 손문孫文의 유지를 이어받았다는 장개석蔣介石이 이끄는 북벌군이 중국 본토를 석권하였다. 그러나 소련 정부와 중국 공산주의의 이면공작 역시 더욱 치열해지고 있었다. 다음해 봄에 남경을 점령한 혁명군은 중국에 대한 압제와 착취를 일삼는 백인들에게 대학살을 감행하였다. 미국은 예외였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백인들이 무차별한 방화, 학살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펄의 가족은 1900년의 의화단 사건에 이어 두 번째로 친한 중국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죽음의 위기를 모면하고 일본으로 피난을 가지만, 이듬해 남경의 군벌 정치를 타도한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 정부가 서방 국가들과 협조체제를 이루는 정책을 취하자 다시 남경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딸을 미국의 전문적인 정신박약아 학교에 맡기기 위해 잠시 동안 귀국한 그녀는 4년 전 미국 가는 배 안에서 썼던 처녀작 [동풍 서풍East Wind, West Wind]이 뉴욕 시의 존 데이 출판사에 의해 출판 채택되었다는 기별을 받으며, 후에 재혼하게 되는 그 출판사의 사장 리처드 월시와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딸을 미국에 남겨두고 남경에 홀로 돌아온 후에 펄 벅은 마음이 허전하였다. 대학 강의를 계속하면서, 틈틈이 두 번째 작품을 쓰기로 결심하게 되고, 그녀의 대표작 [대지]를 쓴 경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다락방을 치우고 커다란 중국식 책상 앞에 앉았다. 창 밖에 낙타 등처럼 생긴 산이 내다보였다. 그 후 나는 그곳에서 매일 아침 청소를 마치고 나면 타이프로 [대지]의 원고를 쳤다. 내가 쓰려는 스토리는 벌써 오래전에 내가 겪은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 내 머리 속에 뚜렷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나의 모든 에너지는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중국의 농민과 일반 대중 편에 서서 느꼈던 분노로 인해서 용솟음치고 있었다. 나는 소설의 배경으로 화북의 시골을 택했고, 작중에 나오는 남쪽의 부유한 대도시는 바로 남경이다. 그러므로 나의 소재는 나에게 익숙한 것들이었고, 등장인물도 내가 나 자신처럼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두 번 타이프를 쳐서 삼 개월 만에 탈고한 [대지]의 원고 뭉치는 뉴욕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그 채택 여부를 기다리지도 않고 그녀는 [세 남매의 어머니The Mother], [젊은 혁명가The Young Revolutionist] 등의 장편을 계속 썼고, 또 이와는 별도로 향후 만 4년이 걸린 방대한 [수호전]의 영역에도 착수했다. 1931년에 존 데이 사에 의해 출판된 [대지]는 미국에서 퓰리처상을 받았고, 그 해에만 200만부 가깝게 팔렸으며, 30여 개국 국어로 번역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1930년대 전반기의 세계 최고 베스트셀러로 기록되어 있다. – 옮긴이의 말
– 줄거리
혁명 군대에서 도망쳐 왕룽의 움막으로 피신한 위안은 홀로 고독한 시간을 보내며 목가적인 정취에 젖어든다. 하지만 흉흉한 세태 속에서 그를 바라보는 고향 농부들의 시선에는 불안과 의심이 가득하다. 얼마간은 고향 땅과 산수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던 위완도 서서히 농부들의 삶은 언제 닥쳐올지 모를 고통과 불안의 연속임을 깨닫는다.
그 와중 어머니가 움막에 찾아온다. 아버지의 병환이 중하니 어서 돌아가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사경을 헤맨다는 이야기에 놀란 위안은 서둘러 아버지에게 돌아가지만, 아버지는 멀쩡한 모습으로 그를 맞는다. 그를 돌아오게 한 이유는 다름 아닌 결혼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아버지와 떨어져 있는 동안 신식 교육에 익숙해진 위안으로서는 아버지의 명령을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아버지에게 얼굴도 모르는 여자와 결혼할 수는 없다고 단호하게 선언하고, 이복 여동생과 아버지의 첫째 부인이 살고 있는 화려한 항구 도시로 도망치듯 떠난다.
아버지의 첫째 부인인 노부인은 위안을 자신의 배로 낳은 아들처럼 따뜻하게 맞이한다. 또한 몰라볼 만큼 세련되고 예쁘게 자란 이복 여동생 아이린도 위안과의 재회를 기뻐한다. 그녀는 위안을 ‘구식’이라고 놀려대면서도 그를 다양한 파티에 데리고 다니며 신식 문물을 소개해준다. 군벌 아버지 밑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란 왕위안에게 이 모든 것은 새롭고 신기하기만 하다. 잘 차려입은 부자들이 넘치는 거리와 자유롭게 모습을 드러내는 외국인들, 화려한 상점들과 거리들….
그러나 그의 마음 한켠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 화려한 거리 이면에 펼쳐진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한 삶에 대한 연민과 두려움으로 마음은 답답하고 복잡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젊음의 빛 속에서 머무는 청년답게 위안은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고, 잠시 지냈던 고향 움막이 그리워지면 학교 실습지 농장에서 밭을 일구며 마음을 달랜다.
얼마 안 가 그는 사촌인 솅과 멩과도 가까워진다. 솅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탐미주의자, 멩은 이 항구 도시에까지 불어 닥친 혁명의 바람 속에서 은밀히 혁명 활동에 가담하고 있는 혁명당원이다. 멩은 위안에게 혁명 활동을 권하지만, 위안은 혁명당원들의 사상과 신념이 지나치게 교조적이라고 생각해 거절한다.
그 무렵 위안은 역시 혁명당원인 한 여학생과 친밀한 관계가 된다. 그녀와 사랑이라 하기에는 부족하고, 우정이라고 하기에는 미묘한 관계를 유지하던 무렵, 또 하나의 소식이 전달된다. 아버지 왕후가 그의 결혼식을 강행하기로 했다는 소식이었다. 분개한 위안은 일종의 반항심으로 혁명 조직에 가입하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자유를 잃는다. 그를 사랑하는 여학생이 혁명 사업을 핑계로 그를 옭아맸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녀로부터 사랑한다는 고백을 받은 위안은 그 사랑을 거절한다.
이 거절은 큰 후환으로 자란다. 갑작스러운 검거 열풍으로 끌려간 여학생이 복수심과 분노로 위안의 이름을 고발한 것이다. 이로 인해 위안은 곧 붙잡혀 처형당할 위기에 처하지만, 아들의 위험을 전해들은 아버지가 자신의 전 재산을 그의 목숨 값으로 지불하면서 위안은 죽음 직전에서 구출되어 미국으로 보내진다.
그렇게 6년간의 유학 생활이 시작된다. 그는 여전히 농사에 대한 꿈을 접지 않고 이곳에서도 농사를 공부하면서 외롭고 고독한 유학 생활 와중 이역만리에서 자신을 친절하게 돌봐주는 노교수 가족과도 가깝게 지낸다. 특히 위안은 두 사람의 딸인 메리와 사랑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지만 관계는 순탄하지만은 않다. 처음에는 호감으로 시작했던 이 가족과의 관계는 중국에서 일어난 백인 살해 사건을 계기로 깨지게 된다.
다시 혼자가 된 위안은 고국으로 귀국한다. 6년이 흐른 이 무렵, 중국은 청 말기의 혼란상에서 길을 잃고 있었다. 깊은 고민 속에 빠져 있던 그에게, 한 줄기 빛이 나타난다. 노부인이 양녀로 입양한 메이링을 보고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는 메이링에 대한 사랑에 마음을 앓고 그 사랑을 노부인에게 고백하지만, 노부인은 메이링이 원해야만 결혼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한편 메이링은 자신은 의사가 되기 위해 아직 해야 할 공부와 일이 많고, 아직은 결혼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그의 청혼을 거절한다.
실망감에 괴로워하던 위안은 때마침 도착한 멩의 편지를 받고 혁명을 도모하고 있는 멩이 있는 곳으로 떠난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혁명군들에게 현실적인 이념과 사상을 찾아볼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군인이 되는 대신 대학에서 교편을 잡는다. 비록 적은 월급이지만 열성을 다해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사랑하는 메이링에게도 꾸준히 편지를 쓴다. 이제 그는 혁명은 총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땅을 갈고 씨를 뿌리는 농부의 성실함에도 있다고 믿게 된 것이다. 또한 불안 속에서도 메이링과의 사랑도 천천히 뿌리를 내려간다.
그 와중 아버지의 성에 분개한 소작인들과 화적떼가 들이닥쳐 모든 것을 약탈하고 폐허로 만든다. 그가 다급히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아버지는 모든 것을 잃고 죽음을 앞둔 상황이었다. 천하를 호령했던 군벌이었던 그이지만, 숨을 거둘 때는 그 아버지인 왕룽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없이 작은 움막집에서 눈을 감은 것이다. 위안은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현실의 삶을 돌이켜본다. 외국 문물이 들어오고 나라는 시끄러우며 혁명은 퇴색했고 민중들은 여전히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지금껏 입고 있던 서양식 옷을 벗고 농부들의 무명옷으로 갈아입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다. 모든 허영과 가식을 벗고 진정 중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고민하게 된 셈이다. 더불어 메이링도 앞으로 그와 함께 하겠다는 뜻을 밝혀오고, 두 사람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미래로 전진할 것을 약속한다.
– 출판사 서평
3부는 왕룽의 손자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고향에서는 농민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일가의 기반이었던 농토를 모두 다 잃는다. 첫째 왕이의 집안은 아들 하나가 상하이에서 가장 큰 은행의 부은행장이 되어 있어서 상하이로 이주하고, 둘째 왕얼의 집안은 2부에서 삼촌 왕싼 밑에 들어간 아들 하나가 부유한 상업도시 하나를 지배하고 있어서 그쪽으로 도망간다. 문제는 셋째 왕싼인데, 왕싼은 농민들에게 몰매를 맞아 그 후유증으로 앓다가 유학에서 돌아온 아들 왕옌을 만나고 죽는다.
애초에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던 배경은 왕얼에게 있었다. 왕싼이 아들의 유학 자금이나 군자금 등으로 왕이에게 돈을 빌려 썼는데, 왕얼은 동생에게 가차 없이 이자와 대부 원금을 상환 받았다. 이 비용 부담 때문에 한때 2만의 정예부대를 가지고 있던 왕싼의 군대는 건달패 백여 명밖에 남지 않을 정도로 쪼그라들었고, 조카인 왕얼의 아들조차 자기 지배구역에서 걷는 세금을 삼촌에게 바치지 않을 정도였다. 가문의 배경인 왕싼의 군대가 없어지자 왕얼의 착취를 참고 참던 농민들이 일시에 봉기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군벌의 보호를 받는 유력자들이 그들에게 자금 지원을 해 주면서 상부상조한다는 걸 감안해 보면 왕얼은 결국 그 탐욕스러운 본성을 못 버려서 동생에게 자금 지원은 못해 줄망정 철저히 잇속만 따지다가 결국 화를 자초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왕싼의 봉기 초기부터 보면 왕얼이 돈을 안 받고 넘어간 건 왕싼이 늘어난 군대를 무장시킬 총을 구입했을 때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무사히 수령한 2천 정 정도에 대한 대금은 전부 받았고, 소실된 1천 정가량에 대한 대금만 왕싼이 못 받은 것에 대해선 지불할 수 없다고 나와 어쩔 수 없이 안 받고 넘어간 것에 불과했다.
한편 그 시기, 왕이의 두 아들은 혁명군에서 중책을 맡아 공직에 종사하고 있었고, 옌을 혁명군에 끌어들이려고 했던 그의 군사학 가정교사는 고위직에 올라 있었다. 옌의 이복동생 아이란은 부유하지만 여자 관련으로 소문이 좋지 않은 연애 소설가와 결혼했으며, 옌은 의붓동생 메이린과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3부가 종료된다.
.문화적 우월주의나 선교 제국주의 배격, 꼼꼼한 고증과 조사의 기록으로 평가
중국의 왕룽이라는 한 농부의 삶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의 독특한 이력 덕분에 중국인들의 생활상과 습성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주인공의 흙과 땅에 대한 집착과 사랑은 우리 농민들의 정서와도 닮아 있어 더욱 애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거칠고 가난하지만 흙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중국 농민들의 삶이 강인한 생명력으로 다가와 건강한 자극이 되어 준다.
작가인 펄 벅은 선교사였으나, 기독교를 중국과 아시아에게 강요하고 기독교를 우월하게 보며 비기독교인을 얕보는 제국주의적인 면을 무척 비난한 개념적인 위인이기도 하다. 그 덕분에 미국 기독교회들은 그를 엄청나게 비난했다. 더불어 이 작품이나 ‘북경에서 온 편지’ 등 그의 소설을 보면 아시아에 대하여 고증도 철저히 하고 여러모로 꼼꼼하게 조사하여 쓴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대지가 중국을 비하하는 백인우월주의 및 제국주의적 관점으로 쓰여진 작품이라는 주장은 출간 직후부터 나왔다. 중국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문호 루쉰이 이렇게 주장했고, 오랜 기간 중국에서 펄 벅과 대지가 저평가 받은 것이 바로 루쉰의 영향력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런데, 루쉰이 이처럼 대지를 저평가가 이유가 번역이 엉망으로 된 중역판을 읽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한편 1부 ‘대지’에 이어 2부 ‘아들들’, 3부 ‘분열된 집안’이라는 두 편의 후속작은 1부에 비해 2-3부는 인지도가 1부만 못하다. 세계 문학 전집 류의 대작 시리즈로 나올 때는 1-3부를 함께 묶어서 내놓는 경우가 있지만 축약본이나 1부만 요약해서 출판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2부 ‘아들들’과 3부 ‘분열된 일가’ 역시 함께 읽을 때 연속성이 높은 작품이라 별개의 작품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펄 벅은 ‘붉은 대지’라는 4부 격의 소설을 집필하다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게 된다. 이 붉은 대지는 왕룽의 손자들이 공산화된 중국에서 겪는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