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마르크스 평전 :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의
자크 아탈리 / 예담 / 2006.10.17
학문의 경계를 초월한 연구와 날카로운 분석력으로 마르크스에 대해 새롭게 논한 이 책은 저자 자크 아탈리가 추구하는 창조적 인간형, 창의적 자유인의 표상을 대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시점에서 그가 왜 마르크스를 거론하는지, 이를 통해 그가 진정 표현하고자 하는 논점이 무엇인지 깊이 있게 사색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 목차
머리말
1장 – 독일의 철학자 _아버지와 아들 (1818년 ~ 1843년)
2장 – 유럽의 혁명가 _ 엥겔스와의 만남 (1843년 10월 ~ 1849년 8월)
3장 – 영국의 경제학자 _ 가난한 지식인 (1849년 8월 ~ 1856년 3월)
4장 – 인터내셔널의 스승 _ 운명의 전환 (1856년 4월 ~ 1864년 12월)
5장 – 자본의 사상가_ 대작을 마치다 (1865년 1월 ~ 1871년 10월)
6장 – 마지막 전쟁터 _ 안락의자에 잠들다 (1871년 12월 ~ 1883년 3월)
7장 – 세계의 정신 _ 다른 이름으로 불리워지다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 저자소개 : 자크 아탈리 (Jacques Attali)
최고의 석학이라 불리는 자크 아탈리는 정치, 경제, 문화, 역사를 아우르는 지식과 통찰력으로 사회 변화를 예리하게 전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아탈리는 재기와 상상력, 추진력을 겸비한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지식인이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자크 아탈리는 1943년 알제리의 알제에서 태어나 알제리 독립운동이 한창이던 열네 살 무렵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건너왔다. 파리공과대학, 파리고등정치학교, 국립행정학교 등 프랑스 명문 교육기관을 졸업하고, 소르본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계와 정계, 국제기구를 넘나들며 활동하였고 1974년에는 프랑수와 미테랑 당시 사회당 당수의 경제고문을 맡아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미테랑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아탈리는 10여 년간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직을 거친 후 유럽부흥개발은행을 설립하여 총재직을 맡았다. 현재는 아탈리 자신의 이름을 건 컨설팅회사 ‘아탈리 & 아소시에’를 운영하고 있다.
교수, 정치인, 행정관료 등을 두루 거친 아탈리의 탁월한 혜안과 과학적인 분석은 프랑스 지성계를 넘어 전 세계의 방향타가 되었다. 국제 정세와 세계 경제, 미래 사회에 대한 탁월한 분석과 설득력 있는 예측을 담은 그의 저서들은 학자로서 그의 명성을 더욱 드높여주고 있다. 한편 아탈리는 한 인물에 깊게 파고들어 전기傳記를 쓰는 일에 매혹되었는데 이는 개인의 삶을 조명하는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과거 역사에 대한 충실한 자료가 되는 것은 물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과 깨달음을 전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서로 『세계는 누가 지배할 것인가』, 『자크 아탈리, 더 나은 미래』, 『위기 그리고 그 이후』, 『미래의 물결』, 『인간적인 길』, 『합리적 미치광이』,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마르크스 평전』, 『미테랑 평전』 등이 있다.
– 역자 : 이효숙
연세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소로본대학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동안 『매일경제신문』, 『출판저널』에서 일했으며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프랑스의 좋은 책들을 소개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 책 속으로
– 아버지와 지적 공감대를 형성했던 마르크스
1833년에 변호사 하인리히는 ‘사법 고문’이라는 직함을 받고 트리어의 변호사회 회장이 된다. 그의 활동들은 그를 꽤 부유하게 만들어주어서 트리어의 부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도 모젤 지방의 작은 포도원 두 개를 살 수 있었다. 마르크스는 당시 열다섯 살이었다. 그는 자기 아버지와 프랑스, 유태교, 신, 도덕, 자유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폰 베스트팔렌 남작은 이 사춘기 소년을 우정으로 대하고 셰익스피어에 입문하게 하기도 했다. 그들은 함께 호메로스, 세르반테스, 이제 막 사라져간 괴테, 프랑스 경제학자 생시몽 백작 등에 대해 얘기했다.
사랑하는 마르크스, 오늘 나는 몇 시간 동안 일어나 있으면서 편지를 쓸 수 있을지 알 수 있게 되기 바랐다. … 나는 네 마음과 도덕성을 전적으로 믿는다. 나는 언제나 너를 믿어왔다. 너는 내 마음의 가장 비밀스런 곳까지 알고 있고, 내 인생의 가장 강력한 지렛대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전공 과목을 바꾸겠다는 네 마지막 결정은 칭찬받아 마땅하고 현명하며 실행될 가치가 있다. 만약 네가 약속한 것을 이행한다면 아주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너의 한결같은 아버지가
– 그녀는 마르크스의 아내이자 사상의 동지였다
그는 프롤레타리아를 사회적 관계들을 전복시키고 인간의 해방을 실현시킬 수 있는 역사적인 힘으로 소개했다. 그 글들을 쓰면서 그는 자신의 사상, 읽고 있던 책들, 쓰고 있던 것들에 대해서 예니와 토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카를의 첫 번째 독자였으며, 그의 글을 완벽하게 해독할 수 있는 유일한 독자로 남게 된다. 카를은 자기 글을 인쇄인에게 넘기기 전에 예니에게 깨끗이 베끼게 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평등의식을 그 누구보다도 많이 갖고 있었다. 독일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있어 사회적인 차이들과 구분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자기 집과 식탁에 노동복 차림의 노동자들을 맞을 때면, 왕족들에게 대할 때와 똑같은 예의와 똑같은 배려를 보이며 맞아들였다. …… 그녀는 마르크스를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고, 극도로 헐벗은 날들에도, 그녀가 선택했던 것에 대해 결코 후회한 적이 없다.” (예니의 장례식에서 엥겔스의 추도사 중)
–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운명의 친구였다
사고와 행동 속에서뿐만 아니라 생활 속에서도 프리드리히와 카를은 그이후로 서로 떨어질 수 없게 된다. 그들의 관계를 가까이서 본 증인 폴 라파르그는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는 고대의 시인들이 묘사한 우정의 이상을 우리 시대에 실현했다”고 기록하였다.
엥겔스는 점점 더 자주 그를 보러 왔다. 라파르그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맨체스터에서 엥겔스가 오겠다고 알려올 때면 마르크스 일가는 그 날을 축제일처럼 여겼다. 가족들은 그의 방문에 대해 미리부터 오래도록 얘기하곤 했고, 그가 오는 날이면 마르크스는 안절부절못해서 일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 두 친구는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면서 그 마지막으로 만난 이후 생긴 온갖 사건들에 대해 얘기하면서 밤을 지새웠다. 마르크스는 그 누구보다도 엥겔스의 의견을 소중히 여겼다. 그는 엥겔스가 자신의 협력자가 될 수 있는 사람임을 인정하였다. 프리드리히는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대중 전체를 의미했다. 프리드리히를 설득시키기 위해, 또한 그가 자기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라면 그 무슨 일이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 사상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던 마르크스
마르크스는 이것을 충격적인 문구로 요약하였다.
“자본가는 상품들을 제 가격에 산 다음 그것들을 제 가치에 맞는 가격에 판다. 그런데 결국에는 자본가가 처음에 그것에 대해 지불했던 가치보다 더 많은 가치를 얻어내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소설, 그것도 탐정소설과도 같다. 인간은 그렇게 해서 수익률이 1보다 더 높은 유일한 기계이다. 이러한 점을 마르크스 이전에 그 누구도 간파하지 못한 이유는, 모든 자본들이 구별 없이 가치 초과(이윤)의 원천으로 잘못 보였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자기 이전에 그 어떤 이론가도 자본주의가 전체적으로 어떻게 이윤을 끌어내는지 설명할 수 없었음을 알고 있었다. 그의 이론은 그 자체로서 ‘정치경제학에 대한 비판’이었던 것이다. 『자본론』의 부제는 그렇게 붙여지게 된다.
– 그가 죽은 후, 사상에 배신을 당하여 이름을 남기다
이 다른 사람들이란, 전방위당의 개념을 만들어내게 되는 프리드리히, 마르크스의 경제 이론을 왜곡시키게 되는 카우츠키, 마르크스주의를 후진국의 서구화 전략으로서 러시아에 수입하게 되는 레닌, 다른 계급들을 모두 숙청한 후에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독재로 만들어버리게 되는 스탈린을 말한다. 그들의 활동은 네 군데 무대에서 펼쳐진다. 네 무대는 마르크스로부터 사회민주주의의 실천만을 간직하고 그것에 관한 어휘도 없는 영국, 정치적 실천 없이 어휘만을 간직하게 되는 프랑스, 마르크스의 계획을 왜곡되게 적용시키게 되는 독일과 러시아이다.
이 아류들은 마르크스가 젊은 시절부터 경계하던 권력 장악의 도구를 구축하기 위해 그의 전기를 세심하게 다시 써야 했을 터이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왜곡된 모습에 그전기가 일치하도록 만들기 위해 그의 작품을 제거해 버려야 했을 것이다. 그들은 결국 그의 이름을 내걸면서 자신들을 표현할 권리를 찬탈하기 위해 자신들의 글을 그의 글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려고 애써야 했다.

○ 출판사 서평
– 최첨단이 발달한 21세기, 왜 마르크스인가?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석학 자크 아탈리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 카를 마르크스가 만났다. 몇몇 종교 창시자들을 빼고는 그 어떤 사람도 20세기에 마르크스가 누렸던 영향력에 비견될 만한 영향을 세계에 끼치지 못했다. 그런데도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에 그의 이론과 견해들은 세계에서 용도폐기되었고, 그의 이름을 둘러싸고 구축되었던 정치체제가 역사의 쓰레기통에서 버려졌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이론은 오늘날의 세계화 틀에서 그 의미를 십분 갖게 된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폭발, 전통사회들의 전복, 개인주의의 상승, 세계의 3분의 1의 절대적 빈곤화, 자본의 집중화, 탈지역화, 상품화, 불안정의 비약적인 확산, 상품들에 대한 물신화, 단일 기업에 의한 부의 창출, 불안정의 위협에 미리 대비하기 위한 금융업의 번창 등을 목격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마르크스는 예견했었기 때문이다.
– 사적인 삶과 사상 형성의 과정을 함께 보여주다
이 책은 서사적 텍스트와 인지적 텍스트가 꽈배기처럼 서로 얽혀서 전기적 이야기와 그 인물이 발전시켜 가는 사상을 동시에 발견하게 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면서 사상의 형성이 개인의 상황과도 미묘한 연관이 있음을 넌지시 암시한다. 그래서 마르크스의 주요 저작물들이 그의 출신, 개인적 또는 사회적 상황, 국제 정세 등의 온갖 텍스트 속에서 소개되고 해설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라는 서사적 플롯에 얽혀 있는 주변 인물들의 삶에는 19세기 문학작품들 속에서 느껴지는 우울함과 페이소스가 깔려 있어 어느 부분에 가서는 인간의 숙명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런가 하면 마르크스의 투쟁적 혁명가의 면모뿐만 아니라 소심할 정도로 조심성 있고 성실한 연구자의 모습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역사의 왜곡 속에 감추어진 마르크스의 진정한 면모를 엿보게 될 것이다.
– 세계화시대, 마르크스가 현대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자크 아탈리가 진정으로 탐구하고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세계의 모습이다. 출발점은 우리 시대, 세계에 대한 관심이다. 바로 오늘날의 세계가 처해 있는 상황은 어떤 동인들에 의해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분석과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에 대한 진단을 목표로 한 고찰이다. 이러한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을 위한 또는 누구를 위한 효율성 추구이며 민영화 또는 시장 개방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하지 않고, 더불어 행복해지는 사회의 추구보다는 이윤과 수익의 극대화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작금의 경제 현상들에 대해 반추해 보게 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자신의 경쟁력 키우기에만 급급하게 하고 각자의 이기심만을 키우게 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진보된 사회란 진정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현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개별적 경쟁력 제고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지 숙고해 보도록 자극할 것이다.
– 현재가 세워진 그 시간을 따라가보자
이전의 수많은 철학자들이 인간을 총체적으로 생각했다 하더라도, 세계를 정치적이고 경제적이고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총체로서 파악한 최초의 사상가는 마르크스이다. 첫 스승인 헤겔을 본떠서 그는 현실에 대해 포괄적인 해석을 하고 싶어했다. 그렇지만 헤겔과는 달리 현실을 더 이상 신의 지배 속에서 보지 않고, 인간의 역사 속에서 보았다. 모든 분야, 모든 언어에서 지식에 대한 어마어마한 욕구를 보이면서 세계와 인간의 자유의 원동력들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려고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애를 썼다. 그는 세계의 정신이다.
지난 세기의 유일한 새 종교의 창시자였던 마르크스. 이 추방자의 특별한 여정은 우리로 하여금 현재가 어떻게 해서 그 비범한 사람들 위에 세워졌는지 이해하게 해준다. 그들은 권력으로 통하는 길이 자신들에게 열려 있음에도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꿀 권리를 지키기 위해 헐벗은 주변인으로 사는 것을 택했던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들에 대해 고마움을 가져야 한다. 동시에 마르크스의 저서의 운명은 우리에게 가장 훌륭했던 꿈이 어떻게 해서 가장 나쁜 야만으로 일탈하기에 이르렀는지 보여준다.
– 미래의 세대들이야말로 카를 마르크스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런던의 빈궁 속에서 죽은 자식들을 놓고 슬퍼하면서 최선의 인류를 꿈꾸었던 그를. 그러면 미래의 세대들은 세계의 정신에게로 되돌아가게 되고, 그의 주된 메시지를 다시 듣게 될 것이다.
‘인간은 기대할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메시지를.

○ 독자의 평 1
신경숙의 ‘딸기밭’이라는 소설의 ‘나’는 최루탄이 교정을 어지럽히는 시절에도 집과 교실만을 오간다. 또래들이 민주화, 독재를 외치는 순간에도 그는 자신의 세계 속에서 나올 줄 모른다. 그의 또래들은 마르크스, 레닌 운운하며 투쟁의 이유를 찾았지만, 80년대를 그들과 같이 호흡한 나는 소설속의 ‘나’처럼 또래와 어긋났다. 마르크스와 레닌은 좌경사상이었다. 나는 좌경이라는 말에 공포를 느꼈다.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실체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그러다 마르크스를 한 사람으로 보려고 했다. 오늘에야..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한다’ 고 하면서 역사적으로 여성작가들이 적은 이유는 물질적 조건이 갖추어 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마르크스, 발자크, 우리의 도스토예프스키는 풍요한 물질 속에서 창조성이 솟아 난 것일까? 평생을 치열하게, 어리석게, 사치스럽게 돈과의 사투를 벌인 그들의 이야기를 오늘의 기준으로, 오늘의 나의기준으로 보면 이해가 되지 않지만 창조적인 세계를 방해받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현실 세계를 복잡하지 않게 살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우리의 마르크스는 극심한 궁핍 속에서도 단 한순간도 글을 쓰거나 행동하는 일을 포기할 생각은 하지 않았고 임금을 받는 일자리를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엥겔스라는 훌륭한 조력자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타인의 궁핍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의 궁핍에 대해서도 가능한 한 무심한 태도를 견지했기 때문이다.
나는 격동의 시대를 산 풍운아, 투쟁적 혁명가의 모습과 함께 소심할 정도로 조심성이 있고,지나치게 완벽하리만치 성실한 연구자의 모습을 보았다.오랜 시간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위대한 인간의 또 다른 모습에 미소 짓는다.철학자로.. 혁명가로.. 경제학자로..사상가로.. 그리고 세계의 정신적 지주로 존재하는 그의 이야기를 명쾌하게 전해준 저자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 독자의 평 2
이제까지 읽어보았던 마르크스의 삶과 생각들에 대한 책 가운데 가장 객관적이면서 알기쉽게 쓰여진 책이라는 생각합니다.
우선 당대에 마르크스가 접하면서 살았던 사회와 문화환경, 정치적인 변화, 지적 혹은 사상적인 흐름을 배경으로 하면서 그의 삶과 행동을 살펴보는 점이 좋습니다.
저자는 단지 그 시대에 대한 정보를 많이 수집하는 수준을 넘어서 시대와 사회가 마르크스 개인이나 그의 사상과 어떻게 서로 교류하고 영향을 주고받는지 잘 보여주고 있어요. 왜곡이나 비약이라고 느껴지는 부분은 별로 없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저자의 주관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는데.. 마르크스… 그 마르크스에 대해 쓰면서 누가 그럴 수 있겠어요. 이것만으로도 뛰어난 책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예를들면 어린 시절 그가 나고 자랐던 독일의 트리어는 어떤 상황이었는지.. 민주주의와 국가주의가 뒤섞인 그곳에서 어린 마르크스에게 영향을 준 가족과 이웃들.. 소수 유태인으로 살면서 중산층 변호사였던 아버지와 어머니, 베스트팔렌 가족과의 관계 등을 학생이던 마르크스가 쓴 글과 행동들과 관련지으며 이해하기 쉽도록 해주는 식으로 글이 쓰여졌습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저술과 행적, 주변 사람의 평가, 그리고 사후에 미친 영향을 감안해본다면 마르크스를 사실 그대로 이해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의미에서 책 서두에 써놓은 파스칼의 [팡세]에서 인용한 글이 이 평전의 전체적인 관점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나마 볼만한 마르크스 전기였던 프랜시스 윈의 마르크스 평전과 비교해봐도 역시 이 책이 더 폭넓은 관점에서 마르크스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기에 좋은 책 같습니다. 아마 쉽게 읽기에는 윈의 책이 좋을지 모르지만.. 이 책은 스케일이 훨씬 크기때문에 조금 산만하거나 어렵게 느껴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한권 분량이 아니라 세권 정도로 (한 2000페이지 정도 분량으로) 써줬다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했어요. 흥미진진한 사건과 얘기들이 전부 한두 줄로 요약되어 있으니 말이죠. 이 책은 700페이지나 되는 분량이면서도 상당히 함축적입니다. 다루고 있는 얘기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입니다.
좋은 책입니다.
ps. 책의 전반적인 질에 비해 오자나 오역이 눈에 자주 띄네요. 개정판에서 꼼꼼하게 살펴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역주가 좀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