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마르크스 프로이트 평전
원제: Beyond the Chains of Illusion
에리히 프롬 · 에릭 프롬 / 집문당 / 2011.3.7
프롬의 사상적 자전이라 할 수 있는 수상집이다. 정신분석학적 방법을 사회현상에 적용하는 신 프로이트주의 입장에 서서 사회심리학계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에리히 프롬이 프로이트와 마르크스를 비교 성찰하여 비판하고 있다.

원제는 ‘환상의 사슬을 넘어’ (Beyond the Chains of Illusion) (1962) 이다. 이 책에는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의 만남’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데, 한국어 번역본으로는 ‘프로이트냐 마르크스냐’로 제목이 바뀌어 출판된 적도 있다. 이 수상집은 정신분석학적 방법을 사회현상에 적용하는 신 프로이트주의 입장에 서서 사회심리학계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에리히 프롬이 프로이트와 마르크스를 비교 성찰하여 서술하고 있다.
에리히 프롬은 한평생 근대인에게 있어서 자유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물었으며, 소외를 넘어선 인본주의적 공동체를 위해 보이지 않는 우리 마음속의 적과 싸운 사람이었다. 그는 마르크스로부터 사회 구조의 변혁에 대한 감각을, 프로이트에서 인간의 심연을 분석하고 해방하려는 의도를 배웠다. 방법론적으로는 ‘사회적 조건’과 ‘이데올로기’ 사이에 ‘사회적 성격’이라는 개념을 설정하였으며 이 3자의 역학관계에 의해 역사와 사회의 변동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그의 이러한 시도는 사회심리학이라는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를 통해 근대 사회의 숨어있던 성격이 확연히 드러났다. 그는 이러한 방법론을 적용하여, 납득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광기로 가득 찬 나치즘을 수용하고 지지한 대중들의 심리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감당할 수 없는 ‘자유’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사회 (바이마르 공화국)구성원의 심리가 결국 나치즘의 출현을 잉태했다고 주장했다. 독재자 ‘히틀러’에 대한 비판은 나치즘을 방관하고 용인한 독일 민중에게 면책을 줄 소지가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오히려 나치즘을 출현하게 한 군중 (유권자)의 심리적 기반과 사회적 성격을 분석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라는 프롬의 지적은 정치적 자유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그리하여 나온 책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에리히 프롬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림과 동시에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법론이 확립되었음을 선언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프롬은 감당할 수 없는 자유로부터 도피하고자 한 근대인의 심리적 기반이 나치즘이라는 우상을 수용했음을 밝힌 것이다.
이 저서는 프롬 자신의 지적 기반을 구성하는 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마르크스와 프로이트 사상에 대한 철학적 소고(小考)라고 볼 수 있다. 평전의 성격보다는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성과를 기반으로 개인의 자유와 사회 진보를 논하는 에세이 형식에 가깝다.
프롬은 프로이트를 통해 인간 심연에 존재하는 고립과 공포로부터의 해방을, 마르크스를 통해선 경제적 착취와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회변혁론을 찾으려 했다. 그 근거가 되는 철학은 ‘자유’다. 인간이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선, 또는 그 길로 나아가기 위해선 현실을 왜곡하는 환상의 사슬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환상을 없애기 위해서는 개인적 변혁과 사회적 변혁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에게는 개인의 변혁을, 마르크스로부터는 사회 변혁을 위한 철학적 토대를 얻을 수 있다는 게 프롬의 주론 (主論)이다.
그리고 양자의 연결 고리는 다름 아닌 휴머니즘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양자택일은 ‘자본주의냐 공산주의냐’가 아닌 ‘관료주의냐 휴머니즘이냐’이다. 프롬의 사회변혁론은 중앙집권적 관료주의가 아닌 민주적이며 지방분권적인 사회주의를 향하고 있다.
근대 관료주의는 개인의 욕망을 왜곡시킬 뿐만 아니라 소비할수록 갈증을 더 느끼게 하는 소비기아 (消費飢餓) 상태로 빠져들게 한다. 결국은 개인의 인격을 정형화된 틀로 고착화시키고 자율성을 말살한다. 스스로를 노예화하고 마비시키는 환상을 극복할 때 비로소 자유와 독립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이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창조적 불복종’이다. 그는 신에 대한 이브의 배반과 프로메테우스의 배반이 인류의 진보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근대 이후로 가장 창조적인 반항을 보여준 인물로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를 꼽고, 이들이 자신의 사상에 끼친 영향들을 기술한다. 그는 마르크스가 구소련 같은 관료적 공산국가를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고 변호하면서, ‘자유로운 개성인’이 창조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마르크스의 목표였다고 설명한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무의식의 근원을 폭로하여 도덕이라는 환상을 제거하려 노력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자유’의 획득을 위해 창조적으로 반항한 대표적인 인물로 상찬(賞讚)한다.
이 책을 읽으면 ‘창조적 불복종’의 개념을 알 수 있다. ‘금지된 것에의 도전’이 모든 학문과 예술의 본질이라고 믿고 있는 이에게 용기와 공감을 얻게 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만든다. 마르크스나 프로이트가 던진 화두가 좋게든 나쁘게든 인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_ ‘생각'(책읽는 귀족 2014) 81쪽.
○ 목차
1. 회상되는 일들
2. 양자 사이의 공통적 기반
3. 인간과 그 본성
4. 인간의 진화
5. 인간행동의 동기
6. 병든 개인과 병든 사회
7. 정신위생의 개념
8. 개인적 성격과 사회적 성격
9. 사회적 무의식
10. 양 학설의 숙명
11. 여록
12. 나의 신조
후기

○ 저자소개 : 에리히 프롬 · 에릭 프롬 (Erich Fromm)
에리히 프롬은 한평생 근대인에게 있어서 자유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물었으며 소외를 넘어선 인본주의적 공동체를 위해 보이지 않는 우리 마음 속의 적과 싸운 사람이었다. 그는 마르크스로부터 사회 구조의 변혁에 대한 감각을, 프로이트로부터 인간의 심연을 분석하고 해방하려는 의도를 배웠다. 방법론적으로는 ‘사회적 조건’과 ‘이데올로기’ 사이에 ‘사회적 성격’이라는 개념을 설정하였으며 이 3자의 역학관계에 의해 역사와 사회의 변동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그의 이러한 시도는 사회심리학이라는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를 통해 근대 사회의 숨어있던 성격이 확연히 드러났다. 그는 이러한 방법론을 적용하여, 납득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광기로 가득찬 나치즘을 수용하고 지지한 대중들의 심리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나온 책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에리히 프롬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림과 동시에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법론이 확립되었음을 선언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이 책은 감당할 수 없는 자유로부터 도피하고자 한 근대인의 심리적 기반이 나치즘이라는 우상을 수용했음을 밝힌 것이다.
나아가 프롬은 사회심리학적 시각으로 현대인들의 소외의 양상을 유형별로 고찰하고 근대적 세계 속에서 인간이 참다운 자기를 실현하여 가는 길을 찾고자 하였다. 『소유냐 존재냐』, 『사랑의 기술』은 그러한 노력의 산물이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야말로 인간을 소외로 몰고 가는 근본적인 틀임이 거듭 밝혀지고, 이를 넘어서고자 할 때 인간 개인의 내면적 해방과 사회구조의 변혁이 동시에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고 프롬은 주장한다. 이를 통해 『건전한 사회』, 즉 인본주의적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들의 임무요 삶의 보람이라는 것이 프롬의 생각이다.
이러한 프롬의 주장은 너무나 원론적인 것이어서 때로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문제 인식과 방향 설정에 하나의 유효한 도구가 됨은 부인할 수 없겠다. 그 외 저서로 『너희도 신처럼 되리라』가 있다.

○ 출판사 서평
이 책은 프롬이 ‘사상적 자전’이라고 말했듯이, 프롬의 다른 어떤 책보다 프롬 자신이 생생하게 드러난 책이다. 그는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로부터 큰 영감을 받았는데, 그 까닭을 어린 시절의 몇 가지 중요한 계기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즉 이 책은 프롬의 눈을 통해 본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공통점으로 프롬은 세 가지를 든다. 회의, 진실의 힘, 휴머니즘이 바로 그것이다. 양자 모두 그 시대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의심을 품고 있었고 무언가 중요한 사실이 감추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마르크스는 사회, 경제적 구조를 기본 현실로 보았고, 프로이트는 개인의 리비도에 주목했다.
이 두 사람은 우리를 둘러싼 환상이 깨어지고 진실이 드러나기를 바랐다. 마르크스는 인간을 소외로부터, 경제적 예속으로부터 해방시키려 했고, 프로이트는 환자가 무의식을 의식화하여 자기의 비합리성을 극복하기를 바랐다. ‘이드가 있는 곳에 자아가 있게 하라’고 말한 프로이트의 의도는 개인의 ‘자각’을 통해 자기의 의식적 사고에 깃든 허구를 알아보고 진정한 현실에 눈뜰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는 마르크스가 프로이트보다 훨씬 넓지만, 마르크스에게 진실은 사회 변혁의 무기이며 프로이트에게 진실은 개인적 변혁을 불러일으키는 무기로서, 이 두 사람 모두 인간이 환상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게 행동하기를 소망했다.
인간적인 것이면 그들에게 무연한 것이 없었다. 프로이트는 인간들이 모두 무의식적 충동을 공유하고 있으며 여러 모순되는 에너지를 안고 있다고 보았다. 인간을 보편적 관점에서 바라보았으며, 자연적 충동을 옹호하고 이성이 이들을 제어한다는 이상을 갖고 있었기에 휴머니즘적이다. 마르크스의 사회학 역시 사회를 모순되는 힘으로 얽힌 구조물로 보았고, 소외되지 않은 인간의 완전한 개화를 이상으로 삼았으므로 휴머니즘 전통을 구현하고 있다.
프롬은 이 두 사람이 많은 부분에서 오해되었다고 생각했는데, 프로이트에게 인간은 서로 모순되는 여러 힘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이지, 단지 성욕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존재는 아니라고 했다.
마르크스는 더욱 심하게 왜곡되었으며, 이 왜곡은 ‘유물론’이라는 말에서 비록되었다고 보았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물질주의자’와 ‘이상주의자’란 말과 철학 용어인 ‘유물론’과 ‘유심론’은 전혀 다른 뜻을 갖는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은 실재하는 것은 물질이지 관념이 아니라는 뜻으로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서 연구를 시작하자는 것이지 자유, 정의, 진리가 가치 없다는 뜻은 아니다. 기계적 유물론의 반대이다.
그는 사회주의 사회를 통해 인간의 힘이 자유롭게 깨어나기를 바랐다. 풍부하게 ‘갖는’ 인간이 아니라’풍부한’ 인간이야말로 진정 성숙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프롬은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인간의 진화와, 개인의 동기, 병든 사회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이 두 사람을 고찰한다. 프로이트에 대한 몇몇 개념은 지금은 폐기되었지만, 그는 당시 터부시된 성을 공론화했고 인간의 무의식을 들여다보았다는 점에서 현대 사상에 기여를 했다.
배타적 유대주의 및 양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프롬은 인류 보편의 이상이 구현된 ‘하나의 세계’를 꿈꾸었다. 각성한 개개인이 완전한 인간이 되어 인도주의적인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비전을 가졌다. 인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 목표에 도달할 수 없었지만, 다가올 세상은 ‘인간의 시대’이기를 소망했다.
마지막 장 ‘나의 신조’는 프롬의 가치관, 인생관을 집약해서 보여준다. 그는 인간의 완전성을 믿었고 인간을 자기 파괴로부터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이성이라고 믿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모두 미래를 해결할 수 없으며 민주적이고 지방분권적인 사회주의가 휴머니즘을 개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프롬은 오늘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전쟁과 평화이며, 인간이 지구의 온 생명과 문명의 가치를 파괴하려는 위험에 처해 있으므로 이 위험에 눈뜨는 것이 지상명령이라고 보았다. 그의 마지막 말은 여운을 남긴다. ‘우리가 당장 각성할 수 없다면, 이 목표에 도달할 수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품고 있다.’
그래서 20세기 전반의 사회와 인간을 고뇌한 프롬의 사상은 지금도 현대적인 의의가 크다. 그의 문제 의식은 지금의 절박한 상황을 예언하고 있으며, 그가 모색한 미래는 우리가 갈 길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