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문학의 고고학 : 미셸 푸코 문학 강의
미셸 푸코 / 인간사랑 / 2015.7.30
『문학의 고고학』에 실린 총 6편의 글은 푸코 문학시기의 시작점이라 할 1963년~1964년(1, 2부) 및 마지막 시기인 1970년(3부)의 것들이다.
그러나 이 책의 백미는, 물론 자신만만하면서도 재기 넘치는 아름답고도 정교한 문체로 젊은 거장의 도래를 알리는 1부, 정치하고도 탄탄한 논리적 구조로 독자를 승복시키며 사드의 문학적 의의를 다루는 3부도 중요하지만, 푸코가 ‘문학’에 대한 관념을 단 한 번 유일하게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스스로의 문학에 대한 ‘전복적ㆍ위반적’ 정의를 제출하고 있는 2부라 해야할 것이다.

○ 목차
옮긴이 앞글 7
옮긴이 일러두기 39
프랑스어판 일러두기 42
I. 광기의 언어 45
프랑스어판 편집자의 말 47
광인들의 침묵 51
광기 안의 언어 83
II. 문학과 언어 113
프랑스어판 편집자의 말 115
첫 번째 강연 117
두 번째 강연 154
III. 사드에 대한 강의 203
프랑스어판 편집자의 말 205
첫 번째 강연 208
두 번째 강연 240
프랑스어판 편집자 서문 297
문학에 관한 푸코 작업 일람 314
미셸 푸코의 간략한 생애 319
인명 색인 320
내용 색인 324

○ 저자소개 : 미셸 푸코 (Michel Paul Foucault)
기존 사회이론의 문제제기와는 전혀 새로운 시각을 제기한 프랑스의 사회학자. 프랑스 쁘와띠에에서 태어났다. 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 심리학, 정신병리학 등을 공부했으며, 니체, 하이데거, 바따이유, 바슐라르, 깡길렘, 알튀세르 등의 영향을 받았다. 파리대학 반센 분교 철학교수를 거쳐 1970년 이래 꼴레주 드 프랑스 교수를 지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후 정신의학에 흥미를 가지고 그 이론과 임상(臨床)을 연구하는 한편, 정신의학의 역사를 연구, 『광기(狂氣)와 비이성(非理性)―고전시대에서의 광기의 역사』(1961)와 『임상의학의 탄생』(1963) 등을 저작하였다. 그 과정에서 각 시대의 앎[知]의 기저에는 무의식적 문화의 체계가 있다는 사상에 도달하였다.
그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 약간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구조주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 철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사회 구조나 언어 구조 등의 ‘구조’가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구조란 ‘짜여진 어떤 틀’을 말하는 것으로, 인간의 자아나 관념 역시 이 틀 안에서 탄생하고 전개, 소멸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의 모든 논의의 중심에는 인간의 신체가 있었다. 그는 신체야말로 권력의 시발점임과 동시에 저항의 시발점이라고 말한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저서인 『광기의 역사』는 근대 서구사회에 있어서 나병의 쇠퇴와 나병의 폐쇄에 따른 광인을 감금하는 장소가 개설된 사실에서 이론적 비판을 전개한 논문이다. ‘광기’의 개념이 형성되고 유포된 과정을 고고학적 방법으로 추적하여, 이성주의의 ‘차별과 배제의 논리’를 역으로 드러낸다. 어째서 이성은 비이성을 질병으로 치부했을까? 어째서 감금하고 억압하고 마침내 침묵 속에 가두었을까? 이성의 독단에 대한 강력한 경고와 ‘타자/외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불러일으켰다.
『감시와 처벌 : 감옥의 역사』에서 푸코는 정신병원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인간적 장치가 아니라 이성중심적 사회가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가치기준으로 광인을 추방하고 감금해온 장소로서 인간에 대한 권력의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억압적 수단의 필연적 산물이라고 분석한다. 또한 감옥은 범죄자들의 단순한 수용소가 아니라 권력의 사회통제를 위한 전략의 소산이며 그 범죄자들은 경제적, 정신적으로 유용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존속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기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언어와 사물』(1966)과 『앎[知]의 고고학(考古學)』(1969)에서 무의식적인 심적 구조(心的構造)와 사회구조, 그리고 언어구조가 일체를 결정하며, 주체로서의 인간이라든가, 자아라고 하는 관념은 허망이라고 하는 반인간주의적(反人間主義的) 사상을 전개하였는데, 이것이 구조주의 유행의 계기가 되었다.
정상적인 자기가 어떤 지식의 배치를 통하여 마련되는지에 대한 분석을 푸코의 초기라고 본다면, 중기에는 니체의 권력, 힘 개념을 재해석하면서 근대 사회에 작용하는 미시권력의 다양한 장치와 테크놀로지를 추적한다. 주로 포스트 구조주의자들을 연구하고 많은 논문을 써온 양운덕 선생은 근대인이 어떻게 태어나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푸코는 권력이야기를 시작한다고 말한다. 그에 대한 답으로 푸코는 규율 지키기와 몸 길들이기를 통해서 근대를 살아가는 ‘주체’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즉 권력이 근대 주체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푸코는 개인의 몸에 작용하는 일정한 관계망 속에서 권력의 작용을 살필 수 있다고 말한다. 푸코에게 있어 권력은 작용할 대상을 일정하게 형성하고 그 대상이 스스로 권력을 수행하게 된다고 말한다. 즉 권력은 억압하고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 생산적, 긍정적인 힘인 것이다.
『성의 역사』는 ‘성’과 그것을 행하는 ‘인간’ 그리고 그것들을 조직하는 권력(혹은 담론 – 힘있는 말)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저작으로 ‘성정치학’ 논의에 기초가 되는 아주 중요한 저작물이기도 하다. 3부작으로 이뤄진 『성의 역사』에서 푸코는 “성은 억압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성의 역사는 오히려 선동과 증대의 역사다. 억압 대신 선동과 증대가 이뤄지고 거기로부터 수많은 ‘말’ 그리고 ‘권력 망’이 생겨났기 때문에 오히려 성이 ‘억압의 역사’를 가진 듯이 보인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발달과 함께 노동력이 이전보다 훨씬 많이 필요하게 되고, 불필요한 노동력을 사용하게 하는 수음을 금지하게 하거나(실제로 그런 캠페인이 있었다), 그것의 사례로 얘기되는 청교도주의나 금욕주의의 전개에 대해 푸코는 우선 의심했으며, 그 이면을 파헤쳤다. 그 결과 일반적인 견해와는 달리 당시에는 ‘성 담론’이 급격히 증가했으며 고해, 성의학, 정신분석학 등 수많은 지식들이 그것을 이야기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밖에 『광기와 문화』『정신병과 심리학』『비정상인들』『사회를 보호해? 한다』『자기의 테크놀로지』등의 저서가 있다. 또한 푸코를 다루는 저서들도 많이 출간되었다. 푸코는 1984년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으로 사망하였다.
– 역자 : 허경
1988년 고려대학교 불어불문과를 졸업하고, 1994년 동 대학교 철학과 대학원에서 「미셸 푸코의 한 연구?‘윤리의 계보학’을 중심으로」로 석사학위를, 2007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마르크 블로흐대학교 철학과에서 석학 필립 라쿠라바르트의 지도로 「미셸 푸코와 근대성」을 제출,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귀국 후, 고려대학교 응용문화연구소 및 철학연구소에서 연구교수를 역임했다. 옮긴 책으로는 스튜어트 슈나이더맨의 『쟈크 라캉, 지적 영웅의 죽음』, 질 들뢰즈의 『푸코』, 데이비드 메이시의 『라캉 이론의 신화와 진실』, 마우리치오 라자라토의 『부채인간』(공역) 등이 있으며, 『현대사상과 도시』, 『미술은 철학의 눈이다』, 『철학, 책』,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 등에 글을 실었고, 저작 『푸코와 근대성』, 『푸코와 근대』 등을 출간할 예정이다.

○ 출판사 서평
프랑스의 사상가 미셸 푸코는 ‘지식의 고고학’ 시기의 대표작 『말과 사물』(1966)을 발간하기 이전과 이후인 1963년과 1964년, 그리고 1970년에 문학에 관련된 일련의 강연을 행한다.
이 강연들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그러한 사실만이 알려졌을 뿐, 실제로 그 원고 혹은 방송 녹음이 완전한 형태로 존재하는지 자체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했던 작품들이다. 1963년의 라디오 프랑스 III에서 행해진 I부 ‘광기의 언어’, 1964년 벨기에 브뤼셀의 생루이대학교에서 행해진 II부 ‘문학과 언어’, 1970년 미국 버팔로의 뉴욕주립대학교에서 행해진 III부 ‘사드에 대한 강의’로 구성된 『문학의 고고학』은 호메로스, 셰익스피어로부터, 세르반테스, 코르네유, 라신을 거쳐, 샤토브리앙과 사드, 그리고 말라르메와 조이스, 프루스트에 이르는 수많은 작가들을 문학, 광기, 언어라는 커다란 주제와 관련하여 전 방위적으로 다룬다. 2013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문학의 고고학』은 이제까지 한 번도 전모가 밝혀진 적이 없던 1960년대 푸코의 문학관, 곧 광의의 형식주의에 기초한 전복적 아방가르드의 문학관을 푸코가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유일한 텍스트들을 모았다는 점에서 실로 흥미진진한 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 실린 총 6편의 글은 푸코 문학시기의 시작점이라 할 1963년~1964년(I, II부) 및 마지막 시기인 1970년(III부)의 것들이다. 그러나 『문학의 고고학』의 백미는, 물론 자신만만하면서도 재기 넘치는 아름답고도 정교한 문체로 젊은 거장의 도래를 알리는 I부, 정치하고도 탄탄한 논리적 구조로 독자를 승복시키며 사드의 문학적 의의를 다루는 III부도 중요하지만, 푸코가 ‘문학’에 대한 관념을 단 한 번 유일하게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스스로의 문학에 대한 ‘전복적?위반적’ 정의를 제출하고 있는 II부라 해야할 것이다.
『문학의 고고학』은 II부를 이루는 두 편의 ‘문학에 대한 강의’만으로도 출판될 가치가 충분하다.
『문학의 고고학』을 여는 I부 ‘광기의 언어’는 1963년 1~2월에 방송된 두 편의 라디오 방송이다. 방송은 먼저 제작을 맡은 장 도아트가 푸코를 소개하면서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이어서 푸코가 강연을 진행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라디오 방송의 이점을 십분 살려 강연의 중간중간에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1735년 아르스날 수용소의 감금일지, 디드로의 『라모의 조카』, 사드와 관련하여 샤랑통 수용소의 의사가 보낸 편지, 아르토와 그의 편집자인 리비에르 사이의 편지 등 푸코가 직접 고른 텍스트들이 성우들에 의해 낭독된다. 첫 방송 ‘광인들의 침묵’은 1961년의 저작 『광기의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정신분석은 광기에 대한 이성의 독백’이라는 근본적 관점을 따른다. 광기가 비정상적 병리상태로 인식된 것은 광기가 자연적이고 생물학적인 것으로 가정되는 자연과학적?의학적 이상(異常) 현상이기 때문이 아니라, 18세기 말 이후 이루어진 광기에 대한 대상화 과정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상화 과정, 곧 광기를 ‘비정상적’ 병리현상으로 설정하는 과정은 동시에 이성이 스스로를 ‘정상적인’ 것으로서 정립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광기와 이성은 서로서로에 대한 여집합으로서 규정되는데, 이러한 광기와 이성의 배타적인 상호 실체화 과정이 오늘날 서구 근대 이후의 특징적 현상인 광기와 이성의 분할을 낳았다. 특히 등장하는 텍스트들 중에서도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은 특권적 지위를 갖는데, 이는 이 작품이 오늘날에는 사라진 하나의 현상, 곧 ‘광인 스스로가 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광인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자이며, 누군가에 의해 대변되어야 하는 자, 누군가가 그의 말을 해독해주어야 하는 자, 결코 스스로는 온전히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도 자신의 뜻을 펴지도 못하는 자로서 이해된다. 물론 이는 단적으로 이성에 의한 광기의 식민지화이며, 이를 식민주의자에 의한 원주민의 지배,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배, 어른에 의한 아이의 지배, 곧 지배자에 의한 피지배자의 지배로 읽으면, 오늘날 광기의 모습이 결코 자연적인 의학적 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의학이라는 역사적?학문적 장치에 의해 구성된 하나의 정치적?사회적 현상, 곧 권력 현상임을 이해할 수 있다. 『광기의 역사』가 말하는 대로, 광인의 광인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의학에 의한 광기의 도덕화, 광기와 죄책감의 상호 결부 작용과 더불어 이루어진 사회적?정치적 절차가 만들어낸 하나의 효과이며, 이는 18세기 말 이래 ‘정신의학’의 학문으로서의 설립과정과 다른 것이 아니다.
I부의 두 번째 강연 ‘광기 안의 언어’ 역시 『광기의 역사』의 근본주장을 벗어나지 않는다. 강연에서는 미셸 레리스의 『지우기』와 『식물의 정사』, 18세기의 시적 알파벳 놀이, 장피에르 브리세의 『신의 학문 또는 인간의 창조』, 장 타르디외의 「하나의 말을 또 다른 말로」, 앙토냉 아르토의 인용 등이 등장한다. 첫 번째 방송이 광기와 의학 그리고 문학의 관계를 다루었다면, 두 번째 방송은 광기와 언어 그리고 문학의 관계를 다룬다. 푸코가 인용한 텍스트들은 예외 없이 ‘말놀이’(jeude mots, word play) 규칙에 대한 형식적 변형을 통한 문학적 작품들이다
(이런 종류의 작품들을 다른 언어로 번역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이 부분의 번역은 옮긴이로서는 실로 곤혹스러운 일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면에서 이 두 번째 방송은 ‘모든 언어 문화권에는 문학적 내용에 집중하는 작가들과 문학적 언어 곧 형식 자체에 집중하는 작가들이 있으며, 나는 늘 후자 쪽으로 관심이 기울어졌다’ 푸코 자신의 말을 입증해주는 좋은 사례이다. 이는 물론 언어의 내용과 형식이 따로있으며 자신의 관심이 형식 쪽으로 기울어졌다는 말이 아니라, 언어의형식적 구조 자체가 곧 문학의 실내용을 구성한다는 이른바 넓은 의미의 ‘형식주의적’ 문학관에 가깝다(물론 이는 푸코가 고전적 의미의 ‘형식주의자’라는 말이 아니라, 문학에 관한 1960년대 푸코의 사유에 광의의 형식주의에 포함될 수 있는 요소가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1963년은 오랜 기간에 걸친 언어학, 구조주의, 기호학, 형식주의에 대한 푸코의 독서가 빚어낸 영향이 겉으로 드러나는시기이며, 이러한 ‘푸코적 형식주의’는 문학을 ‘스스로를 벗어나는 방식으로만 스스로의 형식을 축하게 되는 언어의 작용이 빚어내는 일련의 효과’로 바라본다. 이런 면에서 당시 푸코의 문학관은, 이 시기 푸코의 두 주요한 참조대상들로서, 바깥(dehors)의 사유를 말하는 블랑쇼와 위반(transgression)의 글쓰기를 말하는 바타유의 사유에 강력히 영향 받은 것이다. 한계경험(experience-limite)으로 대표되는 위반과바깥의 사유는 안에 대한 바깥, 타부의 위반으로 이해되면서 사유하는 주체의 탈주체화(desubjectivation du sujet pensant)라는 ‘전복적 아방가르드’의 윤리를 이끌어낸다. 문학이란 바로 이러한 기존의 언어놀이에대한 위반과 바깥의 한계경험, 그리고 탈주체화, 탈이성화된 주체, 곧 광기와의 협업이 발생시키는 효과이다. 바슐라르에 대한 푸코 자신의 말대로, 작가는 ‘게임의 규칙을 어김으로써 자신의 문화를 함정에 빠뜨리는 사람’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시기 푸코의 문학관은 기존의 지배적 언어 놀이에 대한 ‘형식주의적’ 혹은 ?훗날 ‘(포스트)구조주의적’이라 불리게 될 ?하나의 실험 곧 일탈을 통해 펼쳐지는 전복적 아방가르드의 문학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