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미학 강의 : 베를린 1820/21년
G. W. F. 헤겔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3.4.25
‘헤겔 미학’은 무엇인가? 헤겔은 진정 ‘예술의 종말’을 고했는가? 이 책은 헤겔 미학의 기본 사유를 확인해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미학의 보편적 부분과, 건축·조각·회화·음악·시문학 등 특수한 부분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을 담고 있다.
○ 목차

서론
예술의 개념
예술의 분류
[A.] 예술의 보편적 부분
아름다움의 개념
정신과 아름다움의 관계
자연미와 예술미의 구분
예술의 특수한 부분
I. 상징적 예술형식
1. 자연 상징, 또는 물리적인 것의 상징적 표현
2. 참된 상징
3. 의미와 표현의 분리 단계, 또는 특수한 상태에 있는 상징
II. 고전적 예술형식
1. 개념, 절대적인 의미 부여자로서 사유 자체
III. 낭만적 예술
I. 종교적 소재
II. 이 원리가 세계와 인간 속에 출현하게 하는 소재
III. 이 원리가 완전히 형식화하게 하는 소재
[B.] 특수한 부분
조형 예술들
I. 건축술
1. 상징적 건축
2. 고전적 건축술
3. 고딕 건축술
정원술
II. 조각
1. 이집트인의 조각
2. 고전적 조각
III. 회화
회화의 대상, 소재
성격적인 것 일반
상황 일반, 특정한 감각의 표현
색, 채색 효과
음악
IV. 언어 예술
I. 서사시
II. 서정시
III. 극시
관련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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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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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 ~ 1831)
독일의 철학자이자 독일 이상주의 (理想主義, Idealismus) 철학의 이론을 완성한 거장. 1770년 독일 남부 슈투트가르트에서 궁정관리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튀빙겐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1793년에 스위스로 가서 당시 베른의 영향력 있는 정치가인 폰 슈타이거 (von Steiger) 집안의 가정교사로 일하며 이 가문이 소장한 방대한 양의 서적을 읽는 기회를 가졌다. 여기서 얻은 폭넓고 심오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활용하여 훗날 그는 자신의 철학체계를 세울 수 있었다.

1801년 독일 동부 예나 (Jena) 대학교의 강사직에 임명된 후 불후의 명저 ‘정신현상학’ (Phänomenologie des Geiste, 1807년)을 썼고, 이어서 두 번째 저서인 ‘논리학’ (Wissenschaft der Logik, 1812년)을 출간하였다. 1816년에 하이델베르크대학교 교수로, 1818년에는 당대의 유명한 철학자 피히테의 뒤를 이어 베를린대학교 교수로 임명되었고, 세 번째 명저인 ‘법철학 강요’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1821년)를 출간하였다. 대학 강사 시절인 1802년에 당시 독일문화의 중심지였던 드레스덴을 비롯해, 1822년 브뤼셀, 1824년 빈, 1827년 파리와 프라하, 칼스바트로 여행하면서 수많은 전시, 공연, 오페라 등을 관람하였고, 특유의 독창적이고 진지한 예술 감각을 익혔다. 이를 바탕으로 하이델베르크대학교와 베를린대학교에서 ‘미학 또는 예술철학’ (Ästhetik oder Philosophie der Kunst) 강의를 하였으며, 이 내용을 제자인 하인리히 구스타프 호토 (Heinrich Gustav Hotho)가 정리하여 그의 사후 출간한 것이 바로 ‘미학강의’ (Vorlesungen über die Ästhetik) 이다.
일찍이 스피노자와 칸트, 루소 그리고 괴테의 영향을 받았으며, 열아홉 살에 직접 겪은 프랑스 혁명은 그가 이성과 자유에 바탕을 둔 철학을 과제로 삼는 데 하나의 단초가 되었다. 또한 루소의 사상,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예술 나아가 칸트, 피히테 등 당대의 주요 철학들을 깊이 탐구하면서 근대의 온갖 분열된 상황에 맞서 삶의 근원적인 총체성을 되살리려는 이상을 세웠다.
근대철학과 문화, 사회 안에서 주체와 지식의 대상인 객체, 정신과 자연, 자아와 타자, 권위와 자유, 지식과 신념,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의 긴장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 현상을 헤겔은 ‘절대정신’을 중심으로 하는 자신의 철학체계 안에서 합리적으로 규명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당대 최고의 철학자로 인정받던 헤겔은 1831년 병으로 사망했지만, 1820년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헤겔학파’를 통해 독일은 물론 세계적으로 그의 철학이 널리 전파되면서 후세에 큰 영향을 끼쳤다.
– 역자 : 서정혁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칸트 철학으로 석사 학위를, 헤겔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리더십교양교육원에 재직 중이다. 저서로 『철학의 벼리』, 『논술 교육, 읽기가 열쇠다?선생님을 위한 읽기 교육의 방법과 활용』, 『논증과 글쓰기』 (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 헤겔의 『예나 체계기획 III』, 『헤겔 예나 시기 정신철학』, 『법철학 강요』, 『교수 취임 연설문』, 피히테의 『학자의 사명에 관한 몇 차례의 강의』, K. 뒤징의 『헤겔과 철학사』가 있다. 그 밖에 독일 관념론, 의사소통 교육 및 교양 교육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 책 속으로
모든 예술 방식에서 특수한 예술은 특징적인 면을 구성하며, 여기에서 보편적 예술이 계시된다. 그래서 우리는 상징적 예술이 건축에서 가장 위대한 특징과 탁월성을 지니며, 고전적 예술은 조각에서, 낭만적 예술은 회화와 음악에서 그러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보편적 예술과 관련해서 보면, 이 세 가지 형식 모두를 초월해 대자적으로 자신을 확장하는 것이 바로 언어 예술 (redende Kunst)이다. 이 밖에도 보편적 이념에 완전히 상응하지 않아서 조금씩 왜곡이 생기는 다른 많은 유사 예술들과 특수한 방식들이 있다. 예를 들어, 웅변술, 무언극술, 무용술 (舞踊術), 정원술 (庭園術, Gartenkunst) 등이 그러하다. 시 예술 중에서도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형식들로 표현되지 않는 방식들도 있다.— p.46-47
보편적인 부분에서는 항상 개념과 실재의 관계가 기초가 되었다. 상징적인 것은 조화로운 형태를 찾으려는 시도였다. 고전적인 것은 개념과 실재의 완전한 일치 상태였다. [183] 그리고 낭만적인 것은 이러한 통일 상태를 뛰어넘는 것으로서, 개념과 실재의 분리였으며, 최종적인 것은 자신의 토대를 [인간의] 심정들 속에 지니는 정신이다. — p.297
○ 출판사 서평
헤겔은 1818년 여름 학기부터 1829년 겨울 학기까지 다섯 번에 걸쳐 ‘미학’ 또는 ‘예술철학’을 강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정작 강의를 위해 그가 작성한 원고는 남아 있지 않다. 수강생들이 필기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정리해 놓은 원고 열두 편 정도만이 있을 뿐이다. 게다가 첫 미학 강의 자료는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다. 지금까지 가장 널리 읽힌 『미학 강의』는 헤겔의 제자 호토가 편집한 책이다. 베를린 강의에 사용한 헤겔의 수고와 수강자들의 필기 노트를 모아서 1835년 (초판)과 1842년 (개정판)에 세 권으로 출간했다. 그러나 호토가 미학도 완결된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헤겔 미학을 편집했다는 의혹이 최근 제기되었다. 1818년 하이델베르크 강의 노트뿐만 아니라 1820/21년 베를린 강의의 원자료를 편집에서 제외해 버린 사실 때문에 이러한 혐의는 더욱더 짙어지고 있다.
『미학 강의 (베를린 1820/21년)』는 크게 ‘보편적 부분’과 ‘특수한 부분’으로 구분되고, ‘특수한 부분’에서 개별 예술 장르를 다룬다. 특이한 점은, ‘보편적 부분’에 ‘예술의 특수한 부분’이라는 제목을 별도로 표기해 놓고, 여기서 세 가지 예술형식, 즉 상징적 예술형식, 고전적 예술형식, 낭만적 예술형식을 다룬다는 것이다. 세 가지 예술형식은 표현되어야 할 내용과 표현된 형식, 실재와 개념의 적합성 여부에 따라 구분된다. 우선, 상징적 예술형식의 가장 큰 특징은 내용과 형식이 서로 부적합하다는 점이다. 헤겔은 부적합성을 내용이 예술형식을 찾는 과정이자 지향하는 과정이라고 표현한다. 이에 견주어 고전적 예술형식은 내용과 형식이 완전하게 일치함으로써 미의 이상을 실현한다. 고대 그리스 조각에서 절대자가 개별적인 인간 신체로 구현되는 것처럼, 고전적 예술형식은 신적인 것을 인간적인 것으로 형상화한다. 특히 헤겔이 고전적 예술형식에서 아름다움 또는 예술의 이상이 진정으로 실현되었음에 주목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고전적 예술형식에는 아직 살아 있는 ‘개체’, 곧 ‘주관성의 일자’가 결여되었다고 한계를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낭만적 예술형식은 고전적 예술형식이 성취한 아름다움과 예술의 완성이 해체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는 내용과 형식의 불일치에 머문 상징적 예술형식으로 퇴행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기존의 예술에 대한 해체이자 초월이다.
○ 독자의 평
1. ‘헤겔’하면 우선적으로 연상되는 단어가 있다. ‘변증법’과 ‘체계’다. 그는 논리학, 자연철학, 정신철학등의 철학 체계를 [엔치클로페디]에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았다. 그 외에 [역사철학], [철학사] 등은 강의를 위해 준비한 원고의 형태나 수강자들의 필기록으로만 남아 있는데, 이 책 [미학강의]도 이에 속한다.
2. 헤겔은 1818년 여름 학기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부터 1829년 겨울 학기 베를린 대학까지 대략 다섯 번에 걸쳐 미학 또는 예술철학에 관한 강의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수강생 중에는 시인 하이네도 포함되었다고 한다.
3. ” 이 강의는 ‘미학’에 전념한다. 그 영역은 아름다움, 특히 예술이다. ‘미학’이라는 명칭은 본래 ‘감각의 학문’을 뜻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이전부터 이 학문에서 감각에 주어진 인상을 고찰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각의 학문’이라는 표현은 그리 적절하지는 않다. 따라서, 이 강의에서는 예술의 아름다움에 관해서만 언급하고 싶다.”
4. 헤겔은 때로 사람들이 미학을 ‘예술 이론’이라는 명칭을 부여해왔다고 하는데, 이 소견에는 주관적, 객관적 관심이 지배적이라고 한다. 주관적인 관심중 예술 작품을 제작하고 판정하는 데 규칙을 정하려고 한것은 부적절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규칙이나 규정은 이미 누군가가 지정해 주기 전에 이미 인간 속에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또 하나 주관적 관심은 취미를 도야하는 것인데, 이는 예술을 판정하는 것을 배운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객관적인 관심은? 예술 자체를 위한 예술에 대한 관심을 의미한다.
5. 우리가 품어야 할 의문은 무엇이 예술의 참된 궁극목적이며, 예술은 이 궁극목적과 어떻게 관련을 맺는가? 예술은 긍극목적을 자기 자신 속에 지니고 있는가. 아니면 예술은 이 궁극목적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이다. 헤겔은 무엇이 예술의 참된 궁극목적이냐? 고 묻는 것은 ‘진리가 무엇인가? 라고 묻는 것과 상응한다고 한다. 이는 철학적 학문으로 넘겨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헤겔은 철학적 진리는 개념과 실재의 통일이라고 한다. 개념과 실재는 사유 가능한 모든 규정들이 환원될 수 있는 보편적 표상들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진리는 일체를 포함하는 이념 또는 신적인 것의 정의 (定義, Definition)를 포함한다. 아니, 진리는 신적인 것 자체다.”
6. 아름다움의 개념 : 헤겔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개념’이란 단어가 곧바로 아름다움에 대립하기 때문에 그 개념을 제시할 수 없다고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그 이유는 아름다움도 진리의 표현에 속하기 때문에 역시 개념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움의 영역은 논리학에서 사용하는 개념과 다르게 해석하길 바라고 있다. 아름다움의 형식은 감성적이기 때문이다. 개념을 총체성이라는 말로도 표현한다. 아름다움에서 형식은 통일로 총괄되며 개념 자체다.
7. 헤겔은 예술 작품의 형식을 상징적, 고전적 그리고 낭만적으로 구분한다. 상징적인 것을 ‘자립적인 외적 형태’라고 덧붙이고 있다. 예를 들어, 사자는 용맹(강인함)의 상징이며, 용맹은 사자의 보편적 표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강인함은 독수리, 황소, 기둥 등을 상징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부언 설명을 붙인다. 참으로 고전적인 것은 사상이라고 전제한다. 그 이유는 모든 것은 자신의 뿌리와 원천을 사상 속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완성된 통일과 이념의 직관이 [고전적] 예술의 입장이고, 이 예술에 해당하는 작품은 이념상이라고 한다.
8. 고대 그리스 예술을 예로 든다. “고대 그리스 민족은 개성을 완전히 사라져 버리게 한 근동의 실체성과 같은 의식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또한 고대 그리스의 세계관은 그들 고유의 실체성에서 벗어난 상태였기 때문에, 완전히 자유로운 개성의 의식을 지녔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이처럼 고대 그리스인들의 구체적인 개체성에서 드러나는 주요 규정들을 우리는 부각해야 한다.”
9. 고전적인 것에서 아름다움이 완성되었지만, 뭔가 부족하다. 낭만적 예술에는 ‘이념’이 존재한다. 물론 낭만적 예술에도 분열이 내재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만적 예술의 관점은 보다 발전된 단계이다. 진리는 인간다움을 넘어선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일차적인 관점을 갖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오기 위해 진리로 이행하는 것이 아니며, 진리가 [인간]의식에서 자신의 현존을 지닌다[현존한다]는 것이다.
10. 헤겔에 따르면 참된 것은 의식의 절대적인 대상인데, 이것에 종사하기 때문에 예술도 정신의 절대적인 영역에 속한다고 한다. 그래서 예술은 특별한 의미에서 종교나 철학과 동일한 기반 위에 선다는 것이다. 예술은 종교 및 철학과 함께 “신적인 것, 인간의 가장 심오한 관심, 정신의 가장 포괄적인 진리들을 의식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될 때에만 참된 예술이 될 수 있다고 한다.
11. “절대 정신의 세 영역인 예술, 종교, 철학은 내용은 동일하지만, 각기 영역들이 객체인 절대자를 의식화하는 형식에 의해서만 구분된다. (…) 이러한 파악의 첫째 형식은 직접적이며 감성적인 앎이다. 이 앎은 감각과 객체 자체의 형식과 형태를 갖춘 것으로서. 이 속에서 절대자는 직관되고 감각된다. 그 다음 둘째 형식은 표상하는 의식이며, 마지막으로 셋째 형식은 절대정신의 자유로운 사유다.”
○ 헤겔의 ‘미학 강의’ 개요
‘미학 강의’ (美學講義, 독: Ästhetik, oder Die Philosophie der Kunst)는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남긴 강의명이며 이후 제자들이 정리한 책의 이름이기도 하다.
– 헤겔의 강의와 ‘호토판 미학’
헤겔은 1818년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여름학기부터 1829년 베를린 대학교 겨울학기까지 대략 다섯 번 정도 미학 또는 예술철학에 관한 강의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1818년 여름학기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 1820/21년 겨울학기 베를린 대학교
- 1823년 여름학기 베를린 대학교
- 1826년 여름학기 베를린 대학교
- 1828/29년 겨울학기 베를린 대학교
그런데 정작 미학 강의를 위해 헤겔 본인이 작성한 원고는 현재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다만 헤겔의 강의를 수강한 학생들이 필기해 놓았거나 다른 사람들이 정리해 놓은 열두 편의 원고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게다가 1818년 여름학기에 하이델베르크에서 행한 미학 강의와 관련된 자료는 남아 있는 것이 전혀 없는 상태다.
현재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판본은 헤겔 사후에 그의 제자인 호토 (H. G. Hotho)가 베를린 강의에 사용한 헤겔의 수고와 수강자들의 필기 노트들을 모아서 1835년 (초판)과 1842년 (개정판)에 세 권으로 간행한 것이다. 지금까지 많이 읽힌 한글 번역본 (헤겔미학 Ⅰ, Ⅱ, Ⅲ, 두행숙 옮김, 나남출판)도 이 판본에 기초한 주어캄프판 (G. W. F. Hegel Werke in 20 Bänden, hrsg. von E. Moldenhauer & K. M. Michel, Frankfurt am Main: Suhrkamp, 1969∼1971) 제13, 14, 15권을 저본으로 삼은 것이다 (이후 이 판본을 ‘호토판 미학’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호토판 미학’은 몇 가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근래에 헤겔 미학의 문헌학적 연구에서 밝혀지고 있는 바에 의하면, ‘호토판 미학’은 헤겔 자신의 생각만이 아니라 다분히 편집자인 호토의 견해가 반영된 것으로 판단된다. 사실상 수강자들의 실제 필기록들이 ‘호토판 미학’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이 점점 드러나면서 이러한 혐의는 더욱더 짙어지고 있다. 호토는 헤겔 미학을 편집하면서 다른 저서들처럼 미학도 완결된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다분히 그러한 방향으로 헤겔 미학을 편집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것이다. 호토는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헤겔의 수고와 직필 노트들을 ‘재구성’하여 ‘호토판 미학’을 간행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 과정에서 호토는 하이델베르크 강의 노트뿐만 아니라 1820/21년 베를린 첫 강의의 원자료를 편집에서 제외해 버렸다. 그 결과 주로 베를린 시기의 세 편의 미학 강의와 관련된 자료들을 호토 나름으로 재구성하여 펴낸 ‘호토판 미학’은 헤겔의 본래 강의 내용에 들어맞지 않는 점들도 마치 헤겔의 것인 양 보여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1825년 강의 이전까지 헤겔은 미학 강의를 크게 두 부분, 즉 ‘보편적 부분’과 ‘특수한 부분’으로 나누고, 상징적·고전적·낭만적이라는 세 가지 예술형식들을 거의 동일한 분량으로 다루었다. 그리고 헤겔은 1828/29년 마지막 강의에서 ‘개별적 부분’을 추가하여 근대 예술 등과 관련해서 좀 더 풍부한 예들을 다루고 있다. 이렇게 미학 강의의 구성과 내용이 변화의 과정을 겪음에도 불구하고, ‘호토판 미학’은 이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호토판 미학’은 ‘보편적 부분’에서 세 가지 예술형식들과 관련하여 논의되는 내용을 ‘특수한 부분’이나 ‘개별적 부분’에서 반복함으로써 분량도 상대적으로 많이 늘어나고, 불필요한 중복으로 인해 오히려 내용 이해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근래에 들어와 헤겔 미학을 연구하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호토판 미학’이 헤겔 미학의 정본이라는 생각을 접고, 다양한 필기록들에 기초하여 이전보다 좀 더 다양하고 진척된 성과물들을 내놓고 있다. 예를 들어, 헤겔 미학 강의를 새롭게 편집, 간행하고 연구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A. 게트만ᐨ지페르트 (Annemarie Gethmann-Siefert)는 1833년 베를린 대학에서 행한 호토의 미학 강의 노트와 1835년에 출판된 호토의 ‘삶과 예술에 대한 예비연구’ (Vorstudien für Leben und Kunst)를 헤겔 미학 강의에 관련된 자료들과 비교 검토하여, ‘호토판 미학’이 헤겔 자신의 미학이라기보다는 호토의 미학 강의의 완성본이라는 주장까지 제기한 바 있다.
‘호토판 미학’에 대해 제기되는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최근에는 헤겔이 미학 강의를 했던 시기별로 본래의 필기록들을 새롭게 편집하여 출판하려는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까지 발굴된 미학 강의는 대략 열두 편 정도가 된다. 이 원자료들 중 1828/29년 강의가 아직 책으로 출판되지 않았으며, 그 외 나머지 베를린 시기의 강의들은 현재까지 다음과 같이 독일에서 새롭게 편집, 출판되었다.
- 1820/21년 강의: Vorlesungen über Ästhetik. Berlin 1820/21. Eine Nachschrift. I. Textband, hrsg. von H. Schneider, Frankfurt am Main: Peter Lang, 1995.
- 1823년 강의: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Kunst. Berlin 1823. Nachgeschrieben von H. G. Hotho, hrsg. von Annemarie Gethmann-Siefert, Hamburg: Felix Meiner, 1998.
- 1826년 강의: Philosophie der Kunst oder Ästhetik. Nach Hegel. Im Sommer 1826. Mitschrift F. C. Hermann & Vitor von Kehler, hrsg. von Annemarie Gethmann-Siefert & Bernadette Collenberg-Plotnikov, München: Wilhelm Fink, 2004.
- 1826년 강의: Philosophie der Kunst. Vorlesung von 1826. Nachgeschrieben von P. von der Pforten, hrsg. Annemarie Gethmann-Siefert & Jeong-Im Kwon & Karsten Berr, Frankfurt am Main: Suhrkamp, 2004.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