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미학 오디세이 3 : 피라네시와 함께 탐험하는 아름다움의 세계
진중권 / 휴머니스트 / 2004.3.22
‘미학 오디세이’의 완결편이다. 앞서 나온 두 권이 근대 미학 중심이었다면 3편은 현대예술과 철학을 주로 다뤘다. 이야기는 이탈리아 건축가이며 화가인 피라네시로 시작한다. 고대 로마의 유적을 담은 그의 동판들은 시적 환상과 묘한 분위기로 가득 차 낭만주의와 현대예술의 탄생을 예고한다.
책은 이른바 시뮬라크르 해설서라 할 수 있다. 또 시뮬라크르라는 틀로 현실세계를 분석하고 있는 저자의 방식을 따라 현실문화분석서로 읽을 수도 있다. 만약 이 책이 ‘미학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면 그건 책에서 다채롭게 인용되고 있는 다양한 도판과 미술작품 등을 예로 들기 때문이다. 저자는 쉬운 문장으로 미학의 개념을 쉽게 체계적으로 전달하고 있어,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미학이론들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 목차

글머리에 | 월인천강지곡
현대인의 세계감정 | 사람짐의 미학
시뮬라크르1
사라진 성당
알렙
*피라네시의 세계1
고양이 없는 웃음
시뮬라크르2
근대에서 탈근대로 | 모던 타임스
창조의 언어
*피라네시의 세계2
토라
*피라네시의 세계3
진리의 신전
신전 앞에서
불꽃의 유토피아
*피라네시의 세계4
삶의 예술
포스트모던의 미학 | 숭고와 시뮬라크르
바벨의 도서관
*피라네시의 세계5
유사와 상사
마콤
*피라네시의 세계6
감각의 제국
*피라네시의 세계7
성스런 짐승
놀이
미디어의 미학 | 다시 가상과 현실
원작과 복제
*피라네시의 세계8
영화관에서
팬텀과 매트릭스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피라네시의 세계9
도플갱어
예술의 종언
원형의 폐허에서
○ 저자소개 : 진중권(陳重權)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소련의 구조기호론적 미학’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독일로 건너가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언어 구조주의 이론을 공부했다. 독일 유학을 떠나기 전 국내에 있을 때에는 진보적 문화운동 단체였던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의 간부로 활동했다. 1998년 4월부터 ‘인물과 사상’ 시리즈에 ‘극우 멘탈리티 연구’를 연재했다. 귀국한 뒤 그는 지식인의 세계에서나마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과 논쟁의 문화가 싹트기를 기대하며, 그에 대한 비판작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으며 변화된 상황 속에서 좌파의 새로운 실천적 지향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9년 중앙대학교 문과대학 독어독문학과 겸임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빙교수,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겸직 교수로 재직 하였다. 현재 동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를 대중적 논객으로 만든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는 박정희를 미화한 책을 패러디한 것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글은 ‘박정희 숭배’를 열성적으로 유포하고 있는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장과 작가 이인화씨, 근거 없는 ‘주사파’ 발언으로 숱한 송사와 말썽을 빚어온 박홍 전 서강대 총장,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옹호한 작품 ‘선택’으로 논란을 낳은 작가 이문열씨 등에 대한 직격탄이다. 탄탄한 논리, 정확한 근거, 조롱과 비아냥, 풍자를 뒤섞은 경쾌하면서도 신랄한 그의 문장은 ‘진중권식 글쓰기’의 유행을 불러일으켰다.
사회비판적 논객으로서가 아닌 미학자로서의 행보를 보여주는 책은 바로, 이제는 고전이 되어 버린 ‘미학오디세이’이다. 이 책은 ‘미’와 ‘예술’의 세계라는 새로운 시공간을 선물한 귀중한 교양서이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세대를 바꿔가면서 꾸준하게 여러 세대에게 공감을 얻고 있는 이 책은 근육질의 기계 생산에서 이미지와 컨텐츠의 창조로 옮겨가고 있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90년대를 빛낸 100권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한 이 책에는 벤야민에서 하이데거, 아도르노, 푸코, 들뢰즈 등의 사상가들이 등장하여 탈근대의 관점에서 바라본 새로운 미학을 이야기한다.
이를 이어가는 ‘진중권의 현대미학 강의’는 “과연 예술은 진리의 신전(하이데거)인가? 오늘날 예술은 왜 이리도 난해해졌나?”라는 질문을 던지며 탈근대 미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철학자 8명을 골라 그들을 통해 탈근대 미학의 주요 특징을 살핀다. 근대 미학과 탈근대 미학을 반복적으로 대비하면서, 패러다임의 변화의 핵심을 포착하고 탈근대 미학의 요체가 숭고와 시뮬라크르임을 밝힌다. 차갑고 짧은 문장이 덜쩍지근한 포스트모던을 새롭게 보도록 만든다.
삶의 시원 ‘에로스’를 탐색한 성의 미학을 거쳐 삶을 자연으로 되돌리는 ‘타나토스’로 이어지는 죽음의 미학을 다룬 ‘춤추는 죽음’은 렘브란트, 로댕 뭉크, 고야 서양미술사에 빛나는 족적을 남긴 천재 화가들에게 죽음이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본다. 삶의 유한성을 명상할 줄 아는 예술가들은 죽음에 대한 실존주의적 공포를 창작을 통해 예술로 승화시켰다고 말한다.
이런 저작을 통해 보여지는 그의 인문적, 미학적 사유는 비트겐슈타인의 인식 틀과 벤야민에게서 받은 영감에서 시작되었다. 이를 구체화하는 작업으로 그는 개략적으로 철학사를 언어철학의 관점에서 조망하고, 탈근대의 사상이 미학에 대해 갖는 의미를 밝혀내는 글쓰기를 계획하고 있다. 그의 목표는 철학사를 언어철학의 관점에서 조망하는 것, 탈근대의 사상이 미학에 대해 갖는 의미를 밝히는 것, 철학.미학.윤리학의 근원적 통일성을 되살려 새로운 미적 에토스를 만드는 것, 예술성과 합리성으로 즐겁게 제 존재를 만드는 것 등이다.
저서로는 ‘미학 오딧세이’ ‘춤추는 죽음’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천천히 그림읽기’ ‘시칠리아의 암소’ ‘페니스 파시즘’ ‘폭력과 상스러움’ ‘앙겔루스 노부스’ ‘레퀴엠’ ‘빨간 바이러스’ ‘조이한·진중권의 천천히 그림 읽기’ ‘진중권의 현대미학 강의’ ‘춤추는 죽음’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첩첩상식’ ‘호모 코레아니쿠스’ ‘한국인 들여다보기’ ‘서양미술사’ ‘이론과 이론기계’ ‘컴퓨터 예술의 탄생’ ‘진중권의 이매진 Imagine’ ‘미디어아트’ ‘교수대 위의 까치’ 등의 공저서와 여러 권의 번역서가 있다.
○ 출판사 서평
1. 책의 세계에서 ‘미’와 ‘예술’의 세계를 창조한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1, 2, 3” 10년 만에 완간
미학 오디세이 3권이 발간되었다. 1, 2권이 발행된 지 10년 만이다.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1, 2’는 94년 초판이 발행된 뒤 ‘독자와 함께 긴 시간을 여행’해왔다. 그리고 현재에도 그 여행은 세대를 바꿔가며 계속되고 있다. 그 이유는 뭘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저자의 창조적인 글쓰기와 사유, 독특한 구성이 독자들의 눈과 귀를 붙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만의 미학’을 ‘우리들의 미학’으로 끌어올린 ‘미학 오디세이’. 지식문화계의 사람들, 사회문화계의 오피니언 리더들의 긍정적인 평가, 무엇보다 독자들의 열광적인 사랑을 받으며 ‘90년대를 빛낸 100권의 책’으로 선정될 만큼 그 사회문화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책이다.
미완의 오디세이로 남아 있던 “미학 오디세이 시리즈”는 현대 예술과 철학을 여행하는 3권이 발간됨으로 완결되었다. ‘미학오디세이 1, 2, 3’는 독자들에게 ‘미’와 ‘예술’의 세계라는 새로운 시공간을 선물한 귀중한 교양서이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세대를 바꿔가면서 꾸준하게 대학생과 일반인은 물론 중고생들에게까지 공감을 얻어온 이 책은 근육질의 기계 생산에서 이미지와 컨텐츠의 창조로 옮겨가고 있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미학 오디세이 1, 2, 3”의 특징을 통해 문화와 컨텐츠의 관계를 다시 한번 음미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2. 창조적인 글쓰기의 핵심을 드러내다 – ‘미학 오디세이 1, 2, 3’의 특징 1
초판이 출간 될 당시는 사회과학 서적이 세상 밖으로 막 나온 때였다. 지금 이야기하는 ‘대중 교양서’들이 처음 선보이기 시작한 시기다. 지식인들에게는 물론 일반인들에게 미학은 생소한 학문이었고, 상아탑에서도 제대로 된 개론서나 미학사조차 나와 있지 않았다. 저자는 책을 쓰기 위해 원전, 번역서, 세미나를 위한 초벌 번역 등 온갖 자료들을 손에 닿는 대로 구해 읽어야 했다. 그러기에 미학 오디세이에 담긴 내용은 결코 쉬운 내용이 아니다.
저자는 당시 한국에서 연구되고 있지 않은 미학 이론들을 스스로 섭렵할 수밖에 없었고, 스스로 공부해 이해해야만 했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점은 이해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이를 배경으로 하여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다시 되새김질하여 전체 내용을 서술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여 자신의 미학 이론을 재구성한 것일까?
1) 기본 서술 형태:문어체와 구어체의 창조적 결합 → 논문식 글쓰기, 일문법적인 글쓰기, 자상하고 쉬운 글쓰기, 재미있는 글쓰기를 완전히 배격하고 생생하고 독창적인 글쓰기의 개척, 디지털 글쓰기와 유사
2) 논의 핵심 파악:서양미학사를 가상과 현실의 관계로 파악 → 관점과 핵심, 메시지를 제대로 살려내는 글쓰기
3) 이론의 다양함과 풍부함: 미학만이 아니라 예술사의 연구 성과, 심리학, 철학, 정신분석학, 정보이론, 기호학 등등의 제 학문의 방법론 등을 함께 다루면서 지식의 세계를 예술적 창조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독특한 매력을 선보임
3. 세 개의 구조가 시간적으로 진행되면서 공간적으로 조화를 이루다 – ‘미학 오디세이 1, 2, 3’의 특징 2
이 책의 구성은 3성 대위법이라는 독특한 형식 미학을 도입했다. 이 책이 10년 동안 변함없이 최장기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리셀러의 위치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상당 부분 그 독특한 구성과 문체의 힘에서 비롯되었다. 문체를 구어에 가깝게, 도판을 활용해 시각성을 강조한 것, 대화라는 형식을 도입한 것이다. 이런 형식적 특성은 디지털 시대의 문화와 맞아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대위법은 선형적인 글쓰기에 공간성을 부여하는 형식이고, 구어를 닮은 문체 역시 인터넷 글쓰기를 닮았으며, 텍스트와 이미지를 혼용해 시각성을 강조하는 것 역시 청각적인 문자 문화에서 시각적인 영상으로 옮아가는 시대의 흐름과 일치한다. 3개의 구조가 시간적으로 진행되면서 공간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1) 에셔(1권), 마그리트(2권), 피라네시(3권) 꼭지:기술적 형상 방식 도입→ 에셔, 마그리트, 피라네시라는 화가를 알게 하는 것보다는 그들의 그림이 텍스트에서 서술되는 내용들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2)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1, 2권), 디오게네스(3권) 대화 꼭지:독자들이 궁금해 할 내용을 포인트로 삼다. → 저자가 공부하면서 이해한 부분의 주요 내용들이다.
3) 본문 서술:문어체와 구어체의 중간, 디지털 글쓰기에 가깝다.
4. ‘미학 오디세이 3’, 현대 미학의 세계를 담아내다
1994~2004년까지 우리에게 ‘미’와 ‘예술’의 세계상(像)을 눈뜨게 해준 ‘미학 오디세이.’ 그 마지막 종착이자 새로운 항해를 촉발하는 신간 ‘미학 오디세이 3’는 벤야민에서 하이데거, 아도르노, 푸코, 들뢰즈, 보드라야르의 개념과 사유, 그것을 작품으로 구현한 현대 미학의 세계‘들’을 피라네시, 디오게네스와 함께 탐험하는 책이다.
이번 최종판에는 탈근대의 미학을 소개하는 세번째 책을 더 한다. 여기서는 이미 오래 전에 탈근대의 미학을 선취한 벤야민, 하이데거, 아도르노 등의 독일 사상가, 그리고 푸코, 데리다, 들뢰즈, 료타르 등 최근에 탈근대의 관점에서 새로운 미학을 전개하고 있는 프랑스 사상가들을 소개하게 된다. 이로써 미학 오디세이는 내용적으로도 완결되는 셈이다. 삽입된 대화편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화에 디오게네스가 끼어듦으로써 근대적의 합리주의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탈근대의 사유를 상징하게 된다.
― 〈지은이의 말〉 중에서, 본문 8쪽.
5. 월인천강지곡으로 시작하는 ‘탈근대의 미학’의 오디세이
‘1과 2’에서 ‘3’으로 오는 여행은 10년이나 걸렸다. 긴 오디세이였다. 10년 만에 완간되는 미학 오디세이 3권은 현대 예술의 세계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이번에 발간된 ‘미학 오디세이 3’와 ‘미학 오디세이 1, 2’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미학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1~2권에서는 주로 근대 미학의 틀 위에서 작업을 하며 근대와 탈근대를 가르는 경계선까지만 나아갔다고 할 수 있던 데 반해, ‘미학 오디세이 3’에서는 그 선을 넘어 본격적으로 ‘탈근대’의 관점에서 최근의 미학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미학 오디세이 3’의 ‘글머리에’ 〈월인천강지곡〉에서부터 이 정신적 분위기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 달이 천강에 제 모습을 복제하는 것을 흉내내어, 해도 자기 자신을 천 개의 반달로 증식시킨다. 자, 그럼 이런 가정은 어떨까? 피터팬의 그림자가 몸에서 떨어져 나와 제멋대로 돌아다니듯이 해가 사라져도 그 반달모양으로 복제된 해들이 빛을 잃지 않고 저 홀로 힘으로 살아간다면? 그렇다면 하늘에 해가 있든 없든, 세상은 별 일 없이 잘 돌아갈 게다.
하늘에서 달을 지워도 복제를 복제한 천강의 달빛들이 세상을 은은하게 밝힌다. 하늘에서 해를 사라지게 해도 수천, 수만의 복제된 해들이 세상을 도처에서 비춘다.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라는 이름의 세상이다. 누군가 진리의 신, 태양신을 제 것으로 독점해도, 그것을 우러를 것 없이 세상은 수없이 복제된 작은 진리들의 빛으로 별 일 없이 돌아간다. 우리는 원본 없는 세상 위에, 복제된 빛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무슨 뜻이냐고? 그 얘기로 들어가 보자. ― 글머리에 〈월인천강지곡〉 중에서, 본문 21쪽
6. 피라네시와 함께 탐험하는 아름다움의 세계 – ‘미학 오디세이 3’의 특징 1
1) 피라네시는 누구인가?
피라네시(Giovanni Battista Pranesi, 1720~1778)는 이탈리아의 건축가, 판화가다. 그는 고대 그리스를 예술의 전범으로 삼던 시절에 고대 로마의 유적들을 동판에 담아 로마 건축의 위대함을 알게 해주었다. 시적 환상과 묘한 분위기로 가득 찬 그의 판화는 낭만주의의 탄생을 예고했고, 나아가 그 시대에 이미 예술적 ‘모던’을 예감하였다. 특히 현실에서는 결코 지어질 수 없는 상상의 건물은 에셔의 작품보다 200여년 앞서는 것으로, 당대는 물론이고 현대의 작가와 예술가들의 상상력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2) 18세기 예술가 파라네시가 어떻게 탈근대 미학과 연결되는 것인가?
바로크와 낭만주의는 고전주의 미학과 대립 속에서 자라난 대표적인 두 가지 사조라 할 수 있다. 현대 예술이 고전주의 예술 이상이 무너진 자리에서 자라났기에, 바로크와 낭만주의는 어떤 면에서 현대 예술의 선구라 할 수 있다. 피라네시는 바로크 시대에 낭만주의적 상상력을 선취한 작가이기에, 바로크 → 낭만주의 → 현대 예술로 이어지는 라인이 자연스레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예술과 철학은 좀 그 층위가 다르다 할 수 있다. 거칠게 말하면 예술에서 모던이었던 것이 철학에서는 포스트모던으로 나타난다. 그러기에 피라네시는 자연스레 탈근대의 미학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왜 하필 감옥이었을까? 왜 하필 감옥의 공상이었을까? 피라네시가 별 이유없이 2차원 평면과 3차원 공간의 차이를 이용해 착시의 유희를 즐기려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러기에 저 그림은 너무 무겁다. 분위기가 에셔의 것과는 너무나 다르지 않은가. 앞으로 다가올 세계의 영상이 그에게 불쑥 나타났던 것일까? 아마도 그는 저 환상이 곧 우리가 사는 현실이라고 말하려고 한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저 감옥은 환상적으로 실재적이다.
피라네시를 보는 순간, 우리는 저 환상에 감옥에 갇힌 수인이 된다. 수인은 누구나 탈옥을 꿈꾼다. 갑자기 감옥에 갇힌 우리 역시 저 어둡고 음침한 건물을 벗어나게 되기를 희망한다. 출구는 어디에 있는가? 저 복잡한 계단을 따라가면 혹시 밖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저 감옥은 간수의 눈과 벽돌의 두께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니까. 우리를 가두는 것은 건물의 재료가 아니라 구조다. 어떤 구조? ―〈피라네시의 세계 4 ― 탈옥〉 중에서, 본문 158~159쪽.
7. 빅톨 위고, 움베르토 에코, 보르헤스가 파라네시의 영향을 받았다
피라네시는 에셔나 마그리트처럼 우리에게 새로운 상상력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는 예술가이다. 그의 영향을 받은 작가나 예술가들이 다수 있다. 문학의 영역에서는 19세기에 ‘아편 중독자의 고백’으로 알려진 영국의 작가 토머스 드 퀸시((Thomas De Quincey, 1785~1859)가 먼저 피라네시에 주목했다. 프랑스에서는 ‘레미제라블’의 작가 빅톨 위고의 살롱에 모여든 낭만주의자들 사이에 ‘피라네시 숭배’가 일어나기도 했다. 특히 빅톨 위고는 피라네시를 연상시키는 그림을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명시적인 언급은 없지만 보들레르의 ‘파리의 꿈’에도 피라네시의 영향이 나타난다.
피라네시의 영향은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피라네시의 감옥의 현대적 버전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프랑스의 작가 마게리트 유스나르도 피라네시에 사로잡힌 사람 중의 하나다.
피라네시의 상상을 문학적으로 가장 충실히 구현한 사람은 역시 보르헤스다. 특히 ‘바벨의 도서관’, ‘죽지 않는 사람들’ 등 그의 소설의 환상은 피라네시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피라네시의 영향은 보르헤스를 거쳐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푸코의 추’에까지 확장된다.
구소련의 영화감독 에이젠슈테인 역시 피라네시에 열광했다. ‘파업’과 ‘전함 포템킨’의 공간 설정은 의식적으로 피라네시의 감옥의 구조를 영화 속에 실현한 것이다.
8. 말 못하는 피라네시의 그림, 보르헤스가 말하다 – ‘미학 오디세이 3’의 특징 2
‘미학 오디세이 3’에는 보르헤스의 상상력과 사유가 곳곳에 등장한다. 지은이의 말에서도 명시적으로 언급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보르헤스는 진중권에게 어떤 실마리를 제공했을까?
보르헤스는 말 못하는 피라네시의 그림을 대신하여 발언한다. 보르헤스의 텍스트는 각각의 장의 내용을 형상적으로 요약하는 ‘미적 엠블렘(상징)’이라 할 수 있다. 진중권은 보르헤스가 피라네시의 작품을 보았거나 최소한 다른 저자들의 글을 통해 그를 잘 안다고 확신한다. 보르헤스의 환상적 리얼리즘은 피라네시의 감옥의 상상과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보르헤스가 피라네시에 대해 언급을 안 하는 것은 보들레르가 피라네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게 징후적이다. 작가나 사상가는 정작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의 이름은 종종 생략하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아울러 이 과정에서 보르헤스 텍스트의 바탕에 깔린 철학적 배경을 드러내면, 그것을 통해 대중적으로 널리 읽히는 이 작가에 대한 좀 더 깊은 독해를 제시할 수 있다. 보르헤스를 흔히 ‘탈근대의 선구’라고 하는데, ‘미학 오디세이 3’을 읽으면 그 말의 의미를 여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진중권은 실제로 집필을 준비하는 가운데, “탈근대 미학의 여러 논점을 다루는 이 책의 거의 모든 부분에 그의 텍스트를 인용할 수 있음을 발견하고, 나 역시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다.
10년 전에 새로 쓸 책을 위해 상상의 도서관을 지은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이미 그 누군가가 나에 앞서 그 도서관을 지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바벨의 도서관’의 도서관을 지은 보르헤스. 피라네시의 시각적 상상에 입을 빌려주는 것은 시각을 잃은 이 도서관의 작가다. 그의 ‘환상적 리얼리즘’은 어쩌면 피라네시의 감옥의 문학적 표현일지도 모른다. 보르헤스를 흔히 ‘탈근대’의 선구자라 부르는 것은 괜한 소리가 아니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탈근대의 사상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의 거의 모든 부분에 ‘미적 엠블렘’을 제공해 주었다. ― 〈지은이의 말〉 중에서.
9. 그리스의 니체, 디오게네스의 등장 -‘미학 오디세이 3’의 특징 3
1, 2권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등장하여, 진중권 스스로 어렵게 이해한 부분을 ‘대화’라는 형식을 빌려 ‘독자가 궁금해 하는 내용의 포인트’로 삼았다. 신간 ‘미학 오디세이 3’에서는 ‘그리스의 니체’ 디오게네스가 등장한다. 총 7꼭지의 대화편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디오게네스가 등장해 ‘탈근대의 관점’이라는 개념에 도달하는 사다리 역할을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디오게네스의 역할은?
‘미학 오디세이’ 1권과 2권은 전체적으로 합리주의 철학의 틀 위에서 씌어졌다. 때문에 합리주의의 전통에 서 있는 두 철학자, 즉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립으로 미학사를 요약해야 했다. 하지만 3권의 바탕을 이루는 탈근대의 관점은 합리주의 철학에 대한 비판에서 등장한 것이기에, 오랫동안 합리주의적으로 서술되어온 철학사의 변방에 머물러 있던 디오게네스를 화자로 캐스팅해야 했다. 근대의 관점에서 본 철학사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두 기둥 위에 세워져 있지만, 탈근대의 관점에서 본 철학의 역사는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과 니체의 대립으로 이루어진다. 디오게네스는 2,300년 먼저 태어난 ‘그리스의 니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대화편에서는 디오게네스의 형상에 슬쩍 니체를 얹어놓고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논쟁을 벌이게 만들었다.
디오게 : 재미있군. 그럼 우리가 아는 원작과 복제의 관계가 뒤집혀진 건가?
플라톤 : 그렇지. 자네는 중요한 것은 이미 있는 것의 재현이 아니라, 아직 없는 것의 현시라 했나?
디오게 : 그랬지.
플라톤 : 근데 ‘아직 없는 것의 현시’라는 게 혹시 ‘이미 있는 것의 조작’이라는 생각은 안 해 봤나?
디오게 : ……
플라톤 : 그래서 우리는 ‘진리’에 대한 물음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네. 진짜와 가짜, 가상과 실재, 허구와 실재 사이에 엄연히 차이가 있는 한……
디오게 :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자네도 알겠지만 어디 그 구별이 쉽겠는가?
플라톤 : 어렵다고 포기해야 하나?
디오게 : 그 어려움이 열심히 노력한다고 극복되는,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게 문제지.
플라톤 : 무슨 얘기인가?
디오게 : 가상과 실재를 구별하는 기준 자체가 가상적이고, 허구와 실재를 가르는 기준 자체가 허구적이라는 얘길쎄.
플라톤 : 좀더 자세히 말해 보게.
디오게 : 예를 들어 자네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위해 철학과 신화를 구별하려고 했지?
플라톤 : 그랬지.
디오게 : 그럼 그 구별 자체가 신화적이라는 생각은 안 해 봤나?
플라톤 : 아니?
디오게 : 생각해 보게. 자네 말에 따르면 저 천상의 이데아가 진정한 실재이고, 이 땅의 현실은 가상에 불과하지 않나.
플라톤 : 그렇지.
디오게 : 그게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자네의 구별법이지. 그런데 그 황당한 얘기를 오늘날 누가 믿겠나? 그런 의미에서 신화와 철학을 가르는 자네의 구별은 또한 얼마나 신화적인가?
플라톤 : ……
디오게 : 원형의 폐허? 주기적으로 불타고 새로 생성되는 사원. 어쩌면 그것이 우주의 모습인지도 모르지.
플라톤 : 동일자의 영겁회귀?
디오게 : 혹시 자신이 꿈이라는 생각은 안 해 보았나?
플라톤 : 철학자는 꿈을 깨우는 사람이지, 꿈을 꾸는 자가 아니라네.
디오게 : 하지만 어차피 자네와 나도 꿈이 아닌가? 우리의 시각적 형상은 라파엘로의 꿈이고, 우리의 만남은 이 책을 쓰는 자의 꿈이 아닌가.
플라톤 : 그렇다면 그 녀석도 또한 그 누군가의 꿈일지 모르지.
디오게 : 그럴 수도 있겠지.
플라톤 : 그럼 내 말이 맞지 않나. 우리가 눈에 보는 현실은 한갓 가상에 불과하다.
디오게 : 그렇게 되나?
플라톤 : 그게 삶이지. 언젠가는 참된 세계에서 깨어나기를 꿈꾸며 사는 것…
디오게 : 하지만 그 세계도 또 다른 꿈일 터. 그냥 거대한 우주의 바퀴를 굴리며 꿈 속에서 함께 놀지 않으려나? 영.원.히….
10. “미학 오디세이 1, 2, 3”은 대중 교양서의 전범이다 – ‘미학 오디세이 1, 2, 3’ 완간의 의의
‘미학 오디세이 1, 2’는 10년 전에 씌어진 책이지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현대적이다. 그리고 이번에 발간된 ‘미학 오디세이 3’은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미학 오디세이 시리즈” 완간의 의미는 무엇일까?
‘미학 오디세이 3’의 발행과 ‘미학 오디세이 1, 2, 3’의 완간은 대중 교양서 출간에서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 교양서 글쓰기의 혁신적 모델은 물론, 구성과 편집에서도 근본적인 차이와 혁신적 선도의 의미를 지닌다. 이 시리즈 전체의 체제와 구성은 비단 장과 꼭지만이 아니라 문장 하나하나에까지 내용과 형식이 연관될 정도로 스케일과 짜임새가 있고, 글과 사진 사이의 관계 역시 놀라울 정도로 결합과 독립, 조화와 개성이 뚜렷하다. 즉 이 책은 ‘내용’과 ‘구성’ 두 까지에 눈길을 주어야 한다. 전체 구성 부분은 언급했지만, 각 꼭지의 소제목이 하나의 문장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될 것 같다. ‘전문가 100인이 선정한 90년대의 책 100선’에 이 책이 손꼽힌 것은 바로 이러한 의의나 가치가 인정되었던 것 같다.
“미학 오디세이 시리즈”는 그 자체가 미학이자 예술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국의 독자들이다. 독자들이 미학을 공부한 적이 있었던가? 90년대 대학을 다니고 직장을 다니고 중·고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이 초·중·고·대학이라는 16년 동안 미학이라는 학문을 접해본 적이 있던가? 그러나 1994년부터 지금까지 50만 이상의 독자들이 소리 소문 없이 ‘미학 오디세이’에 열광했고 읽은 이들이 새로운 독자를 만들어 왔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