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밑바닥에서
막심 고리키 / 지만지드라마 / 2019.7.15

연극과 뮤지컬로 더 유명한 희곡의 명작이다.
80년 세월 동안 러시아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극장에서 고정 레퍼토리로 사랑 받았다.
지금도 이 작품에 대한 높은 평가와 관심이 여전한데, 고리키의 드라마가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질문을 독자와 관객에게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좁은 여인숙에서 펼쳐지는 ‘밑바닥’ 인생의 모습을 통해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목차
나오는 사람들
제1막
제2막
제3막
제4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 저자소개 : 막심 고리키 (Maksim Gorky, Aleksey Maksimovich Peshkov, 1868 ~ 1936)
막심 고리키 (Maksim Gorky, 1868년 3월 28일, 러시아 제국 니즈니노브고로드 ~ 1936년 6월 18일, 소련 모스크바주, Максим Горький, Aleksei Maksimovich Peshkov)는 러시아 소설가로 본명은 알렉세이 막시모비치 페쉬코프( Aleksei Maksimovich Peshkov)이다.
1868년 3월 28일 니즈니 노브고로드 출생으로 일찍이 양친을 여의고 가난하게 살면서 각지를 방황, 독학으로 문학 공부를 하였다. 이런 그의 생활은 자전적 소설 3부작 『유년시대』(1914), 『사람들 속에서』(1916), 『나의 대학들』(1923)에 잘 나타나 있다.
1892년 「마카르 추드라」로 문단에 데뷔, 단숨에 문학적 성공을 이루었다. 하층민 출신이라는 그의 독특한 작가 이력은 러시아 독자와 문단의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제정 러시아 시대의 밑바닥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의 생활상의 묘사가 주를 이룬 그의 소설은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선구가 되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라는 용어를 만들어 내는 등 소비에트 문학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1900년대 들어서는 문학적 성공으로 거둔 재력을 바탕으로 러시아 혁명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여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이러한 그의 혁명가적 기질은 그의 문학 작품 속에 점차 강하게 투영되어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첼카시』(1894), 『노파 이제르길』(1895), 『뗏목 위에서』(1895), 『밤 주막』(1902) 등이 있다.
투르게네프와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체호프 등과 같은 황금기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의 전통을 이어받아 도시 빈민과 부랑자, 노동자의 삶과 의식을 대담한 낭만적 문체로 그려냄으로써 20세기 초 러시아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성장했다. 1905년 ‘피의 일요일’에 가폰 신부가 이끄는 시위에서 강력한 대정부 성명을 발표하여 곧바로 투옥되었으나 세계 지식인들의 대대적인 항의로 석방, 1907년 이탈리아로 망명했다. 이후 귀국할 때까지 7년간 어머니와 자전적 삼부작 이탈리아 이야기 등의 작품을 쓰면서 러시아 혁명을 적극 지원했다. 1917년 볼셰비키의 폭력성고 권력욕을 강력하게 비판하며 갈등을 일으킨 그는 레닌의 비호 아래 소련 정부와 타협하고 문화예술인 보호와 문화재건 운동에 앞장섰으나, 1921년 신병 치료 명목으로 이탈리아로 이주하여 망명 아닌 망명 생활에 들어간다. 1932년 완전 귀국하여 소련 작가동맹 초대 의장을 맡았고 스탈린과의 내적 갈등 속에서 클림 삼긴의 생애를 집필하던 중 1936년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19세기 러시아문학과 20세기 소비에트문학을 잇는 가교였다. 황금세기 문학의 찬란한 빛이 뒷산 너머로 사라질 무렵 요란한 방울 소리를 내며 문단에 나타나 20세기 새로운 러시아문학의 기초가 되었다. 소비에트 시기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창시자’ 등으로 추앙받았으나, 정작 예술가로서의 막심 고리키는 소외되었다. 막심 고리키 작품의 시기적 배경이 1905년 혁명 이전으로 국한되어 있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작가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작품의 주인공 역시 그 누구도 20세기 소비에트 시대를 진정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 역자 : 최윤락
1965년 천안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St. Petersburg) 국립대학교에서 논문 <1890년대 막심 고리키의 창작에서 소장르의 시학>(1999)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으로는 <고리키 초기 창작의 설화성>, <고리키의 발라드 세계>, <고리키와 니체>, <게으른 반항아 오블로모프> 등이 있고, 역서로는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 (열린책들, 1989), 이반 곤차로프의 ≪오블로모프 1, 2≫ (문학과지성사, 2002)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모든 게 인간 속에 있고, 모든 게 인간을 위한 것이지! 인간만이 존재할 뿐, 나머지는 그의 손과 뇌의 일이야! — 본문 중에서

○ ‘밑바닥에서’ 개관
《밑바닥에서》(러: На дне) 또는 《밑바닥》, 《밤주막》은 고리키의 희곡이다. 제나름의 과거를 짊어진, ‘옛날에는 사람이었던’몰락한 인간들이 하루하루 생활의 중압감에 신음하고 있는 밑바닥 생활이 그려져 있다. 값싼 여인숙에 나타난 순례하는 노인 루카는 절망에 허덕이는 밑바닥 인간들에게 아름다운 환상에 가득 찬 정신적 구제의 처방전을 준다.
그러나 여인숙의 주거자들 사이에서 언쟁 끝에 살인사건이 벌어지자 여권을 갖고 있지 않는 루카는 감쪽같이 꼬리를 감춰 버리고 만다. 노름꾼인 사친은 약한 자를 구제하기 위해서는 루카 노인과 같은 거짓이 필요할지 모르나 강한 자에게 있어서는 진실이야말로 인간의 신(神)이라고 부르짖는다. 인류의 미래를 믿는 고리키의 내심의 부르짖음이 사친의 독백을 통해 뚜렷이 울려 퍼진다. 1902년 모스크바 예술좌에서 초연되어 크게 히트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반복해서 상연되고 있는 러시아 연극의 고전적 작품이다.
- 개요
러시아의 희곡이며 막심 고리키 작의 4막이다. 1902년 모스크바 예술좌를 위해 쓰여진 것으로 단첸코에 의하여 초연되었다. 이 희곡은 작자의 초기작품에서 발견되는 부랑자의 생활을 묘사한 것으로서, 사회로부터 탈락한 부랑자 가운데서도 아름다운 인간적 광휘 (光輝)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도 밝은 미래에 연계되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공연은 1933년 11월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 연극부에서 하였다. 어두운 지하실. 그것은 코스튈레프의 여인숙이다. 여기에는 도둑 (페펠), 자물쇠 장수와 그의 병든 처 (안나), 밤거리의 여자 (나스챠), 만두장수, 모자장수, 전신기사(電信技士:사틴), 어릿광대, 남작, 신기료장수 (알료시카), 조프, 타타르인 등이 모여 살고 있다. 여인숙 주인은 장물아비이고 숙박인에게서는 돈을 쥐어짜내고 있지만 항상 종교적 양심을 내세우는 위선자이다. 그는 자기 처와 페펠 사이를 의심하고 있다. 이 지하실의 여인숙에 나타샤가 순례자 루카를 데리고 들어온다 (제1막). ‘밤이나 낮이나 뇌옥 (牢屋)은 어둡다…’라는 밤주막 노래는 이 제2막의 개막 시에 불린다. 노름에 미쳐 있는 여인숙의 주민들이 나간 뒤, 순례자 루카는 병든 안나를 간호하고 있다. 때때로 바실리샤가 여인숙 주인을 죽여 달라고 페펠에게 부탁하는 것을 엿들은 코스튈레프는 두 사람을 욕하고 떠들어 대는 바람에 결국 큰 소동이 벌어진다. 이 소동을 말리려고 들어온 순례자 루카는 페펠에게 지하여인숙에서 탈출할 것을 권고한다. 소동이 끝난 후 생각이 미쳤을 때는 이미 병든 안나는 숨을 거두고 있다 (제2막). 페펠은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고, 사랑하는 나타샤와 함께 지하여인숙에서 탈출할 결심을 한다. 그것을 안 바실리샤는 질투하여 동생 나타샤를 구박한다. 코스튈레프는 자기 처의 바람기를 욕한다. 이런 소동 가운데서 페펠은 여인숙 주인을 타살하고 만다 (제3막). 이런 사건이 일어난 뒤 순례자 루카는 강한 인상을 일동의 가슴 속에 남기고 홀연히 지하 여인숙에서 사라지고 만다. 전신기사 사틴은 말한다. “…그 영감은 거짓말을 했지. …하지만 그 거짓말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기 때문이야…”. 일동은 술을 마시고, 춤과 노래로 광란에 빠진다. 그때 남작이 들어와서 일동에게 광대가 목을 매고 죽었음을 알린다. 침묵이 지하실을 흐른다. 사틴이 말한다. “못난 자식, 한참 신나는 판에 잡쳤네”.

○ 출판사 서평
1901년 작가는 이 희곡의 구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이 작품은 굉장한 물건이 될 것이다.”
작품 제목의 변화를 통해서도 그러한 작가의 기대를 짐작할 수 있다.
‘햇빛 없는’, ‘여인숙’, ‘밑바닥’, ‘삶의 밑바닥에서’ 등. <밑바닥에서>라는 제목은 어딘지 모르게 미래에 대한 희망과 전망을 품고 있는 듯 들린다.
마치 다음과 같은 질문이 이어져야 할 것만 같다.
<밑바닥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밑바닥에서>도 삶이란 있는 걸까? 도대체 영혼을 지닌 사람들은 살고 있는가?
구상 단계를 지나며 희곡의 제목이 <밑바닥에서>가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