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사라짐에 대하여
쟝 보드리야르 / 민음사 / 2012.5.18
- 장 보드리야르의 유작
장 보드리야르가 마지막으로 남긴 ‘사라짐’에 관한 사유이다. 왜 모든 것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가? 인간이 사라져 버린 세상에 말해보자, 사라짐의 문제이지 고갈, 소멸, 또는 몰살의 문제가 아니다. 자우너의 고갈, 종의 멸정은 물리적 과정이거나 자연적 현상일 따름이다. 바로 거기에 차이가 있다. 인류는 분명 자연 법칙과는 아무 상관없는 특수한 사라짐의 방식을 발명한 유일 종이다. 어쩌면 사라짐의 예술이라고 할 수도 있다.

- 세계화와 기술 지배를 향해 극단으로 내달리는 인류에 던지는 장 보드리야르의 마지막 메시지
포스트모더니즘의 대가 장 보드리야르의 유작 『사라짐에 대하여』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2007년 향년 77세의 나이로 타계한 장 보드리야르가 남긴 마지막 텍스트들 가운데 하나로, 사라짐에 관한 깊은 사색을 담고 있는 짧은 에세이다.
그는 근대와 함께 시작된 인간의 잠재적 사라짐에서부터 기술과 미디어의 발달로 초래된 이미지의 범람으로 인한 모든 실재의 사라짐에 이르기까지, 사라짐에 관한 다양하고 복잡한 사유의 변주를 이 짧은 텍스트 안에서 엮어 나간다.
이미 시뮬라시옹과 시뮬라크르 개념을 통해 현대 사회의 본질을 꿰뚫은 바 있는 그는 객관적 지식 습득과 기술 지배를 향해 나아가는 현대에 실제 세상과 인간은 사라졌으며, 현대의 문화는 유령으로 가득 찼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사라졌지만 그가 던진 메시지는, 공룡 같은 매스 미디어에, 실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거대한 권력에 지배되는 이 세계를 이성적으로, 비판적으로 바라볼 것을 여전히 우리에게 촉구하고 있다.
○ 목차
서문
왜 모든 것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가?
주
옮긴이의 말

○ 저자소개 : 쟝 보드리야르 (Jean Baudrillard)
1929년 7월 29일 프랑스 북동부 지방 렝에서 태어났고, 소르본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장 보드리야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큰 별’ 혹은 ‘하이테크 사회이론가’라고 불리운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사상가 중 한 명으로써 ‘시뮬라시옹 (가장, 위장)’이론은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쉽게 이해하자면, 영화 ‘매트릭스’의 가상현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실재가 실재가 아닌 것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설명한 ‘쉬뮐라시옹 이론’은 현대를 풀이하는 독창적인 이론으로 평가받는다.
사물을 복제한 이미지, 기호들로 분석한 그의 이론은 당시로는 매우 파격적인 것들이었다.
원본과 복사본,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와 구분이 없어진 현대사회를 ‘복제의 시대’라고 말한 그의 평가는 현대사회에 대한 가장 단적인 해석이라고 평가받으며 “현대사회가 곧 시뮬라시옹이다”라는 명제가 유행하게 된다.
그의 급진적인 성향은 그를 도발적이면서도 독특한 이론가로 자리매김시켰다.
그는 사회학과 철학의 테두리를 거부하며 끊임없이 전통 사회이론을 거부하며 독자적인 행보를 걸어왔다.
철학, 문화, 사회 등 영역을 넘나드는 그의 활동으로 인하여 그의 스타일은 다양해졌다.
그가 제시했던 화두는 늘 논란의 소용돌이에 있었다.
1991년 그를 유명하게 만든 『걸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에서그는, 걸프전쟁은 TV 이미지에 의한 것이었을 뿐 실제로 정치적 변화는 없었다는 견해를 제시했고 영미권의 질타를 받았다.
또한 미국 뉴욕 9.11 테러에서는 테러와 그것을 야기한 세계화를 동시에 부도덕한 것으로 비판해 또 한차례 설전을 벌이게 했으며, 한국에 대한 지적에서는 분단이라는 갈등 경계가 해결되면 문화적이고 비물질적인 분쟁이 또 다른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주요저서로 『소비의 사회』(1970),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1972), 『생산의 거울』(1973),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1981), 『완전범죄』(1995), 『아메리카』(1997), 『사진에 관하여』(1999), 『테러리즘의 정신』(2002) 등이 있다.
– 역자: 하태환
서울대학교 불어교육학과와 불문학과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파리 제8대학에서 프루스트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건국대학교 등의 강사를 역임했다. 옮긴 책으로는 『시뮬라시옹』, 『감각의 논리』, 『롤랑 바르트』, 『프루스트』, 『예술의 규칙』, 『예술의 위기』, 『정치적 착각』 등이 있고, 프루스트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 출판사 서평
보드리야르가 죽기 직전에 남긴 이 책은 기술의 진보와 인공 지능을 통해 스스로를 사라지게 만드는 인간에 대해 사유한다. 유령으로 가득 찬 현대의 문화에 대한 분석은 묵시록적 정취를 풍긴다. -《가디언》
이 책은 간결함이 미덕이다. 그 간결함은 이 도발적인 철학자를 보다 잘 통찰하도록 한다. -《퍼블리셔 위클리》
- 실체 없는 이미지가 실재를 대체하고 지배하는 현대 사회, 극단으로 치닫는 현대 문명에의 유언장
따라서 인간이 사라져 버린 세상에 대해 말하자. 사라짐의 문제이지 고갈, 소멸, 또는 몰살의 문제가 아니다. 자원의 고갈, 종의 멸종은 물리적 과정이거나 자연적 현상일 따름이다. 바로 거기에 차이가 있다. 인류는 분명 자연 법칙과는 아무 상관없는 특수한 사라짐의 방식을 발명한 유일 종이다. 어쩌면 사라짐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 본문 중에서
이 책은 장 보드리야르가 2007년 죽기 직전에 남긴 텍스트 가운데 하나인 『POURQUOI TOUT N\’A-T-IL PAS DEJA DISPARU? (WHY HASN\’T EVERYTHING ALREADY DISAPPEARED?)』, ‘왜 모든 것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가?’를 옮긴 것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포스트모더니즘 문화 이론가, 현대성에 대한 가장 뛰어난 해석자, 하이테크 사회 이론가 등으로 불리는 장 보드리야르는 철학과 문학, 사회 이론, 사진, 영화, 공상과학 등을 넘나드는 다채로운 글을 통해 현대 사회를 분석하고 그 본질을 꿰뚫는 통찰을 보여 왔다. 그는 원본과 복사본, 현실과 가상 현실의 경계와 구분이 없어지고 이미지와 미디어가 지배하는 현대 소비 사회를 시뮬라시옹과 시뮬라크르 개념으로 논파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시뮬라크르는 원본을 재현하는 것이 아닌 원본과의 관계가 끊어진 복제이다. 진실, 도덕, 권력, 신, 역사, 상상, 이데올로기, 삶과 죽음 등에 의해 형상화되던 실재는 그 기호, 이미지, 모형인 시뮬라크르에 의해 대체되어 파생실재로 변환한다. 이처럼 실재가 실재 아닌 파생실재로 전화되는 과정이 시뮬라시옹이고, 모든 실재의 인위적 대체물이 바로 시뮬라크르인 것이다. 우리는 이미 실재와는 상관없는 인공물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1차 이라크 전쟁을 두고 “이라크전은 발발하지 않았다.”라는 했던 그의 도발적 주장은 그 전쟁으로 발생한 수많은 사상자와 참상을 외면하는 게 아니다. 실제 현실의 전쟁은 참혹하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텔레비전 뉴스 화면을 통해 게임처럼 접한다. 실재성을 느낄 수 없는, 미디어에서 다루는 이미지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주장은 미디어에서 중개하는 시뮬라크르로서의 전쟁이 실제적 차원을 감추고 나아가 사라지게 만든다는 사실을 통렬하게 지적한 반어법인 것이다.

- 가치의 상대성이 증폭되는 시대
보드리야르와 그의 이론은 포스트모더니즘 열풍이 불던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현대 사회를 분석하는 강력한 틀로 각광을 받으며 인기를 누렸다. 포스트모던의 최전선에서 급진적 사상을 전개한 그의 죽음과 함께 포스트모던 담론의 종언을 고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시뮬라시옹과 시뮬라크르로 대표되는 그의 독특하고도 급진적인 사유와 문제 제기는 여전히 현대 사회와 현대성을 탐구하는 데 유효하고도 본질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이제는 거의 전적으로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인터넷 환경과 세계화의 급진적 물결은 사회와 국가를 지탱하는 수많은 가치들을 뒤흔들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삶을 혼란스럽게 한다. 오늘날 우리는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직면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더 나아가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지는 일을 일상으로 겪는다. 이는 우리 사회가 “문화적 위계의 해체와 상대적 가치의 증폭으로 특징지어지는” 포스트모던 사회의 정점에 들어섰음을 보여 준다.
보드리야르는 이미지와 기호, 시뮬라크르가 지배하는 세상에 대해 분석하고 사유하고 비판한다. 과잉 생산된 이미지는 모든 것을 삼켜 버리면서 현실의 실재적 본질을 사라지게 하는 폭력을 휘두른다. 보드리야르는 이런 폭력이 오히려 미디어를 통해 생산된다고 본다. 미디어는 폭력을 특수하게 현대적인 형태로 만들고, 그로 인해 폭력의 진짜 원인을 성찰하지 못하게 만든다. 자살, 학교 폭력, 살인 등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는 미디어의 방식을 생각해 보자. 그런 현상들의 진짜 원인인 정치적, 사회적, 심리적 요인에 대한 분석과 성찰 없이 마녀사냥식의 단속과 검열만이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 이미지의 폭력, 이미지에 가해진 폭력
보드리야르는 이미지의 폭력과 파괴의 시대를 환기하면서 그것을 돌파하기 위한 반미디어적 매체로 사진을 거론한 바 있으며, 그 자신이 수준급 실력을 지닌 아마추어 사진작가이기도 했다. 2005년 한국에서 ‘존재하지 않는 세계’라는 제목으로 그의 사진전이 열린 적이 있는데, 그 어떤 의미의 덧붙임으로 인한 ‘폭력’을 경계하려는 듯 관람객에게 “아무 생각 없이 보라.”라는 주문을 했다고 한다. 그는 사진이 침묵을 통해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고 그 어떤 의미나 개념을 덧씌우는 폭력에 저항하며 그런 저항 형태로서 이미지의 순수한 사건을 다시 찾아낸다고 역설했다. 디지털이나 합성 이미지가 아닌 사진은 가장 순수한 형태 속에서 이미지를 그 자체로서, 현실 세계와는 다른 환상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한다고 보았다.
우리는 이미지의 폭력과 이미지에 가해지는 폭력 모두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미지 왜곡의 원천을 찾고, 실재가 사라진 이미지를 어떻게 원래대로 돌릴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보드리야르는 “언어가 그것이 지칭하는 것보다 중요하고. 이미지가 그것이 말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깨어 있지 않으면 언어는 가시성의 조작자, 즉 미디어에 불과하게 되고, 이미지는 그 독창성과 순수성을 잃게 된다고 경고한다.

○ 독자의 평
“인간 고유의 이중성에 의한 우리의 사라짐은 당연하다”
장 보드리야르의 <사라짐에 대하여>ː인간 고유의 이중성에 의한 우리의 사라짐은 당연하다.
‘사라짐’, 특히 ‘인간의 사라짐’에 대한 사색이 담긴 장 보드리야르의 책<사라짐에 대하여>는 ‘인류의 사라짐은 자연 법칙과는 무관한 하나의 예술이며 불가피하다’는 명제 하에서 쓰여졌다. 이 책은 인간이기에 지닌 원초적인 면, 진화에 대한 욕망,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완벽을 추구하려는) 기계화와 디지털화되어가는, 그것들로 하여금 원래 그대로의 실재를 거스르게 되는 아이러니를 지적한다.
특히, 보드리야르가 이 책에서 중점을 둔 소재는 ‘이미지’다. 그 중에서도 ‘기술적 (디지털) 이미지’. 원본과 복사본의 경계가 모호한(시뮬라크라), 실재와 가상세계의 경계가 사라진 현대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사라짐은 어쩌면 우리가 자초한 것이며, 달리 표현해 ‘우리가 추구하는 (욕망하는)’ 것들이라 정리한다. 가령, 1차 이라크 전쟁에 대해 우리는 실재를 느낀 것이 아닌 미디어를 통해 이미지화된 것을 보았고 그것을 우리는 우리 주변의 실재가 아닌 화면 너머의 시뮬레이션 정도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현대의 이미지를 지적하는 보드리야르는 재미있게도 디지털 사진이 아닌 사진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입장을 펼쳐낸다. 비록, 사진기의 셔터가 작동될 때에는 실재와 분리될지언정 실재하는 빛, 그림자, 풍경 등은 고유한 것으로 남겨지기 때문이다 (기술적 이미지가 아닌 ‘인간의 손이 개입되지 않은). 하지만, 기술적 이미지는 복제되고 재생산, 과잉생산 되면서 실재와의 괴리를 선언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그럼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사라지기를 자초하고 초래한다’는 것이 보드리야르가 주장하는 바다. 극단적으로 그는 디지털 이미지를 ‘작은 죽음’이라고도 일컫는다.
우리가 자꾸 진화를 욕망하면서, 세상을 분석하고 변형하려 하면서 이 세상은 사라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인간 고유의 이중성 때문에 우리는 ‘공허’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편, 한 사물에 대해 개념을 주입시키면서 실재의 주체 자체는 에너지를 상실하기 시작한다는 것 또한 남다른 통찰력이다 (그러니까 실재는 개념 속에서 사그라진다. 그러나 그 반대의 움직임은 더욱 역설적이어서, 개념과 생각도 (물론 환상, 유토피아, 꿈과 욕망도) 그 실현 속에서 사그라진다. p.19).
결국 우리는, 우리의 모든 힘과 역량을 최대로 표출하고자 하기 때문에 사라짐의 예술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사라짐은 슬픈 것’일까? 보드리야르는 사라짐은 우리 없는 세상이 어떠한지를 알고 싶어 하는 욕구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입장을 펼친다. 또한, 사라짐은 간단하지 않고, 사라지는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기기 때문에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진 모든 모든 것은 우리의 삶에 미세하게 스며들어 있기에, 흔히는 드러내 놓고 우리를 지배했던 권위보다 더 위험스럽다. p.33). 비록, 주체는 사라지지만 (사실 모든 주체는 사라짐의 운명을 타고났다), 나르시스적 복사판을 남겨두기 때문에 우리는 사라짐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한편, 우리의 사라짐 (죽음, 형태로서의 사라짐)은 널리 편재된 차원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존재의 필수적 차원이라고까지 말할 참이다. 자신의 사라짐의 기초 위에서 살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만약 사물을 정말 명료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그 사라짐과 연관 지어 이해해야 한다. 그보다 더 나은 분석틀은 없다. p.39).
보드리야르가 <사라짐에 대하여>를 통해 경고하는 것은 ‘지나친 디지털 (기술)화’일 것이다. (기계 속에 인간의 모든 지능이 탑재되고, 그 기계가 완전히 자율적으로 움직이게 되면, 인간은 오직 자신의 죽음의 대가로만 존재하게 된다. 인간은 오직 기술적 사라짐의 대가로만, 디지털 질서 속에 새겨지는 대가로만 불사가 된다. p.81) 다시 말해 우리는, 세상이 디지털화, 기술화될수록 우리는 ‘체계적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가 기술화되면서 우리의 주체가 사라짐은 당연한 것이며, 우리 스스로가 욕망하는 것 또한 사라짐이다. 결국 ‘공허와 함께 존재하는 것’은 인간이 진화할수록 당연시되어야 하는 개념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