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사진에 관하여
수전 손택 / 이후[시울] / 2005.2.14
수전 손택이 약 4년에 걸쳐 ‘뉴욕타임스 서평’에 기고한 여섯 편의 에세이를 새롭게 가다듬어 발표한 책으로 1977년 출판되자마자 각계의 찬사를 받으며 3개월 동안 6만 4천부가 팔리는 대성공을 거두고, 이듬해인 1978년에는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비평부문을 수상한 전력이 있다.
이 책은 20세기의 주요 기록매체인 ‘사진’의 본성에 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또한 손택이 평생 동안 전개한 ‘거짓 이미지’와의 싸움이 이 책의 출간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시작됐기 때문에 손택의 최고작으로 손꼽히고 있기도 하다.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이미지를 소비하고, 사진이 일종의 약이자 병 病이며 현실을 전유하고 쓸모 없게 만들어 버리는 수단이 되어버릴 위기에 처한 오늘날, 그리고 사진이 만들어낸 이미지 세계가 현실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도록 가리는 오늘날, 이 책이 우리에게 제기하는 여러 질문들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 아닐까?
손택이 책에서 자세하게, 아니면 간단히 언급한 여러 사진들을 직접 감상할 수 있도록 한국어판에서는 영어판에는 없는 총 29장의 사진도판을 수록했다.
○ 목차
플라톤의 동굴에서
미국, 사진을 통해서 본, 암울한
우울한 오브제
시각의 영웅주의
사진의 복음
이미지-세계
명언 모음
○ 저자소개 : 수전 손택 (Susan Sontag)
미국 최고의 에세이스트이자 평론가, 소설가로 1933년 1월 뉴욕에서 태어났다. 첫 소설 ‘은인’ (The Benefactor, 1963)과 에세이 ‘캠프’에 대한 단상’ (Notes on ‘Camp’, 1964)을 발표하면서 문단과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66년 평론집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서구 미학의 전통을 이루던 내용과 형식의 구별,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구별에 반기를 들며 화려한 명성을 얻었다. 그 뒤 극작가, 영화감독, 연극연출가, 문화비평가, 사회운동가 등 끊임없이 변신을 거듭한 손택은 ‘새로운 감수성의 사제’이자 ‘뉴욕 지성계의 여왕’, 그리고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로 미국 문화의 중심에 우뚝 섰다.
미국 펜클럽 회장을 역임하는 동안(1987 ~ 1989)에는 한국을 방문해 구속 문인의 석방을 촉구했고, 1993년에는 사라예보 내전 현장에 가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상연하는 등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도 아낌없이 보여 줬다. 2003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독일출판협회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한 ‘사진에 관하여’ (1977)와 ‘전미도서상’ 소설 부분 수상작인 ‘인 아메리카'(1999)를 비롯해 네 권의 평론집과 여섯 권의 소설, 네 권의 에세이, 네 편의 영화 시나리오와 두 편의 희곡이 있으며 현재 32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다.
2004년 12월, 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유해는 파리의 몽파르나스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 역자 : 이재원
중앙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오래된 습관 복잡한 반성 1, 2′(이후 1997~1998), ‘대학문화의 생성과 탈주'(문화과학사 1998)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이론 이후'(길/근간), ‘속도와 정치'(그린비 2004), ‘타인의 고통'(이후 2004), ‘은유로서의 질병'(이후 2002), ‘신좌파의 상상력: 전세계적 차원에서 본 1968년'(이후 1999) 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 ‘사진에 관하여’ 한국어판의 특징
‘사진에 관하여’는 지은이가 말하고 싶은 바를 손수 정리해 들려준다거나, 자신들이 이미 알고 있는 바를 또 다른 각도에서 확인만 시켜주기를 바라는 읽는이들의 바람을 완전히 저버리는 책이다. 오히려 손택은 서로 상반된 주장, 인용, 자료 등을 태연히 ‘병치’(‘이 문제를 이렇게 봐 봅시다. 그리고 저렇게도 봐 봅시다’)해 놓거나, 어느 지점에서 기존의 논의 방향을 갑자기 비틀어(가령 “~이다. 그렇지만~이기도 하다”라는 식으로) 상이한 관점들을 ‘충돌’시키는 저술 방법을 택하고 있다. 요컨대 손택은 자신의 문학적 행위예술(해프닝)을 통해서 읽는이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방법을 택한 셈이다. 따라서 자칫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를 손택의 논의를 읽는이들이 쉽게 따라갈 수 있도록 ‘사진에 관하여’ 한국어판에서는 총 13쪽에 걸쳐 78개의 자세한 옮긴이 주를 수록했다.
– ‘사진에 관하여’의 중요성
“사진이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고,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허가증이다” “사진을 수집한다는 것은 초현실주의자처럼 현실을 몽타주하고 역사를 생략해버린다는 것이다” “사진은 이 세계를 백화점이나 벽 없는 미술관으로 뒤바꿔놓아 버렸다” “그 사람의 삶에 끼어 드는 것이 아니라 방문하는 것, 바로 그것이 누군가의 사진을 찍는다는 것의 핵심이다” 등등의 논쟁적인 주장이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사진에 관하여’는 1839년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래 모든 것을 그 안에 담은(혹은 그렇다고 여겨지는) 사진의 본성을 되돌아보게 해준다.
실제로 오늘날에는 무엇인가를 경험한다는 것이 그 경험을 사진으로 찍는다는 것과 똑같아져 버릴 만큼 사진은 현대사회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주요 기록매체가 됐다. “19세기의 가장 논리적인 유미주의자였던 말라르메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결국 책에 씌어지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모든 것들이 결국 사진에 찍히기 위해서 존재하게 되어버렸다”라는 손택의 지적이 전혀 과장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그렇지만 사진은 이 세계의 모든 것을 피사체로 둔갑시켜 소비품으로 변모시킬 뿐만 아니라 미적 논평의 대상으로 격상시킨다. 그에 따라 결국 사람들은 카메라를 통해서 현실을 구매하거나 구경하게 된다. 사진 덕택에, 혹은 사진 탓에 오늘날의 사람들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살아지게’ 되는 상황이 빚어진 것이다.
게다가 그 기술적 속성상 마음대로 축소하거나 확대할 수도 있고, 수정하거나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 버릴 수도 있는 사진은 초현실주의자처럼 현실을 몽타주함으로써 역사를 생략해버릴 위험까지 가져왔다. 요컨대 원하는 모습만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사진은 타인이 겪는 고통, 참사 등을 도외시할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결핍, 실패, 불행, 고통, 불치병 등을 결코 겪어보지 않으려고 하는 사회, 죽음을 극히 자연스러우며 거역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끔찍하고 부당한 재앙이라고만 받아들이는 사회를 만들어낼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맑스는 세계를 변화시키려고 하기보다는 세계를 해석하려고만 한다는 이유로 철학을 질책했다. 그렇지만 초현실주의적 감수성의 테두리 안에서만 작업을 해온 여러 사진작가는 세계를 해석하려는 노력조차도 공허할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보다는 세계를 수집해야 한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사진이 단순한 현실의 기록이기를 그만두고 사진을 보는 사람들에게 도덕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는 그에 상응하는 정치 의식이 존재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 정치가 없다면, 역사를 수놓은 살육 현장을 담은 사진일지라도 고작 비현실적이거나 정서를 혼란시키는 야비한 물건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독자의 평 1
한때 사진에 관심이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사진에 관하여’를 읽게 된 것은 아니다. 사진에 대한 관심은 금방 시들해졌고 전문적인 관심 보다는 그저 눈길을 사로잡는 예쁜 사진에만 관심이 생길 뿐이었다.
예쁨에 대한 기준은 각자 다를 것이고 그것에 대해서 말이 길게 이어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렇다.
저자인 수전 손택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자신의 예민한 감각과 뛰어난 글쓰기 솜씨를 통해서 여러 논쟁을 만들었고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을 해보려고 했다. ‘사진…’은 사진과 관련해서 수전 손택만의 누구와도 다른 자신만의 시각과 독특한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지만 펼쳐놓는 생각이 그리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지 영 어렵게만 읽혀졌다. 그래서인지 뭘 읽었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겠다는 생각만 하게 된다.
사진
영상 시대이고 이미지 시대이기 때문에 사진에 관한 글을 읽는다는 것은 얼핏 느끼기에는 시대착오적이고 뒤쳐진 과거의 글을 읽는 것처럼 생각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흘러간 과거를 알기 위해서 읽는 것이 아닌 바로 지금 현재를 좀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림으로부터 시작해서 사진이라는 새로운 영역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과연 우리들이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일상적으로 접하고 경험하는 것들에 대해서 새로운 고민해보도록 안내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은 과거가 아닌 지금 시대를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원형처럼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런 식으로 읽는다면 ‘사진…’이 좀 더 새롭게 생각될 수 있을 것 같고 과거를 다루면서 현재를 이해해보려는 접근으로 생각되게 한다.
뉴욕타임스 서평에 발표한 여섯 글들을 다시 다듬어내고 사진에 관한 명언을 모은 글을 더해서 발표한 ‘사진…’은 사진에 관한 저자의 생각을 어떻게 본다면 장황하고 감상적으로 풀어내고 있고 달리 본다면 에세이와 학문적인 글쓰기가 뒤섞여진 글로 생각되기도 하는 등 형식은 편하게 써낸 에세이의 형식이기는 하지만 생각처럼 쉽게 읽혀지지는 않게 글로 채워져 있다. 저자 특유의 글쓰기라고는 말할 수 있지만 솔직히 글을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고 난해하기도 했다.
다만 이런 글쓰기는 읽는 사람이 어렵게 읽혀지면서도 그 글들에서 여러 생각들이 이어지거나 글을 통해서 다른 생각들을 해보게 만들기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산만하고 장황하다는 말로 단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예민한 감각으로 자신의 생각을 끊어지지 않고 이어나가고 있다고 해야 할까? 어렵기는 하지만 읽고 싶어지는 의욕을 꺾게 만들 정도는 아니었다.
사진만이 갖고 있는 독자성이나 특징에 대한 설명을 해주다가 부정적인 부분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는 등 단순히 옹호하거나 매도하는 것이 아닌 좋고 나쁜 모든 부분들을 끄집어내서 종합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사진…’은 그저 찍혀져서 현상된 사진이 아닌 찍는 과정 찍는 상황 현상된 사진을 보여주는 사람과 보는 이들의 감상과 반응까지 사진과 관련해서 사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을 살펴보려고 하는 것처럼 자신의 생각을 이어지게 만들고 있고 사진에 대한 생각만이 아닌 사진을 실마리로 삼아 인간의 인식이나 이해의 영역까지 생각해보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읽기가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사진을 찍고
사진을 보고
보여주고 본 것을 생각하고
그런 과정을 때로는 이념과 정치의 영역까지 넘나들면서 파고들려고 하고 있고, 미학적인 이해 속에서 생각해보다가도 사진을 너머에 있는 현실 그 자체를 쳐다보도록 제안하기도 하는 등 종잡을 수 없는 생각의 흐름 때문에 열정적이다가도 퉁명스럽기도 한 글 때문에 읽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어지러우면서도 흥미롭기도 했다.
‘사진…’을 읽었어도 사진에 대해서 뭘 알게 되었다고 말할 것은 하나도 없지만 ‘사진…’은 사진에 관한 수전 손택의 생각을 뒤쫓으며 저자의 다양한 생각과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사유를 경험해보게 됐다.
참고 : 페이스 북과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사진…’은 좀 더 다양하게 읽혀질 수 있을 것 같다.
○ 독자의 평 2
사진에 관하여 – 수전 손택 지음
4년에 걸쳐 뉴욕타임스 서평에 기고했던 6편의 에세이를 모은 책으로 출간 전 저자가 직접 여러 날 수정작업을 거친 까닭에 원본과 대조하며 읽어보아도 흥미로울 거라고 말한다. 원본을 찾아서 읽기에는 아직 무리라 책을 정독하는 것으로 우선 만족했다.
사진이 발명된 1839년 이래로 모든 것이 사진에 담겼거나, 혹은 그렇게 여겨지고 있다. 결국 사진이 품었던 계획의 가장 웅대한 결과를 꼽자면, 우리로 하여금 세계의 모든 것을 우리 머릿속에 붙잡아 둘 수 있다고 생각하게끔 만든 것이다. 17쪽
회하와 달리 사진은 우리가 본 그대로를 이미지로 만든다. 심지어 우리가 미처 볼 수 없는 현상이나 보지 못하는 것 또한 이미지로 만들어준다. 우유방울을 떨어뜨려 생긴 파문이 왕관모양으로 보이는 사진은 그것이 우유라고 말해주기 전까진 아무도 알아볼 수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을 사진이나 그림으로 간직하고 싶은 것처럼 어느 장소나 어떤 체험을 했을 때의 기억을 간직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진을 택하기도 한다. 저자는 이를 두고 어떤 지식을 얻은 것처럼 사진을 통해 마치 우리가 그 사진 속 이미지를 소장하게 된 것처럼 느끼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런 사진을 가장 효율적으로 보관하고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다름 아닌 책이었다. 어릴 때와 달리 성장하면서 사진관에서 옷을 준비해서 찍는 가족사진이 아닌 스냅사진으로서의 가족사진을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가족사진이 가족의 유대감과 결속력을 일깨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진(가족사진)은 일단 찍히고 소중히 간직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그 안에 어떤 모습이 찍혀 있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25쪽
일반적인 사진의 역사와 저자가 생각할 때 사진의 역할을 담은 초반과 달리 점차 사진이 예술이 되기까지, 예술로서의 사진의 역할에 관한 내용이 이어진다. 책을 읽으면서 주장이 달라지거나 그렇다고는 느끼지 못했는데 처음 이 책이 출간 되었을 때 화제가 되긴 했지만 이후에 사진의 예술성에 관한 저자의 주장이 앞뒤가 달라진다는 평가도 있었다고 한다. 역자는 이런 평에 대해 오히려 저자 스스로 그런 자신의 글쓰기 스타일을 인정했으며 그것이 하나의 스타일로 정착한 보기 드문 작가라고 호평했다. 책의 맨 뒤에는 사진과 관련된 명언이 등장한다. 사진을 좋게 평가한 사람들, 악의적으로 평가한 사람들까지 골고루 모아두었다.
나는 내 앞에 놓여진 모든 아름다움을 소유하기를 갈망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갈망은 충족됐다. -줄리아 마가렛 카메론
내가 그 이야기를 몇 마디 말로 표현할 수 있었다면, 카메라를 애써 가지고 다닐 필요는 없었다. -루이스 하인
카메라는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도구이다. -앙드레 케르테스
○ 독자의 평 3
이진숙님은 <위대한 미술책의 사진예술 부문을 이야기하면서 “오늘날에는 모든 것들이, 결국 사진에 찍히기 위해서 존재하게 되어 버렸다.(위대한 미술책, 382쪽)”라는 수전 손택의 암울한 진단을 인용하였습니다. 1839년 프랑스 파리에서 사진이 발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화가 폴 들라로슈는 “오늘로 회화는 죽었다.”라고 통탄했다고 합니다. 진동선님이 <사진예술의 풍경들>에서 폴 들라로슈의 한탄으로부터 1970년 테오도와 아도르노, 그리고 2000년 더글라스 크림프의 말까지를 종합하여, “결국 미술이라고 하는 불멸의 시각예술의 얼굴을 없앤 주인공은 사진이고, 미술을 하나의 모습으로 있지 못하게 한 것도 사진이고, 미술을 옛 모습으로 자리할 수 없게 만든 것도 사진이다. 예술이 끝없이 그 모습을 바꾸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사진인 셈이다.(사진예술의 풍경들, 7쪽)”라고 사진예술을 자리매김하고 한 것과는 상당한 의미의 괴리가 있어 보입니다.
사진예술의 발전과정을 잘 정리한 책들이 없지 않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진숙님이 수전 손택의 <사진에 관하여>와 <타인의 고통>을 추천한 이유는 아마도 저자생각이 손택과 공명을 일으키는 부분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끊임없이 소비를 부추기면서 전진해온 자본주의 체제가 줄곧 사진의 무한한 이미지 생산 능력과 공존해 왔다(위대한 미술책, 384쪽)”라는 손택의 말을 인용하면서, “사진은 풍요롭고, 낭비를 일삼으며, 만족할 줄 모르는 사회의 본질적인 예술”이라고 단정하는데서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손택은 사진에 대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 잘 못된 것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흔히 사진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포착한다고 믿고 있습니다만, 손택은 ‘사진도 회화나 데생처럼 이 세계를 해석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또한 여행 중에 사진을 찍는 행동에 관해서도, ‘사진은 경험을 증명해주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경험을 거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26쪽)’라고 합니다. 여행 중 마주치는 것들은 앞뒤 재지 않고 사진을 찍어대는 것으로 자신의 경험을 확증하려고 할 뿐, 그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볼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진은 메멘토 모리이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즉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애처로운 감정을 자아내는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제 스마트폰에는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에 동생이 찍은 어머님 사진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이 사진은 폰에서 지워버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면 저자가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대목도 있었습니다.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베트남 전쟁을 야만적인 식민전쟁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한국 전쟁은 자유 진영이 소련과 중국에 맞서 벌이는 투쟁의 일부로 받아들여졌고, 이런 특성을 감안할 때 무제한적으로 화력을 퍼붓는 미군의 잔인함을 사진에 담는다는 것은 부적절한 행위라고 여겨졌다.(41쪽)” 탱크를 앞세운 기습공격으로 국군을 괴멸시키면서 단숨에 낙동강까지 밀어붙인 북한이나, 변변한 무기도 쥐어주지 않고 전선으로 몰아넣은 중공군의 인해전술의 반인륜적 행위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사진에 관하여>는 저자가 1972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다이안 아버스의 회고전을 보고서 사진에 대한 에세이를 쓰기로 생각하고서 1973년부터 1977년까지 「뉴욕타임스 서평」에 발표한 여섯 편의 에세이가 바탕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은 ‘20세기의 주요 기록 매체인 사진의 본성에 관하여 그동안 제기된 적이 없는 질문들을 던졌다는 데서 찬사를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저자가 말하고 싶은 바를 정리한다거나,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또 다른 각도에서 확인시켜주기를 바라는 독자의 바람과는 달리 저자는 서로 상반된 주장, 인용, 자료들을 태연하게 병치하여 독자들을 생각하도록 만든 것이 불편하다는 비판으로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재원님의 번역으로 소개된 <사진에 관하여>도 번역 등의 문제를 제기하는 독자들도 있었습니다만, 저의 경우에는 읽고 이해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던 점이라든가, 이진숙님께서 <위대한 미술책>에서 읽어보아야 할 책으로 꼽았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서적소개 – 사진에 관하여 (수전 손택 / 이후[시울] / 2005.2.14)](https://chedulife.com.au/wp-content/uploads/사진에-관하여-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