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세상을 보는 방법
쇼펜하우어 / 동서문화사 / 2005.1.15
책 속에는 쇼펜하우어의 작품 가운데 쉽게 지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인생을 생각한다’를 시작으로 ‘삶의 예지’, 스페인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작품 가운데 쇼펜하우어가 자신의 사상으로 소화해 다시 써서 펴낸 ‘세상을 보는 방법’ , 명실상부한 그의 대표작이라 할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가 수록되어 있다. 수록 순서는 작품 발표순이 아니라 그의 철학세계를 더 쉽고 차근차근 이해할 수 있도록 고려했다. 독자들은 직관이 번뜩이는 그의 냉철한 인생철학에서 삶의 지혜를 만날 수 있다.

○ 목차
쇼펜하우어의 생애
학자의 꿈
쇼펜하우어의 철학 완성
결실의 시절
석양 속에서
인생을 생각한다
1.삶의 괴로움
2.삶의 허무
3.살려는 의지에 대하여
4.사랑의 형이상학
5.여성에 대하여
6.교육에 대하여
7.죽음이란
8.문예에 대하여
9.문예 흥미에 대하여
10.윤리에 대하여
11.종교에 대하여
12.정치에 대하여
13.사회에 대하여
삶의 예지
1.인간이란 무엇인가
2.자아에 대하여
3.재산에 대하여
4.명예에 대하여
5.권고와 잠언
6.나이에 대하여
세상을 보는 방법
제1장 사람들과 사귀는 방법
제2장 나를 만들어가는 방법
제3장 일에서 성공하는 방법
제4장 우정을 기르는 지혜
제5장 경쟁자를 이기는 방법
제6장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방법
제7장 행운을 불러들이는 지혜
제8장 행복한 삶을 위한 방법
제9장 책략으로 살아남는 방법
제10장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방법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는 이들에게
제1권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대한 제1고찰:충족 이유율에 따른 표상, 경험과 학문의 목적
제2권 의지로서의 세계에 대한 제1고찰:의지의 객관화
제3권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대한 제2고찰:충족 이유율에 근거하지 않는 표상, 플라톤의 이데아, 예술의 대상
제4권 의지로서의 세계에 대한 제2고찰:자기 인식에 도달한 경우의 생에 대한 의지의 긍정과 부정
○ 저자소개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er)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상가. 유럽의 항구 도시인 단치히에서 상인이었던 아버지 하인리히 쇼펜하우어와 소설가인 어머니 요한나 쇼펜하우어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실존 철학은 물론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19세기 서양 철학계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흔히 염세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인간 삶의 비극적 면면을 탐구한 사상가이며, 그의 철학은 근대 철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788년 단치히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793년 함부르크로 이주해 성장했고,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한동안 상인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1805년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계기로, 자신이 그토록 꿈꾸던 학자가 되기 위해 김나지움에 입학했다. 1811년 베를린대학교에 들어가 리히텐슈타인, 피셔, 피히테 등 여러 학자의 강의를 들었고, 1813년 베를린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충분근거율의 네 가지 뿌리에 대하여」를 집필, 우여곡절 끝에 예나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819년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출간한 후 1820년부터 베를린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1839년 현상 논문 「인간 의지의 자유에 대하여」로 왕립 노르웨이 학회로부터 상을 받았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으며, 1860년 9월 21일 자주 가던 단골 식당에서 식사 중 폐렴으로 숨진 후 프랑크푸르트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주요 저서로는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 『충족이 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등이 있다.
– 역자 : 권기철
1941년 경북 안동 출생. 중앙대 철학과, 동대학원 졸업. 독일 Marburg/L. 대학 수학. 독일 Wuerzburg 대학 철학박사. 중앙대학교 철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건국대학교 대학원 출강. 한국철학회 상임이사.
지은책 《철학개론 (공저)》, 《현대철학의 이해 (공저)》, 옮긴책 《키에르케고오르》, 《쇼펜하우어》등과 그 외 주요논문 여러 편이 있다.
○ 출판사 서평
– 19세기 독일의 대표적 철학가이자 염세적 철학으로 니체를 탄생케 한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의 명저를 한 곳에 집대성한 책
쇼펜하우어의 형이상학적 염세주의는 세상을 냉엄직관으로 통찰하여 얻은 것으로, 삶을 비관하며 모든 희망을 버린 것이 아니라 삶을 염세적으로 통찰하지만 그 속에서 행복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세상을 보는 방법>은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되, 삶의 진실에 맞섬으로써 진심으로 웃고자 했던 한 철학자의 정수를 담고 있다.
쇼펜하우어의 작품 가운데 비교적 쉽게 지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인생을 생각한다」를 시작으로 「삶의 예지」, 스페인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작품 가운데 쇼펜하우어가 자신의 사상으로 소화해 다시 써서 펴낸 「세상을 보는 방법」, 명실상부한 그의 대표작이라 할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가 수록되었으며, 수록 순서는 그의 철학세계에 보다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도록 난이도를 고려하였다. 특히,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쇼펜하우어의 철학의 특징을 사진과 함께 명쾌하게 정리한 화보와 그의 생애에 대한 자세한 기술을 통해 쇼펜하우어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무리없이 그의 철학 세계에 입문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 “세계는 나의 인생의 표상이다!”, 19세기 독일의 대표적 철학가이자 염세적 철학으로 니체를 탄생케 한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의 명저를 한 곳에 집대성한 책!
쇼펜하우어의 형이상학적 염세주의는 세상을 냉엄직관으로 통찰하여 얻은 것이다. 즉, 흔히 염세주의에서 느껴지듯 삶을 비관하며 모든 희망을 버린 것이 아니라 삶을 염세적으로 통찰하지만 그 속에서 행복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다. 염세적이며 냉정하게 현실을 파악하되, 그 현실 속에서 행복을 찾아내는 예리한 시선을 잃지 않았던 쇼펜하우어의 지혜가 [세상을 보는 방법]에서 깨어난다. [세상을 보는 방법]에는 그의 작품 가운데 쉽게 지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인생을 생각한다〉를 시작으로〈삶의 예지〉, 스페인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작품 가운데 쇼펜하우어가 자신의 사상으로 소화해 다시 써서 펴낸 〈세상을 보는 방법〉, 명실상부한 그의 대표작이라 할〈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가 수록되어 있다. 수록 순서는 작품 발표순이 아니라 그의 철학세계를 더 쉽고 차근차근 이해할 수 있도록 고려했다. 독자들은 직관이 번뜩이는 그의 냉철한 인생철학에서 삶의 지혜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쇼펜하우어의 대표작을 한곳에!
대표작〈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1814년부터 1818년까지 5년 동안 써내려가, 그의 나이 30세에 완성된 작품이다. 이때 쇼펜하우어 철학체계의 근본도 확립되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저서에 들어 있는 사상에 대해 변경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1844년 그가 낸 속편도 이 작품의 보완작이며 확장판이다. 여기에서 쇼펜하우어는 존재하는 세계는 ‘나의 표상’, 즉 보이는 세계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그것을 인식하는 주관은 의지이며, 표상으로서의 현상세계를 낳게 하는 원인이 되는 사물 자체가 곧 의지의 표출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미학과 윤리학도 다루고 있는데, 현상하는 세계의 연관과 생성을 초월하여 세계의 진리에 도달하는 것인 영원한 예술, 특히 음악을 높이 평가하였다.
“음악은 어디에서나 이해받을 수 있는 참으로 일반적인 언어이다. 그 때문에 음악은 모든 나라와 모든 시대를 통해 끊임없이 화제가 되어왔고, 풍부하고 깊은 의미를 전해 주는 선율은 지구상 어디든 닿을 수 있다. 선율은 두뇌에는 아무 말도 건네지 않지만, 마음에는 많은 것들을 전해 준다.”
– 쇼펜하우어의 지성이 담긴 역작들!
〈인생을 생각한다〉는 쇼펜하우어 이해에 가장 적절한 입문서이다. 1850년 집필을 끝내 1851년 출판된〈인생을 생각한다〉는 원래〈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부록으로 집필한 것으로, 쇼펜하우어가 ‘막내자식’이라 부르며 아낀 작품이다. 국내에는 <인생론>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왔다. 이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그때까지 인정받지 못했던 쇼펜하우어는 처음으로 세속적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인생을 생각한다〉에서는 ‘삶의 허무’, ‘자살에 대하여’, ‘여성에 대하여’, ‘종교에 대하여’ 등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데, 제목들에서 보이듯 삶의 현실 문제와 자연과 인생 전반에 걸친 쇼펜하우어의 날카로운 견해를 밝히고 있는 ‘철학소론집’이다. 〈삶의 예지〉를 쓸 때 쇼펜하우어는 생을 긍정하는 입장을 취했는데, 이 작품은 진정한 삶이 도달해야 할 목표에 대한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 쇼펜하우어는 먼저 만물의 허무함, 이 세상의 꽃이라 불리는 모든 것들의 공허함을 확신한다. 그리고 여유롭게 웃으며 이 세상의 거짓들을 내려다볼 수 있는 마음의 안정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세상을 보는 방법〉은 17세기 스페인의 예수회 수도사이자 문필가인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인생철학 가운데 뽑아낸 것으로, 쇼펜하우어가 자신의 사상으로 소화하고 편역해 세상에 알린 작품이다. 쇼펜하우어가 극찬한 짧은 글들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실용적인 지침이 담겨있어 쉽게 읽힐 뿐 아니라 순간순간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지도의 역할을 해줄 것이다. 이 세상은 불행으로 가득 찬 곳! 그 불행을 알아야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직접적인 목적은 괴로움이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염세적 철학가로 잘 알려진 그는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았을까? 평생 독신으로 살며 인간의 본질과 정체에 대해 탐구하며 살아간 그에게 이 세상은 불행으로 가득 찬 공간이다. 그러나 삶을 진실로 대면하면 불행으로 가득 찬 삶이라도 그만큼 더 진심으로 웃을 수 있다! 삶이 고통이기에 그 고통을 제대로 알아야 그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그의 철학은 오늘날의 염세주의와는 거리가 있다. 삼라만상의 실체를 ‘의지’로 파악하고 생에 대한 고통을 포착해,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설명한 쇼펜하우어에게서 인생에 대한 지혜의 정수를 얻는다.
– 세기의 지성을 사로잡은 천재성!

쇼펜하우어의 천재성은 키에르케고르, 똘스또이, 체호프, 바그너 등 세기의 지성을 사로잡았다. 바그너는 자신의 악극시《니벨룽겐의 반지》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쇼펜하우어에게 자필 헌사를 보냈다. 또한 키에르케고르는 쇼펜하우어에게서 큰 감명을 받았는바, 그의 일기 속에는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대한 감동과 공감을 보이는 다양한 글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그가 간행한 소책자에도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여기저기 드러나 있다. 또 똘스또이는 ‘쇼펜하우어는 인간들 중에 가장 천재적인 인물이라 생각하네’ 하고 말하기까지 했다. 똘스또이의 서재에는 쇼펜하우어의 초상화만 유일하게 걸려 있었다고 하며, 똘스또이의《안나 카레니나》와 하디의《테스》 처럼 쇼펜하우어의 이름이 직접 등장하는 것도 있다. 쇼펜하우어의 영향력은 20세기에도 계속되어 체호프, 버나드 쇼, 사뮈엘 베케트, 릴케나 T.S 엘리엇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불문한다. 니체는 쇼펜하우어를 읽었기 때문에 철학자가 될 결심을 했으며, 비트겐슈타인은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철학을 시작하였다. 프로이트는 심리분석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억압 메커니즘은 자기보다 쇼펜하우어에 의해 먼저 설명되었다고 했으며, 융은 그의 저서에서 쇼펜하우어에 관해 여러 번 언급했다. 이렇게 쇼펜하우어의 영향이 여러 분야에 걸쳐 있는 까닭은 무엇보다 쇼펜하우어가 사람이 놓여 있는 상황을 깊이 들여다보는 보기 드문 통찰력과 문필가로서의 뛰어난 재능을 겸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을 사로잡은 쇼펜하우어의 사상은 지금도 유효하다. 21세기의 첫 무렵에도, 그의 영향은 계속된다.
– 염세적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er 1788∼1860)
19세기 독일의 대표적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는 1788년 2월 22일 독일 단치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은행사업에도 관계하는 유복한 사업가로 아들 쇼펜하우어에게 자기 사업을 물려주려 했으나, 쇼펜하우어는 상속한 유산을 생활 수단으로 삼아 평생 철학과 저술 활동에 전념했다. 어머니는 여러 문학 작품을 남긴 작가였다. 어린 시절부터 영국·프랑스 등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했던 일이 그의 세계관·예술관에 영향을 주었다. 또 작가였던 어머니 요한나와의 불화·대립은 그가 여성을 혐오하고 멸시하게 된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아버지가 죽은 뒤 1809년부터 괴팅겐대학에서 역사·자연과학을 전공했고 또 회의주의자 슐체에게서 철학을 배웠다. 그가 배운 플라톤과 칸트의 사상은 인도의 베단타철학과 함께 그의 철학체계를 구성하는 기본적 틀이 되었다. 학위논문《충족이유율의 네 가지 근원에 대하여(1813)》와 괴테의 색채론에 자극받은《시각과 색채에 대하여》라는 저서를 완성했으며, 이어《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1819)》를 발표했다. 20대 후반부터 30세에 이르러 완성한 이 저서는 당시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으나 이 저서로 인하여 쇼펜하우어는 베를린대학의 강사가 되었다. 그가 세상의 인정을 받게 된 것은 1851년에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보충이라고 할《인생을 생각한다》라는 말년의 저서를 내면서다. 이 책으로 그는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되었다.
○ 독자의 평 1
인간은 지적 수준이 낮을 수록 상대적으로 삶에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지혜가 많으면 고뇌가 많고, 지식이 많으면 우환(憂患)이 많다. 아이러닉하게도 지능이 높거나, 현실인식이 예민할 수록 삶에 대한 고뇌의 덧을 피해가기 어렵다는 의미다. “아는 많큼 세상이 보인다.”고 들 한다. 또한 “아는 것이 병이다.”라는 속어도 있다. 지식과 세상을 보는 지혜가 깊어지면, 삶의 허무주의적 고독 속에 침적(沈積)하게되고, 점차 혼자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리라. 그러한 의미에서 쇼펜하우어는 속절없는 피상적 낙관주의를 저속한 인간성의 표현라고 폄하했는지도 모른다. 인간으로써의 본질을 깊이 이해하고, 냉혹하게 ‘충족이유율’에 기인된 자연이치의 큰 흐름을 해석할 수 있어야 인간으로써 삶의 겸손함과 무상함을 견지(堅持)할 수 있을 것이다. 염세주의라고 하여 무조건 의도적으로 기피하기 보다는 한번쯤 부디쳐서 삶의 깊이를 찾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인간이 철학적인 사색을 통하여 형이상학적으로 세계를 해석하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삶이 괴로움과 불행에 빠져 있을뿐 아니라, 인간은 반듯이 소멸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쇼펜하우에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친구가 많다고 해서 그가 역량과 특별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인간학(人間學)에 대한 무지(無知)에서 비롯된 것이다. 친구가 많다는 것은 인간을 교묘하게 다루는 기술을 상대적으로 많이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인간을 사교적으로 만드는 것은 그들에게 고독을 참아 나가거나 고독 속에 자기를 가누어 나갈 만한 능력이 없는 데서 비롯된다. 인간은 자신에게 충실할 수록 비례적으로 그 만큼 다른 사람들의 가치가 작아 보이게 된다. 반면에 자신에 충실하지 못한자는 자신의 가치가 작아보여 컴플렉스가 무의식 속에 쌓이게 되고,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 속에 항상 신경을 쓰게 되므로서 사교적이며, 타협적이 되기 위하여 자신의 본질과는 다르게 가식적인 행위를 하거나,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낭비하게 된다. 결국 자아가 풍부한 사람은 진정한 고독 속에 있을 지라도 마음의 평화를 누리거나, 행복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자신에게 충분히 공명(共鳴) 할 수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눈길에서 머러질 것을 두려워하며, 의존적이 되고 불안과 고뇌 속에 살아갈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사교의 범위가 커지면 커질 수록 무미 건조해지며, 결국은 의지할 곳은 자기자신 밖에 없다는 것을 인생을 다 소진한 후에야 깨닫게 된다.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에 자유로우며, 온전히 자기 일 수 있다. 고독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연애로 결혼을 하거나, 우정으로 아무리 인관관계가 가까와져도 오직 자기 자신을 상대해서만 정직하게 될 수 있다.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독설적이지만, “실제로 훌륭한 사람은 세상에서 존경을 받지 못하고, 세상에서 존경을 받는 사람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도 언급하고 있다. 사회에서 환심을 사려면 평범하고 세속적이며 어리석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에서 우리는 자기를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보이기 위하여 자기를 부정하하게 된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정신적으로 각성되어 있거나 뛰어난 지적상태이면, 그는 그 사회에서 혼자가 되거나, 아니면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한다. 세속사회에서는 인격적으로 우월한 자가 오하려 열등한 자에게 용서를 빌어야하는 상황이며, 정신적인 우월한 가치가 오히려 사회의 획일화된 감정(통념)을 해치게 한다. 그러므로 이른바 상류사회일 수록 이러한 상태가 더더욱 심화된다고 한다. 자연은 인간의 정신의 질적가치에 따른 엄연한 차등을 두었으나, 인간사회는 평등이라는 구실로 무시하고, 자연이 만든 차등과는 반대로 계층과 서열을 조성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사회에서는 평범한 사람이 득세하고, 비범한 인간은 고립되게 된다. 다만 시간이 흘러서 시대가 바뀌어야 그 천재들의 가치를 조명할 수 있을 뿐이다.
<세상을 보는 방법>에서 여성에 관하여 언급한 부분이 있다. 쇼펜하우어는 여성에 대해서 부정적인 면을 많이 나타내 보이는데, 그것은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추정된다. 의지하던 아버지를 일찍 여의지만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인생 내내 보듬고 살아간다. 반면 아버지가 죽고나서 어머니의 세속적인 태도나 생활방식에 반감을 가지게 되고, 그 것이 여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으로 발전하게 된것으로 생각된다. 한편으로 보면 여성을 비하하고, 남성의 우월주의를 찬양하는 듯한 내용으로만 오해될 수있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예를 들면 여성들은 지적 능력의 단순성과 너무나 현실주의적인 특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남성들에 비해, 위대한 사상가나, 인류사에 빛나는 예술가가 되기어렵다고 한다. 또한 여성은 변화에 민감하고, 마음의 기복이 심하며, 남성들 보다 열세한 육체적 조건하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거짓말을 하거나, 이중적인 성격 구조를 갖게된다고 한다. 여성으로써 일국의 국가수반이 수두룩한 현대의 관점에서는 비난받기 딱 좋은 언급이지만, 19세기 사회적 시대상을 고려해 보면, 그렇게 이해되지 못할 내용도 아닌것 같다. 항상 모든 관념은 그시대의 사회성 또는 시대성을 배경으로 해석하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고 생각된다.
○ 독자의 평 2
한권의 책이 전율을 느끼게 한다. 1년전에 구매하고 의도치 않게 중단한 후 미루던 완독을 마쳤다. 한달을 부지런히 읽었는데도 쉽지 않은 분량이다.
만약 누군가 “삶은 행복하고 추구할 만하다는 생각은 기만적인 것이고 사실은 고통스러운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다면 어떻게 받아드릴 것인가? 이 말이 담고 있는 심각성은 세상을 보는 방법을 통째로 바꿀 수도 있고, 막연하게나마 밝게 느껴지던 삶 자체가 우울하고 허무해질 수도 있다.
이 책은 쇼펜하우어의 유명한 책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과 이의 부록 “인생을 생각한다”, “삶의 예지”와 한권의 잠언록 “세상을 보는 방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삶에 있어 행복(향락)은 소극적이지만 고통은 적극적이다. 쾌락은 고통을 수반하게 된다.
“사람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한 욕망의 노예이다. 하나의 욕망이 충족되면 곧 또 다른 욕망이 생기고 결코 만족하는 일 없이 존재 자체가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 가난이 고통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욕구가 고통을 유발한다는 유명한 말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고통이 적극적이기 때문에 그나마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단촐하게 원하는 것을 줄이고 사는 것인데, 이럴 경우 삶은 김빠진 맥주처럼 갈증때문에 마시지만 맛은 없는 허무를 느낄 수 밖에 없다. 또한 삶이 허무라면 왜 노력하고 살아가야할까라는 맥빠짐의 연속이 된다.
인간이 쾌락은 추구하고 고통은 회피하려는 것은 본성이며 아주 오래된 철학적 주제이다. 소크라테스나 공자때부터 육체적인 향락이 아닌 정신적인 향락을 추구하면 더 나은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 듣지만 감각으로 둘러싸인 육체를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 육체적인 향락에서 오는 단맛을 외면할 수만도 없지 않은가? 집착까지는 아니라도 육체적인 향락에서 오는 단맛은 삶을 활기차고 그래도 살만한 것으로 인식하게 한다. 그것이 비록 허상이며 허무일지라도…
이 개념은 삶이 한가닥 밧줄에 매달려 있는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아래에는 맹수가 득실거리고, 이 밧줄을 흰쥐, 검은쥐(밤낮)가 갉아먹고 있는데 그마나 옆에 있는 벌통의 꿀로 잊고 산다는. 상황이 이러할진데 어찌 당장 꿀을 먹지 않을 수 있을까? 다만 아래 있는 맹수는 실체가 아닌 내가 만들어내는 허상이며 그림자인가하는 것은 또 다른 철학적 고민거리이지만…
삶은 좋은 것이라는 개념하에는 조울중에 빠지게 된다. 좋은 일이 있으면 기쁘지만 이에 대한 부재로 또한 고통스러우니, 기쁨과 고통의 진폭만 커지는 듯 하다. 반면 소극적인 행복보다는 적극적인 고통에 초점을 맞추어 덜 고통스러울 방법을 추구하면 조울증은 벗어나지만, 암울한 저음이 깔리듯 낮은 진폭의 우울이 계속된다. 어찌하란 말인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한동안 마음도 심란하고, 생각도 혼란스러웠다. 책의 제목처럼 세상을 보는 방법을 바꾼다는 건, 살아온 삶의 의미와 인생의 가치관에 영향을 주는 일이기에 그만큼 여파가 크다. 책의 앞부분에 있는 “인생을 생각한다”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보다 뒤에 부록으로서 쓰인 글이지만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입문서에는 분명하다. 다안 책을 끝까지 읽기전에는 그 우울하고 답답한 심정이 계속된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4권으로 오면서 조금씩 이해가 되며 머리의 뚜껑이 열리는 기분이다.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로 시작하는 이 철학서는 마지막까지 의미 심장하다. 왜 세계가 표상이며 의지(우리가 쓰는 일반 용어의 뜻과 다름)의 객관화인가를 알게 한다. 이 의지의 부정이 곧 불교에 말하는 해탈과도 일맥 상통하니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그 잔향이 너무나도 진하다.
책의 무게상, 독서와 운동이 병행(?)되는 책이다. 두 손으로 들고 읽는데도 버겁다. 한권이 눈에는 좋지만 실용적으로는 2권으로 나누어 구성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운동이 부족한 현대인을 위한 출판사의 숨은 배려(?)인가?
책의 머리글은 책을 다 읽고나서 한번 더 읽는 것이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 하다. 밀도감이 높은 천페이지가 넘는 책을 줄여서 말로 전하기가 사실 벅차다. 내 표현력이 한탄스러울 따름이다. 이해와 공명이 가능하다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책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