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셰익스피어 공연무대사 : 글로브극장에서 글로벌극장으로
한영림 / 도서출판 동인 / 2014.4.10
셰익스피어글로브극장에 대한 필자의 실제적 경험에 바탕을 둔 본 저서는 셰익스피어 방식의 공연무대가 기틀을 잡아가던 16세기 후반부터 셰익스피어 본래의 극장이 재창조된 20세기 후반까지, 시대별 문화적 특성에 따라 변화와 발전의 과정을 겪었던 공연양상을 역사적으로 조망해보았다.

○ 목차
책을 내면서
셰익스피어 작품 연표
이미지 목록
Ⅰ. 연극인 셰익스피어
- 국민연극의 탄생
- 셰익스피어 텍스트
- 셰익스피어 실재론
- 셰익스피어 연극성
Ⅱ. 르네상스기: 대중극장
- 대중극장의 탄생
- 실내극장
- 공연관례
- 대중극장의 폐쇄
Ⅲ. 왕정복고기: 여성배우 등장
- 왕립특허권
- 여성배우
- 셰익스피어 각색
Ⅳ. 18세기: 국민시인 셰익스피어
- 편집서와 각색대본
- 공연그림과 판화인쇄본
- 주빌리 축제
- 셰익스피어생일기념축전
Ⅴ. 19세기: 회화적 꾸밈의 무대
- 왕립극장 간의 대립
- 왕립특허권 폐지
- 회화적 사실주의
- 외모지상주의
Ⅵ. 20세기: 본래의 공연무대 부활
- 엘리자베스시대 연극방식 부활
- 셰익스피어글로브극장
- 글로브극장에서 글로벌극장으로
참고문헌
찾아보기
○ 저자소개 : 한영림

○ 책 속으로
236-화재로 인해 극장이 소멸되던 당시에 코번트 가든을 이끌어가든 배우-운영자(actor-manager)는 켐블(John Philip Kemble 1757-1823)이었다. 고결한 이상과 권위주의적인 연기로 상징되던 그는 개릭(David Garrick)의 정통성을 이어가는 배우-운영자로 칭송되었다. 켐블의 극장운영 경력은 1788년 드루리레인에서 시작되었다. 1789년 시즌에서 처음으로 <코리올레이너스>를 공연한 그는 귀족의 거만함과 국가영웅의 위대함을 겸비한 주인공의 모습을 표현하는데 탁월함을 보여주었다. 코리올레이너스 역할은 켐블에게 명성을 가져다주었고, 이후 그의 연기적 특성을 대변하는 배역이 되었다. 하지만 이 당시는 프랑스 혁며의 영향과 경제적 침체로 인해 사회적 선동에 대한 우려감이 만연하던 시기였고, 이에 정부는 대중적 집회를 금지하는 등의 규제정책을 강화하였다. 따라서 로마시민들의 선동적 집회와 옥수수 분배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하는 <코리올레이너스>는 정부 측에서 볼 때 시기적으로 공연하기에 부적절한 작품이었다. 일반시민들을 경멸하는 코리올레이너스의 오만함은 물질적 결핍에 시달리고 있는 영국의 하층민들에게 정치적 불만을 유도하는 자극제가 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켐블은 드루리레인에서 활동하던 8년의 기간 동안에 이 작품을 7번밖에 공연할 수 없었다. 그가 <코리올레이너스> 공연을 재시도한 것은 1806년에 코번트가든으로 옮겨가서였다. 이즈음 영국의 정치적 상황은 프랑스 혁명의 여파에서 벗어나 호전의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1805년에 트라팔가르(Trafalgar)전투에서 프랑스와 스페인의 연합군을 격파한 이후 승전 분위기로 국내정세가 안정되고 있었기 때문에 <코리올레이너스> 공연을 금지하던 정치적 명분이 효력을 상실하였다. 이에 켐블은 이 작품을 코번트가든의 레퍼토리로 지정하였고 공연 횟수도 증가하였다.

242-켐블은 1817년까지 코번트가든을 운영하였고 자신을 대표하는 <코리올레이너스>를 마지막으로 공연한 뒤에 은퇴하였다. 하지만 극장 자체는 신속하게 화재를 극복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개관 시에 야기되었던 관객소요의 여파를 견뎌내지 못하여 재정적 침체상태에 빠져 들어갔다. 어렵게 유지되던 극장은 1856년 3월 5일에 또 한번 화재를 당해 잿더미로 변해버리게 된다. 하지만 다시 찾아 온 재기의 기회는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주었다. 마치 불사조가 재생하듯이 코번트가든은 1858년 5월 15일에 왕립오페라하우스(Royal Opera House)라는 새로운 이름과 이태리풍의 화려한 건축 양식으로 재탄생하였다. 이 건물은 20세기 말에 광범위한 리모델링 개선작업을 거침으로써 더욱더 장엄한 모습을 과시하고 있다. 현재는 오페라와 발레 공연의 핵심 근거지로 자리 잡고 있다.
249-매크레디는 셰익스피어 옹호자로서의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셰익스피어가 쓴 원래의 텍스트대로 공연을 하는 전통을 세우고자 하였다. 셰익스피어 공연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서는 과거 대스타 배우들이 시대적 감성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등장인물이나 장면들을 삭제 또는 수정하면서 작품의 결말을 변형시켜오던 각색관행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매크레디가 존경하는 대선배인 켐블도 <코리올레이너스> 공연에서 셰익스피어 원전보다는 1794년에 나온 톰슨(James Thomson)의 각색작품 <코리올레이너스; 또는 로마를 수호한 부인>(Coriolanus; or, The Roman Matron)을 사용하였었다. 켐블은 은퇴공연에서도 셰익스피어 텍스트 대신에 처음 3막까지는 자신이 개작한 축약본을 사용하였고 마지막 장면들에서는 톰슨의 각색대본을 활용하였다.

250-공연의 품위는 무대디자인의 예술성과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본 매크레디는, 사실화처럼 그려진 무대배경과 역사적으로 고증된 의상, 가구, 구조물 등을 이용하여 스펙터클의 시각적 효과를 최대한 부각시켰다. 이러한 그의 제작원칙은 켐블의 역사주의 연출방식을 답습한 것이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장면을 재현하기 위해 켐블은 시대의상을 세밀하게 재생하였고 무대를 가득 채울 만큼의 많은 엑스트라 배우를 등장시켜 역사적 장관의 위엄을 살리고자 하였다. 코리올레이너스가 승전한 뒤 로마의 개선문을 통해 입성하는 장면에서 환영인파를 재현하기 위해 150여명이 넘는 엑스트라를 기용하였다. 로마에서 추방되어 오피디어스(Aufidius)를 찾아가는 장면에서는 로마의 군신인 마르스(Mars) 동상을 배경으로 설치하였다. 오피디어스를 만나기 전에 코리올레이너스가 동상과 같은 자세로 서서 사색에 잠기는 모습은 군신하고나 비견될 수 있는 그의 영웅이미지를 상징적으로 제시해주었다. 켐블의 역사적 고증주의는 매크레디가 1838년에 제작한 <코리올레이너스> 공연에서 로마시대 의상과 승전예식을 통해 부활되었다. 매크레디 또한 영웅의 개선식에서 환호하는 군중장면을 대규모적으로 재생해보이기 위해 다수의 단역배우들을 활용하였다. 절묘한 인물배치와 도면구성의 짜임새에 맞추어 그려진 역사화의 인물들처럼 많은 배우들이 조화롭게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매크레디 방식의 엄격한 리허설 훈련이 절대적이었다. 철저한 준비과정을 거친 그의 <코리올레이너스>는 “셰익스피어의 천재성과 명성에 가장 걸맞게 찬사를 표한 공연”(the worthiest tribute to the genius and fame of Shakespheare)이라는 호평과 함께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 언론소개 : 셰익스피어 공연무대사
‘글로벌’ 단어의 영향력은 향후 새롭게 기록되어질 공연무대 역사에서 글로브극장이 차지하게 될 위상을 예상하게 한다. 20세기 말에 다시 태어난 16세기의 글로브극장은 21세기 세계화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하게 되는 글로벌 극장으로 성장해나가고 있다.『셰익스피어 공연무대사-글로브극장에서 글로벌극장으로』한영림 지음/도서출판 동인/342쪽
영국 최초의 상설극장 이름은 무엇일까? 정답은 싱겁게도 그냥 ‘씨어터 (theatre)’다. 그 ‘오리지널’ 씨어터는 재정적인 이유로 압류되어 철거당할 때까지 대충 이런 연극들을 상연했다. 로미오와 줄리엣, 한여름밤의 꿈, 베니스의 상인, 헨리 4세, 그리고 헛소동.
세를 못 내 자신들의 극장이 헐리는 것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봤던 일군의 연극배우들은, 뜯긴 극장의 목재들을 주워 모아 템스강 주변의 지역을 배회했다. 1599년 5월 16일, 드디어 그 가난한 배우들의 작은 516혁명은 이루어졌다. 그들은 결국 자신들의 분장과 연기를 뽐낼 소박한 ‘둥근 모양의 터전’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그 터전이 바로 ‘글로브 극장(Globe Theatre)’이다. 그 극장은 1613년 화재로 인해 완전 소실될 때까지 대충 이런 인물들이 절규하는 장소였다.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 그리고 클레오파트라.

극장이 전소되는 화재 후 일 년, 자신의 인생 대부분을 그 극장들의 설립과 유지에 바쳤던 한 사나이 또한 조용히 죽어갔다. 그는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분신과 같았던 그 극장이 383년 뒤 화려하게 부활할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1997년 6월 12일, 윌리엄 포울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의 모금과 성원 끝에 글로브 극장은 복원되었다. 그리고 그 극장의 새 이름은 펜대 하나로 ‘세계(globe)’를 통치했던 한 극작가의 이름을 따 ‘셰익스피어글로브 (Shakespeare’s Globe)’로 명명된다.
『셰익스피어의 공연무대사』는 이러한 ‘글로브 극장’의 흥망과 성쇠 또, 그 감동적인 부활의 과정을 영국 현지에서 직접 수집된 권위 있는 문헌들과 80여점에 이르는 희귀한 이미지 자료를 통해 상세하게 소개한다. 책은 나아가 ‘스테이지 뷰티’ 같은 영화에서 소개되었던 영국 최초의 여배우 ‘마가렛 휴즈’에 관한 에피소드나, 셰익스피어 연극 주인공들의 코스튬플레이 행진으로 유명한 ‘주빌리 축제(Jubilee)’ 등, 흥미로운 영국 문화 이야기들을 곁들이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은 전공자들에게는 적확한 참고문헌으로서 또, 셰익스피어 팬들에게는 재미있는 교양서로서 달리 읽힐 수 있을 것이며, 올 여름 영국을 방문할 여행객들에게는 근사한 가이드북으로도 넉넉히 활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둥근 글자(0)의 모양은 수로 말하면 영(0)이지만 숫자 다음에 붙이면 백만을 표시할 수도 있습니다. (글로브 극장의 형태를 암시했던 유일한 셰익스피어의 대사)『헨리 5세』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_ 박지형 (자유기고가 / 매일신문 2008-07-02)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