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아이 투 아이 : 감각의 눈 · 이성의 눈 · 관조의 눈
켄 윌버 / 대원출판 / 2004.4.1
– 심리학과 철학, 동서양의 종교뿐만 아니라 사회학, 인류학 등 다양한 학문세계를 넘나들며 동서양의 지혜를 통합하고 독특한 사상 세계를 구축해온 켄 윌버의 저작
이 책에 실린 10편의 논문은 윌버가 30대 초반에 쓴 것들로서, 여러 학술지에 게재된 것을 선별하여 새로 일관성을 부여했다. 초개인 심리학과 세계 종교의 영적 가르침을 통합한 독특한 사상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의식에는 엄청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가장 단순하게 말해 인간은 감각의 눈, 이성의 눈 그리고 관조의 눈을 갖고 있으며, 이들 앎의 양식 각각은 각자 자신의 특수하면서도 전적으로 타당한 대상물의 모음, 즉 감각영역, 지적 영역, 그리고 초월영역을 갖고 있다. 이들 세 가지 앎의 양식 모두는 똑같은 확신 수준에서 타당화될 수 있으며, 세 양식 모두 완벽하게 타당한 지식의 유형이다. 자신의 진정한 자아와 온우주에 대한 포괄적이고 완벽한 이해는 감각의 눈, 이성의 눈, 관조의 눈 모두를 떳을 때에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다.

저자는 여러 학문을 넘나드는 통합적 관점으로 심리학과 철학, 동서양의 종교뿐만 아니라 사회학, 인류학,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을 총망라하며 우리 시대 진정한 진리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 목차
1. 아이 투 아이
2. 증명의 문제
3. 의식의 만다라 지도
4. 발달, 명상, 그리고 무의식
5. 물리학, 신비주의, 그리고 새로운 홀로그래픽 패러다임
6. 신시대 패러다임에 대한 성찰 : 인터뷰
7. 전/초 오류
8. 신흥종교에 있어서의 정당성, 진정성, 그리고 권위
9. 구조, 단계, 그리고 자아
10. 의식의 궁극적 상태
○ 저자소개 : 켄 윌버 (Ken Wilber)
켄 윌버 (Ken Wilber, 1949년 1월 31일 ~ )는 미국의 작가이자 사상가이다. 통합심리학 (Integral psychology) 분야를 대표하는 학자이자 ‘의식 연구 분야의 아인슈타인’으로 평가받는 미국 태생의 현대 사상가 켄 윌버 (Ken Wilber). 그는 의학과 생화학을 전공했지만 노자의 ‘도덕경’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아 심리학 · 종교 · 영성 등 동서양 사상에 심취, 23세에 쓴 《의식의 스펙트럼》(1977)을 통해 인간의식 연구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20여 권의 저서를 발표하면서 심리학과 철학, 인류학, 동서양 신비사상, 포스트모더니즘 등을 총망라하여 인간의식의 발달과 진화에 대한 특유의 ‘통합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과학과 사회 문제를 연구하는 두뇌집단이자 교육과 영성 등 통합이론과 수행법을 연구하는 ‘통합연구소’ (Integral Institute)를 설립하여 전 세계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함께 지금 여기와 미래를 위한 새로운 관점을 실행 · 공유하고 있다.

저서로는 《의식의 스펙트럼 : The Spectrum of Consciousness》,《모든 것의 역사 : A Brief History of Everything》,《무경계 : No Boundary》,《에덴을 넘어 : Up From Eden》,《아이 투 아이 : Eye to Eye》,《켄 윌버의 통합심리학 : Integral Psychology》,《켄 윌버의 ILP : Integral Life Practice》,《켄 윌버의 일기 : One Taste》,《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기 : Grace and Grit》 등이 있다.
켄 윌버는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 중 한 사람이다. 여러 학문을 넘나드는 그의 통합적 관점은 심리학과 철학, 동서양의 종교뿐만 아니라 사회학, 인류학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을 총망라하고 있다. 지난 40여 년 동안 그는 뛰어난 철학자로서 널리 알려져 왔다. 그는 의식 연구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리며, 그의 저술은 많은 학문분야의 교조적인 사고에 대해 건강한 해독제를 제공한다고 칭송받는다. 그의 심리학에 대한 기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칼 융, 윌리엄 제임스의 기여와 비견되기도 한다. 인간발달과 의식의 진화이론에 대한 근본적인 재조직화를 통해 그는 국제적 명성을 얻었을 뿐 아니라, 광범위한 분야의 학자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켄 윌버는 우리 모두에게 영감과 통찰을 주는 원천이다. 그가 쓴 글을 모두 읽어라. 그러면 당신의 삶이 바뀔 것이다.” 세계적인 영성 지도자이자 심신의학의 창시자인 디팩 초프라 (Deepak Chopra) 박사의 말이다.
교육학자 잭 크리텐든 (Jack Crittenden) 교수는 그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21세기는 셋 중 한 명을 택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냐, 니체냐, 아니면 켄 윌버냐.”
– 역자 : 김철수
심리학자. 계명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를 지냈다. 의식의 구조와 자기 발달 과정, 켄 윌버의 통합모델 연구를 천착해왔다. 종교와 영성 분야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연구 내용을 기반으로 하여 정치, 교육, 리더십, 조직문화 등 현실에 적용하는 데 관심을 가져왔다. 《무경계》, 《켄 윌버의 신》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출판사 서평
“21세기는 다음 세 명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할 기로에 놓여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냐, 니체냐, 아니면 윌버냐.” – 잭 크리텐든 (Jack Crittenden)
“켄 윌버는 국보적인 존재이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윌버만큼 동서양의 지혜를 그토록 심도 있고 광범위하게 통합시킨 사람은 없었다.” – 로버트 키건 (Robert Kegan)
“내가 보기에 켄 윌버는 플라톤 이래 가장 위대한 사상가이다” – 짐 게리슨 (Jim Garrison)
“심리학은 그에게 천 년의 빚을 지고 있다!” – 조지 해리스 (George Harris)
– 심리학과 철학, 동서양의 종교뿐만 아니라 사회학, 인류학 등 다양한 학문세계를 넘나들며 동서양의 지혜를 통합하고 독특한 사상 세계를 구축해온 켄 윌버의 저작
이 책에 실린 10편의 논문은 윌버가 30대 초반에 쓴 것들로서, 여러 학술지에 게재된 것을 선별하여 새로 일관성을 부여했다. 초개인 심리학과 세계 종교의 영적 가르침을 통합한 독특한 사상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과학과 철학 그리고 종교를 한데 아우르는 모델, 의식과 실재에 대한 포괄적인 모델의 개발을 향한 첫발을 내딛고 있으며, 전통적인 종교, 현대 유물론적 철학 및 대중적인 신시대 이론들을 조리 있게 비판하고 우리 자신과 우주에 대한 보다 폭넓은 이해를 지향하도록 이끌어 주면서, 세 가지 지식영역, 즉 감각에 의한 경험영역, 마음에 의한 이성영역 그리고 영성에 의한 관조영역을 검토하고 있다.
인간의 의식에는 엄청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가장 단순하게 말해 인간은 감각의 눈, 이성의 눈 그리고 관조의 눈을 갖고 있으며, 이들 앎의 양식 각각은 각자 자신의 특수하면서도 전적으로 타당한 대상물의 모음, 즉 감각영역 (sensibilia), 지적 영역 (intelligibilia) 그리고 초월영역 (transcendelia)을 갖고 있다. 이들 세 가지 앎의 양식 모두는 똑같은 확신 수준에서 타당화될 수 있으며, 세 양식 모두 완벽하게 타당한 지식의 유형이다. 자신의 진정한 자아와 온우주 (Kosmos)에 대한 포괄적이고 완벽한 이해는 감각의 눈, 이성의 눈, 관조의 눈 모두를 떴을 때에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다.
○ 세상을 바라보는 세 가지 눈 _ 켄 윌버(Ken Wilber)
당신은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가? 수행을 통해 진정한 눈을 뜰때 세상은 당신 앞에 그 참모습을 드러낸다. 세상을 보는 진안 (眞眼), 관조의 눈을 뜨라!
–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있다!
“당신은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만일 이러한 질문이 당신에게 주어지면 뭐라고 답할 것인가? 혹시 단순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눈 또는 슬픈 영화를 보면 물을 흘리기도 하는 눈을 떠올리는 것은 아닌가?
켄 윌버 (Ken Wilber, 1949 ~ )는 ‘본다’라는 개념과 ‘눈’이라는 개념의 확장적 재해석을 통해 이 세상에 다가서는 다양한 접근방법과 통찰력을 제시한다. 특히 그는 미세한 사물에서 거대한 우주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개인의 의식에서 종교적 영성에 이르는 영역을 포괄적으로 아우르는 세가지의 눈을 제시한다.
그 세 가지 눈이란 무엇인가? 육체적인 감각이나 과학기술을 통해 사물을 인지하는 ‘감각의 눈’, 이성과 논리로 대상을 인식하는 ‘이성의 눈’, 수행이나 명상으로 종교적인 영역을 체험하는 ‘관조의 눈’이 그것이다. 특히 그는 현대인들이 굳게 닫고 있는 ‘관조의 눈’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이 세상의 진실을 바라보는데 있어서 관조의 눈이 절대적임을 강조한다.
윌버가 관조의 눈을 강조하며 영적인 세계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갖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기존의 철학자나 사상가와는 달리 수행과 명상을 통해 관조의 눈을 열고 직접 그 세계에 발을 디딘 사람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한두 시간 정도의 수행을 한 후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명상과 철학을 병행하며 종교인의 심성으로 철학하는 사상가 윌버가 제시한 세가지의 눈은 무엇일까?
– 앎의 세 가지 눈 : 감각의 눈, 이성의 눈, 관조의 눈 서평
윌버가 언급한 세 가지의 눈 즉 감각, 이성, 관조의 눈은 사실 서구 교회의 신비가이자 철학자로 알려진 성 보나벤투라 (St. Bonaventure, 1221 ~ 1274)에 의해 설정된 개념이다. 그렇지만 윌버의 저서에 사용되면서 구체적이면서도 새로운 개념으로 거듭났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보도록 하자.
– 감각의 눈
우선 감각의 눈 (육안, 肉眼, the eye of flesh)이다. 감각의 눈으로 보이는 세계는 물질세계에 한정이 된다. 주로 과학적인 도구와 오감을 통해 체험적으로 증명되는 것들이 이 분야에 속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갈릴레오나 케플러, 뉴턴,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들은 감각의 눈의 발전을 위해 일익을 담당한 사람들이다. 감각의 눈은 과학자들의 활약이 역사 속에 눈에 띄게 두드러지고 과학이 고도로 발전함에 따라 그 시야가 확장되었다. 일례로 최근에 자주 언급되는 나노 과학 (Nano Science)은 그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생명과학과 정보통신분야 등에 응용되어 그 활용폭을 더욱 넓혀주었으며 또한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천체망원경과 우주선 같은 것들도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무한히 넓은 우주세계를 물질적으로 증명해줄 수 있는 자료를 제시해주므로 감각의 눈을 밝히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감각의 눈은 그 눈이 밝아지면 밝아질수록 오히려 맹점을 드러내는 부분이 있다.
그것이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20세기에 들어 두드러지게 만연되고 있는 과학지상주의다. 과학은 맹목적인 미신을 타파하고 경험적으로 체득된 우주만물의 체계를 세우는 데에는 효과적이었으나 인간의 의식 내면에 성성하게 살아있어야 할 정신을 도려내었다.
윌버는 현대인들이 감각의 눈만을 너무 비대하게 키운 결과 경험적으로 검증 될 수 있는 명제만이 진실이라고 말하는 오만한 태도까지 보인다며 이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즉 실체는 없어도 분명히 존재하는 정신세계나 영적 분야를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고 해서 그 존재에 대해 배타적인 반응을 보이는 현대인들의 잘못된 의식구조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것이다.
시속에 ‘개 눈만도 못하다’는 말이 있다. 웃자고 나온 애기일 수도 있으나 개는 오히려 인간이 보지 못하는 것을 인지하여 컹컹 짓기도 하는데, 인간은 두 눈을 멀쩡히 뜨고도 뭐가 뭔지 모르니 한심해서 나온 말이 아닐까?
지진이 나기 전에 개미와 뱀은 먼저 몸을 피하고 해일이 나기 전에 새들은 무리 전체가 이동한다고 한다. 오감에 대한 체험에 너무나 자신감을 갖고 있는 인간. 그러나 그들이 가진 감각의 눈은 어떤 경우에도 동물보다 못하다는 것을 상기해야 하지 않을까? 감각의 눈에만 의존하여 과학지상주의가 만연하면 할수록 오히려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누릴 수 있는 영적인 부분이나 정신세계를 점점 상실해 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성의 눈
감각의 눈에 이어 제시된 개념은 바로 이성의 눈 (심안, 心眼, the eye of reason)이다. 초기에 이성의 눈은 감각의 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관조의 눈 등과 혼합되어 제자리를 잡지 못하였다. 일례로 지구가 태양주위를 공전하는 예를 살펴보자. 과학적인 논리나 경험으로 보아 이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그러나 모든 것을 지구 중심으로 생각하던 근대 이전의 기독교인들에게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발상은 ‘신성한 신의 이름으로’ 받아들일수 없는 논리였다. 이들은 이성의 눈으로 판단되어야 할 대상에 왜곡된 관조의 눈을 들이대어 오히려 진실을 가리는 우를 범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칸트 같은 사람은 이성의 눈을 위해 이바지한 사람으로 윌버는 평가하고 있다. 칸트는 순수이성의 눈은 본질상 영성 영역을 들여다 볼 수 없다는 점을 증명해 냈는데, 이는 곧 철학은 신의 영역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과 고작해야 신을 도덕적으로 가정할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중세 때까지 철학은 ‘신학의시녀’라는 평가절하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칸트와 같은 사람이 이성의 눈을 밝히면서 이성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를 한정짓고 철학의 영역을 독립시킴으로써 논리와 철학의 눈을 밝혔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배우는 언어나 수학, 철학, 심리학 등 논리와 이성적 사고를 통해 해결되는 제 분야는 모두 이성의 눈에 의해서 습득된다고 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공식이 칠판에 적혀 있다고 가정하자.
수학 시간에 적분을 배운 사람이라면 주어진 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보가 없는 사람이라면 위의 식은 단순한 알파벳과 기호의 나열일 뿐이다. 또는 외국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이에게 러시아어 책이 주어진다면 그 책은 의미를 갖겠지만 러시아어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사람에게 그 책이 주어진다면 그것은 종이조각 모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성의 눈은 이와같이 보이지 않는 분야에 속하지만 충분히 증명해내고 습득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감각의 눈과 함께 이성의 눈이 밝아질수록 눈에 드러나는 세계는 더욱 더 넓어진다. 그러나 그것이 이 세계의 전부일까? 지금까지 인류는 고작해야 이 두 가지 눈에 의해 보이는 세계를 전부로 착각하였기에 세상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이세계의 진실은 그 두 가지의 눈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세상의 참모습을 보고 싶다면 그 해답은 관조의 눈에 달렸다. 감각의 눈, 이성의 눈에 이어 마지막으로 관조의 눈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 관조의 눈
관조의 눈 (영안, 靈眼, the eye of contemplation)은 무엇인가? 관조의 눈으로 인식되는 세계야말로 역설의 세계다. 사람들은 관조의 눈을 뜨고 그 세계를 보고 싶어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는다. 물론 감각의 눈만을 크게 키워온 현대인들이 할 수 있는 변명도 없지는 않다. 그들은 관조의 눈을 뜨고 그 세계를 체험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영성에 대한 믿음의 삶이 현실 생활 속에서 공존하던 시절이 인류에게는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나 감각의 눈, 이성의 눈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아지면서 관조의 눈은 점점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그 세계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에게 관조의 눈으로 보이는 세계는 두 가지로 나뉠 것이다. ‘신비’ 아니면 ‘의심’으로 말이다. 그러나 관조의 눈을 뜬 사람들은 그 세계의 절대성을 확신한다. 윌버는 관조의 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절대의 본질은 오로지 관조의 눈과 이것에 의해 직접적으로 밝혀진 대상물들, 즉 그것의 초월성, 그것의 영적자료, 영적 세계에 대한 확고한 사실들로만 밝혀질 수 있다. … 또한 가장 심층적이며 가장 신비로운 절대/상대 문제는 오직 관조의 눈에 의해서만 해소될 수 있다. … 그러므로 진정한 해답은 감각 영역이나 지적 영역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초월 영역에 놓여 있다. 초월 영역은 오직 ‘명상’ 실천에 몰두한 후에만 스스로 드러난다.”
요컨대 이 세상 본질에 대한 진정한 답은 관조의 눈을 떴을 때만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이 관조의 눈을 뜨는 방법은 바로 ‘명상’이라는 것이다. 명상이나 수행 등 동양의 정신수련법에 대한 윌버의 애착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그는 대학시절 노자의 도덕경을 읽고 그 사상에 매료된 후 동양의 사상서와 영적 문헌들을 마른 논이 물 흡수하듯 무서운 속도로 읽어나갔다. 동서양의 영적 문헌과 심리학, 철학, 사상서를 방대하게 섭려한 그는 동양의 철인 (哲人)들이 그랬던 것처럼 수행과 참선을 통해 그의 의식세계를 넓혀나갔다.
깨달음의 영역은 감각의 눈이나 이성의 눈을 통해 지각될 수 없는 영역이다. 삶을 살아가며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깨달음을 추구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정확한 방법론을 모른 채 단순히 머리로만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닌가? 윌버는 그들에게 이렇게 지적한다.
“나는 영성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이미 그런 경향을 지닌 사람으로서 관념적 증명이 무기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 초월 영역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관조의 실천을 수행해야 한다. 일례로 좌선, 진언 (mantra, 주문), 자파 (japa), 내면의 기도 등을 실천해야 한다.”
윌버의 지적은 수행의 삶과 소원해진 현대인들 모두에게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웰빙 (well-being)의 삶과 스트레스의 해소 등을 목적으로 수행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수행의 본질적인 목적은 영성 체험이다. 초월 영역의 체험이다.
‘닫고 있었던 관조의 눈을 떠라. 그러기 위해서는 수행을 하라. 영성을 키워 이 세상의 본질을 직시하라.’
윌버가 현대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어떤 면에서 간곡하게 들리기도 한다. 또한 외짝 눈으로 세상의 전부를 보는 것처럼 행사하는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준엄한 비판이기도 하다.
– 정리하며
의식연구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리는 켄 윌버. 그가 제시한 감각의 눈, 이성의 눈, 관조의 눈은 지금껏 사물을 바라보던 혼재된 시각들을 명확하게 정리해주고 있다. 또한 그걸 넘어서서 인간의 영성에 관련된 ‘관조의 눈’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현대인들의 닫힌 세계를 새롭게 밝힐 수 있는 토대를 제시하고 있다.
사상가이기 이전에 순수한 구도자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윌버. 그가 우리에게 던지는 문제는 많은 시사성을 담고 있다. 현대인들은 고도로 발전하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갈등한다. 신은 있는가? 영성은 존재하는가? 우리는 왜 태어났는가? 인간은 왜 전쟁의 역사 속에 살아야 하는가? 인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등등. 무수한 삶의 담론은 여전히 우리에게 물음표만을 남기며 삶의 의미를 모호하게 한다. 윌버의 세 가지 눈의 이론은 결국 그가 원하는 통합 패러다임의 추구와 맞물린다. 그는 온 우주에 대한 관심의 확장을 강조하는데 그 목적은 다음과 같다.
“자신의 에고로부터 가족으로, 또한 지역사회로 관심과 공감을 확장시킨 사람은 자신의 자아를 무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정체성과 공감을 부족에서 국가로, 국가에서 인류로, 그리고 인류에서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로 확장하는 것은 더 폭넓은 포옹 속에서 더 깊은 자아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렇다. 내 속의 자아를 실현하는 과정은 결국 세계를 포옹하는 과정, 모두가 하나되어 동인 (同人)의 심범으로 대동세계를 건설하는 과정속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기 위해 열어야 할 것이 바로 세게의 본질을 보는 눈, 인간 내면의 영성을 회복하는 관조의 눈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단어 속에 스며든 그의 본 뜻이 무엇인지 마음으로 느껴보길 바라며 윌버가 현대인에게 던지는 말을 전한다.
“관조의 눈을 떠보라. 그러면 그 해답은 마치 시원한 봄날 이른 아침 수정처럼 맑은 연못 위에서 반짝이는 햇살만큼이나 명백하고 완벽하고 틀림없을 것이다. 당신은 그것이 해답이었음을 안다.”
○ 켄 윌버 (Ken Wilber) – 통합과 창조의 사상가
초개인 심리학 (Transpersonal Psychology) 분야에서 데카르트와 프로이트, 아인슈타인에 비유되는 대사상가, 켄 윌버. 70년대 중반 그는 불과 23살의 나이로 ‘의식의 스펙트럼’ (The Spectrum of Consciousness)이란 획기적인 저서를 발표, 이 분야의 새 지평을 열었다.
17권이나 되는 그의 방대한 저서들은 동서고금의 철학과 종교, 심리학, 인류학, 과학, 신물리학, 신과학, 사회학, 예술 등 거의 모든 분야를 종횡무진 넘나들고 있다. 또한 영원히 전승되는 동서양 철학적 지혜의 정수에서 나온 의식의 스펙트럼과 인간 의식의 성장 및 우주 · 인류 · 사회 · 문화의 진화, 존재의 대사슬 (Great Chain of Being), 대원환 (Great Nest), 온우주 (Kosmos)의 대홀라키 (Great Holarchy), 심층과학적 참지식, 진리의 네 상한 (Four Quadrants)에 대한 통합적 진리관을 해박하고 명석하게 밝히고 있으며, 30년 이상 지속된 그 자신의 명상과 수련을 통한 체험과 깨달음에서 비롯된 초월적 의식세계에 대한 안내지도도 명확하게 기술하고 있다.
– 자기초월심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1949년 미국의 오클라호마 주에서 태어난 윌버는 매우 활달한 성격으로, 스포츠는 물론 물리학과 화학, 생물학, 수학에 두루 뛰어났다고 한다. 그러던 그는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노자의 『도덕경』을 읽으면서 삶의 대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이후 네브라스카 대학원에 들어갈 때까지 생화학과 생물리학을 전공하는 한편, 도교와 불교, 베단타 힌두 사상을 비롯한 각종 동양사상과 서양의 신비주의 문헌, 심리학 제 학파의 문헌, 동서양의 영성 관련 문헌을 닥치는 대로 섭렵하였다. 그의 학문적인 박식함도 수년간 계속된 이 때의 독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후 생화학 박사과정을 그만둔 그는 결혼 후 대학을 떠나, 23세이던 1973년 겨울 삼 개월만에 그의 최초의 저서인 『의식의 스펙트럼』을 집필하였다. 이 책은 당시 아직도 체계가 서 있지 않던 소위 제4심리학 (초기 초개인 심리학)의 이론적 기틀을 제공할 정도로 초개인 심리학의 패러다임을 크게 변화시켰다. 그러나 이 책의 탄생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3년간 무려 20여 개 출판사에서 거절당하는 수모 끝에 드디어 퀘스트 북을 통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후 윌버는 수년간 시간제 노동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면서 엄청난 양의 독서와 집필 활동을 계속했다. 동시에 매월 일정 기간 수련원에 들어가 수련을 하는 것 외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장시간의 명상과 참선수련을 심화시켰다. 그러면서도 『의식의 스펙트럼』에서 선보인 접근법을 한층 발전시킨 일련의 논문들과 저서를 잇달아 내놓았다.
윌버의 개인적인 삶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는 20대 초부터 명상과 참선, 연구, 저술로 일관된 영적 구루와도 같은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의 결혼 생활은 시련을 면치 못했다. 1981년 첫 아내와 헤어진 뒤, 1983년 그를 숭배하고 흠모하던 시인 테리 킬람과의 열애 끝에 재혼을 했으나, 그녀는 유방암으로 89년에 세상을 떠났다. 이후 사별의 아픔에서 벗어나 다시 신들린 듯한 정신과 영감을 회복한 그는 1995년 초기 저술 속에 담긴 전全스펙트럼적 모형을 더욱 심오하고 광범위하게 발전시킨 역작을 발표하게 된다. 그 스스로 최고로 완성도가 높은 저술로 평가하는 『성 · 생태 · 영성 (Sex, Ecology, Spirituality)』이 바로 그 책이다. 온우주론 삼부작 중 제1부에 해당하는 이 책을 발표한 후, 그는 연이어 그 축약본인 『만물의 역사 (Brief History of Everything)』를 발간했다.
9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대사상가로서 한층 성숙한 위치에 올라선 윌버는 지난 삼 년간 그의 원숙한 사상이 녹아 있는 세 권의 책 『정신의 눈 (Eye of Spirit)』, 『감각과 영혼의 만남 (The Marriage of Sense and Soul)』, 『통합심리학 (Integral Psychology)』을 연달아 내놓았다.
1997년에는 윌버의 사상을 조명하기 위한 학술대회까지 개최, 전세계 다양한 분야의 학자와 전문가들이 윌버의 사상을 재조명하고 비판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때 여러 학자들의 논문과 윌버의 답변이 『대화 속의 켄 윌버 (Ken Wilber in Dialogue)』란 제목으로 출판됨으로써 켄 윌버의 사상을 초개인 심리학 분야의 다른 연구 맥락과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좋은 매개가 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윌버의 사상적 본질을 그의 여러 저서에서 발췌 수록한 『켄 윌버 사상의 본질 (The Essential Ken Wilber)』과 윌버 자신이 쓴 일기형태의 명상록 『윌버一味 (One Taste)』가 나옴으로써 윌버의 사상을 보다 심층적으로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고 있다.
– 완전한 통합적 진리관을 제시
윌버의 핵심 사상은 영원의 철학적 존재의 대사슬/대원환과 이로부터 나온 그의 의식의 전스펙트럼 모형에서 찾을 수 있다. 그의 사상은 한마디로 플로티노스의 신플라톤주의와 헤겔의 절대관념론, 동서양 종교의 신비사상에 대한 통합을 바탕으로, 서양의 발달심리학과 동양의 전통종교 (베단타 힌두사상, 대승불교, 선불교 등)를 완벽하게 통합한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또한 그의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으로서의 홀라키적 온우주론은 헤겔의 관념론과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 불교의 중도공관/화엄사상에 대한 통합적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완전한 통합적 진리관은 온우주의 네 코너/네 상한이라고 그가 일컫는 삼대가치권 (예술 · 도덕 · 과학, 나 · 우리 · 그것, 삼보)에 대한 통합적 시각과 의식의 전스펙트럼 모형을 완전하게 통합한 온수준·온상한적 통합 패러다임 (윌버모형 Ⅳ)에 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그의 사상을 이해하려면, 그가 창안한 의식의 전스펙트럼 모형 (윌버모형 Ⅰ, Ⅱ, Ⅲ)과 진리의 네 상한도, 의식의 전스펙트럼 모형의 통합 (윌버모형 Ⅳ), 의식의 기본구조와 자기 (Self) 발달, 상승과 하강, 진화와 퇴화를 반복하는 절대정신에 의한 홀라키적 온우주론과 육안 · 심안 · 영안에 의한 심층 영성과학적 신과학 사상 등을 모두 개괄해야만 한다. 그러나 개괄적으로라도 여기서 이 모든 부분들을 논할 수는 없기에, 그의 통합적 진리관의 특징만을 간략하게나마 언급하고자 한다.
헉슬리에 의해 널리 알려졌지만 라이프니츠가 최초로 사용한 위대한 종교들의 초월적 신비 사상의 요체인 영원의 철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존재와 의식을 최하위의 가장 조밀한 그리고 가장 단편적인 영역으로부터 최상위의 가장 정묘하고 가장 통일된 영역에 이르기까지 여러 상이한 차원적 수준을 계층으로 설명하는 데 있다. 이것을 윌버는 존재의 대사슬/대원환을 이용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그는 의식의 스펙트럼 수준은 크게 대략 여섯 가지 주요 수준 – 물질적 · 생명기적 · 이지적 · 정묘적 · 정신 (인과)적 · 궁극적 수준 – 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본다. 오늘날 수많은 전통종교와 철학에서는 이 모형을 더욱더 세분화하고 연장하기도 한다. 윌버는 여기에 발달심리학의 마음의 세분화된 단계를 추가하여, 그림과 같은 의식의 스펙트럼의 기본 모형에 도달하기 전까지 크게 세 가지 수준/영역, 아홉 계층의 세분화된 의식의 수준을 기본 구조로 하고 있다.
그러나 세분화 과정에서 드러나는 차이만을 제쳐두면 모든 주요 전통종교와 철학은 의식 (홀론, holon)이 일반 계층을 갖고 있다는 데 동의하고 있고, 그들 중 대부분은 상세한 부분까지 서로 일치하고 있다.
윌버 사상의 본질은, 모든 학파의 사상과 이론이 약간씩 범주오류와 전초인지오류 (PTF; Pre/Trans-Fallacy)를 내포하고 있지만 특정한 의식의 수준과 시각에서 보면 모두가 이론적/사상적 타당성을 갖고 있다고 보는 포용적 시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어느 정도 옳다고 다 모아서 만든 단순한 종합적 사상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전통종교와 현대 과학주의, 심지어 인기 있는 신시대 신과학 이론에 대해서도 범주오류와 전초인지오류를 지적하면서 인지적 비판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어느 이론이나 사상이든 전적으로 틀리거나 맞는 게 아니라, 진리의 네 상한 중 어느 한 상한의 진실성과 진리성은 있지만 그것이 부분적이며 단편적인 시각임을 드러냄으로써 우리 자신과 우주에 대한 보다 광범위하고 보다 통합적인 이해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진리에 대한 윌버의 통합적이고 완전한 비전이다.
현재 미국을 대표하는 신시대의 대사상가로서 윌버는 동서양의 모든 사상을 관류하는 통합적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다. 동서양의 모든 위대한 종교와 전승지혜의 궁극의 실재에 이르는 계층적/심층적 실재관의 정수인 영원의 철학에 기반하여, 몸·마음·정신의 통합과 조화를 중시하는 의식의 스펙트럼이라는 다차원 의식의 전스펙트럼 모형을 바탕으로 통합적 진리관을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동서양의 영원의 철학에 따른 의식과 존재의 온수준 · 온상한적 완전한 통합비전을 기본으로 한 홀라키적 온우주론의 진리관과 세계관을 통해, 영성을 상실해가는 21세기에 동서양의 갈등과 괴리를 넘어서 동서양의 모든 종교와 철학, 심리학, 과학, 사상의 진리가 하나임을 깨닫게 해주는 윌버야말로 우리 시대의 진정한 스승, 상생의 시대인 21세기에 영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진정한 스승이 아닐 수 없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