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알키비아데스 (Alkibiades) I , II
플라톤 / EJB / 2014.10.22
플라톤 철학의 문턱에 들어서는 길은 여럿일 수 있으나 특히 ‘알키비아데스’는 여러 다른 대화편에서 제시된 논의들이 압축적으로 들어 있기 때문에 고대에는 플라톤 입문서로 활용되기도 했다. 원래 델피의 신전에 있던 글귀인 ‘너 자신을 알라!’는 오늘날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대변하는 모토처럼 되었지만 정작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일반인뿐만 아니라 철학 전공자들까지도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플라톤의 대화편 가운데 ‘알키비아데스’는 이 말과 관련된 소크라테스의 주장과 면모가 가장 적극적으로, 그리고 매우 상세하게 그려져 있으며 이런 점에서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이해하려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대화편이다.

○ 목차
알키비아데스 1
1. 작품해설
알키비아데스의 생애
줄거리 및 철학적 논의거리
진위 논쟁
2. 내용 구분
3. 등장인물
본문주석
알키비아데스 2
1. 작품 해설
특성과 주제
줄거리
진위 논쟁
작품의 성립 연대와 설정 연대
2. 내용 구분
본문주석
부록
○ 저자소개 : 플라톤(Platon)
플라톤은 그 유명한 펠로폰네소스전쟁이 시작된 지 4년째 되는 해, 그리스 아테나이에서 태어났다. 전쟁은 기원전 404년 아테나이의 패배로 끝났으므로 전쟁 속에서 태어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성장했다.

플라톤 집안은 비교적 상류계급이었고 그러한 배경의 귀족 출신 젊은이답게 정계 진출을 꿈꾸었지만, 믿고 따르던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정치적인 배경이 있음을 알고 철학을 통해 사회의 병폐를 극복하기로 결심한다. 자주 외국 여행길에 올라 이집트·남이탈리아·시칠리아 등지로 떠났던 플라톤은 기원전 4세기 초 아테나이로 돌아와 서양 대학교의 원조라 할 아카데메이아 학원을 열고 철학의 공동 연구, 교육, 강의를 시작했다. 그곳을 통해 뛰어난 수학자와 높은 교양을 갖춘 정치적 인재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들을 배출하며 집필활동에 전념한다. 주로 스승 소크라테스가 등장해 대화를 주도하는 철학적 대화편을 집필하는데, 그러한 대화편이 무려 25편에 달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이온』 『프로타고라스』 『메논』 『파이돈』 『파이드로스』 『국가』 『향연』 『필레보스』 『소피스트』 『정치가』 『티마이오스』 『법률』 등을 남겼다.
– 역자 : 김주일
성균관대학교 철학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정암학당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고 성균관대학교와 추계 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소크라테스틑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럼 누가』『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단편선집』등이 있으며, 「’에우티데모스’의 쟁론술과 대화술의 대비가 갖는 몇 가지 함의들」등 몇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 역자 : 정준영
성균관대학교 사범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교 철학과 대학원에서 플라톤 철학에 대한 연구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정암학당 연구원 및 대진대학교 연구전담교수로 있다. 「프로타고라스와 자기논박」등 전공 분야의 논문을 비롯하여 「인문학적 탐구로서 서양 고전 번역의 의미」「근대 한국 사회에서 서양 중세 철학의 수용과 번역의 문제」등 번역 문제를 다룬 논문들을 발표하였다. 현재는 서양 고대의 서사시, 비극, 철학의 사상적 연관성과 차이를 탐색하는 쪽으로 관심을 넓히고 있다.
○ 내용
짧은 서문에서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에 대한 자신의 무한한 사랑을 드러낸다. 그 다음으로는 알키비아데스에게 자신이 필요한 여러 이유를 밝히고 있다. 책 말미에 이르면, 아테나이의 젋은이인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의 논증에 설복되는데, 소크라테스는 궁극적으로 알키비아데스가 정계에 진출하는 것을 만류하고자 한다. 고대에 ‘알키비아데스 1’은 플라톤 철학의 훌륭한 입문서로 평가받았으며, 그런 까닭에 (고대 이래로) 이 대화편에 플라톤 전집에 수록된 듯 하다.
– 알키비아데스1
117d~118b
소크라테스: 그러니까 알지 못하는 것들에 관해서, 자네가 그걸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는 한에서는 헤매지 않겠지?
알키비아데스: 그럴 성싶습니다.
소크라테스: 그러면 행동상의 잘못들 또한 이런 무지탓에, 즉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고 생각하는 무지 탓에 있게 된다는 것을 자네는 이해하겠는가?
알키비아데스: 그건 또 무슨 뜻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소크라테스: 아마도 우리는 우리가 행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때에 행동에 착수하겠지?
알키비아데스: 예
소크라테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알지 못한다고 생각할 경우엔, 아마도 남들한테 그 일을 넘기겠지?
알키비아데스: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소크라테스: 그러면 알지못하는 자들 가운데 이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일에 관해서는 남들한테 맡기는 덕북에 잘못을 범하지 않고 살아가지 않겠나?
알키비아데스: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 잘못을 범하는 자들은 어떤 이들일까? 생각하건대 아는자들은 적어도 아닐텐데 말이네.
알키비아데스: 분명 아니지요.
소크라테스: 그러면 아는 자들도 잘못을 범하는 자들이 아니고, 알지 못하는 못하는 자들 중에서 자신이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들도 잘못을 범하는 자들이 아니니까,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생각하는 자들 말고 달리 또 누가 남아 있는가?
알키비아데스: 없지요, 남은 건 이들뿐입니다.
소크라테스: 그러니까 이런 무지가 나쁜 것들의 원인이요 가장 나무랄만한 무지이지?
알키비아데스: 예.
소크라테스: 그러면 가장 중요한 일들과 관련될 경우, 그때는 그런 무지가 가장 유해한 것이며 가장 충한 것이지 않겠나?
알키비아데스: 물론 입니다.
소크라테스: 어떤가? 자네는 정의로운 것들, 아름다운 것들, 좋은 것들, 이로운 것들보다 더 중대한 것을 말 할 수 있겠나?
알키비아데스: 분명코 없습니다.
소크라테스: 자네가 이것들에 관해 헤매고 있다면, 앞서 언급된 것들을 통해 보건대, 자네는 가장 중요한 것들에 대해 무지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하지 않은가?
알키비아데스: 그런 것 같습니다.
119b~119c
알키비아데스: 소크라테스 선생님, 함께 심사숙고해 보아야겠죠. 그리고 정말로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이해하겠고 동의도 하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선생님 말씀은, 나랏일을 행하는 자들이 소수를 제외하곤 교육을 받지 못한 자들이라는 것이죠.
소크라테스: 그런데 그게 뭐 어떻다는 건가?
알키비아데스: 그들이 아마 교육을 받은 자들이라면, 그들과 맞서 싸우려는 자는 운동선수를 상대할 때처럼, 배우고 단련을 하고 난 다음 달려들 필요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실은 그들도 나랏일에 문외한인 상태에서 임했으니, 그들과 맞서 싸우려는 자가 단련을 할 필요가 뭐 있고 배우는 일로 애를 쓸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저는 자질만큼은 아들보다 아주 훨씬 더 뛰어나다고 확신하거든요
132c~133d
소크라테스: 그리고 바로 그다음으로 합의 본 것은 혼을 돌봐야 하고 그것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었네.
알키비아데스: 분명합니다.
소크라테스: 신체와 돈에 대한 돌봄은 다른 이들에게 넘겨야 하고.
알키비아데스: 물론입니다.
소크라테스: 그러면 우리가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가장 확연하게 알 수 있을까? 이것을 알고나면 우리 자신고 알 수 있을 것 같네. 그러고 보니, 신들께 맹세코, 우리는 좀 전에 생각해 봤던 델피의 글귀가 알려주는 좋은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알키비아데스: 무엇을 생각하시고 하시는 말씀인가요, 소크라테스 선생님?
소크라테스: 나는 그 글귀의 의미이자 그 글귀가 우리에게 하는 조언이라고 내가 추측하는 것 정도를 자네에게 말하고자 하네. 그것의 사례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게 아니고, 시각의 경우에만 있는 듯하네.
알키비아데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소크라테스: 자네도. 살펴보게. 만약 그 글귀가 사람에게처럼 우리의 눈에게 ‘너 자신을 보라’고 조언한다면, 무엇을 충고한다고 우리는 이해하겠는가? 눈이 그것을 보게 되면 자신을 보게 되어 있는 것을 보라는 것 아니겠는가?
알키비아데스: 분명합니다.
소크라테스: 그러면 있는 것들 중에 무엇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그것과 우리 자신을 동시에 볼 수 있겠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까?
알키비아데스: ‘거울과 그 비슷한 것들을 들여다봐서’ 인게 분명합니다. 소크라테스 선생님.
소크라테스: 옳은 말일세. 그러면 우리가 보는 수단으로 삼는 눈에도 그와 비슷한 뭔가가 있지 않겠는가?
알키비아데스: 물론입니다.
소크라테스: 눈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마치 거울 속에처럼 맞은편 사람의 눈동자 안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곰곰이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그것을 들여다보는 사람의 영상이라서 우리는 그것을 눈부처라고 부르지.
알키비아데스: 맞는 말씀이십니다.
소크라테스: 그러니 눈은 눈을 보면서, 특히 눈의 가장 훌륭한 부분이자 눈이 보는 수단으로 삼는 바로 이것을 들여다보면서, 자기 자신을 볼 것일세.
알키비아데스: 그런 듯합니다.
소크라테스: 사람에 속하는 것이든 있는 것들 중 어느 것이든, 이것과 닮은 것 말고 다른 것을 들여다봐서는 눈이 자신을 보지 못할 걸세.
알키비아데스: 맞는 말씀이십니다.
소크라테스: 그러니 눈이 자신을 보려고 한다면, 눈을 들여다봐야 하고, 눈의 훌륭함이 나타나는 그 영역을 들여다봐야 하네. 이것이 눈동자겠지?
알키비아데스: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 친애하는 알키비아데스, 그러니 혼도 자신을 알려면, 혼을 들여다봐야 하고 무엇보다고 혼의 훌륭함, 즉 지혜가 나타나는 혼의 이 영역을 들여다봐야 하며, 또 이와 닯은 다른 것을 들여다봐야 하네.
알키비아데스: 그럴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 선생님.
소크라테스: 그러면 혼의 부분들 가운데 아는 것과 분별하는 것이 자리 잡고 있는 이것보다 더 신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말할 수 있을까?
알키비아데스: 말할 수 없습니다.
소크라테스: 그러니 혼의 부분인 이것이 신과 비슷하고, 어떤 사람이든 이것을 들여다봐서 신적인 것 전부, 즉 신과 분별을 알고 그렇게 해서 자기 자신도 가장 잘 알게 될 것이네.
알키비아데스: 그런 듯합니다.
소크라테스: 그러니 눈에 있는 반사물보다 거울이 더 분명하고 밝듯이, 그렇게 신도 우리의 혼 속에 있는 가장 훌륭한 것보다 더 순수하고 더 밝겠지?
알키비아데스: 소크라테스 선생님, 그런 듯 합니다.
소크라테스: 그러면 신을 들여다봄으로써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반사물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고, 인간적인 것들 중에서 혼의 훌륭함을 들여다봄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을 가장 잘 보고 가장 잘 알 수 있을 것이네.
– 알키비아데스2
146d~147b
소크라테스: 우리가 다시 말이네만, 많은 사람이 가장 좋은 것을 놓치고 있는데, 내 생각에 이는 그들이 대개 지성은 없이 판단만을 신뢰하기 때문이네.
알키비아데스: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 그러니 알거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무척 실행하고 싶어도 실행하면 십중팔구 이익보다 손해를 입는 경우라면, 아무것도 알지 못하거나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편이 많은 사람에게 이익이 되네.
알키비아데스: 지극히 맞는 말씀이십니다.
소크라테스: 그러니 보게, 가장 좋은 것에 대한 앎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상태라면 다른 앎의 소유만으로는 이익을 보는 경우가 드물고, 대개의 경우 그 소유는 그것을 가진 자에게 손해를 끼치는 듯하다고 내가 말했을 때, 내가 정말로 옳게 말한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알키비아데스: 그때는 아니었더라도 지금은 그렇게 여겨집니다, 소크라테스 선생님.
소크라테스: 그러니 나라든 혼이든 장차 옳게 살고자 한다면, 이 앎에 매달려야 하네. 그야말로 병자가 의사에게, 또는 안전하게 항해를 하려는 사람이 키잡이에게 매달리듯이 말일세. 이 앎 없이는 재산의 소유나 육신의 힘, 또는 그와 비슷한 다른 어떤 것에 관한 운의 바람이 힘차게 불면 불수록, 그것들로부터 더 큰 잘못이 생겨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듯하기 때문일세. 이른바 아는 것이 많고 재주 많은 사람이, 고아처럼 이 앎은 잃고 다른 것들에 대한 하나하나의 앎에 이끌려서, 숱한 악천후를 맞는 게 정말 당연하지 않는가? 내 생각에 이것은 그가 큰 바다에서 키잡이 없이 지내며 길지 않은 시간의 인생을 달리는 탓일세.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