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인류세 : 거대한 전환 앞에 선 인간과 지구 시스템
클라이브 해밀턴 / 이상북스 / 2018.9.25
.점점 더 예측불가해지는 지구에서 앞으로 인류는 어떻게 살아갈까? 인간과 지구의 미래에 대한 과학적·철학적 고찰과 전망
이 책은 45억 년 된 지구에 현생인류가 등장해 살아온 지 20만 년이 지나 역사상 현 시점, 즉 ‘인류세’(Anthropocene)에 도달했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암중모색하는 책이다. 암중모색(暗中摸索)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우리에게 닥친 변화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빠르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인간의 힘이 너무 강력해져 지구 시스템 전체의 기능을 교란할 정도가 되어, 급기야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인 인류세를 초래했다. 문명이 번성할 수 있었던 홀로세의 온화한 조건들은 사라지고 있다. 인류는 ‘깨어난 거인’ 앞에 움츠러들고 있다. 여러 이상현상과 불가항력적 사태를 일으켜 인류를 괴롭히며 마치 반격을 가하는 것처럼 보이는 지구에서 인류는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 모두에게 길게 드리워진 인류세의 그림자를 똑바로 인식하고 나아갈 길을 모색해야 할 절박한 시점이다. 이미 지구 시스템은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늦기 전에’ 이다.

○ 목차
저자 서문: 깨어난다는 것
제1장 ‘인류세’라는 균열
지구 역사의 균열 │ 자연의 의지 │ 지구 시스템 과학 │ 그릇된 과학적 해석 │ 에코모더니즘의 허울 │ 이름을 둘러싼 논란
제2장 새로운 인간중심주의
모든 것을 의심할 것 │ 인간중심주의의 귀환 │ 인류세의 이율배반 │ 새로운 인간중심주의 │ 세계를 만드는 존재 │ 신인간중심주의 vs 에코모더니즘 │ 기술을 찬양하며
제3장 친구와 적
다시 부활하는 거대서사 │ 포스트휴머니즘 이후 │ 자연의 이상현상 │ 잘못된 존재론적 전회 │ 우주론적 감각 되살리기?
제4장 행성의 역사
인간의 중요성 │ 역사에는 의미가 있을까? │ 계몽적 우화 │ “정치는 운명이다”
제5장 인간의 흥망성쇠
자유는 자연에 엮여 있다 │ 책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 유토피아 없이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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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 클라이브 해밀턴(Clive Hamilton)
호주 캔버라의 찰스스튜어트 대학교 공공윤리 담당 교수.
호주국립대학교에서 역사학·심리학·순수수학, 시드니 대학에서 경제학 학위를 받았다.
1986년에는 영국 서섹스 대학 경제발전연구소에서 “한국의 자본주의적 산업화”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 지구적 현상인 성장 이데올로기를 치밀하고 예리하게 비판하는 경제학자이자 기후변화와 복지, 민영화 등 공공정책 분야에서도 진보적인 이론을 수립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실천하는 지식인이다.
한국내에 소개된 『성장숭배』(Growth Fetish, 바오출판사), 『누가 지구를 죽였는가』(Requiem for a Species, 이책) 외에도 Earthmasters(2013), What Do We Want? The story of protest in Australia(2016), Silent Invasion: China’s Influence in Australia(2018)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 역자 : 정서진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 번역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스파이스-향신료에 매혹된 사람들이 만든 욕망의 역사》, 《식량의 제국》, 《미식 쇼쇼쇼》, 《문명과 식량》, 《우리가 몰랐던 도시》, 《인류세》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인류세’는 오독, 오해, 이념적 포섭에 빠르게 휩싸여 이 개념을 처음 접하는 대다수가 심각하게 오도되기 쉽다. ‘인류세’는 자연경관에 미치는 인간의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확산되거나 생태계를 변형시키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용어가 아니다. 인류세는 ‘지구 시스템 전반의 기능에 생긴 균열’을 설명하는 용어라는 것과 이 균열로 인해 현재 지구가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 p.28~29
인류세를 개탄하거나 두려워할 게 아니라 축복해야 할 사건으로 바라보는 무리 중 가장 눈에 띄는 이들은 주로 미국에 집중되어 있는 자칭 ‘에코모더니스트’(ecomodernist)라고 하는 환경운동가들이다. 이들이야말로 주류 경제•정치 체제의 생각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전형이라 할 만하므로, 이들의 세계관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재계와 정계의 권력 정점에 있는, 세계경제포럼이 열리는 다보스에서 모일 거라 추정되는 이들이 인류세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고자 한다면, 바로 이 에코모더니스트들에게서 힌트를 얻을 것이다. — p.48
인류세에서 “우리 공동의 터전은 우리를 안아주기 위해 두 팔을 벌리는 아름다운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함께 살아가는 자매와 같다”고 믿는 것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로마 교황의 회칙처럼 세계를 “남자와 여자들에게 맡긴” 것으로 보는 관점은 홀로세에서는 그럴듯한 작업가설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은 아니다. 오늘날 어머니 지구가 두 팔을 벌린다면, 우리를 안으려는 게 아니라 으스러뜨리기 위해서다. 우리의 목표는 “자연을 구하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서,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우리를 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지구 시스템을 교란하는 모든 행위가 우리를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낮춘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말이다. — p.85~86
우리는 지구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지구 시스템을 통제하려는 것(이를테면 행성 규모의 지구공학 기술을 통해)은 어리석은 시도다. 하지만 뒤로 물러나 모든 것을 혼란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고자 희망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우리가 지구 시스템에 초래한 혼란 중 일부는 현재 되돌릴 수 없으며, 그로 인한 영향은 수천 년간 지속될 것이다. 홀로세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다. — p.90
만약 인간이 지구의 심원한 시간 중 불과 20만 년을 살다가 종말을 맞이한다고 해도 강한 의미에서 인간 없이 지구는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로 남아 있다. 인간이 없다면, 지구의 존재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물론 인간이 없는 지구를 상상할 수는 있지만, 오직 지적인 존재만이 머릿속에 상상할 수 있다. 인간만이 지구상에서 세상을 만들며, 지구가 하찮은 우주적 존재로 전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오직 인간만이 지구를 우주적 이해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할 것이다. 지구에서 인간의 소멸은 우주적 의미를 갖는 비극이 될 것이다. — p.185
이제 우리 인간의 미래는 지구의 지질학적 진화의 미래와 얽히게 되었다. 앞으로 우리의 역사는 점차 인간의 영향을 받는 ‘자연’ 과정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인류세에서 지구를 통제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에 이러한 자연 과정에 행위성이 부여되면서 점차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게 될 것이다. — p.205
현재 인류의 역사와 지구의 역사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충돌보다 더 큰 충돌은 없을 것이다. 인간의 공통된 운명을 좌우하는 능력이 더 이상 인간에게 있지 않을 가능성은 사실상 인류세 과학에 내재된 의미이며, 이는 근대의 종말을 뜻한다. 우리가 기술을 이용해 지구 시스템의 붕괴를 막고 지질학적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 있을 거란 확신은 새로운 지질시대를 완전히 잘못 이해한 것이다. 이제 지구의 운명과 인간의 운명이 합쳐졌기 때문이다. — p.207
우리 시대의 위험은 더 이상 필연성과 동떨어져 자유가 행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류가 깨닫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제 더 이상 순응하는 지구에서 자유롭게 행위성을 행사하던 근대인들처럼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 p.221~222
죽어가는 지구에서 도망가길 꿈꾸는 사람들에게 내재된 도덕적 태도를 비롯해 기존의 윤리구조를 인류세에 적용하기 전에, 우리는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어떤 존재가 지구의 기능에 개입했고, 이러한 사실들이 밝혀졌는데도 기존의 행위를 그만두지 않으려고 하는가? 어떤 존재가 법과 윤리강령을 만들었을까? 그리고 이제는 누가 기술적 힘을 발휘해 우주로 도피하거나 혹은 태양지구공학 기술을 통해 지구를 진압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을까? 우리는 누구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의 본질은 무엇인가? — p.233~234
나는 우리가 가장 어려운 진실과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인류세에서 의지할 수 있는 윤리적 자원을 가지고 있지 않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찬장이 텅 비어 있다. ‘책임감’에 대한 호소는 그 가치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무게도 존재론적 실체도 가지고 있지 않다. 과거 유럽인이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고 진실로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면, 이제 우리는 가이아를 두려워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가이아는 구세주가 아니다. 이제는 자기보존이라는 유일한 동기가 남아 있지만 너무도 약해 보이는 부정적인 동기다. 만약 이를 뛰어넘어 새로운 동기를 찾아낸다면, 우리는 지구라는 행성에서 인류의 지대한 중요성에 뿌리를 둔, 새로운 우주론적 감각을 통해 인도되는 존재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 p.242
소행성 충돌 같은 최후의 대재앙을 제외하면, 인류에게 있어 ‘종말’이란 결과를 예측하지 못한 채 하염없이 이어지는 투쟁의 시대가 될 것 같다. 자유의 남용에 대한 응징이 있다면, 그것은 하루 만에 끝나는 심판이 아니라 카프카(Franz Kafka)의 소설에서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재판’의 형태를 취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인간은 지구의 유한성과 인간의 거의 무한한 잠재력과 욕구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기 위해 인류세의 심판과도 같은 시련을 통과해야 했는지 모른다.— p.249~250

○ 출판사 서평
.점점 더 예측불가해지는 지구에서 앞으로 인류는 어떻게 살아갈까? 인간과 지구의 미래에 대한 과학적·철학적 고찰과 전망
해마다 기록을 갱신하며 우리를 괴롭히는 폭염과 폭우, 또 세계 곳곳의 이상기후 현상들을 접할 때마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지구에 뭔가 문제가 생기고 있음을 상기한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북극 최후의 빙하마저 녹기 시작했다’는 뉴스까지 전해졌다. 마지막 빙하기였던 약 2만 년 전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그린란드 북쪽 지역 빙하의 면적이 1980년대와 비교해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여러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추정한 결과 약 2030년 정도면 북극 빙하가 완전 소멸될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빙하가 녹는 것은 지구 도처에서 일어나는 이상기온 현상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이 책은 45억 년 된 지구에 현생인류가 등장해 살아온 지 20만 년이 지나 역사상 현 시점, 즉 ‘인류세’(Anthropocene)에 도달했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암중모색하는 책이다. 암중모색(暗中摸索)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우리에게 닥친 변화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빠르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두서너 세대는 족히 지나야 온전히 이해가 가능한 변화가 순식간에 일어났다. 우리 시대 최고의 과학자들은 지구의 생명유지 시스템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훼손되는 엄청난 재앙이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아직 국제층서위원회에서 인류세를 공식 도입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지구과학자들이 홀로세가 끝나고 인류세가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급격히 증가했고, 그로 인해 지구 시스템(Earth System) 전반에 미친 엄청난 영향력 때문이다.
인간의 힘이 너무 강력해져 지구 시스템 전체의 기능을 교란할 정도가 되어, 급기야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인 인류세를 초래했다. 문명이 번성할 수 있었던 홀로세의 온화한 조건들은 사라지고 있다. 인류는 ‘깨어난 거인’ 앞에 움츠러들고 있다. 여러 이상현상과 불가항력적 사태를 일으켜 인류를 괴롭히며 마치 반격을 가하는 것처럼 보이는 지구에서 인류는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 모두에게 길게 드리워진 인류세의 그림자를 똑바로 인식하고 나아갈 길을 모색해야 할 절박한 시점이다. 이미 지구 시스템은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늦기 전에.
.인간 vs 지구
과학계에서는 인간의 힘이 매우 강력해져 자연의 거대한 힘들과 겨루어 행성의 경로를 변화시킬 정도가 되었다고 말한다. 다른 일각에서는 홀로세 동안 잠들어 있던 자연의 힘들이 깨어나 더 위험하고 더욱 통제가 어려워지는, 장기간 지속될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이제까지 결코 지금처럼 강력했던 적도, 자연에 대해 지배력을 행사했던 적도 없다.
그러나 현재 우리 인간은 거대한 빙상이 마침내 물러나 인구가 번성하는 데 적합한 온대기후의 방대한 대지가 펼쳐진 이후 최소 1만 년 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자연의 힘 앞에 취약하게 놓인 상태다. 기후 시스템은 점점 강력한 힘을 발휘해 더 많은 폭풍과 들불, 가뭄, 폭염을 일으키고 있다. 기술이 인간으로 하여금 강의 흐름을 바꾸고 원자의 힘을 활용하게 이끌었지만, ‘가이아(Gaia)가 격노해’ 극심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 앞에서 우리 인간의 힘은 보잘것없어 보인다. 유력한 생물의 손아귀에서 기술이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잠재된 힘들이 분출되어 더욱 예측하기 어렵고 더 위험해졌으며, 결정적으로 인간의 지배를 덜 받게 되었다.
인간은 더 강해졌다. 자연도 더욱 강해졌다. 이 둘을 합쳐 생각하면 지구상에는 더 강력해진 힘이 작용하고 있다. 인간과 지구 사이의 힘겨루기가 진행 중인 것이다. 이 줄다리기에서 인간 은 지구를 우리의 영향권 안으로 끌어당기려 애쓰고 있다. 지구는 우리를 자신의 영향권으로 잡아당기고자 한다. 일부 철학적 입장은 지구의 강력해진 힘만을, 다른 입장은 인간의 강력해진 힘만을 인정한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두 힘 모두를 인정하지 않는다. 지구와 인류의 이런 힘겨루기에서 단순하게 낙관 또는 비관하기보다 지구와 인간의 힘 모두를 인정할 때 인류가 직면한 새로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클라이브 해밀턴은 인류세를 ‘우리가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하도록 요구하는 시대’로 규정한다. ‘깨어난 거인’ 지구의 도전과 그 앞에 선 인류의 운명을 이제 냉정하고 엄밀하게 반추해야 할 시간이다.
○ 추천평
“지나치게 뜨거워진 행성 지구를 떠나 로켓을 타고 새로운 세계로 이주하거나 대기에 황 입자를 가득 뿌려 태양광을 차단하자는 생각에 열광하는 이들에게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우리의 진정한 책임에 대해 매우 설득력 있게 서술한 이 책을 소개한다.” – 빌 맥키븐(Bill Mckibben), 『자연의 종말』(The End of Nature)의 저자
“클라이브 해밀턴은 인류세의 개념에 관한 논쟁에서 독창적이고 중요한 의미를 갖는 뚜렷한 목소리를 내왔다. 이 책은 인문학에서 인류세 개념을 둘러싼 각기 다른 해석들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는 다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또한 전 지구적 기후변화의 시대에서 인간으로 살아가는 의미에 대해 아주 독자적인 통찰력을 보여준다. 우리 시대의 필독서라 할 만하다.” – 디페쉬 차크라바르티(Dipesh Chakrabarty), 시카고 대학교 사학과 교수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