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전쟁하는 세상 : 동서양의 타협할 수 없는 투쟁의 역사, 문명은 왜 계속 충돌하는가
안토니 파그덴 / 살림출판사 / 2009.7.30
인류의 역사와 전쟁의 역사는 그 맥을 같이 할 정도로 인간이 사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전쟁이 있어왔다. 따라서 전쟁사를 연구하는 것은 곧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동서양이 지난 2,500년 동안 흘려온 피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두 문명이 왜 충돌할 수 밖에 없는지 자세하게 분석하는 전쟁역사서이다.
저자는 동서양의 차이가 단순한 정치적, 종교적 문제만은 아니라고 역설한다. 동양과 서양, 그 격변하는 관계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려면 십자군 전쟁, 이슬람의 탄생, 기독교의 탄생을 넘어 기원전 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럽은 아시아로부터 태어났고 수 세기 동안 두 대륙은 하나의 역사를 공유했다. 그러나 페르시아의 황제 크세르크세스가 일으킨 정복 전쟁으로 반목은 시작됐고 그 후로 결코 멈추지 않았다. 이 책은 그 오랜 투쟁의 역사를 말한다.
이 책에는 동양과 서양의 문명을 일관된 시각으로 조망하는 저자의 통찰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 문명이 쇠퇴하고 또 다른 문명이 번성하는 것을 반복함으로 통해 인류의 역사가 이어져 왔고 또 진행될 것이다. 격돌하는 두 문명에 대한 명쾌한 분석과 해설은 인류의 역사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게 할 것이다. 인류가 걸어온 길을 살펴봄으로써 얻는 교훈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바를 결정하게 하는 자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 목차
프롤로그
1장 끝없는 반목의 시작
2장 알렉산드로스의 그늘 아래
3장 시민 세상의 도래
4장 교회의 승리
5장 이슬람의 도래
6장 전쟁의 영역
7장 끝없는 공포-오스만투르크
8장 이성의 발견
9장 개화된 오리엔탈리즘
10장 서양의 마호메트
11장 제국주의의 진로
에필로그 미래를 향해
○ 저자소개 : 안토니 파그덴 (Anthony Pagden)
유럽과 스페인 역사 전문가로서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으며,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하버드, 존스홉킨스 대학교를 거쳐 현재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에서 정치와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민족과 제국』, 『새로운 세상과 유럽의 충돌』, 『스페인 제국주의와 정치적 상상력』, 『전세계의 지배자』, 『유럽의 생각』 등 다수가 있으며, 워싱턴 근동 정책 연구소에서 수여하는 메달과 유진 볼턴 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그 밖에 「뉴욕 타임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뉴 리퍼블릭」 등 많은 매체에도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 역자 : 추미란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 석사를 수료하고 인도 델리대 역사학과와 철학과에서 각각 인도 고대사와 인도 철학으로 석사 학위 (M.A)와 준박사 (M.phil) 학위를 받았다. 델리대 불교학과에서 박사 (Ph-d) 과정을 수료했다. 경향신문 주간지 『뉴스메이커』의 통신원으로 활동했고, 격월간지 《불교와 문화》에 수행 문화를 연재했으며, 대한무역진흥공사 (KOTRA)주관 사업 상담 통역 일을 했다. 현재 인문 분야 전문번역가로 활동하며 정신세계와 자기계발 관련 출판 기획을 겸하고 있다. 번역한 책으로 『생의 아침에 문득 돌아보다』(산해)와 『구루, 종교, 권위주의』(종교와 이성), 『조폭연대기』(이마고), 『소울 포토』,『달라이 라마의 고양이』, 『인물 사진 시크릿』 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 동서양 2,500년 투쟁의 역사를 조망한 역작
동서양의 반목의 역사를 쉽게 풀어내는 동시에 그 원인을 분석한 인문서. 동서양이 2,500년 동안 흘린 막대한 피의 역사를 다루면서 민족적인 차이가 점차 침식해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불화와 반목에 관해 명쾌하고 알기 쉽게 설명한다.
안토니 파그덴은 동서양의 차이가 단순한 정치적, 종교적 문제만은 아니라고 역설한다. 동양과 서양, 그 격변하는 관계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려면 십자군 전쟁, 이슬람의 탄생, 기독교의 탄생을 넘어 기원전 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유럽은 아시아로부터 태어났고 수 세기 동안 두 대륙은 하나의 역사를 공유했다. 그러나 페르시아의 황제 크세르크세스가 일으킨 정복 전쟁으로 반목은 시작됐고 그 후로 결코 멈추지 않았다. 이 책은 그 오랜 투쟁의 역사를 말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로마인들은 하나의 문명을 만들어 유럽과 아시아를 합치려고 했다. 서양이 기독교화하고 동양의 상당 부분이 이슬람화하면서 세상의 지배권을 놓고 두 종교 사이에 잔인한 전쟁이 벌어졌다. 17세기 즈음 교회가 쇠퇴하면서 서양에는 철학이 도래했다. 서양의 과학적 합리주의가 신의 말씀 속에서 궁극적인 구원을 찾는 동양과 대립했다. 18~19세기에 위대한 제국 오스만, 무굴, 사파비가 붕괴했고 서양은 아시아 대부분을 지배했다. 이슬람과 서구 모더니즘의 만남으로 이슬람 세계의 개혁론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은 서로 싸우기 시작했으며 오늘날에도 그렇다.
동서양 사이의 전쟁은 인류 역사상 가장 길고 가장 비싼 대가를 치른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서양의 독립적이고 자유로우며 비종교적인 세계관도 탄생시켰다. 민주주의도 그 세계관에 속한다. 그러한 세계관은 현대 세상의 성격을 만들었고, 또 지금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세계의 지성 자크 바전과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팬이라면 분명히 ‘전체상’을 바라보는 파그덴의 접근법에 감명을 받을 것이다.
- 격돌하는 두 문명에 관한 명쾌하고 권위 있는 해설
동서양 사이의 오랜 전쟁의 역사를 총망라한 걸작! 나폴레옹의 동양, 팔레비의 서양
1798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집트로 진군했을 때 그의 마음속에는 군사적 정복욕보다 더한 것이 있었다. 그가 이끄는 3만 명의 병사 중에는 통역, 예술가, 시인, 건축가, 경제학자, 천문학자, 골동품 연구가, 제도공, 광물학자, 식물학자, 동물학자, 화학자, 기술자, 조각가, 화가, 기구 조종사, 그리고 파리 오페라단 소속의 바리톤 가수도 포함되었다. 병사들은 군수품뿐만 아니라 몽테스키외, 루소, 몽테뉴, 볼테르의 저서 및 서양의 고전을 포함한 천여 권의 책도 운반해야 했다.
그로부터 2세기 후인 1971년. 이란의 국왕 모하메드 레자 팔레비는 외국 고위 인사들을 초청해 고대 페르시아 궁전이 있던 곳에서 일주일 동안 사치스런 축제를 열었다. 그들은 저녁으로 푸아그라를 채워 넣고 공작새 구이 요리와 샴페인 2만 5,000병을 해치웠다. 연회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 아케메네스 왕조의 전사 복장을 한 병사들에게 둘러싸인 팔레비는 자신이 다리우스와 크세르크세스의 계승자라고 선언했다.
이들은 각각 서양과 동양 문명의 계승자였지만 파그덴이 지적하는 것처럼 이들에게는 재미있는 모순점이 있었다. 동양의 계승자 팔레비는 스위스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매우 비종교적인 서구화 지지자였다. 그가 축제에 쓴 샴페인도 파리의 맥심 레스토랑에서 공수해온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서양의 계승자 나폴레옹은 자칭 열렬한 ‘오리엔탈리스트’였고, 이집트인들에게 예언자 마호메트와 위대한 코란을 공경한다고 말했다.
- 동양과 서양을 구분하는 사실과 거짓
이 책은 일찍이 헤로도토스가 표현한 것처럼 동양과 서양 사이에 존재하는 ‘영원한 반목’의 역사를 탐험한다. 동양과 서양의 다양한 문명은 서로 오랜 투쟁을 해왔다. 시대 상황에 따라 전선이 이동하고 적대감의 성질이 바뀌기는 했지만 서로 분리된 세상이라는 기본적인 생각은 양쪽 사람들의 마음속에 굳게 남았다.
그러나 동양과 서양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 파그덴의 입장은 언제나 신중하다. 그는 동양과 서양의 구분이 대체로 실체가 없으며, 모호하지만 굉장히 강력한 구시대적 유산이라고 말한다. 모든 지리적 구별이 그렇듯 동양과 서양의 개념은 명백하게 상대적이다. 동양을 근동, 중동, 극동으로 나누는 것은 영국 지배하의 인도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다분히 19세기적인 표현이다. 사실 지리적으로 따지면 동서양의 구별은 확실치 않다. 유럽의 지리학자들은 옛날부터 온갖 상상력과 재간을 부려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의미 있는 경계선을 만들고자 했는데, 그중 하나가 흑해의 마지막 출구에 위치한 헬레스폰트 (오늘날의 르다넬스) 해협이다. 그러나 그 경계선은 처음에는 돈 강 그리고 볼가 강 기슭으로 연장되는가 싶더니, 16세기 말에는 오브 강, 19세기에는 우랄 산맥까지 확장되었다. 그러다 20세기에는 마침내 우크라이나 케르치와 엠바 강 기슭으로 재조정됐다.
물론 오늘날 우리가 서양 혹은 동양을 말할 때는 이제 단순한 지리적 구분만을 뜻하지 않는다. 대체로 다른 집단의 문화적 특징, 야망, 목적 등을 뜻한다. 2006년 9월, 알 카에다가 서양이 사라질 최후의 그날까지 성전 (聖戰)을 계속할 것을 맹세했을 때, 그들이 의미한 ‘서양’에는 일본, 인도, 심지어 터키 같은 전통적으로 확실히 동양이었던 나라까지 포함되었다.
- 끝없이 이어지는 전쟁의 소용돌이
2,500년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이 놀라운 책은 동양과 서양 문명의 격돌과 그 뿌리를 파고든다. 동서양 사이의 전쟁은 신화만큼이나 오래됐다. 그리스인과 트로이인 사이에 일어난 트로이 전쟁의 전설은 이후 이어진 길고긴 싸움의 서막에 불과했다. 기원전 490 ~ 479년의 페르시아 전쟁도 트로이 전쟁처럼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있었던 일련의 대대적인 싸움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신화가 아닌 실재했던 싸움이고 정확한 기원이 있다. 그리스인은 페르시아 제국에 대항한 그들의 싸움을 자유인과 노예, 군주정과 민주정의 싸움으로 정의했다.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은 그리스 역사는 물론 전 유럽의 역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기원전 334년, 막강한 페르시아 제국을 침략했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그리스의 위대한 영웅 아킬레우스가 되어 다시 그리스의 트로이 공격을 극적으로 재현했다. 정복을 통해 세상을 문명화하려는 서양의 ‘사명’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구체적인 모습을 갖춘 셈이다. 그리고 그 후에는 로마, 십자군, 19세기 제국주의에 의해 꾸준히 이어졌다. 관점에 따라서 21세기의 미국도 그와 같은 행태를 띤다.

- 이슬람과 전쟁의 영역
이슬람의 흥기를 설명하면서 파그덴은 앞으로 전개될 이슬람-기독교 관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사건으로 711년 이슬람의 스페인 정복을 꼽는다. 당시 스페인은 싸움터이기도 했지만 이슬람과 기독교,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마지막 국경이었다. 그러므로 이슬람의 통치 아래 무슬림과 기독교, 유대교도가 함께 살았다. 불가피하게 수많은 스페인 사람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했고, 사랑에 관한 종교적 맹세도 어기게 되어서 종종 종교가 서로 다른 부부도 탄생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700년 뒤인 1492년 기독교의 그라나다 정복은 파그덴에 따르면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의 오랜 싸움에서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이슬람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세상은 이슬람의 영역과 전쟁의 영역으로 나뉜다. 전쟁의 영역은 물론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이교도들의 영역이다. 그 둘 사이에는 끝없는 전쟁만이 존재한다. 전 세계가 마호메트의 계시가 진실이라고 받아들일 때까지 계속될 전쟁, 바로 지하드이다. 오늘날 지하드는 테러리즘의 형태로 변형되었고, 이 테러리즘은 사실상 11 ~ 13세기의 십자군 전쟁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전쟁의 한 장에 지나지 않는다. 파그덴에 따르면 십자군 전쟁은 역사적 과정의 시작일 뿐 결코 끝난 게 아니며, 지금도 진행중이다. 그것은 이슬람과 기독교의 끝나지 않는 분쟁을 위한 기초를 제공했다. 1990년 걸프전, 199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리고 가장 최근의 이라크 전쟁도 간단히 말해 모두 ‘십자군 전쟁’이었다.
- 기독교의 승리
14세기 초에는 오스만 제국이 힘을 얻기 시작했으며, 그 이후 몰락해가던 동로마 제국을 점령하고 유럽 기독교 세계의 존재 자체를 뿌리까지 위협했다. 오스만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3개 대륙에 걸친 광대한 영토를 통치했으며, 16~17세기에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1683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의 전투가 실패로 돌아간 이후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의 관계는 변하기 시작했다. 수 세기 동안 기독교도는 이슬람의 정복 전쟁을 저지하는 것에 만족했고 기껏해야 가능하면 기독교의 성지로 간주되는 팔레스타인 같은 땅을 되찾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제 오스만 제국의 힘이 눈에 띄게 약해졌으니 이슬람의 힘을 제한하는 것뿐 아니라 완전히 없애버리는 것도 생각해볼 만했다.
쇠퇴하던 오스만 제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파그덴의 표현을 빌리면 결국 오스만이라는 병자는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오스만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은 제국의 붕괴와 현대 터키 공화국의 수립을 불러왔다. 또 중동 지방 전역에 서구 열강들을 배후로 한 인위적 총독 국가들의 성립도 가져왔다. 그 결과 이슬람 세계의 내부적 분열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결국 1918년 영국과 이탈리아 군인들이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로 들어갔고,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1453년 오스만의 비잔틴 제국 정복에 빗대어 제2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이라고 생각했다. 이로써 수 세기에 걸친 싸움의 정점에서 서양이 헤로도토스가 ‘영원한 반목’이라 불렀던 유럽과 아시아 사이의 싸움을 끝낸 것 같았다.
- 문명의 차이
파그덴은 동·서가 나누어지는 이유를 민주적인 원리 대 독재적인 원리, 세속주의 대 신정주의, 기독교 대 이슬람의 대립에서 찾는다. 그에 따르면 모든 대립은 차이에서 기인한다. 이슬람에서는 하나의 법, 즉 샤리아밖에는 없다. 그 샤리아는 신의 법이므로 언제나 바뀔 수 없고 영원하다. 또한 이슬람은 기독교와 다르게 세속적인 통치자를 신과 동일시한다. 반면 기독교는 천상의 왕국과 지상의 국가를 구별한다. 그러므로 이슬람은 종교와 정치의 분리라는 서구적 원칙과는 절대로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오사마 빈 라덴이 썼다는 ‘미국에게 보내는 편지’가 2002년 11월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었는데, 이를 보면 미국이 범한 주요 범죄는 바로 정치와 종교의 분리이다. “미국은 알라의 샤리아보다 미국이 원하고 지향하는 미국인이 발명한 것을 헌법과 법률로 채택하는 나라이다. 미국은 정치와 종교를 분리해 창조자 신에 대한 절대적 권위를 긍정하는 인간의 순수한 본성을 부정한다. … 미국은 인류가 목격한 가장 최악의 문명이다.” 다시 말해 이슬람 사회는 인간의 의지와 계약이 아닌 궁극적으로 신의 명령에 기반을 둔 사회인 반면, 기독교 서양은 모든 측면이 인간 선택의 문제로 귀결되는 사회이다. 그것은 독실한 이슬람교도 입장에서 신에 대한 모욕인 것이다.
파그덴은 서양의 계몽주의와 세속주의에 조금 더 우호적인 시각을 드러낸다. 계몽주의가 종교적 교의를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었고, 세속주의가 그 결함에도 불구하고 미래 서양의 진보를 확실히 보장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이 책을 통해 서양이 동양을 비롯한 전 세계를 어떻게 지배하게 됐는지 떠벌리는 것은 아니다. 그는 모든 유일신 종교가 만들어낸 신화들이 다른 신념 체계보다 인류에 더 지속적인 해를 끼쳐왔다는 것도 당당하게 말한다. 이 책에서 기독교가 이슬람보다 아주 조금 나아 보인다면 그것은 그가 설명한 대로, 단지 기독교가 이슬람보다 내부적 모순에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즉 18세기 말 서양의 정치사회적 삶에서 종교적 존재를 모두 제거해버렸던 다양한 비종교적 신념 체계에 저항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끝나지 않은 전쟁
오늘날 ‘동양’과 ‘서양’ 사이의 오래된 지리적 경계선은 모두 사라졌다. ‘서양’은 이런저런 수단으로 옛 오스만 제국이었던 동양의 많은 지역을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압도했고 ‘동양’은 서양 전역으로 들어왔다. 현대 미국과 유럽 지역에도 상당한 이슬람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들 중 일부는 사회에 통합되기를 선택했고 또 일부는 그렇지 않다. 세계화한 세상에서 이민이란 단지 외국의 법체계 속에서 산다는 뜻이다. 아프리카나 극동 지방에서 온 사람들에게 그것은 별로 어려운 일 같지 않다. 그러나 독실한 이슬람 사람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유럽의 법을 준수해야 한다면 그들은 이미 진정한 ‘이슬람교도’가 아닌 것이다. 전 유럽과 미국 곳곳에 이슬람 샤리아에 따른 새로운 이슬람 게토가 생겨나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동양’과 ‘서양’은 오래된 싸움을 계속할 것이다. 최소한 당분간 그런 싸움은 테러와 시위 정도가 되겠지만 그것이 지난 2,500년 동안의 싸움보다 덜 불쾌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결국 지난 2,500년 동안의 싸움만큼이나 무익한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