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지혜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헤럴드 블룸 / 루비박스 / 2008.2.14
『지혜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는 해럴드 블룸이 우리들을 인도하여 성경에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고전과 철학 속에 고립되어 온 삶의 지혜들을 독자들이 좀 더 쉽게 실현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플라톤과 호메로스,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 몽테뉴와 프랜시스 베이컨, 새뮤얼 존슨과 괴테, 에머슨과 니체, 프로이드와 프루스트, 그리고 마지막으로 토마스 복음서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비교를 통해서, 그는 우리의 사고를 형성해 온 지혜의 다양한 (그리고 상반되기까지 한) 형식들의 정수를 제공해준다. 블룸이 중요시한 논쟁은 고대부터 진행돼오던 ‘시’와 ‘철학’의 논쟁에서 어느 쪽이 더 우위인가 하는 점이다. 그는 우리가 ‘시’가 우위라는 것을 인지하는 한 호메로스와 플라톤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고 단언한다.
또한 그는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를 “『전도서』, 『욥기』, 『호메로스』, 『플라톤』과 동등한, 문학에 있어 ‘지혜의 거장’으로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선호하는 『리어왕』과 『맥베스』를 면밀히 연구한 뒤에 셰익스피어 특유의 다양한 양상의 허무주의, 즉 블룸 스스로가 ‘시적 전통’의 핵심이라고 규정지은 지혜의 한 형태를 발견해내고 있다.

○ 목차
지혜
1부 – 지혜의 위력
- 히브리 사람들 : 「욥기」와 「전도서」
- 그리스인 : 플라톤과 호메로스의 경쟁
-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
2부 – 위대한 생각은 위대한 사건이다
- 몽테뉴와 프랜시스 베이컨
- 새뮤얼 존슨과 괴테
- 에머슨과 니체
- 프로이트와 프루스트
3부 – 기독교적 지혜
- 「도마 복음서」
-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독서
종결 – 네메시스와 지혜
역자후기

○ 저자소개 : 헤럴드 블룸 (Harold Bloom)
인문학자이자 문학 비평가 해럴드 블룸은 예일 대학의 인문학 교수다. 1930년 뉴욕의 유대계 집안에서 태어난 블룸은 1947년에 코넬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해서 학사 학위를 받고, 1955년에 예일 대학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코넬 대학에서 『노튼 영문학사』의 대표 편집자이자 낭만주의 연구의 권위자인 M. H. 에이브러햄 교수를 만나 영향을 받았다. 1987년부터 1988년까지 하버드 대학의 시학 교수였고, 1988년부터 2004년까지 뉴욕 대학 대학원의 영문학 교수였다. 로마 대학과 볼로냐 대학에서 명예학위를 받았다. 1999년에 미국 예술문예 아카데미가 수여하는 비평 부문 금메달을 수상했으며, 1985년에 일명 ‘천재상’이라 불리는 맥아더 재단 펠로십을 받았다. 2002년 카탈로니아 인터내셔널 상, 2003년 국제 알폰소 레예스 상 등을 받았다.
찰스 디킨스의 『피크윅 페이퍼스』를 1년에 두 번씩 읽어 책장이 해질 정도로 이 작품을 좋아하는 블룸은 열 살 때 만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현대 시인 하트 크레인의 시 ‘무너진 탑’을 생애 내내 뇌리에 깊이 새길 정도로 일찍이 문학적 소질을 보였다. 벌써 10대 시절에 블룸은 윌리엄 블레이크부터 셰익스피어까지, 『맥베스』에서 『모비딕』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문학 세계를 넓혀간 조숙한 천재였다. “열한 살 무렵부터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일은 시를 읽고 논하는 것이었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19세기 낭만주의 시를 옹호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시의 영향력 이론’을 정립한 것으로 유명한 블룸은 문학에 대한 유미주의적 입장을 견지했으며, 역사주의, 페미니즘, 해체론, 마르크스주의 등 서구의 근대적 주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모든 비평 조류를 반박했다.
– 역자 : 하계훈
미술비평가이자 단국대학교 대학원 주임교수, 한국예술경영연구학회 학술이사이다.
고려대학교 영문학과와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런던 City University 박사과정 (예술경영)을 수료했다. 옮긴 책으로는 『큐레이터의 딜레마』, 『미래주의』, 『예술가는 어떻게 성공하는가』가 있다.

○ 책 속으로
파스칼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수상록』을 항상 눈앞에 펼쳐놓고 『팡세』를 썼을 것이라고 추측되어 왔다. 이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우리는 파스칼에게 몽테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엘리어트는 몽테뉴의 독자들이 작가에 의해 “완전히 물들었다”고 말했으며, 분명 파스칼도 마음속으로 물들어가는 고뇌를 깨닫고 있었을 것이다. 여러 사례 가운데 하나인 팡세 358장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천사도 야수도 아니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것은 천사 역할을 하던 사람이 야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 4장 몽테뉴와 프란시스 베이컨
광기에 대항하는 존슨 박사의 투쟁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그는 깊은 우울증을 멀리 떨쳐버린 적이 없었다. 당시는 윌리엄 콜린즈, 크리스토퍼 스마트, 윌리엄 카우퍼를 위시한 최고의 시인들이 정신병으로 고통 받던 시대였다. 존슨은 죽는 것과 죽음을 모두 두려워했다. 그리고 독실한 기독교 신앙에도 불구하고 인식의 파괴, 특히 죄의식과 결합한 우울증을 더욱 두려워했다. …. “상상의 질환은 죄의식의 공포로 인해 증세가 악화되지 않으면 치유가 그리 어렵지 않다고 임락은 대답했다. 그러나 공상과 양심은 번갈아 우리에게 작용하면서 종종 역할을 바꾸기 때문에, 어떤 쪽의 환영이고 어떤 쪽의 명령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공상이 비도덕적이거나 비종교적인 형상을 제시하며 고통을 주면 정신은 이를 쫓아버린다. 그러나 우울한 생각이 의무의 형태로 보이면 우리가 이를 차단하거나 몰아내기를 무서워하기 때문에 저항 없이 우리의 모든 기능을 장악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 미신적인 사람들 가운데 우울증 환자가 많고, 우울증 환자는 거의 모두가 미신을 믿는다.” — 5장 새뮤얼 존슨과 괴테
초자아에 대한 프로이트 자신의 견해의 양면성은 괴테보다 욥에 더 가깝다. 초자아는 가학적 폭군이지만, 한편으로 문명의 수호자이기도 하다. 『욥기』에 나오는 리바이어던은 모든 자랑스러운 자녀 위에 군림하는 하느님의 왕인데, 악이 오직 덕 있는 자들만 괴롭히는 이유를 묻는 욥의 질문에 하느님은 오히려 자연이 모든 인간 위에 난폭하게 군림하는 것을 시인하는 질문을 유창하게 연달아 묻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였다. 우리는 리바이어던과 아무 약속도 할 수 없다. 그것은 결국 죽음, 곧 우리의 죽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프로이트가 ‘현실 검사 reality-testing’를 촉구하는 뜻은 우리가 생명의 유한성을 받아들이고 결국 그가 말하는 것 이외의 모든 허구를 거부해야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모든 교파와 동양의 여러 종교들, 그리고 프로이트가 믿지 않았던 규범적 유대교에서는 모두 각기 다른 형태의 부활을 주장하지만, 변화의 마지막 형태로서 생명의 유한성 그 자체에 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 7장 프로이트와 프루스트

○ 출판사 서평
영미문학 비평계의 거목으로 지난 수십 년간 미국 문단을 주도해 온 해럴드 블룸은 독설가로도 유명하다. 미국의 인기 작가 스티븐 킹이 2003년 9월 ‘전미도서상’ 수상자로 결정되자 블룸은 “싸구려 모험 소설이나 쓰는 작가가 이 상을 받게 된 것은 우리 문화 수준이 낮아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비판했다. 아마도 그러한 일이 블룸으로 하여금 현대인의 관심을 TV나 영화 같은 자극제로부터, 인생을 뒤흔들 문학이나 책으로 돌리고 싶게 했는지도 모른다. 스티븐 킹이 전미도서상을 받은 지 몇 개월 되지 않아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되었다.
블룸은 “어린 시절부터 나는 탈무드가 전하는 지혜들이 매우 편안하게 다가왔다.”며, 그가 아프고, 우울하고, 피곤할 때 도움이 된 문구들을 알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우리는 위기에 처했을 때 지혜가 문밖으로 나가버리고, 지혜의 문학이 편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는 지혜의 문학이 모든 것을 보듬어 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그의 주장에는 일관성이 없다. 하지만 그러한 일관성 없는 주장은 그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는 에머슨을 인용하며 “작가의 바보같은 일관성은 협소한 마음의 도깨비와 같다”거나, 휘트먼의 “나는 크다. 나는 군중이다”라고 말할 뿐이다. 이런 식의 놀라운 경구는 블룸의 책에서 발견하는 특징이다. 예를 들면, “정신분석학이란, 그 자체가 치료돼야 할 대상이다”라는 비엔나의 풍자가 칼 크라우스의 말이 그렇다.
블룸은 아주 어릴 때부터 독서에 열중했다. 그러므로 그가, 독서가 인생에 어떻게 도움을 주고 인생을 이해하도록 해주는가에 대한 책을 쓰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블룸은 이 책을 쓰는 중에 거의 죽을 정도의 중병을 앓았다. 회복되고 나서 그는 이제까지 썼던 원고들을 폐기하고 새롭게 서둘러 이 책을 쓰면서 서구의 몇몇 유명한 사상가들과 작가들에게 눈을 돌려 어디서 어떻게 삶의 의미를 발견할 것인지를 알아내고자 했다.
때문에 이 책은 저자 개인적인 필요에 의해서 쓰게 된 측면도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노화에 대한 정신적 충격, 중병으로부터의 회복,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는 슬픔으로부터 생긴 상처를 말끔히 씻어줄 수 있는 지혜를 추구하고 있다. 그 스스로가 중병 뒤에 대작의 교훈을 새로이 보게 된 것이다.
저자의 독서의 양과 폭이 워낙 방대하여 일반 독자가 쉽게 따라잡기 어려운 면이 있기는 하지만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심정으로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가면서 느끼는 지적 쾌감은 다른 어느 경험과도 쉽게 바꿀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