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칼 폴라니, 새로운 문명을 말하다 : 정치 경제 사회를 아우르는 폴라니 사상의 정수
칼 폴라니 / 착한책가게 / 2015.4.30
『칼 폴라니, 새로운 문명을 말하다』는 폴라니의 미출간 원고와 강연 중에서 1919년부터 1958년까지의 것들을 가려 모아 일관된 체계로 엮은 것이다. 이 책에서 폴라니는 20세기 전반기에 자기조정 시장의 폐해가 불러온 서구 사회의 붕괴를 문명사적 관점에서 조명하고 새로운 문명으로 나아갈 바를 비추고 있다. 즉, 근대 자본주의 체제를 문명 차원에서 해부할 뿐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는 서양 본래의 정신을 성찰, 비판하여 과학, 제도, 경제학, 기술 등이 모두 변혁될 것을 희망하고 있다. 나아가 그렇게 혁신된 이해를 바탕으로 자기조정 시장의 신화를 대체하는 새로운 경제 체제가 출현할 것을 갈망하고 있다.
– 새로운 문명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희망
이 책은 폴라니의 미출간 원고와 강연 중에서 1919년부터 1958년까지의 것들을 가려 모아 일관된 체계로 엮은 것이다. 이 책에서 폴라니는 20세기 전반기에 자기조정 시장의 폐해가 불러온 서구 사회의 붕괴를 문명사적 관점에서 조명하고 새로운 문명으로 나아갈 바를 비추고 있다. 즉, 근대 자본주의 체제를 문명 차원에서 해부할 뿐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는 서양 본래의 정신을 성찰, 비판하여 과학, 제도, 경제학, 기술 등이 모두 변혁될 것을 희망하고 있다. 나아가 그렇게 혁신된 이해를 바탕으로 자기조정 시장의 신화를 대체하는 새로운 경제 체제가 출현할 것을 갈망하고 있다.
이 책은 이렇듯 제도, 역사, 문화, 과학에 걸친 문명의 다양한 측면들에 대한 폴라니의 폭넓은 사유가 집약되어 있다. 그리하여 현대 문명의 위기와 붕괴의 징후를 읽는 법을 보여주면서 그런 위기를 넘어 자기조정 시장이 아닌 ‘인간의 살림살이’로서의 경제에 근거한 새로운 문명으로 거듭날 것을 요구한다. 특히 그간 출간되었던 폴라니 관련 책에서는 심도 깊게 볼 수 없었던 전쟁과 평화의 의미, 문화와 제도, 공동체와 민주주의, 협동조합에 관한 탐구, 사회과학의 역할 등 현대 사회와 인류의 미래라는 질문에 대한 고민이 집약되어 있어, 새로운 문명을 열어갈 지혜와 인문학적 상상력의 물꼬를 트는 데 주요한 기초가 될 것이다.

○ 목차
영어판 편집자의 말
이탈리아어판 서문 Ⅰ – 카리 폴라니 레빗
이탈리아어판 서문 Ⅱ – 조르조 레스타
1부 경제, 기술, 자유의 문제
1장 | 서양의 거듭남을 위하여
2장 | 경제학 그리고 우리의 사회적 운명을 결정할 자유
3장 | 경제사와 자유의 문제
4장 | 경제적 사유의 새로운 개척지들
2부 제도의 중요성
5장 | 제도적 분석이 사회과학에 기여할 수 있는 것
6장 | 국제적 상호 이해의 성격
7장 | 평화의 의미
8장 | 평화주의의 뿌리
9장 | 민주적 영국 문화의 미래
10장 | 비엔나와 미국에서의 경험들:미국
3부 사회과학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11장 | 사회과학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12장 | 정치 이론에 대하여
13장 | 공공 여론과 국가 지도자의 지도력
14장 | 일반 경제사
15장 | 고대 문명에서의 시장 요소들과 경제 계획
4부 위기와 전환
16장 | 오늘날의 중요한 문제:답변
17장 | 현대 사회에서 서로 충돌하고 있는 철학들
18장 | 금융 공황이 가려버린 사회주의의 전망
19장 | 오늘날의 전환 시대에 대한 다섯 개의 강연: 19세기 문명의 사멸
20장 | 오늘날의 전환 시대에 대한 다섯 개의 강연: 통합된 사회로의 경향
후기
옮긴이의 말
주

○ 저자소개 : 칼 폴라니 (Karl Polanyi, 1886 ~ 1964)
칼 폴라니 (Karl Polanyi, 1886 ~ 1964)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에서 부르주아 유대인 집안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08년 20세기 헝가리 지성사에서 중요한 운동이었던 ‘갈릴레이 서클’의 초대 의장으로 선출되어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23세가 되던 1909년에 『거대한 전환』의 주된 주제가 되는 사상적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우리 이념의 위기」를 발표하여, 그의 지적ㆍ사상적 여정의 단초를 놓았다. 이 해에 콜로스바 대학에서 법학 학위를 받아 삼촌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며 가족 생계를 돕다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군에 입대하여 동부 전선으로 파견되었으나 폐결핵에 걸리고 만다. 전쟁 직후 혼란한 헝가리 정세가 극우 반동세력의 쿠데타로 혁명 정권이 무너지자 폴라니는 빈으로 망명하여 생활 터전을 마련하고 1923년 평생의 반려자 일로나 두친스카를 만나 결혼했다.
그는 빈에서 1924년부터 당시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와 함께 서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지였던 『오스트리아 경제』의 국제 문제 담당 선임 편집자가 되어, 1938년 영국 통신원으로 기고할 때까지 정열적으로 이 경제지를 위해 일했다. 1933년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하자 영국으로 망명하였으며, 여기서 영국 자본주의의 실상을 보면서 시장경제의 출현이 가져다준 인류사적 충격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1935년 『파시즘의 본질』의 출간했으며, 1940년 미국 버몬트의 베닝턴 대학에 자리를 잡아 미국으로 이주했다. 1944년 그의 대표작 『거대한 전환』을 출간했으며, 1947년 캐나다 토론토 근교의 피커링에 정착함과 동시에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일반 경제사를 가르쳤다.
1957년 공동 연구서인 『초기 제국들의 교역과 시장』을 출간했으며, 냉전 시기인 1960년 버트란드 러셀, 아인슈타인, 사하로프 등과 『공존』(Coexistence)이라는 잡지 창간을 위해 헌신했다. 1964년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사후에 유작으로 『다호메이 왕국과 노예 교역』(1966)과 『사람의 살림살이』(1977)가 출간되었다.
– 역자 : 홍기빈 (Hong Gi-bin)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외교학과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캐나다 요크대학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금융경제연구소 연구 위원을 거쳐 현재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KPIA) 연구위원장과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팟캐스트 ‘홍기빈의 이야기로 풀어보는 거대한 전환’을 진행했으며, 온·오프라인의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살림/살이 경제학을 위하여』 『비그포르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소유는 춤춘다』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차가운 계산기』 『경제인류학 특강』 『돈의 본성』 『거대한 전환』 『카를 마르크스』(제59회 한국출판문화상 번역 부문 수상)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여러 사회권과 지구적 공공재에 대한 오늘날의 논쟁을 염두에 둔다면, 나는 아버지가 보편적인 기본 소득을 지지했을 것이라고 본다.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경제적, 둘째는 사회적, 마지막이자 아주 중요한 것으로서 정치적인 이유다. 경제적 논리는 잘 알려져 있으며 여러 번 반복된 바 있다. 굳이 케인스 경제학자가 아니더라도, 생계 자체가 힘든 사람들에게 기본 소득을 준다면 이들은 이를 소비재에 지출할 것이며, 따라서 생산자들에게 더 많은 시장의 기회를 만들어줄 것이라는 점을 쉽게 이해할 것이다. 게다가 오늘날 가속화되고 있는 기술 혁신의 속도로 볼 때, 광업과 제조업에서는 물론 운수업과 상업 등의 산업 활동에서도 필요한 노동 투입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이는 지구적 규모에서 적용되는 진실이다. (서문 1 중에서)
사탄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걱정할 것 없어. 팍팍 나가는 거야. 자유의 여러 제도들이라는 것은 알고 보면 부르주아들의 기만일 뿐이라고. 그리고 사회의 변화 속에서 이러한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들은 필연적으로 제거되게 마련이야.”
반대쪽에 있는 천사의 무리들도 사회의 변화가 자유를 제거하게 될 것이라는 명제를 똑같이 받아 되풀이합니다만, 그 결론은 정반대입니다. “멈춰! 자본주의를 개혁하려고 하지 마. 자유 기업의 원리를 교란시키면 자유도 필연적으로 잃게 될 거야.”
어둠의 마력을 지닌 마르크스주의의 결정론과 천사의 무리가 외쳐대는 자유방임의 결정론 사이에 끼인 우리는 이 두 가지 다른 종류의 필연론에 먹잇감이 되어버립니다.
마르크스주의의 필연론은 우리의 여러 자유를 상실하는 것이 불가피한 일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아주 신이 나서 당당하게 외칠 때가 많습니다. 그런 자유들에 계속 매달릴 경우에는 사회 변혁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으며, 우리 자신이 일정하게 파괴당하는 것까지 참아가면서 지배 질서의 현재 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자유방임의 필연론은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바로 그러한 사회 변혁의 포기라는 치명적인 선택과 함께 자유방임식 세계관에 순종할 것을 선언합니다. 그러지 않을 경우에는 노예적 예속이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주장으로 우리를 위협하면서 말입니다.
제가 확신하는 바로는, 이 두 가지 모두가 형식만 다를 뿐 경제결정론(이는 19세기식 유물론의 유산입니다.)이라는 동일한 신앙에서 나오는 주장들이며, 이러한 경제결정론은 경제사를 연구해보면 전혀 지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67-68쪽)
사회란 그 본성상 인간이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면, 추상적 인격의 가상적 자유에 대해서도 일정한 한계를 두게 된다. 권력, 경제적 가치, 강제 등은 복합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 그런데 이 점을 알게 되면 우리는 자유를 상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한 인식을 통해 잃게 되는 자유는 사실 환상 속의 것일 뿐이다. 반면 그러한 인식을 통하여 우리가 얻게 되는 자유는 분명한 실체가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상실한 것을 인정하는 가운데, 하지만 결국에는 사회 안에서 또 사회를 통해서 자유를 얻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가운데 성숙에 도달하게 된다. (138-139쪽)
삶의 조건 및 상황과 일치하지 않는 문화는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보란 듯이 행해지는 과시적 낭비 문화는 그 낭비를 행할 여력이 있는 계급에게조차도 특별한 가치를 갖지 못합니다. 이는 그저 계급적 우월성이 승화된 형식에 지나지 않는 것일 테니까요. 하지만 그럴 여력이 없는 계급에게는 이것이 그들을 도덕적 불구로 만들어버리는 재난입니다.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기는커녕 삶을 주눅 들고 좌절되게 만들어서 결국 왜곡해버리고 마니까요. 모든 진정한 문화의 으뜸가는 조건은 삶의 방식을 그것과 일치하도록 만들어가는 이들의 여러 사회적 현실과 조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56쪽)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서 물려받은 폐쇄적인 유산을 내세우는 획일적인 사상 체계를 가지고 있지만, 자유주의적 사회주의는 19세기 독자적인 사상가들의 자유로운 지적 공동체로서 존재하고 있다. 이 계보는 튀르고와 애덤 스미스에서 시작하여 캐리Carey, 프루동, 뒤링, 바스티아 등을 거쳐 헨리 조지, 허버트 스펜서, 크로포트킨, 헤르츠카Hertzka, 오펜하이머 등으로 이어진다. 이들이 지닌 여러 차이점과 분열점을 모두 넘어서서 본다면, 이들의 저작을 하나로 묶어주는 중심 주제가 더욱더 분명하고 의미심장하게 드러난다. 그 중심 주제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자유는 모든 진정한 조화의 기초이다. (268쪽)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농업에서의 협동조합 문제다. 물론 이는 자발적인 사업체여야만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아예 협동조합 사업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법으로 강제된 협동과 자유로운 협동 사이에도 중간 지대가 있을 수 없다. 문서상으로는 이 둘이 별 차이 없어 보이겠지만, 현실에 있어서는 마치 살아 있는 인간과 원형 감옥panopticon에서 마네킹이 되어버린 인간만큼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이 둘은 구성, 동력인efficient cause, 신진대사 면에서 다르며, 따라서 지속성과 생명 기능 등 모든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275-276쪽)
이 책의 10장에서 폴라니가 논의하고 있는 미국과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교육 제도의 차이, 그리고 그 각각이 그 나라의 사회 경제 체제와 어떻게 맞물려 있는가를 본다면, 과거제도와 문신 관료 체제를 천 년 가까이 혹은 그 이상 유지해온 이 동양 나라들에서 교육 제도가 자본주의 안착과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또 17장에서 민주주의의 상이한 기원을 영국과 유럽의 중세사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폴라니의 논의를 본다면, 동양에서 민주주의의 기원이(그런 것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며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민주주의는 어떠한 착종의 산물인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14장과 15장에서의 고대 경제사와 일반 경제사에 대한 폴라니의 성찰을 읽다 보면 과연 동양에서의 고대 이래의 경제사는 어떠한 틀로 재구성되어야 할까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옮긴이의 말)

○ 출판사 서평
Ⅰ. 폴라니의 유령, 폴라니의 복수
2008년 금융공황과 함께 세계경제가 1930년대 이후 가장 심각한 위기에 빠져들면서 전 세계적으로 폴라니를 주목하며 재조명하고 있다. 여러 학술지에서 폴라니에 대한 특별호를 출간하고 다양한 정치 포럼에서는 자본주의 발전과 붕괴 징후에 대한 그의 분석을 더 자주 언급하고 있다. 특히 세계의 엘리트들이 모인 2012년 다보스 포럼에서는 토론 과정 내내 폴라니의 유령이 맴돌았다는 보고가 나왔을 정도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은 무엇일까?
70년 전에 진행된 폴라니의 연구와 문제제기는 오늘날에도 매우 큰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지금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라 있는 경제와 민주주의의 관계, 전면적인 상품화 경향, 기술에 대한 통제, 초국가적 무역 규제 등의 문제는 폴라니 사상을 구성하는 핵심 줄기들로서,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폴라니가 오늘날의 문제에 대해 직접 이야기하는 것 같은 생각이 종종 든다.”고 말한 것처럼 당면한 현실을 그대로 비추고 있다. 나아가 자기조정 시장의 파괴적 경향에 대한 폴라니의 경고는 자본주의 체제가 새롭고도 극적인 위기를 한창 겪고 있으며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사건과 추세가 이어지고 있는 지금 급기야 ‘폴라니의 복수Polanyi’s Revenge'(Lisa L. Martin)라는 말까지 낳고 있다.
– 데자뷔, 고삐 풀린 자유주의 경제 질서의 붕괴
19세기 서구 문명의 운명을 결정한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제도는 토지, 노동, 화폐 시장이 각기 등장하고 하나로 어우러지며 탄생했다. 이때부터 사회에서 뽑혀나가게 된 경제는 스스로 생명력을 갖고 사회를 자신의 요구에 복무하도록 강제했다. 이는 대단히 이상하고 역사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사태였지만 어마어마한 경제 성장을 이끈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자유로운 시장을 창출하려는 자본과 지배계급의 ‘의도적인’ 노력과, 자기조정 시장의 파괴적 경향으로부터 사회가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노력 사이에, 즉 폴라니의 독창적 개념인 ‘이중운동’이 필연적으로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고 이는 자유주의 경제 질서의 붕괴와 파시즘의 발흥, 양차 세계대전과 민주주의 국가들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회의 규제와 통제에서 풀려난 자본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시장 근본주의적 신자유주의 이념이 세상을 지배하는 현실을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자본은 복지국가가 이룩한 많은 성과를 허물어뜨리고 부자가 지고 있던 조세 부담을 다른 이들에게 떠넘기는 데 성공했다. 생산된 부는 고소득자들의 이윤으로 돌아갔고 실질 임금은 거의 오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빈곤선 아래로 추락하고 있다. 자본은 모든 규제와 통제에서 해방되어 금융상의 부의 집중을 숫자로 설명하는 것이 더는 의미가 없어졌고 2008년 금융공황 속에서도 오히려 크게 강화되었다. 이제는 가장 강력한 나라의 정부와 사회조차 금융자본의 독재에 볼모로 잡혀 있는 상태다.
– 새로운 문명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희망
이 책은 폴라니의 미출간 원고와 강연 중에서 1919년부터 1958년까지의 것들을 가려 모아 일관된 체계로 엮은 것이다. 이 책에서 폴라니는 20세기 전반기에 자기조정 시장의 폐해가 불러온 서구 사회의 붕괴를 문명사적 관점에서 조명하고 새로운 문명으로 나아갈 바를 비추고 있다. 즉, 근대 자본주의 체제를 문명 차원에서 해부할 뿐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는 서양 본래의 정신을 성찰, 비판하여 과학, 제도, 경제학, 기술 등이 모두 변혁될 것을 희망하고 있다. 나아가 그렇게 혁신된 이해를 바탕으로 자기조정 시장의 신화를 대체하는 새로운 경제 체제가 출현할 것을 갈망하고 있다.
이 책은 이렇듯 제도, 역사, 문화, 과학에 걸친 문명의 다양한 측면들에 대한 폴라니의 폭넓은 사유가 집약되어 있다. 그리하여 현대 문명의 위기와 붕괴의 징후를 읽는 법을 보여주면서 그런 위기를 넘어 자기조정 시장이 아닌 ‘인간의 살림살이’로서의 경제에 근거한 새로운 문명으로 거듭날 것을 요구한다. 특히 그간 출간되었던 폴라니 관련 책에서는 심도 깊게 볼 수 없었던 전쟁과 평화의 의미, 문화와 제도, 공동체와 민주주의, 협동조합에 관한 탐구, 사회과학의 역할 등 현대 사회와 인류의 미래라는 질문에 대한 고민이 집약되어 있어, 새로운 문명을 열어갈 지혜와 인문학적 상상력의 물꼬를 트는 데 주요한 기초가 될 것이다.

Ⅱ. 자유는 모든 진정한 조화의 기초
자기조정 시장의 파괴적 경향에 대한 비판과 함께 폴라니 사상이 지닌 또 하나의 핵심은 ‘자유라는 가치야말로 모든 사회 체제를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폴라니는 자유란 책임과 갈라낼 수 없기에 공동체, 사회, 민주주의에 대해 사람들이 스스로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폴라니는 두 가지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첫째는 과학, 기술, 경제조직을 우리가 추구하는 인간적 진보와 자유로운 인격적 개성의 실현이라는 목적의 달성에 복무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경제적 자유와 평등을 향한 자본주의 개혁을 가로막는 이념적 장벽인 ‘경제결정론에 대한 교조적 신앙’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즉, 경제적 자유를 하나라도 제약하면(즉, 계획의 도입) 시민의 자유에도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하이에크의 주장이나, 반대로 부르주아적 기만에 지나지 않는 자유의 제도를 변화시키려면 경제 조직부터 변화시켜야 한다는 마르크스주의의 주장을 모두 문제 삼았던 것이다.
– 규제 없는 시장경제와 중앙계획경제 모두 비판
이렇듯 폴라니는 ‘자유는 모든 진정한 조화의 기초’라는 전제 아래 ‘자본주의적 이윤 경제의 무정부적 시장’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적 중앙계획경제에 대해서도 명확한 선을 그었다.
노동착취에 근거한 규제 없는 자본주의의 기원은 강권적인 토지 소유라는 ‘정치적 법칙’이 경작 가능한 토지에서 사람들을 접근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현실에서 자유 경쟁을 없애버린 데 있다고 보았다. 또 그런 자본주의는 사회적 필요와 생산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고 사적 개인들로 구성되는 경제의 본질상 공동체의 삶에 미치는 나쁜 영향들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규제 없는 시장경제는 경제 행위자가 한 선택의 결과에 대해 모든 형태의 규제를 금지하는 것이기에 개인의 책임을 묻지 않게 되고 사회의 응집력을 떨어뜨려 파편화를 불러오고 개인이 도덕적으로 행동할 동기를 앗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폴라니는 생산수단을 국유화하여 중앙계획경제를 건설한다는 전망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대했다. 그런 전망은 선택의 자유라는 이상과 양립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경제란 살아 있는 과정이며 제아무리 정밀하게 천재적으로 착상된 것이라 해도 그 어떤 기계적 장치로도 대체할 수 없다’고 했듯이 시장이란 사회의 특수한 감각기관이고 이것이 없으면 경제의 순환 시스템이 무너질 것이라 예측했던 것이다.
– 협동적 사회주의, 그리고 자율적인 협동조합
여러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폴라니는 교환이 사라진 중앙집권화된 경제가 아니라 노동, 소비, 생산이 모두 자신을 대변할 대표자를 통해 여러 문제를 조화롭게 해결하는 협동적 경제를 꿈꾸었다. 즉 협동적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를 같은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다만 이때의 시장경제란 잉여가치의 수탈을 상품 가격 안에 은폐하는 현장인 자본주의적 이윤 경제의 무정부적 시장이 아니라 자유로운 노동 생산물이 등가 관계로 교환되는 유기적 구조를 갖춘 시장이 된다.
폴라니는 이런 경제로 구성된 사회에서는 자유로운 협동이 협업의 일반적인 형태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하여 자율적인 협동조합들이 서로 유기적 구조를 맺는 가운데 생산과 소비가 시장에 의해 조직될 것이며 유통과정을 복잡하게 만드는 중간 거래, 투기, 그 밖의 모든 기생적 행태들이 배제될 것이라 주장했다.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은 생기 넘치는 직관으로 자신의 경제적 이익과 이타적 충동을 모두 이끌어내고 풍부히 키워나갈 것이라 예측했다. 다만 국가나 정부가 창출한 협동조합이란 대규모 공기업에 지나지 않으며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의 입장에서 볼 때 오로지 자발적 협동조합 말고 다른 형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Ⅲ. 자유와 일탈의 사상가 폴라니에 대하여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지적인 열기 속에 성장한 폴라니는 지식인으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결코 한발 비켜선 냉정한 ‘역사의 공증인’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 반대로 공적 시민의 일원으로서 강한 열정과 자유, 다원주의, 사회정의 등의 가치를 확고히 견지한 가운데, ‘우리의 사회적 운명을 결정하는 것’(2장)이 가능할 뿐 아니라 그것을 인간의 개성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필요에 부응하도록 이끄는 것 또한 가능하다는 반反 결정론적 신앙으로 살아 움직였던 이였다. 그리고 학자로서는 시대의 흐름에 완전히 거꾸로 맞섰으며 그의 사상은 확실히 이단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오늘날의 시대정신과는 더욱 어긋나는 인물로 보일 수 있지만 지난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의 사상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커져왔다. 특정 분야의 경계선 안에 시야를 가두지 않고 다양하고 복합적인 관점에서 현실을 읽어내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 대표작《거대한 전환》등이 담지 못한 것
폴라니의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저서가《거대한 전환》임에는 틀림없지만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경제’제도가 19세기 인간 사회의 모습을 결정했던 과정을 보여준 이 책의 핵심 내용은 폴라니 사상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 반대 방향의 이야기, 즉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제도가 어떤 문명적 역동 속에서 생겨나 문명의 여러 요소들과 어떻게 상충하거나 조응하면서 어떤 모순을 낳는가에 대한 성찰이 폴라니 사상의 다른 한쪽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폴라니의 주요 저서에는 본격적으로 서술되어 있지 않은 이런 생각을 알기 위해서는 강연, 에세이, 개인 노트 등의 문서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바로 그런 글들 가운데 주요한 것들을 모아《칼 폴라니, 새로운 문명을 말하다》를 구성했기에 폴라니 사상의 전체적인 진화 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한 문명의 성원 전체가 공유하는 상상과 의미 부여를 통해 제도가 생겨난다는 역동적 현실 인식과 그에 따라 현대 문명 위기를 ‘인간의 살림살이’ 또는 ‘실체적 경제’에 근거해 극복할 수 있다는 확고한 방법론적 지향을 읽어낼 수 있다.
○ 추천평
《거대한 전환》이 어렵다고 느낀 분들이 꼭 읽어야 할 책. 폴라니는 이 책에서 ‘자기조정 시장’, ‘경제결정론’이 왜 문제인지 당대(1920~1950년대)의 사건들 속에서 설명한다. 현재의 ‘대침체’는 1930년대 ‘대공황’에 비견된다. 폴라니가 그린 ‘새로운 문명’은 현재 우리 위기에 가장 강렬한 희망의 빛줄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 정태인(칼 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
고삐 풀린 시장자본주의 독재가 우리 공동의 삶과 환경을 근본적 위험에 빠트리고 있는 오늘날, 칼 폴라니의 지적 유산에 대한 관심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칼 폴라니 정치경제연구소 문서고에 소장된 미출간 유고로 엮은 이 책이 번역된 것은 무척 기쁜 소식이다. 이로써 한국 독자들은 정치, 경제, 사회를 아우르며 새로운 문명을 가리키고 있는 폴라니 사상의 진수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폴라니를 다시 읽어야 한다. – 이병천(강원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오늘날 경제가 사회를 지배하면서 온갖 차별과 굶주림, 자살과 사회적 폭력이 인간다운 삶을 위협한다. 자유와 책임, 평등과 정의, 공동체와 민주주의 등의 사회적 가치를 구현하는 문화 및 제도를 강조하는 칼 폴라니의 보물 같은 글들은 수십 년 전의 것임에도 지금의 시장 만능주의를 올바로 치유할 인문학적 도구가 될 것이다. – 강수돌(고려대 교수)
칼 폴라니의 아주 오랜 기간의 글들을 모은 이 책이 출간되어 기쁘다. 폴라니는 지적이고 날카로우면서도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는, 그러면서도 역사에 대한 깊은 지식을 바탕으로 논지를 전개하는 보기 드문 사상가다. 그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장기적 시점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그의 관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나는 그의 기적과도 같은 걸작 《거대한 전환》으로부터 그 주장의 내용에서나 인식론적 틀에서나 깊은 영향을 받았다. 오늘날 폴라니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건 우리 시대의 가장 고무적인 일이다. – 이매뉴얼 월러스틴(예일 대학교 교수)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