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키루스의 교육
크세노폰 / 한길사 / 2015.9.25
크세노폰이 보기에 소크라테스는 정치교사이며, 키루스는 바람직한 정치적 인간이다. 키루스는 단순히 정치가들을 교육하고 그들에게 지혜를 일깨워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플라톤이 말하는 철인왕은 더더욱 아니다. 키루스는 현실을 주의 깊게 살피지만 현실에 사로잡히지 않음으로써 정치적 인간이 된다. 그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동의를 얻어 통치하며 공동체의 안정과 질서 나아가 발전을 이룩한다. 『키루스의 교육』은 이러한 정치적 인간의 전형을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 그것을 교묘하게 변형시켜 역사소설 (historical roman)이라는 형식을 빌려 설명하는 크세노폰의 최고 걸작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소크라테스와 지나치게 현실적인 격정에 사로잡혀 있는 소(少)키루스에 대한 크세노폰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크라테스적 문제의식에 대한 플라톤적 철인왕의 해결책이 아닌 정치적 인간으로서의 키루스, 그 키루스를 새롭게 창조한 저작이 바로 『키루스의 교육』이다.
○ 목차
제1권 키루스의 소년시절
제2권 군대의 재조직
제3권 아르메니아와 스키타이 정복: 첫번째 위대한 전투
제4권 아시리아군의 첫번째와 두번째 진지 점령
제5권 고브리아스와 가다카스
제6권 대전투를 앞두고
제7권 대전투: 사르디스와 바빌론의 함락
제8권 제국의 건설: 키루스의 죽음
히에론(또는 티라니쿠스)
크세노폰 연보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인명

○ 저자소개 : 크세노폰
크세노폰 (기원전 대략 430?~354년 경)은 아테나이의 군인이자 역사가였으며 소크라테스의 제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테나이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난 시민이었지만, 민주정보다 스파르타의 귀족정을 선호했고 스파르타 왕 아게실라오스 2세와도 친분을 가졌다.
크세노폰의 젊은 시절에 관해서는 기록된 바가 거의 없지만, 기원전 401년 경 크세노폰은 친구 프로크세노스의 초청으로 페르시아에 용병으로 가게 된다. 그는 페르시아 왕자 퀴로스와 페르시아 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 사이의 내전에 개입하는데, 퀴로스가 사망한 후 만 명의 용병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귀국 이후 크세노폰은 스파르타를 도와 코로네아 전투에서 아테나이 군대와 싸웠으나, 이 때문에 아테나이로부터 추방당하게 된다. 스파르타는 군사적 활약에 대한 보상으로 크세노폰에게 올륌피아 부근 엘리스 지역에 땅을 주었고, 이곳에서 크세노폰은 23년간 전원생활 내지 은퇴생활을 하면서 많은 책을 저술한다.
크세노폰은 평이한 문체로 소크라테스에 관한 대화편들을 저술했는데, 훗날 철학사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크세노폰을 “철학자들의 역사를 저술한 최초의 인물”이라고 불렀다. 소크라테스에 관한 크세노폰의 주요한 대화편에는 『소크라테스의 변론』, 『소크라테스 회상록』, 『경영론』, 『향연』 등이 있는데, 이 중 『소크라테스 회상록』은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국가의 신을 믿지 않는다는 중상모략에 맞서 소크라테스를 옹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역자 : 이동수
미국 Syracuse University에서 행정학석사(MPA, 1991)와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행정학박사(Ph. D., 1995) 학위를 각각 취득하였고, 현재 계명대학교 공공인재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관심분야는 정책이론, 정책분석평가, 리더십과 조직문화 등이고, 최근 저서 및 논문으로는 「모순적 리더십과 조직문화」,「정책연구」, “한국의 행정문화와 리더십,” “공무원의 리더십과 리더유효성에 대한 자타평가의 남녀차이 분석,” “경쟁가치모형을 이용한 한국 행정조직문화의 진단,” “경쟁가치모형을 적용한 중앙행정조직 관리자의 리더십 분석”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아들) 캄비세스, 너는 너의 제국을 유지하는 것은 이 황금 왕홀(王笏)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군주가 가진 가장 참되고 확실한 왕홀은 바로 충직한 친구들이다. 그러나 사람이 자연적으로 충직하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또 우리 모두가 자연의 다른 속성이 늘 같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같은 사람이 항상 충직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너는 네 친구들이 스스로 충직하게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런 친구를 얻는 것은 강요가 아니라 친절을 통해서만 가능하단다.” – 본문 397쪽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가 그의 저작 ‘리비우스 논고’에서 수차례 언급했으며, 저명한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에 의해 ‘리더십을 체계적으로 다룬 최초이자 최고의 책’으로 평가받은 이 책은 고대 그리스의 정치철학자 크세노폰(Xenophon)의 대표적인 저작으로써,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한 키루스(Cyrus)가 보여주는 새로운 정치적 인간(political man)의 모습을 역사소설 형식으로 쓴 글이다.
그럼 이 책의 주인공인 ‘키루스’는 누구인가?
“키루스(Cyrus)는 캄비세스(Cambyses) 1세의 아들로서 기원전 557년경 안샨(Anshan)이라는 조그만 왕국의 왕이 되었다. 당시 안샨 왕국은 메디아 왕국의 속국이었다. 키루스는 먼저 정권의 안정을 도모한 후, 기원전 550년부터 대외정복전쟁을 시작했다. 기원전 550년에는 메디아를, 기원전 546년에는 사르디스와 리디아를 정벌했고, 기원전 539년에는 신바빌로니아 왕국을 정복했다. 이로써 키루스는 페르시아 왕으로는 최초로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의 제국은 메소포타미아와 소아시아에 이르는 거대한 것이었다. 키루스의 정복은 매우 온건하면서도 포용적이었다. 예를 들면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후, 당시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왔던 유대인들을 풀어주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했다. 그리스인, 이집트인, 유대인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키루스의 포용 정책과 훌륭한 통치를 찬양했다. 그리스의 크세노폰도 그중 한 사람이다. 키루스는 기원전 530년에 죽었으며, 그의 시신은 자신이 건설한 도시인 파사르가다이에 묻혔다.” – 본문 45쪽
그리고 페르시아를 대제국으로 건설한 군주인 그를 ‘좋은 정치’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주는 진정한 ‘정치가’로 평가한 저자 ‘크세노폰 (Xenophon, 기원전 430~기원전 354년경)’은 아테네 출신으로 기사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장군이 되고 정치가로 활동한 경력을 바탕으로 역사적, 철학적 저작을 서술했다.
키루스를 흠모한 그는 소(少)키루스(키루스 3세)의 원정(기원전 401)에 참가했다. 이 원정은 무모한 소키루스 때문에 실패했는데, 크세노폰 자신은 ‘만인대(萬人隊)의 후퇴’를 통해 장군으로서의 명성을 드높였다. 그리스로 돌아온 크세노폰은 존경하는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죽인 아테네에 실망하고, 스파르타 왕 ‘아게실라오스’를 좇아 그의 참모가 되었다. 그 후 망명자가 되어 떠돌다 말년에야 복권되어 아테네로 돌아갈 수 있었으며, 코린토스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주요 저작으로는 ‘키루스의 교육’ 외에, ‘헬로니카’, ‘메모라빌리아’, ‘아나바시스’, ‘심포지움’, ‘소크라테스의 변명’ 등이 있다.
이 책은 외할아버지의 나라 ‘메디아’에서 지낸 ‘키루스’의 소년 시절, 그리고 장년이 된 그가 ‘메디아원정대’의 사령관이 되어 ‘포용정책’과 ‘뛰어난 리더십’으로 주변의 작은 국가들을 복속 시키며 결국에는 아시리아의 수도인 바빌론을 함락, 대제국을 건설하는 과정과 그의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며 유언을 남기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역자는 소크라테스의 애제자인 저자가 ‘플라톤’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그리스 철학에 일반적인 편견’과 기사가문 출신이며 원래 장군이었던 저자의 ‘다른 성장배경과 주의, 주장’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문제의식을 ‘이데아’와 ‘이상국가’라는 철학적 교의를 앞세워 심화시키는 반면, 크세노폰은 ‘좋은 삶’이란 ‘정치적 삶’이며 정치세계에서 진정 필요한 자는 ‘정치교사’ (teacher)가 아니라 ‘정치가’ (statesman)라고 생각한다.” – 본문 12쪽
또한 “크세노폰에게는 플라톤이 윤색한 현실과 동떨어진 소크라테스와 지나치게 현실적인 격정에 사로잡혀 있는 소키루스를 넘어서는 정치적 인간 (political man)의 전형이 필요했다. 자신의 소키루스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크라테스적 문제의식에 대한 플라톤적 철인왕의 해결책이 아닌 정치적 인간으로서 키루스, 그 키루스를 새롭게 창조한 저작이 바로 ‘키루스의 교육’이다.” – 본문 23쪽
그리고 ‘지배받기를 싫어하는 인간을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인간으로 변형하는데 성공한 키루스’의 그런 통치가 가능했던 이유를 ‘정치적 인간은 출신이 고귀해야 하는 것’과 그가 받았던 ‘절제의 교육’ 그리고 ‘페르시아의 법률’ 등을 꼽으면서 이 책은 ‘저자의 페르시아의 정치체계에 대한 찬양’이라는 ‘크리스토퍼 브루얼’ (Christopher Bruell)의 논문을 인용한다.
더불어 ‘자발적인 복종’을 위해 스스로 ‘본보기’가 되고자 노력한 키루스의 ‘리더십’과 ‘누구에게 더 어울리고, 적합하고, 이득이 되는가?’라는 정의관을 통해 ‘법률적 평등과 실질적인 불평등’이 공존하는 ‘페르시아, 즉 고전적인 귀족정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정치체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지금 내가 여러분에게 내리는 모든 지침 중에는 노예들에게 내린 명령이 전혀 없다는 점을 유의하시오. 여러분에게 내린 지시를 나도 작접 이행할 것이오. 나는 여러분에게 나를 본보기로 좇을 것을 명하노니, 여러분은 여러분이 직책에 임명한 자들에게도 여러분을 본보기로 좇으라고 명하시오.” – 본문 392쪽

○ 독자의 평 1
크세노폰은 고대 그리스시대 소크라테스의 애제자 중 한사람이다. 혹자들은 플라톤아카데미를 비견해서 ‘키루스교육’이란 책을 썼다는 이야기도 한다. 크세노폰은 플라톤과 달리 현장 중심적 생각을 했던 사람이다. 그는 치열한 전장에서 수없이 죽어가는 동료들을 지켜보기도 했고 나라가 지도자의 리더쉽의 부재로 쓰러져가는 현장을 직접체험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 나라의 작게는 한 집단의 지도자가 가진 리더쉽이 어떻게 그 집단을 부흥시키는가에 대한 생각을 담아낸 것이 바로 ‘키루스교육’이 핵심인 것이다.
키루스는 어려서부터 첫째, 공정한 삶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공정한 삶은 정의로운 행동을 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공정한 삶이란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고 그 기회를 통해 경쟁을 한 후 그 결과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보상을 하도록 하는 것을 일컫는다. 훗날 키루스가 지도자가 되어 전쟁에 나섰을 때 병사들에게 공정한 경쟁을 유발했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보상을 주며 그만의 리더쉽을 빛나게 했다.
○ 독자의 평 2
“소크라테스의 흠모자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키루스의 추종자로서 크세노폰의 저작을 통해 고전 정치철학에 새로운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정치를 보는 태도가 플라톤류의 ‘episteme’ 중심에서 ‘phronesis’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학문적으로 습득되는 ‘지식’보다는 ‘실천적 지혜’ 또는 ‘신중함’으로 대변되는 저자의 사상을 통해 “후에 전개될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예비하고 있다.”고 이야기 한다.
“우리의 미래는 과거 속에 있다.”라는 역자의 마지막 말을 옮겨 적지 않더라도, ‘화합과 소통’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는 ‘리더십의 부재’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지도자의 참모습’과 ‘절제와 포용’을 통한 ‘진정한 통치’를 보여주는 ‘키루스의 교육'(Cyropaedia)을 이 시대를 걱정하는 모든 분들께 권하고 싶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