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학문을 권함
후쿠자와 유키치 / 일송미디어 / 2004.5.20
‘일평생 내가 행한대로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은 학문 뿐이다.’
- 일본 근대의 사상가이자 지도자인 저자의 학문적 뿌리를 찾을 수 있는 책
100여년 전에 서양문물과 학문을 배우자고 권하고, 경제적인 발전의 길과 정신적 신념을 심어주었던, 당대의 일독서였다. 학문에 매진하는 청년들에게 학문하는 자세와, 삶의 태도에 대해 날카롭게 충고한다.

○ 목차
1 학문을 권장함
2 사람은 누구나 동등한 존재
3 한 사람 한 사람의 독립이 곧 국가의 독립이다
4 학자의 본분과 자세
5 학문을 하는 자로서의 각오
6 국법의 귀중함
7 국민의 직분을 논한다.
8 내 마음대로 타인의 몸을 좌우하지 말라
9 학문을 권장하며 옛 친구에게 보내는 글
10 외국문명을 배우고 실행함에 대하여
11 명분을 가진 거짓군자를 낳게 하는 이론
12 학문의 생명은 활용에 있다
13 원망(怨望)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
14 마음자세의 정리/보살핌이란 말의 뜻
15 의문(儀文)을 가지고 세상을 판단하자
16 마음과 행동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17 인물론(人物論)
해설

○ 저자소개 : 후쿠자와 유키치
후쿠자와 유키치는 규슈의 나가쓰번에 있는 하급무사의 집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한학을 공부 하였다. 그 후 독학으로 영어를 배웠으며1895년 네덜란드어 학교를 개설하고 3차에 걸쳐 미국과 유럽을 순방, 귀국 후1868년에 신젠자에 게이오 대학을 세운다. 메이지 정부는 후쿠자와를 등용하려 했으나 이를 사양하고 전적으로 교육과 저술에만 전념하였다. 1873년 계몽지식인의 모임인 ‘명육사’를 창립하고 동인으로 활약,「서양사정」「학문을 권함」「문명론의 개략」등을 저술하고 ‘명육 (明六) 잡지’ ‘민간 (民間) 잡지’ 등에 기고했다. 1882년에는 ‘시사신보’를 창간하면서 군비확충, 조세증수, 관민협조로 부국강병 하여 서구열강의 대열에 들것을 주장하고 한국의 유길준 · 김옥균 등의 개화운동을 지원하고 ‘한성순보’ 발간을 도왔다. 봉건적 무단질서로 부터 근대적 언론질서로 전환기를 살았던 위대한 지도자였으며 봉건제도에 대한 가장 과감한 투쟁가인 동시에 일본에 자본주의 문명을 추진한 대표적 교육사상가였다.
– 역자: 양문송

○ 책 속으로
모든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자유의지와 심신의 활동에 따라 천지간에 존재하는 모든 물자를 이용하여 의식주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그리하여 ‘누구에게나 거리낌 없이 서로 간에 폐를 끼치지 않으며, 각자가 안락하게 이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어야 한다.’라는 것이 바로 “학문의 권함”의 참뜻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인간사회를 살펴보면, 착한 사람도 있고, 어리석은 사람도 있고, 가난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자가 있으며, 신분이 높은 사람이 있으면 낮은 사람도 있어서, 그 실제로는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있어 보인다. 왜 그럴까, [실어교(實語敎)]라는 책에 “사람이 배우지 아니하면 지혜가 없고, 지혜가 없는 자는 어리석은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구별은 학문에 힘을 쓰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서 결정된다 하였다. 착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구별뿐만 아니라, 신분의 귀천, 인성, 빈부의 차이도 학문의 정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즉, 세상에는 어려운 일도 있고 쉬운 일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을 능력 있는 사람이라 하며 부러워하고, 쉬운 일을 하는 사람을 가벼이 보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정신적으로 고생스러운 일이 팔다리를 쓰는 육체노동을 앞선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의사나, 학자, 정부관리 등의 전문직이나, 큰 장사를 하는 상인이나, 많은 일꾼을 고용하는 대 농가 등은 모두 능력 있고 학식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 자연히 재산도 넉넉해지고, 어느 순간 성공이라는 목표와 만나게 된다. 이는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감히 부러운 존재밖에는 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런 근본적인 차이는 어디서 나는 것인가? 그건 역시 그 사람에게 배우려하는 욕망과 의욕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그에 합당한 사회적 신분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 사회적 신분이라는 것은 태어나면서 하느님이 정한 무슨 숙명 같은 것이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속담에 “신은 부귀를 인간 그 자체에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활동에 대한 대가로서 주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듯 단지, 학문에 힘써 사물의 이치를 잘 깨달은 인간은 훌륭한 사람이 되고 넉넉한 재산가가 되며, 학문이 없는 사람은 정신적· 물질적인 어려움을 느끼게 되며, 보잘것없는 고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 본문중에서

○ 출판사 서평
- 학문의 생명은 활용에 있다. ‘일평생 내가 행한대로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은 학문뿐이다’
가까운 일본의 그 식을 줄 모르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확실한 주인의식과 철저하도록 계획된 듯이 보인 국민성과 의식 수준을 처음 접해본 사람은 약간의 당혹감은 접할지 모르나, 어느 순간 ‘바로 저것이구나’라고 인정하게 될 것이다.
새 천년을 맞이해 앞으로도 몇 세기를 내다본 아시아의 경제 대국을 스스로 자처하며 인정하도록 만든 그 뿌리의 원천은 무엇일까?
일본의 지난 100년 동안 눈부시게 성장한 확실한 자리매김의 시작은 바로 그들의 우상이자 정신적 지도자인 후쿠자와 유키치에게서 그 사상적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이미 100여 년 전에 서양문물과 서양학문을 배우길 권하고, 그로써 경제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독립된 목표의식과 독립된 자유를 밝힌, 정신의 강한 신념과 확신을 심어준 그의 저서 ‘학문을 권함’은 일본의 근대역사를 다시 썼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 공헌이 지대했다.
자유주의, 개인주의 등 구미의 근대사상이 들어와, 인간은 모두 자유 평등하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사상이 널리 퍼져 나갔다.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고, 사람 밑에 사람을 만들지 않았다”라고 시작되는 후쿠자와 유키치 (福澤諭吉)의 『학문을 권함』이 국민적 베스트셀러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애독되었다.
처음에는 수업료를 내면서까지 자식을 학교에 보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가진 농민들도 많았지만, 차츰 소학교 교육이 확산되었으며, 1877년 도쿄 대학의 전신인 도쿄의 학교가 세워지고, 후쿠자와 유키치의 케이오의숙, 오오쿠마 시게노부의 도쿄전문학교 (현재의 와세다 대학) 등과 함께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메이지정부는 교육의 충실화에 힘쓰며, 서구화 정책을 취하면서도 국가주의를 관철시켜 1890년에는 교육칙어를 공포하여 교육의 기본을 명시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