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 (西晉, 265 ~ 317) 개관
서진 (西晉, 265년 ~ 317년)은 중국의 왕조이다.
촉한 제갈량의 북벌을 막아낸 위나라의 중신 사마의의 손자인 사마염이 건국했다.

건국 초기 무제 사마염은 안정적인 정치로 새로운 나라의 기반을 다져나갔으나, 동북방의 이민족들이 서진을 공략하기 시작하여 많은 한족들이 노예로 끌려가고 혜제 때에 팔왕의 난으로 국운이 기우고 만다. 무려 16년 동안 팔왕의 난이 중국을 휩쓸고 있던 중에, 중국을 점령하고 있던 동북방의 이민족들이 본격적으로 중국을 정복하였다. 이것이 영가의 난을 초래하게 되었고 흉노의 유연이 세운 한나라가 서진을 공격해 정복하고 서진 사마씨들을 사로 잡아 서진은 건국 52년 만에 멸망했다.
흉노족 유연은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사마씨들을 전부 숙청하였다. 남은 사마씨 일부는 서쪽에 이주시켰지만 유연의 아들 유총은 이주시킨 사마씨들을 모두 노비로 삼거나 숙청한다. 겨우 살아남은 서진의 일족인 사마예는 남쪽으로 도망쳐 317년 동진을 세워 진나라의 명맥을 유지해나갔다.
– 서진 (西晉)
별칭: 사마진 (司馬晉)
위치: 중국, 베트남 북부
수도: 낙양 (洛陽), 장안 (長安) 등
정치 체제: 전제군주제
국성: 사마(司馬)
국가원수: 왕 (265) → 황제 (266~316)
주요 황제: 무제 사마염 (265~290), 혜제 사마충 (290~307)
문자: 중국 한자
종교: 유교, 도교, 중국 토속 종교
종족: 한족
통화: 오수전

265년 ~ 316년, 4대 51년 국가를 유지한다. 국호는 진 (晉)이지만 대중적으로는 ‘서진’으로 불리며, 간혹 북진 (北晉), 사마진 (司馬晉)이라고도 한다.
수도는 낙양 (265년) → 업 (304년) → 낙양 (304년) → 장안 (304년) → 낙양 (305년) → 장안 (311년)으로 이어졌다.
사마의의 후손들이 삼국을 통일한 중국의 고대 국가를 이뤘으나 팔왕의 난을 겪고 30년 만에 다시 분열되고 말았다.
중국 역대 통일 왕조 중에서는 진나라, 수나라에 이어 3번째로 단명했다.
서진 이후 화북에는 오호십육국시대가 시작되고, 진나라는 강남으로 수도를 옮겨 간신히 명맥을 이어간다.
그리고 통일을 했다지만 연이은 난리로 수나라가 통일하고서야 끝나나 싶더니, 수양제의 폭정으로 다시 혼란기가 왔다가 당 시대에 접어들고서야 진정된다.
– 서진의 약사
249년, 고평릉 사변
263년, 사마소가 진공으로 책봉
263년. 촉한 정벌
264년, 사마소가 진왕으로 책봉
265년, 사마염이 황제로 즉위
279년, 독발수기능 격파
280년, 손오 정벌, 천하 통일
291년, 가남풍의 역모
300-307년, 팔왕의 난
307-311년, 영가의 난
316년, 장안의 임시 정부 함락
317년, 건강에서 사마예 즉위 → 동진
– 팔왕의 난

팔왕의 난 (八王 亂)은 291년부터 306년까지 이어진 중국 서진의 내란으로, 서진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서진 황실 내부의 권력 투쟁으로 인해 발생하였으며, 명칭 또한 내란을 주동한 주요 황족 제후왕이 8명인 데서 유래하였다.
팔왕의 난으로 인해 계속된 오랜 혼란의 결과 서진의 통치기반은 급격히 악화하여, 흉노족 침입 (영가의 난)으로 서진이 멸망하였다.
이후 살아남은 황족 사마예가 강남에서 피신하여 나라를 다시 일으켰지만 과거 서진이 차지한 화북영토는 되찾지 못하였다. 화북지방은 흉노족 등이 정복하였다.
관련된 8명의 왕은 다음과 같다 (관계는 서진 무제 사마염 기준으로 서술).
.여남왕 (汝南王) 사마량 (司馬亮) – 무제 사마염의 숙부, 선제 사마의의 5남
.초왕 (楚王) 사마위 (司馬瑋) – 무제 사마염의 5남.
.조왕 (趙王) 사마륜 (司馬倫) – 무제의 숙부, 사마의의 9남
.제왕 (齊王) 사마경 (司馬冏) – 무제의 조카, 무제의 동생인 제헌왕 사마유 (司馬攸)의 아들
.장사왕 (長沙王) 사마애 (司馬乂) – 무제 사마염의 16남.
.성도왕 (成都王) 사마영 (司馬穎) – 무제 사마염의 6남.
.하간왕 (河間王) 사마옹 (司馬顒) – 무제 사마염의 6촌, 사마의의 동생인 안평헌왕 사마부 (司馬孚)의 손자
.동해왕 (東海王) 사마월 (司馬越) – 무제 사마염의 6촌, 사마의의 동생인 사마규의 손자, 고밀문헌왕 사마태의 차남
– 팔왕의 난 이후
팔왕의 난 때 각 왕들은 군사력의 강화를 위해 주변의 이민족들에게 공물을 주고 도움을 받았다. 이민족들은 서진의 무력함과 약세를 느끼고, 제각기 한족 정복에 대한 야심을 갖게 되었으며 한족들을 정복하기 이르렀다.
304년 흉노족 족장 유총이 서진의 수도 낙양을 점령 (영가의 난)하여 민제를 죽이고 사마씨들을 노예로 만들고 한족들을 학살하면서 서진은 멸망하고 유총이 전조를 세운 것을 시발로 동북방 이민족들의 침입과 정복으로 중국은 오호십육국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고 거대한 전장터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것이 오호십육국 시대의 개막이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