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논단(16)
기독교 선교적 관점에서 본 G2국가로서 중국에 관한 연구
세계 지도자 역할에 관하여
목 차
I. 서론
II. 중국의 역사적 배경 연구
III. G2국가로서 중국
IV. G2국가 중국민족의 세계관
V. 100년간 G1 국가의 역할을 수행한 미국의 청교도 정신
VI. 중국의 G2 역할과 수행 능력
1. G2 중국의 역할과 책임
2. 중국이 G1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한계성
3. G1 미국과 G2 중국의 정체성의 차이에 관하여
4. 중국의 G1능력의 가능성과 국가적 자질
VII. G2국가 중국의 지도자 시진핑
VIII. G2 중국의 기독교 선교와 역사적 교훈
IX. 결론
VI. 중국의 G2 역할과 수행 능력
3. G1 미국과 G2 중국의 정체성 차이에 관하여
인류 역사에서 언제나 강한 자만이 역사에서 살아남아 역사를 만들어 왔다. 그리고 역사는 강한 자만을 기억하며 패자의 역사는 아무도 기억해 줄 수 없다. 그리고 역사는 언제나 강자의 손으로 기록되어 왔기 때문이다. 20세기 한 세기 동안의 인류 역사는 G1 미국이 이끌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경찰국가로서 자국의 군대를 미국적 정체성과 정의라는 명분으로 분쟁 지역에 보내어 세계의 질서와 평화를 위해 그리고 모든 세계 민족들의 인권과 자유를 위해 자국의 젊은이들이 희생되어 갔으며 오늘도 희생을 감수하며 책임과 임무를 감당하고 있다. 세계 2차 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난 것에 대해서도 미국 군인들의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1950년 미국은 공산세력의 확장을 막는다는 명분하에 한국 6.25전쟁에 UN군과 함께 파견 했다. 1961년부터 베트남에 군대를 파견하여 이들을 지원하고, 1964년에는 정식으로 전쟁에 돌입했다. 그러나 10년이 넘는 미국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승리의 희망이 없어지자 1974년 4월 30일 베트남은 북월맹군에게 함락되고 미군과 참전국들은 철수하고 베트남은 북 베트남에 흡수 통일되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자신들이 주도하는 서방세계의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자국 미국경제의 경제적 번영을 누리도록 기회를 만들어 가기 위하여는 소련 주도의 공산주의체제의 세력의 확산을 막아야 하는 것이 미국의 번영과 자국 주도의 세계평화를 보장하기 위하여 공산세력을 막아야 했다. 그리고 G1의 주도적 세계의 경제를 G2 소련에게 넘길 수 없다는 강한 미국의 저력이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20세기 냉전체제에는 G1 미국과 G2 소련과의 경쟁과 견제로서 세계의 지도를 펴고 첩보전과 원조라는 당근으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최대의 정보전략으로 대립했지만, 1991년 12월 25일 소련 연방의 해체로 G1과 G2의 경쟁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1979년 1월 1일 미국과 양국간 정식 국교를 수립한 직후인 1979년 1월 28일 미국 지미 카트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빈곤했던 공산사회주의 국가 중국의 새로운 지도자 등소평과 국교를 맺은지 30여년만에 2010년 중국이 G2의 새로운 모습의 강대국 국가로 부상했다는 것에 이제는 미국도 방심할 수 없는 것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미국이 절대로 세계의 G2의 자리로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이 말은 곧 어떤 나라든 G2나라에서 G1 미국에 도전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다는 경고이다.
GI과 G2에서는 경제 및 금융 분야에서 보이지 않은 또 다른 경제적 냉전체제가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중국 G2 지도자 시진핑은 2012년 11월 후진타오로부터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와, 중국 공산당 중앙 군사위원회 주석과, 2013년 3월 14일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에 선출되었다. 그의 임기는 10년이며 올해 62세이다. 중국 공산당의 정년 나이는 72세이기에 아마도 2022년에는 퇴임한다. 그의 부친은 공산당 부주석 직에 있어서나 문화혁명시기 때 좌천되어 벽촌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의 부친은 모택동 사후에 복직되면서 시진핑도 학업을 다시 계속할 수 있었다.
21세기 G2의 지도자 시진핑은 그동안 유럽의 서구 문화권에서 누려왔던 세계의 패권을 아시아 문화권 대륙 중국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중국의 부상은 서구문화 중심의 국제질서의 역사를 동양의 역사로 전환시키는 주역을 담당하고 있다. 중국은 2001년 WTO가입을 통해 국제 경제체제에 동참한 이후 GDP기준으로 2005년에 프랑스를 추격하고, 2006년에는 영국을, 2007년에는 독일을, 2010년에는 일본의 경제를 추격하여 G2의 자리를 확보한지 5년이 지났다. 2016년 1월에는 국제 통화기금(IMF)에서 특별인출권(SDR)에 중국이 편입했다.
IMF의 최대 지분을 가지고 있는 미국은 시대적 조류에 밀려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었기에 결과적으로 인출권을 인정해야 했다. 서구문화권의 선진국에서 경영하던 세계의 경영권이 제 3세계로 분류했던 중국으로 넘어오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2000년대 초반 IT버블 붕괴, 911테러의 시작과 아프칸과 이라크 전쟁 등으로 경기가 악화되자 이에 경기 부양책으로 초 저금리정책에서 시작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여파와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들의 경제력이 쇠퇴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중국의 경제성장은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초고속으로 상승하였다는 것이다. 2020년이 되면 세계 제1경제 대국 G1인 미국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는 것이다.
G2 중국의 부상과 G1 미국의 패권은 상대적으로 쇠퇴가 부각되면서 소련의 퇴장으로 인한 권력의 공백기에 G2 중국의 등장은 G1 미국으로 하여금 견제를 위한 견제가 가시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 경제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여건으로 에너지 기술, 인구, 창의력 면에서 중국은 여전히 미국의 위상에 영향을 줄 만큼 성장하지 못했다는 조셉 나이(Joseph Nye)의 견해도 있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기본적으로 G2 중국과 G1 미국으로서는 견제와 동시에 경쟁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중국의 경우도 아직은 어떠한 경쟁이나 마찰은 피하기를 노력 하겠지만, 대국을 향한 발전과 전진은 중단하지 않을 것이며 중국의 강대국을 지향하는 국가적 정책은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 5월 시진핑 주석이 라틴 아메리카 순방길에서 이루어진 언론사 합동 인터뷰의 내용에서 답변으로 연설한 일부 내용이다. 중국의 꿈(中國夢)이 실현되면 중국인민뿐 만 아니라 세계 모든 인민에게도 복이 된다. 중국 민족은 온갖 수난을 겪으면서 아름다운 꿈에 대한 동경과 추구를 버리지 않고 억세게 분투해 왔습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을 실현하는 것은 근대 이후 중화 민족의 숙원이었다는 것이다. 새로운 역사 시기에 국가의 부강, 민족의 진흥과 인민의 행복을 실현하는 것은 중국의 꿈의 본질이다. 2020년까지 국내 총생산과 도시와 농촌의 주민의 일인당 소득을 2010년의 두 배로 늘려 소강사회를 전면적으로 달성하고, 본 세기 중엽에는 부강하고 민주적이며, 문명적이고 조화로운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를 건설하여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 우리의 분투 목표 이라는 강력한 중국몽에 대한 의지를 역설하고 있다.
중국의 꿈을 실현하려면 중국의 특색 중에 하나인 사회주의 길을 반드시 견지해 나가야 한다. 우리는 이미 이 길을 따라 30여년간 걸어왔으며, 역사는 이 길이 중국 실정에 부합되고 국가와 민족을 부강하게 하는 정확한 길임을 증명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도 이 길을 확고부동하게 걸어갈 것이다. 중국의 꿈을 실현하려면 반드시 중국정신을 널리 떨쳐야 한다. 우리는 중국의 애국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민족정신과 개혁혁신을 핵심으로 하는 시대정신으로 전 민족의 활력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중국의 꿈을 실현하려면 반드시 중국의 힘을 결집해야 한다. 공담은 나라를 망치고 실행만이 나라를 흥하게 한다. 우리는 13억 중국인의 지혜와 힘, 그리고 대를 잇는 꾸준한 노력을 통해 국가를 훌륭하게 건설하고 민족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중국은 개혁정책이 시작된 지 30여년 만에 G2시대를 맞이했다.
중국의 꿈을 실현하려면 반드시 평화적 발전을 견지해야 한다. 우리는 시종 변함없이 평화적 발전의 길로 나아가고 호혜 공영의 개방 전략을 실시할 것이다. 우리는 중국의 꿈이 실현되면 세계에는 불안이 아닌 평화가, 위협이 아닌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중국과 라틴아메리카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서로 이어져 있다. 전통적으로 두터운 친선과 긴밀한 이익으로 맺어진 유대뿐 아니라 아름다운 미래를 지향하는 공동의 염원도 우리 사이를 이어 주고 있다. 최근 들어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국가들의 강성을 위한 연합이 새로운 행보를 내딛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국가 공동체 출범은 라틴아메리카 독립운동의 선구자들이 이끌어 나간 연대와 협력, 공동 발전의 꿈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중국은 라틴아메리카 와 카리브 지역 국가들과 긴밀히 단결하고 상호 지원하며 진심으로 협력하면서 발전과 번영의 아름다운 꿈을 실현하는 길을 함께 손잡고 나아갈 것이다.
시진핑 주석 그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행한 연설에서 그는 앞으로 중국을 어디로 어떻게 지도하고 가겠다는 꿈과 당찬 포부를 알 수 있다. 중국은 자국만의 이기주의적 국가 구상이 아니라 세계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중국 인민이 함께 노려하자는 꿈의 실현을 꿈꾸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꿈꾸는 꿈의 실현은 과연 어떤 꿈일까? 아직도 7,000만명의 중국 인민들이 빈곤의 환경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자국의 인민들이 있다는 것을 부끄러움 없이 스스로 말하는 소박한 성품인 가난한 인민의 지도자이며, 또한 강대국 G2의 지도자이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옛 말이 있다” 그러나 이처럼 불가능에 도전하는 인물이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다.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이하는 2020년까지는 중국 인민의 국민 연평균 소득을 2010년 국민소득 기준에서 갑절로 올려서 빈곤한 인민이 한 사람도 없도록 경제를 더욱 발전 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역사는 농업 대국으로 가난은 중국의 역사 속에 언제나 함께 있어왔다. 명나라의 건국과 멸망도 성난 가난한 농민들의 봉기와 영향이 있다.
1949년 중화 인민공화국의 성립한 배경에도 중국의 가난했던 농민들이 있었다는 것은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1978년 중국이 개혁개방 이전의 중국 농민들의 가난은 처참할 정도로 가난하기도 했다. 당시 빈곤의 발생률은 97.5%까지 달하기도 했다. 당시 농촌의 빈곤 인구는 7억7천만명을 추산했다. 개혁 개방과 함께 인민공사를 폐지하고 농토들을 가족단위로 분배하면서 농업소득이 증대하기 시작하면서 농민들의 굶주림은 해결되기 시작했다. 개혁 개방은 인간 본능에 뿌리를 두는 인간이 가지는 최저의 자신에게 부여하는 기본 인간 심리의 척도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인간은 먹어야 하는 권리와 자유는 태어나면서 인간에게 주어진 기본 권리이다. 국가나 지도자가 지극히 이기적인 사상과 무능으로 국민들이 먹지 못하여 죽어가면 최대의 죄악이며 악행이다. 1949년 건국한 인민공화국은 중국의 빈곤한 인민들에게 건국공신으로서 그들에게 진 빚을 치려야 한다. 상하이에서 시작된 공산당 창당 100년 만에 그 빚을 청산하려고 새로운 지도자 시진핑 국가주석이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덩샤오핑(鄧小平)은 마오쩌둥 전 주석이 사망하고 2년만에 국무원 부총리로 복직되어 ‘가난이 사회주의(貧窮不是社會主義)만은 아니다’라는 정책으로 자유민주주의 경제원리인 시장자유주의 경제제도를 시행했다. 공산사회주의 정치제도와 자유시장 경제제도를 함께 병행하여 채택하고자 자유주의 국가들과 외교를 맺어 가면서 서구의 자유주의 국가들로부터 도입한 외국 자본으로 국가를 발전시켜 왔다. 덩샤오핑의 선부론(先富論)과 공동부유론(共同富裕論)으로 빈부의 격차가 격심한 중국사회에서 시진핑은 중국사회에서 빈곤퇴치정책에서 성사하려 하고 있다.
13억이 넘는 인민들에게 빈곤퇴치개혁은 그리고 인류역사에서 아무도 이루어보지 못한 위대한 꿈이다. 중국의 5천년 역사 속에 어느 제왕들도 생각하여 보지 못한 유례가 없는 원대한 꿈의 이상을 G2라는 중국은 정체성과 명예를 위하여 해결하려 몸부림 치고 있다. 비록 선진국의 제도에서는 극빈수당과 실직보조금으로 도와주고 있지만 빈곤을 근본적으로 해결 하려고 국가적 정책은 세우지 못한다.
중국은 1986년 빈곤퇴치기관을 설립하여 국가적 빈곤퇴치정책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고정 수입이 없는 절대빈곤 기준과 저소득층이라는 2가지 기준으로 관리하여 오다가, 2008년부터 이를 하나로 통일하여 연수입 1,067위안 이하를 국가가 정하는 빈곤 기준으로 정하여 관리하여 왔다. 2009년에는 1,196위안, 2010년에는 1,274위안, 2011년에는 2,300위안(한화 약42만원)을 현재까지 기준으로 정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이 7,000만명 빈곤 인구를 2016년부터 시작하여 2020년에 끝나게 되는 제13차 5개년계획 기간동안 마무리하겠다는 것이며, 자신의 임기가 끝나는 2022년까지 끝내고자하는 야심이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G1의 자존심과 정체성에 관한 야심인지도 모른다. 두 번째 맞는 10월17일 중국 국가빈곤퇴치의 날도 시진핑 주석의 임기가 시작되고 제정되었다. 왕양(汪洋)부총리를 조장으로 하는 국무원(중국 최고 행정부)에서 국가빈곤퇴치기구를 확대개편했다. 부 조장 6명에서 9명으로 확충하고 빈곤퇴치기구 구성을 37개 부서로 확대하여 구성했다. 중국 행정부의 모든 부서에서 전담반을 조직하여 중국 모든 지역에서 강행한다는 시진핑 주석의 정책이다. 시진핑의 빈곤퇴치전략은 확정되어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부정직한 관리들과 욕심이 앞서는 인민들의 무지함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최대의 관건이기도 하다.
시진핑 주석의 빈곤퇴치 장애물은 크게 두 가지다. 현재의 빈곤 인구가 노동력을 상실한 사람이거나 고산지대 등 주거환경이 열악한 곳에 거주하는 사람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시진핑 주석 행정부는 노동력 상실자는 사회보장 시스템으로 끌어안고, 척박한 환경속에서 생활하는 빈곤 군중은 아예 거주지 자체를 산업 잠재력이 있는 곳으로 바꾸는 방법을 계획하고 있다. 특히 교육을 실시해 빈곤의 대물림을 차단하는 전략도 구상 중이다. 13억이 넘는 방대한 인민들을 한 사람도 빈민이 없는 나라로 어떻게 개조해야 하는지 정말 보람된 국가시책이다. 지구가 창조되고 수 천년 인류문명 역사에서 아무도 이루어 본 일이 없는 역사적 대업을 시진핑 주석이 국가의 운명과 중국 공산당의 명예를 걸고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G1의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냉전시대를 직접적으로 체험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제2차 대전은 서로 적대적 사상의 상이한 체제를 신봉하는 두 강대국 미국과 소련이 한편이 되어 싸운 매우 특이한 전쟁을 하였다. 그러나 미소 동맹체제는 종전과 함께 필연적 또 다른 이념적 이해관계로 적대적 냉전관계를 맞이하게 되었다. 냉전은 1948년부터 1953년에 이르는 시기에는 대치 상태에서 소련의 독자적 핵무기 개발에 성공함으로 냉전은 최고조에 달했다. 1953년 한국전 종전과 스탈린 사망으로 냉전은 잠시나마 완화되었다. 그러나 동구 공산국가들이 소련을 중심으로 바르샤바 군사 동맹체제를 구축하고 같은 해 서독이 나토(NATO)에 가입하면서 냉전체제는 미국과 소련을 정점으로 세계진영은 두 개의 적대적 이념을 명확히 되는 양극체제로 변화되고 있었다.
1991년 2월 25일 저녁 7시(현지시간)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이 공식적으로 해체 되면서 냉전의 시대와 함께 G2 구소련이 사라졌다. 하지만 당시 소련의 군사력은 막강했다. 군사력만으로 국민을 잘 살게 만들지 못한다는 진리는 소련의 역사에서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냉전시대 막강한 군사력과 핵장비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1961년 4월 12일 일류 최초로 우주인 유리 가가린 우주 비행사를 미국보다 먼저 개발하는 최첨단 과학기술을 보유했던 소련이 이제 G2의 무대에서 사라진 것일까?
아직도 러시아는 자국이 필요한 지하자원보다 많은 자원을 소유하고 있으며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곡물과 축산물을 자급자족하기에 충분한 양을 생산하고 있다. 바쿠 유전은 100년도 넘었지만 아직도 석유를 생산하고 있고 가스의 매장양도 풍부해서 사실상 에너지와 지하자원을 수출해서 생산품을 수입하는 전형적인 자원수출국 중의 하나이다. 나폴레옹의 유럽대륙 석권과 히틀러의 게르만 민족주의 전쟁에서 자국의 젊은이가 수없이 희생당한 역사와 세계를 양분한 USSR의 후신 러시아는 중국 세력의 등장에 아무런 관심 도 없이 조용한 외교만 하고 있다. 세계적 힘의 균형이 변하고 있다.
아시아대륙을 제2세계 문명으로 분류하며 자만하던 서구의 문명국들에게 21세기 아시아의 생산품을 외면하고 살아갈 수 없도록 아시아는 성장했다. G2 중국의 생산품 산업과 조선산업, G3 일본의 자동차와 전기산업, 한국의 전자산업, 인도의 젊은이의 노동력은 아시아의 대륙이 산업대륙으로 변하고 있다. 미국의 국내 총생산은 100년 이상 1위였고(17,418,925 US$), 2014년 기준에서 아직까지 G1을 고수하고 있다.
G2 시진핑 주석의 중국 국무부는 자국의 강대국화의 전략으로 2013년 3월 제시한 “일대일로”(一對一路, 실크로드 경제벨트 & 21C 해양 실크로드) 전략은 중국의 부상과 그리고 이를 견제하는 G1 미국의 동진정책이라는 객관적 현실 속에 태동하게 된 것이다.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 전략은 중국의 주도하에 중앙아시아, 동유럽, 북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가들을 포함한 지역들과 산업적 연합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투자와 무역 활성화를 통해 선전 산업과 중동의 석유자원과 소비시장을 확보함으로 강대국화에 필요한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여 충당하고, 자국의 생산품을 저렴하고 신속하게 조달하여 판매할 수 있는 최첨단 21세기 프로젝트를 실행하고자 한다. 아시아의 재균형 정책이라는 명분으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최대의 신 국제질서를 형성하는데 중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고자 하는 것이 일대일로 정책의 일부이다. 또한 위안화의 국제화를 앞당기고 중국의 외환 보유액을 위한 투자처를 제공함으로써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 국무부는 2014년 11일 일대일로 지원 및 아시아 무역 및 육로 교통 연계 개선을 위한 기금에 USD 400억 규모의 실크로드 기금을 출범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현재까지 외환보유고(USD 65억), 중국투자공사(USD 15억), 중국수출입은행(USD 15억), 중국개발은행 USD 5억) 등 총 100억을 출자한 중이다.
G2 중국은 정체성에서 아직도 1인당 국민소득(GDP) USD 7,000 선에서 개발 도상국체질의 정체성과 G2 강대국인 총 연간생산(USD 10,380,380백만 단위)으로 정체성 혼선에서, 아직도 중국의 대외정책에서 방어성과 공세성이 함께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과정속에서 태동한 ‘일대일로’ 전략에서 G1 미국과의 직접적 충돌을 우회하면서 자국의 세력권을 구축하려는 중국의 속내가 내재해 있다. 21세기 ‘해양실크로드’는 중국의 에너지자원 수입 루트를 포괄하고 있다. 전세계 해상 물동량의 3분2 가량이 해운 항로로 구축되어 있는 남중국해를 거쳐서 아프리카, 유럽까지 이어지는 해상 실크로드를 구상하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G1 미국은 2011년 7월 당시 미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은 제2차 미국과 인도 전략대회에서 “신 실크로드” 계획을 주창하였다. 이는 2001년 9.11테러 이후 10여년에 걸쳐 미국이 개입하여 영향력을 쌓은 아프간을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와 인도를 연계하며, 통합하는 지역적 통합 구상을 제시한 바 있다. 아프간이 테러리즘 온상으로 재 퇴락하는 것을 방지하고 미군의 철수를 위한 조건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지만, 미래적으로는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전통적 영향력을 강화함으로써 러시아와 중국 등의 영향력 확장을 이 지역에서 배제하려는 구상이었다.
지난 시대의 냉전시대가 유럽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자유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기독교문명을 중심으로 한 미국과, 기독교를 배척하는 공산사회주의 확장을 꿈꾸며 소련연방을 중심으로 한 위성국가들과의 대결이었다면, 새로운 21세기가 시작 되면서 아시아와 태평양이 활동 무대가 되어, G1 미국과 G2중국의 힘의 균형관계로 국제질서의 방향을 좌우하게 되는 새로운 보이지 않은 냉전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그러나 21세기 미국과 중국의 경쟁관계는 20세기 미국과 소련이 냉전시대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필히 유념해야 한다. 20세기의 미소 냉전은 군사력 힘의 대결 중이었다면, 21 중미의 대결은 경제력의 대결이다. Gl, G2의 명칭 역시 국민 총생산력의 용어이다. 미국의 전통적 민주주의 정치에서 자유주의 시장경제 자본주의와 일당 독재공산사회주의 정치에서 자유주의 시장경제 자본주의가 경쟁하는 경제 냉전이다. 아메리카 꿈의 나라는 건국한지 240년 만에 세계 G1의 부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한 유럽의 이민자들이 기독교 정신과 신앙의 정체성으로 세운 나라이다.
시진핑 시대의 중국의 꿈인 중국몽은 인류의 시작인 황화문명의 후손으로 5,000여년의 역사를 이어온 인류문화의 바탕인 중국대국이다. 2014년 3월 27일 중국과 프랑스 수교 50주년 기념 연설에서 나폴레옹이 말한 “만약 중국이 잠에서 깨어난다면 세계를 진동시킬 것이다. 잠자는 사자를 깨우지 말라”라는 말을 인용하여, 과거 중국을 침략한 서구 열강에서 “잠자던 사자 중국은 잠에서 깨어났다”고 말한 것은 “중국몽과 중국의 굴기”를 유럽 서구의 국가들에게 공식으로 선언한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그러나 이 사자는 평화적이고 친근하며 문명적인 사자라고 정의하며 21세기 중국은 세계적 평화를 추구한다”고 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언제나 영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함께 세계를 순방하고 있다. 중국의 문화 전통에서 역대의 국가 지도자들은 영부인과 함께 동행하지 않았다. 그리고 부인이 누구인지도 거론하지 않았다. 그러나 21세기 중국의 영부인 펑리위안 여사는 시진핑 주석이 세계를 순방할 때마다 언제나 함께 동행하며, 중국의 고유전통문화에서 완전히 탈퇴하여 앞서가는 문화전통을 창조하고 있다. 21세기 중국민족의 정체성이 변화되고 있다. 이 논문의 자료들을 수집하는 기간 중에도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정보와 상황이 너무나 속히 발전하고 변화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rans Pacific Strategic Economic Partnership, TPP)은 관세 장벽을 철폐하고 자유화하는 협정으로 2005년 6월에 4개국, 뉴질랜드, 싱가포르, 칠레, 브루나이가 출범했다. 2008년 2월 미국의 가입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2010년 10월 5개국, 2013년 3월 일본, 2015년부터 미국이 적극적으로 참여를 선언하면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TPP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경제통합에 있어 가장 강력한 경제 수단이며 더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참가할 것을 직접적으로 유도하고 있는 것은 중국주도의 아시아 경제권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의 아시아 지역에서 경제적 지위를 확보하려는 미국의 전략에 대하여, 아시아의 맹주로 등장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2013년 10월 수실로 밤방 유도요소(Susilo Bambang Yudhoyone)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회담에서 아시아인 프라투자은행 AIIB(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설립을 제안했다. 그리고 2015년 6월 29일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공식적인 창립 회원국은 57개국으로 창립 되었다. 아시아 지역 국가 37개국과 유럽 등 비아시아 지역국가가 20개국이다. 일반 회원국은 3개국이다. AIIB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 주석 시진핑 집권 초기부터 제안하여 중국이 주도적으로 운영하는 국제금융기관이다. 본부는 베이징에 설치되며 많은 중국의 인재들이 참여한다. 미국 등 서구의 선진국가들이 주도하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orld Bank)과 일본과 미국이 주도하는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이 있다.
특히 ADB의 총재인 일본인 나카오 타케히코는 거대한 기반 시설의 금융적 요구가 아시아에 있긴 하지만 AIIB의 설립을 국제적 기준에서 채택되기를 희망한다는 입장이다. 주중 일본 대사관인 키테라 마샤토는 일본이 AIIB에 가입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일본의 내각장관인 스가 요시히테는 “일본은 AIIB에 가입하지 않을 것이며, 명확한 설명이 중국으로부터 오지 않았다”라고 하면서 일본은 AIIB가 합리적으로 운영되며, 다른 설립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지 의심스럽다며 가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사를 밝혔다. 또한 아베 신조는 일본은 가입할 필요가 없다는 의사를 밝혔다. 기존의 미국과 일본 중심적인 국제 금융질서에서 중국은 영향력의 확대를 요구했지만 허용되지 못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IMF와 ADB에 중국은 지분의 증액을 요구하였으나 현재 각각 5.5%와 4%밖에 없다. 중국은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관련된 인프라 건설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막대한 재원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중국은 G2로서 G1 미국과 일본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국제 금융질서로부터 지원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판단에 따라 이에 대비하여 국제금융자원을 설립하고자 AIIB을 추진해야 했다. 그동안 중국은 AIIB의 설립을 위하여 시진핑 국가주석은 동남아, 중동, 유럽 등 순방하며 회원국 확대와 설립자본금 확대를 위하여 노력하였다. 중국이 기초자금 1천억달러(102조원) 규모의 AIIB를 설립하려 했던 것은 미국과 일본을 견제하기보다는 현재 중국이 추진중인 21세기 현대판 신 실코로드인 일대일로의 계획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금융자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 실크로드는 낙후한 극동 중앙 남아시아 지역과 산유국의 중심인 중동지역을 관통하여 아프리카의 광산대륙까지를 중국의 경제벨트로 함께 발전시켜 거대한 중국을 건설하려는 원대한 미래의 중국몽을 실현하기 위하여 AIIB의 설립 이유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역들은 아직도 미국의 영향력이 미약한 지역이기에 미국과의 경제적 마찰도 원만하게 피해갈 수 있는 지역이며 또한 대미 감정이 높은 지역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AIIB는 전체인구 44억명, 총 GDP 21억 달러의 경제권이 중국 주도로 형성된다.
그동안 중국에 투자하는 외국의 투자자가 많았으나 2014년을 기준으로 중국의 대 외국의 투자가 증가하여 역전되고 있다. 중국의 대외투자는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중국의 기업들이 선진국 자산의 매입이 매년 증가하고 있는 것은 또한 신 실코로드가 완성되어 중국의 일대일로 육상 실크로드와 해상 실크로드는 중국의 국운이 좌우되는 사업이다. 2015년 6월 29일 57개국의 창립 회원국과 3개국의 일반 회원국으로 1,000억달러 기초기금의 계획인 21세기 AIIB 국제금융 인프라 은행을 설립하고 3개월 만에 세계 60개국 120여개 언론사의 대표와 주필들을 중국으로 초청하여 신(新)실크로드인(一帶一路) 포럼을 개최했다. 5박6일동안 모든 체재비용을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이 부담했다. 중국의 한 언론사가 세계적 유수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활약하는 대 언론사들을 초청해 중국의 국가적 전략과 방향에 관련해 보도 자료를 제공하고 토론하는 국제적 포럼은 상상을 초월한 포럼이었다. 중국 정부의 국책인 일대일로 라는 포럼 제목으로 중국 런민일보 사장이 중심이 된 세계 언론사들의 언론 행사였다.
21세기 신 실크로드라고 불리는 일대일로는 시진핑 주석의 야심찬 국정운영 사업이다. 2000년전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가던 육상 실크로드의 맥을 잇는 경제벨트이다. 일로는 600여년 전 명나라 영락황제 때 환관 정화(鄭和)가 7차례 대 원정을 통해 개척한 항해 노선을 따라 동남아 인도양을 거쳐 아프리카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해상 실크로드를 뜻한다. 중국 시진핑 정부는 일대일로의 인프라 사업을 통해 철도, 항만, 도로, 발전소, 송유관 등 대규모 개발사업을 일으켜 물자의 과잉공급을 해소하면서 경기를 부양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가 완성되면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주변국들과 물류망이 발전하고 교역이 활발해지면 낙후한 중서부 아시아 지방의 경제도 빠르게 성장하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견제를 벗어나 중국 중심의 세기적 경제대국을 건설하려는 중국적 전략이다. 그동안 중국을 배제한 체 진행중인 미국주도의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TPP)에 버금가는 AIIB경제금융 체제와 일대일로 전략이다. 중국의 중앙대외연락부 왕자루 부장은 실크로드의 일대일로 정신은 중국의 독주가 아니라 평화적 협력, 상호학습, 개방적 포용, 문명과 번영을 공유하며 논의하여 공동의 이익을 공유하겠다고 한다. 또한 일대일로는 중국의 세력 확장을 위한 전략만이 아니라고 하지만 G1 미국에 밀리지 않기 위해 G2 중국 중심의 세계 경제 재편을 염두에 둔 중국의 전략이다. 2015년 말 500억 달러규모로 출범하며, 후에 회원국들로부터 출자를 받아 자본금 규모를 1,000억 달러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그리고 2013년 9월 7일 시진핑 주석은 중앙아시아 순방에서, 카자흐스탄 나자르 비예프 대학의 강연에서, 실크로드 경제 지대를 공동으로 건설하자는 제목에서 카자흐스탄은 고대 실크로드 중심지역으로 동서양 문명의 소통과 다양한 민족, 문화의 상호 교류와 협력에 크게 기여 하였다. 동서양의 사절단과 상단, 여행객, 학문교류, 선진 문화들이 끊임없이 이 지역을 오고 갔으며 상호 인류문명의 진보에 기여한 실크로드였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실크로드에는 각국 사람들의 친선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아름답게 전해지고 있다. 2천여년의 교류역사는 단결과 상호 신뢰, 호혜 평등, 포용과 교류, 협력과 공영만이 상이한 인종, 신앙과 문화 배경을 가진 국가들이 평화를 공유하고 공동 발전할 수 있는 길임을 증명하고 있다. 이는 고대 실크로드가 우리에게 남긴 소중한 교훈이다. 지난 20여년간 중국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관계가 급속히 발전함에 따라 유구한 역사를 지닌 실크로드에는 새로운 생기와 화력이 넘치고 새로운 형식의 중국과 중앙아시아 국가간 호혜 협력이라는 새로운 역사의 장이 열리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그의 중앙아시아 순방에서 실크로드 경제벨트구축 제안에서 좋은 반응을 받았다. 2천 여년전 BC 206년에서 AD 25년까지 실크로드 전성기시대였다. 일명 비단길로 일컬어지는 실크로드는 중국과 서역 각국 간에 중국의 유명했던 실크(비단, 명주)는 서역이나 유럽에서 귀족들의 최대 사치 제품이었다. 중국 실크는 서역에서 생산할 수 없는 상품이었기에 수많은 중국의 실크의 상품이 이 비단길을 통하여 서역으로 팔려갔다. 오늘날 시진핑 주석이 과거 실크로드의 영광을 재현하려고 중국의 꿈을 상기시키고 있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생산품을 운송하기 위하여 중국으로부터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까지 국제화물 열차노선과 화물 자동차노선을 직통으로 개설하려고 한다. 그리고 석유와 원자재들을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서 중국의 산업단지로 직통으로 운송하여 수입할 수 있도록 일대일로를 구축하자는 구상도 가지고 있다.
중국대륙과 유럽은 같은 대륙이다.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 역시 연결되어 있다. 거대한 대륙을 다시 개척하겠다는 것이 21세기 중국 민족의 비전이다. 그들의 선조들은 만리장성을 쌓았던 민족이다. 현대인 장비와 능력으로도 상상할 수 없는 대 역사를 이루어낸 민족이다(육중한 돌들을 어떻게 태산 꼭대기까지 운반을 했을까?). 이제 중국은 세계를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 물론 여러 가진 어려운 문제들이 있긴 하지만 그러나 가능성도 얼마든지 많다는 것은 사실이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안방으로부터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하나의 띠와 하나의 길로 연결하고자 한다. 이것이 중국이 구상한 종합적인 국가적 그리고 세계적 청사진이다. 거대한 미래를 향한 대 사역이다. 일대일로를 구축하고 성공하기 위해 중국정부는 주변 국가와의 국가관계를 공고히 하고 동서로 개척해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는 주변의 국가에 상당한 이익을 보장해야 가능하다. 그리고 지속적인 우대관계를 맺어가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막대한 투자가 소요되면서 과잉투자도 우려된다는 것이다.
왜 중국은 일대일로를 꿈꾸게 되었을까? 중국은 2010년에 G2로 등극했다. 중국은 21세기 세계에서 2등 국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2등은 알아주지 않는다. 올림픽에서도 2등에는 관심이 없다. 중국으로서는 일대일로 전략은 제1등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들은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중국은 무엇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 의문이 제기된다.
첫째, 자금 능력이다. 시진핑 주석 2012년 말에 중국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되고 2013년 초에 중국 공산당 국가주석에 당선되었다. 2013년부터 시진핑 주석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유럽과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을 순방하며 AIIB 구축에 정성을 다하였다. 2015년 6월 29일 57개국 회원으로 AIIB이 공식 출범하면서 1천만달러 자금예산을 확보하였다. 그리고 일차적으로 AIIB에서 실크로드에 투자할 4백만달러는 책정해 놓은 상태이라는 것이다. “노력없는 성공은 없다”는 시진핑 자신은 자신의 목적에 스스로 달성하였다. 자신의 선조들이 중국에서 생산된 비단을 유럽에 판매하기 위하여 다니던 비단길 실크로드에 최고의 고속철을 개설하기 위해 시진핑 주석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둘째, 기술의 능력에 있다. 중국의 첨단 기술은 교통수단이다. 10년전 만해도 중국 대륙은 고속철의 불모지였다. 2015년 10월 기준으로 8,427km을 개통했다. 2014년 한해 이용승객이 8억명을 초과했다. 한국은 개통 11년만에 누적 5억 승객을 앞두고 있다.
일본의 신칸센 고속철 기술을 배우던 중국의 고속철 기술은 세계 최고로 성장하였다. 일본과 중국이 치열하게 경쟁해 온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반둥 간 150km 고속철 공사를 2015년 10월 경쟁에서 중국의 고속철이 시공하게 되었다. 일본이 정성을 들었던 미국의 라스베이거스-로스앤젤스 간 350km 고속철 수주도 일본과 경쟁에서 중국이 수주했다. 2015년 6월에 러시아의 첫 고속철인 모스코바-카자 간 770km 고속철 시공을 중국이 수주했다.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의 고속철에 관한 협상과 더불어 중국은 현재 20-30개 국가와 고속철 건설에 관한 협약이 진행 중이다.
중국의 고속철 기술이 일본(신칸센), 독일(이체), 프랑스(테제베)들을 앞서고 있다. 2007년 프랑스 테제베(TGV)가 세웠던 세계 최고 기록인 574.8km/h을 따돌리고 2015년 1월 중국 고속철은 605km/h을 달리며 운행하여 신기록을 세웠다. 중국 고속철은 2008년 베이징-텐진 간 1만7천km 구간을 7년만에 완공하여 시공적으로 시공 신기록을 세웠다. 중국의 고속철 기술은 하얼빈-다롄간 고속철 엔진은 세계 최초로 영하 40도부터 영상 40도의 80도의 기후차이에서도 같은 속도를 유지하며 달린다. 어떠한 기후변화에서도 달리는 기술은 중국만이 습득한 기술이다. 2014년 12월 개통한 우루무치-랄저우 구간에는 해발 3,607m의 기후조건에서 달리는 기술 역시 중국만이 개발한 기술이다. 중국의 고속철 건설 기술은 여러 면에서 골고루 개발하여 적도의 아프리카에서도 엄동의 시베리아대륙에서도 운행하는 기술을 개발했기에770km 러시아 대륙의 고속철을 중국 고속철이 경쟁 없이 수주할 수 있었다. 왜 미국은 자국의 고속철 사업을 중국 고속철에 넘겨야 했을까? G1의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했을까? 경제적면에서 시공사업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세계 공장이라는 중국이 생활용품만 생산하는 중국이 아니라 세계 최고의 기술을 익히고 있다.
셋째, 중국의 외교 능력이다. 후진타오 주석까지 중국의 외교는 강대국 미국을 위시한 대미외교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시대의 외교는 탈 미국 의존화 외교로써 동반자 외교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1979년 1월 중국과 미국의 수교 이후 2010년 10월 G2 이전의 발전도상 국가 중국의 외교는 미국의 의식속에 경제를 발전시켜야 했다. 중국의 최고 지도자들은 자신의 임기 중 미국 지도자들과 정상 회담을 개최하여 미국의 도움을 받아왔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하여 냉전시대 중국의 도움이 절실했던 미국은 마오쩌둥(毛澤東)과 회담으로 소련을 견제하려 노력했다. 1979년 1월 덩샤오핑 주석은 개혁개방선언 후 미국과 교역을 중심으로 회담했다. 1997년 10월과 2002년 11월 2번을 장쩌민주석은 미국을 방문했다.
2006년 4월과 2011년 1월 2번을 후진타오 주석은 미국을 방문했다. 2010년말 중국은 G2 발표 이후 후진타오 주석이 2011년 1월 18일 미국 방문 하루 전인 17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의 국제 시사 자매지인 환주(環珠)시보는 “중국이 세계 1위가 된다면”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재계하여 내 보냈다. 중국의 관영 언론이 상대국 G1국가인 1위 미국을 방문하면서 “중국이 세계1위” 표현으로 기관지 언론에서 사용하여 발표했다. 이날 기사에서 중국의 굴기에 대한 토론이 점점 세계 “제일이자 미국을 제친 중국을 어떻게 대하느냐”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중국 1위를 주제로 한 전문가 4명의 의견을 게재했다. 이런 낙관론이 중국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살펴본다는 주제이지만, 중국이 곧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자신하는듯한 느낌을 대화 내용 곳곳에서 풍긴다.
2012년 시진핑 주석은 미국과의 외교에서 동반자 상호협력적 외교관계이다. 시진핑 주석은 새로운 중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의 관계를 정립한다는 것이다. 전임 중국 지도자들의 통치 철학이었던 “도광양회”와 같은 수세적인 외교는 더 이상 없다는 것이다. 중국은 유라시아 대륙에서 교통, 무역, 경제적 협력, 인적 교류의 중심지로 발전하기 위하여 중국의 외교 능력은 일대일로에 중요성을 두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젊고 유능하며 서구적인 국제정치 관념에 익숙한 엘리트 정치인들이 오늘의 중국을 지탱하고 있다. 민주주의 서방 국가에서 교육받고 유학한 수많은 인재들이 중국의 민족주의 성향으로 조국 중국을 위하여 현신하는 미래의 중국 외교는 미국을 의식하는 수세식 외교에서 벋어난다.
시진핑 주석시대의 외교의 중심은 주변국 중심의 외교를 더욱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중국의 중장기적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경제 허브가 되고자 하는 중국의 원대한 꿈을 성취하려면 육상 실크로드로서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절대 우호관계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해상 실크로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인도, 베트남, 방글라데시, 미얀마 등과 인도네시아의 아시안내 위상과 영향력을 매우 중시하며, 해안 국가의 외교가 절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대일로 계획은 육지뿐 만 아니라 해상의 항만 시설과 무역신장 등으로 아시아 해상과 인도차이나 해상으로부터 인도양과 아프리카 해양까지 해상권을 확고히 장악하게 된다. 그동안 태평양을 장악하여 남중국해까지 진출한 미국의 해양권에 중국의 도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0년간 미국독주의 해양권에 중국은 이제라도 자신들의 해양권은 더 이상 양보할 수 없으며 스스로 지키겠다는 의지이다.
중국은 급부상하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장기적인 차원에서 아시아 지역의 질서를 재구축하고자 한다. GDP 기준으로 경제규모 세계 제2위 국가가 되면서 중국은 G2국가로서의 국제적 우위상과 정체성을 확고히 하려한다. 그리고 G1 미국은 미국적 정체성으로 초강대국의 위치를 100년 이상 지켜왔다. 비록 중국이 경제적으로 G1의 경제적 위치에 도달할 수 있을지라도 세계가 인정할 수 있는 정체성은 또 다른 기준의 민주주의 정체성의 정의가 있다. 민주주의 사상은 기독교의 뿌리이며, 민주주의가 하나님과 기독교의 정의를 실행하고 이 세계에서 인류에게 주시는 마지막 보루이다.(다음호에 계속)
강호생 선교사Dr.강호생 Mlssion Pastor
Iona Columba College 출강
Mental Health CPE 과정중
M.Div, M.Th, D.Ics
jhskang@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