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지리
이고니온(Lconium) – 현재의 콘야(Konya) / 안탈랴(Antalya)시티, 아스펜도스(Aspendos)
이슬람이 믿고 있는 6가지란? 1) 알라, 2) 거룩한 천사, 3) 거룩한 선지자, 4) 코란, 5) 정해진 운명, 6) 심판. 그래서 그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 중에 “인샬라”(신의 뜻대로)라는 소리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운명론에 빠져있는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또 한가지 5가지 행동이란? 1) 알라가 유일신임을 고백, 2) 1일 5번 기도, 3) 라마잔, 라마단 금식(1달간), 4) 1/40구제, 5) 성지순례(사우디 메카) 등이다. 이런 지침들은 이슬람을 일반 사람들의 눈으로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아주 분명한 증거라고 말할 수 있다.
이슬람의 왕성한 현장을 보면서 그 속에 숨겨진 “6信 5行”의 위력을 잠시나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 현장을 뒤로 하고 다시금 바울의 흔적을 찾아 이고니온(Lconium), 현재 콘야(Konya) 라는 지역으로 향하게 되었다.
이고니온(Lconium) – 현재의 콘야(Konya)
이고니온(Lconium – 현재 콘야; Konya) 지역과 그 주변은 이미 역사적으로 선사시대부터 알려진 인류정착거주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이곳은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에 속한 아주 다양한 유적들을 가까이에서 만나 볼 수 있는 현장이다.
이 곳 이고니온(Lconium; Konya)은 기원전 7천년부터 정착거주지가 되었던 문명의 요람지이기도 하다. 글씨가 기원전 3천 5백년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라면 이고니온(Lconium; Konya)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정착지들 중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이고니온(Lconium; Konya)의 경계 안에 있는 차탈휴육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농업을 시작한 곳으로 야생동물의 공격에서 공동으로 방어했으며, 불을 처음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인류의 첫 정착거주생활과 음식문화 등이 처음으로 시작되었던 중심지로 추측되어진다.
그리고 이고니온(Lconium; Konya)은 항상 문명의 중심지가 되어 왔다. 히타이트(Hittite), 리디야(Lydia)는 주전 600년대, 페르스(Persia)는 주전 400년대, 알렉산더(Alexander)대왕, 베르가마(Bergama)왕정은 주전 200년대, 로마(Roma)는 주후 395년에 콘야(Konya)와 그 주변을 통치했다. 7세기 초 사산(Sasan) 왕조가 곧 같은 7세기 중반 무아비에의 명령에 에메비가 이고니온(Lconium; Konya)을 일시적으로 점령했다. 10세기에까지 비잔틴(Byzantine)의 도시가 된 이고니온(Lconium; Konya)은 아랍회교도인에 의해 공격당하고 말라즈기르트(Malazgirt) 전투보다 먼저 (Lconium; Konya)에 온(1069년) 터키 공격자들에 위해 셀축(Selcuk)시대가 되었다.
대셀축제국(Selcuk Empire)의 왕 알파르스란(Alparslan)은 1071년 터키민족에게 아나돌루(Anadolu)의 문을 열어주었다. 알파르스란(Alparslan)왕은 승리 후 사령관에게 아나돌루(Anadolu)를 완전히 정복할 직책을 주었다. 그리고 이고니온(Lconium; Konya)은 슐레이만 샤흐(SÜLEYMAN ŞAH)에 의해 정복되었다. 그 후 슐레이만 샤흐(SÜLEYMAN ŞAH)는 이고니온(Lconium; Konya)을 정복하면서 서쪽을 통치하고 중심지로 이즈닉(Iznik)을 선택하여 아나돌루(Anadolu) 셀축(Selcuk) 정부가 1074년 세워졌다. 정복과 함께 이고니온(Lconium; Konya)에 터키-이슬람 시대가 시작되었다.
1097년 제 1 십자군 전쟁에 의해 이즈닉(Iznik)을 점령당한 후 수도를 이고니온(Lconium; Konya)으로 옮겼다. 이렇게 역사에 새로운 장을 더 연 이고니온(Lconium; Konya)은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야에서 특히, 건축 유적과 장식 등이 짧은 기간 동안 아나돌루(Anadolu)의 가장 번영하는 도시로 자리매김을 하는 과정에서 발전을 하게 되었다. 제 3 십자군 전쟁에 독일제국의 바르바르로사(F. Barbarossa)가 콘야를 포위하였으나 클르차르스란 2세의 수비에 성이 빼앗기지 않았고 5일 후 공격을 포기하고 후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1308년 셀축(Selcuk)시대가 몰락하기까지 이고니온(Lconium; Konya)은 수도로 계속 자리하였고 그후 카라만올루 봉건제국의 가장 큰 도시로 카라만(Karaman)봉건제국의 경영지가 되기도 하었다. 1467년 이고니온(Lconium; Konya)은 오스만 영토에 포함되었고 현재는 터키 공화국의 가장 크고 중요한 도시중의 하나로 과거이 화려함과 미래로 가는 길에 빠르게 발전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이고니온(Lconium; Konya)을 떠나 다소산맥을 넘어가는 긴 여정 속에서 사도바울의 선교를 향한 열정의 흔적과 숨결을 느끼며 주님과 함께 했었던 그 순간들을 공유하고 싶은 욕심이 심연 깊은 곳에서부터 몸부림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 산맥을 걸어서 탐사하는 것도 아주 뜻 깊은 여정이 될 것 같은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안탈랴(Antalya)시티, 아스펜도스(Aspendos)
세계적인 휴양관광도시인 안탈랴(Antalya)는 지중해의 관문도시이며, 이스탄불 다음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 도시이기도 하다. 안탈랴를 중심으로 동서를 뻗어 있는 해안을 따라 100여개의 고대 도시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안탈랴(Antalya)에서 마나브가트 방향으로 47km 정도 떨어진 곳에 원형 극장인 아스펜도스(Aspendos)유적이 있다. 아스펜도스(Aspendos)는 지중해 바닷가로부터 내륙으로 16km 들어간 곳에 있었지만, 도시 옆을 흐르는 에우리메돈(Eurymedon)강을 통해서 바다로 나갈 수 있었다. 아스펜도스(Aspendos)에 도시를 건설한 때는 트로이(Troy) 전쟁이 끝난 후 ‘옵소스’라는 사람이 그리스인을 비롯한 여러 민족들을 데리고 와서 도시를 세웠다는 전설이 유력하다. 그 후 BC 6세기에 리디아(Lydia) 왕국의 지배를 받다가 페르시아(Persia) 영토에 편입되었으며 나중에 로마의 영토에 편입되면서 번영을 누렸다. 아스펜도스(Aspendos)는 은화를 최초로 주조한 도시 가운데 하나였으며, 주변 호수에서 생성된 소금과 기름진 평야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 양털 등을 팔아서 많은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155년 로마 제국 당시 지어진 원형극장이 거의 처음 모습으로 잘 남아 보존되어 있는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황제 때 당시 아르펜도스(Aspendos)의 재력가였던 ‘쿠르티우스’(Curtius) 형제가 공사비를 부담하고 이 도시 출신 건축가였던 제논에 의해 만들어 졌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