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지서 해석(10)
지금은 절개 (節槪)를 구할 때: 호세아서<10>
이스라엘을 오갈 때 (2015. 12) 우리는 ‘엘알’ 항공 (EL AL Israel Airlines)을 이용하였다. 갈 때에도 올 때에도 비행기는 안전한 항로를 택하여 멀리 우회하였는데 아마도 테러 위협때문인 듯싶었다. 여러 시간 비행기를 타는 동안 갑갑하면 일어나 통로를 걷거나 화장실 뒤의 작은 공간에서 체조를 하였다. 그러면 뻣뻣한 몸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곳에서 어떤 유대인 남자가 몇 시간이고 서서 고개를 끄덕이며 성경을 읽는 것을 보았다. 물론 히브리어로된 구약성경이다. 비행기 안에서까지 성경 읽는 모습이 충격이요, 내 시선을 파고드는 낯익은 히브리어 성경도 충격이다. 이중충격이다.
그러나 비행기 안에서까지 성경 읽는 사람이 그 유대인 뿐이었더면 나는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뒤에 서서 체조를 하면서 보면 여기 저기 학우들이 성경을 읽고 있었다. 유대인처럼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았지만 히브리어 본문은 아니었지만 학우들은 긴 시간 신구약 예수님 말씀을 친구삼았다. 오기전부터 애초에 성경 일독하기를 작정했는지 잠 한 숨 안자고 말씀을 읽는 사람도 있었다. 이방인인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말씀을 붙잡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해서 우리가 이렇게 빨간 볼펜으로, 형광펜으로 줄까지 치면서 종이가 너덜너덜해지기까지 이 책을 사랑하는지 알 수 없다.
예루살렘의 호텔 믹달에서 하루 자유 시간 (free day)이 있었다. 12월 3일 목요일, 단 하루뿐인 자유시간, 무엇을 할까. 나는 동행하였던 교수님과 함께 이스라엘 책방을 찾았다. 자유시간에 가려고 교수님은 호텔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이 서점을 미리 인터넷으로 검색해 놓았었다. 아침 일찍 나섰는데 이게 웬일인가. 억수같이 비가 쏟아졌다. 이내 우리는 길을 잃어버렸다. 헤매다가 걸어가는 유대인 처녀에게 물어보았다. 따라오라고 해서 가보니 그 서점은 바로 지척에 있었다. 힐렐 거리 (Hillel Stree)와 이어진 브에리 거리 (Beeri Street) 5번지!
‘브에리’…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 아닌가. 바로 호세아서 1장 1절에 나오는 호세아의 아버지 이름이다.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때는 내가 막 호세아서 기고를 시작할 때였다!) 브에리, ‘나의 우물’이라는 뜻이다. 브에리에 있는 이 서점 이름은 Pomeranz (책방 주인이 미가엘 포머란즈)이다. 한참을 둘러 보다가 주인 미가엘에게 ‘히브리어 영문 대조 시편’이 있는가 물어보았다. 원어-영문 대조 성경은 호주에도 한국에도 팔지만, 시편만 따로 히브리와 영어로 되어 있는 것은 못보았기에 물어본 것이다. 휴대용으로 가지고 다니면서 시편에 친숙해지고 싶었다. 미가엘은 책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단번에 있다고 대답하였다. 당장 여기엔 없지만 주문하면 내일 금요일 오후께나 일요일 아침쯤 받아볼 수 있다고 하였다. 아침 9시에 문을 열어 저녁 7시 반에 닫지만 금요일은 벌써 오후 2시에 닫으며 안식일은 종일 열지 않으니 금요일 오후에 책이 오지 않으면 주일 아침에나 받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금요일 종일 답사 일정이 있었다. 책방 갈 시간이 없었다. 또한 주일 아침은 일찍이 갈릴리로 떠나게 되어 있었다. 주문을 해도 받지 못하기 쉬웠다. 망설여졌다.
하지만 책 욕심이 발동하였다. ‘일단 주문해 놓자’. 책이 오면 전화를 달라 하고 미가엘에게 호텔이름과 방번호를 알려주었다. 금요일. 답사 일정을 마치고 오니 호텔 리셉션에서 책이 왔다고 알려주었다. 서둘러 서점을 향하여 걸어가는데 상점들이 문을 닫고 있었다. 금요일 오후인데 벌써 닫은 곳도 많았다. 도착해보니 서점도 꽁꽁 닫혀 있었다. 다음날은 안식일. 답사일정을 마치고 나와보니 단 한 곳도 열은 상점이 없었다.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것 보다 더 무섭게 이들은 안식일을 지킨다. 아, 낼 아침이면 예루살렘이여 안녕인데 책을 받을 길이 없었다. 책은 와 있는데 손에 쥐어보지 못하니 토요일 밤은 전전반측이었다.
주일 아침, 우리는 8시 반에 떠난다. 책방이 9시에 여니 이미 기회는 지나갔다. 허전한 마음에 짐을 꾸려 버스에 싣다 말고 문득 번개같이 생각이 스쳤다. ‘혹시 일찍 열었을지도 몰라’ 버스 출발 15분여를 남겨 놓고 나는 엘리야처럼 빌립처럼 달렸다.
이번에 예루살렘에서 많은 것을 건졌지만 그중의 으뜸은 히브리어-영어 대조 ‘테힐림’ (시편)이었다. 일찍 문을 열어준 미가엘 포머란즈에게 나는 연거푸 “토다 라바!” (Thanks a lot!) 하였다. 버스에 올라 예루살렘을 떠나는 마음이 정말 홀가분하였다. 격앙된 기쁨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버스에서 나는 그 책을 가방에 넣었다, 꺼냈다 하였다. 읽었다, 들었다, 놓았다 하였다. 도톨도톨한 겉장을 만져보기도 하였다. 미가엘이 다시 고맙게 생각되었다. 그는 내가 찾는 책이 무엇인지, 그 책이 있는지 없는지, 반드시 내 손에 그 책을 쥐어주어야 할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왜 이런 생각이 들겠는가. 오늘, 미가엘과 그의 부인 쉬라가 운영하는 그 서점 홈페이지에서 다음 소갯말을 찾았기 때문이다. “Their goal is to put the right book in the hands of the right customer. At this, Michael is a wiz. Michael knows his books and he knows his customers. Michael has an amazing memory for faces and names and his books…” (‘임자될 바로 그 손님 손에 그 책을 쥐워주자 ’ 이것이 우리 부부의 목표다. 이 방면에 있어 남편 미가엘은 달인의 경지에 있다. 미가엘은 자기가 무슨 책들을 비치하고 있는지 손님은 누가 누구인지 훤하다. 기억력이 비상하여 얼굴도, 이름도, 책도 하나하나 기억한다…필자 의역)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우물’인 주님의 말씀을 버렸다고 경책한다. “바티슈카 토라트 엘로헤카” (네가 네 하나님의 토라를 잊었다: 호 4:6). 반면, 나는 우여곡절 끝에 ‘브에리’ 거리에서 ‘나의 우물’인 말씀, 바라던 그 말씀을 얻었다. 호세아와 동시대 선지자인 이사야도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의 말씀을 멸시하였음이라”고 ‘생수의 우물’을 버린 이스라엘을 탄식한다 (사 5:24). 반면, 학우들은 피곤할 여정, 비행기 안에서도 우리의 ‘우물’이신 말씀으로 오히려 그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브에리 거리에서 책을 파는 미가엘 부부, 그 가족도, 비행기 안에서 토라를 읽던 그 유대인도, ‘생수의 우물’이신 예수님 (아 4:15)을 만나 이제는 그 삶에 생기가 돌기 바란다.
최영헌 교수 (알파크루시스 신학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