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지서 해석(15)
지금은 절개를 구할 때: 호세아서<15>
호세아서는 제사장과 왕의 타락, 우상숭배의 죄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이것은 북 이스라엘의 예배와 그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의 부패를 강조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예언자 (선지자)와 예언에 대한 주제는 조금 밖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에봇과 드라빔은 무엇인가
호세아서에 나타나는 ‘예언’ 주제는 이를 테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에봇은 제사장이 직무를 수행할 때 입는 옷 (출 28:5 이하)이지만 제사나 제사장 주제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예언’과 관련하여 쓰였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에봇과 드라빔’은 같이 연결되었는데 이는 모두 어떠한 신탁 (神託; oracle)을 위한 도구들이기 때문이고 제사 주제에 대해서는 바로 전에 벌써 ‘제사와 주상’이라는 말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에봇’은 다윗이 하나님께 여쭐 때 사용되었다. 삼상23:9 이하를 보면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다니다가 그일라에 왔다. 그는 사울이 자기를 해치려는 음모를 알고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에봇’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다윗은 야웨께 여쭌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사울이 나 때문에 이 성읍을 멸하려고 그일라로 내려오기를 꾀한다함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넘기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 이에 야웨께서는 “그가 내려오리라.”고 대답하셨다. 에봇이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묻는 도구로 사용된 것은 12보석이 박힌 흉패 안에 우림과 둠밈이 들어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드라빔’ (히브리어로 테라핌)은 ‘가정 수호신들’ (household gods. NIV; ESV) 혹은 ‘우상들’ (idols. NET)로 번역되는데 에봇과 연관해서 본다면 드라빔은 우상 형태로 만들어진 ‘점치는 도구’로 생각된다. 슥 10:2를 보면, “드라빔들은 허탄한 것 (히브리어로 아웬. vanity)을 말하며 복술자 (the diviners)는 진실하지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한즉 그 위로가 헛되므로 백성들이 양 같이 유리하며…”라고 되어 있다. 결정적으로 호세아서 3:4의 ‘에봇과 드라빔’과 관련해서 해석할 수 있는 구절은 삿 17-18장에 나타나는 ‘에봇과 드라빔’ (특히 17:5)이다. 이것들은 미가가 만든 것들이며, 미가가 세운 제사장은 단 지파 자손들이 그들의 앞길의 평안 여부를 묻자 대답을 해 주는 사람으로 나타난다. 즉, 단 지파 사람들은 ‘에봇과 드라빔’을 가지고 ‘점치는 자’에게 그리고 우상을 섬기는 가짜 제사장에게 야웨의 뜻을 물은 것이다. 이는 구약에서도 혼합주의의 극치에 해당하는 것이고 호세아는 사사시대로부터 약 600여년 후에 북이스라엘의 멸망의 예언을 할 때 당시 북이스라엘이 사사기때와 아주 유사하기에 사사기에 나타난 이러한 모티프와 주제들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사사기의 삼손의 음란 중독과 단 지파의 제사장의 타락과 우상숭배 및 점치는 행위 그리고 “그 때에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삿 17:6)”는 주제들은 호세아가 사역하던 당시 북이스라엘의 음란 중독 (호 1:2; 4:11-15 등), 제사장 (4:4; 5:1)과 우상숭배 (4:17; 8:4, 11; 10:1-2; 12:11; 13:1-2)와 점치는 행위와 예언자의 타락 (4:12; 9:7) 및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 없었음 (8:4) 등의 주제들과 곧바로 연결된다. 선지자들 중에 사사기 내용을 이토록 많이 언급한 사람은 호세아 외에는 없다.
BC 8세기의 선지자들, 미친 점쟁이들이 되다
호세아서에서 이러한 점치는 행위 및 선지자의 타락 주제가 나타나는 대목은 두 군데이다. 4:12, “내 백성이 나무에게 묻고 그 막대기는 그들에게 고하나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마음 (음란 영)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버리고 음행하였음이니라” 그리고 9:7-8, “선지자가 어리석었고 신에 감동하는 자가 미쳤나니 이는 네 죄악이 많고 네 원한이 큼이니라…선지자는 모든 길에 친 새 잡는 자의 그물과 같고 그의 하나님의 전에는 원한이 있도다.” 첫째, 성령 충만한 것이 선지자의 특징인데 (9:7의 ‘신에 감동하는 자’는 원래 ‘성령의 사람’ [이쉬 하루아흐]이란 뜻; 미 3:8), 선지자가 죄를 많이 짓고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둘째, 그러므로 선지자에게 성령이 아닌 어두움의 악령이 역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 29:10,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 그러므로 모든 계시가 너희에게는 봉한 책의 말처럼 되었으니…”; 미 3:7). 셋째, 그러므로 선지자는 어리석게도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거나 (사 23:16-17겔 13:3; 호 9:7), 귀신이 시키는대로 거짓말로 예언하거나 (사 9:15; 렘 23:25-26), 심하면 정신이상에 걸리게 된다 (호 9:8). 넷째, 하나님이 시키신 선지자의 사역을 돈을 위해 점치는 직업으로 생각하며 돈을 받을 때 평강을 외치고 돈을 주지 않을 때 전쟁을 준비한다 (미 3:5, 11). 다섯째, 그리하여 이들은 백성을 미혹하며 (렘 23:32) 멸망에 빠지게 하며, 자기들도 영원한 수치를 당하게 된다 (렘 23:40).
21세기의 타락한 ‘예언=말씀’ 사역자들
늘 주님 앞에 경건을 구하고 기도와 말씀으로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할 목사, 신학자, 전도사, 선교사들 (구약으로 말하자면 넓은 의미의 선지자 곧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로 볼 수 있음)이 정욕에 치우쳐 음란과 술과 여타 죄의 노예가 되면 그들에게는 어둠의 귀신의 영이 역사하게 된다. 그러면, 목사는 강단에 섰으나 성령으로 진리를 전하는 대신 자기 얘기, 거짓말, 미혹하는 말을 하게 된다. 신학자는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 이설에 감염되어 학식 높은 고등 이단이 된다. 선교사는 전도를 하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위해 후원교회를 다니며 선전에 골몰하게 된다. 그래서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진리와 능력과 성결의 말이 아니라 지옥의 죽음에 이르도록 유혹하는 거짓말인 것이다. 이들은 자기들 스스로도 거짓말인 줄 모르고 거짓말을 하게 되는데 이는 ‘거짓말하는 영’의 꾀임을 받기 때문이다 (왕상 22:22-23 “…이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대개 더러운 말, 희롱의 말, 교만한 말, 상스러운 욕이 섞여 있다. 계 16:13-14,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미가처럼 다니엘처럼 주앞에 섰기를
반면, 거룩의 삶을 구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성령 충만을 받는 사람들은 누구나 넓은 의미의 선지자들이라 할 수 있다. 열방의 어느 곳이든지 그들은 자기들이 선 위치에서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한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기사와 이적을 일으키기도 하시고 놀라운 성령의 부흥을 일으키신다. 우리 모두 미가 선지자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직 나는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능력과 정의와 용기로 충만해져서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 우리는 또한 다니엘 선지자처럼 기도했으면 좋겠다. 믿음의 백성들의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했을 때 다니엘은 주님의 메시야의 나라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받지 않았는가. 우리 모두 주 앞에 다니엘처럼 ‘큰 은총을 받은 사람’으로 서있기 바란다 (단 9:23; 10:11).
최영헌 교수 (알파크루시스 신학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