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지서 해석(3)
지금은 절개 (節槪)를 구할 때: 호세아서<3>
이 글을 쓰는 필자는 사실 지금 (2015. 12. 7) 호세아가 사역하던 북이스라엘 지역에 와 있다. 하나님 은혜로 우리 신학대 학우들과 이스라엘 여러 지역들 답사 중에 특별히 오늘은 호세아 1장의 내용과 연결되는 ‘이스르엘’ 지역을 비롯하여 근방 므깃도와 갈멜산, 기손 시내도 탐방하였다. 저녁 기도회에는 이스라엘의 패망 원인인 혼합주의에 대하여도 언급하였다. 구약 하나님 말씀은 바로 지금의 시점의 우리에게도 재삼 교훈을 준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신 구원 안에 사는 우리에게 얼마나 신앙의 순수성이 필요한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얼마나 신앙의 절개를 원하시는지 우리는 그 교훈을 통해 깨닫게 된다. 호세아서는 그 옛날 이스라엘에게 뿐 아니라 오늘 새언약 속에 있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차창 밖에 멀리 보이던 헐몬산 정상의 흰눈처럼 내 영혼이 주님 앞에 깨끗하길 소원한다.
오늘은 호세아서 1-2장의 구조에 대하여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필자의 호세아서의 거시적 구조에 대한 통찰이 기존의 그것과 차이가 있듯이, 미시 구조에 있어서도 그렇다. 실제로 여러분이 1장을 읽으면서 함께 호세아서의 문학적 구조와 메시지를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호세아서 1장의 이야기 본문 (내러티브)은 한글번역성경 기준으로 1:1의 표제를 제외하면 1:2부터 2:1까지가 하나의 단락을 이룬다 (히브리 본문은 한글번역과 장절에 차이가 있음). 이것에 대하여 기존의 학자들은 거의 모든 이들이 1:2-9 (심판)과 1:10-2:1 (회복)으로 구조 분석을 한다. 그러나 면밀히 살펴보라. 1:2-9에도 군데군데 회복 내용이 있다 (1:5와 1:7). 뿐만 아니라, 1:10-2:1을 하나로 묶었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1:10은 1:8-10의 ‘로루하마’와 관련된 예언의 말씀에 속한 절이며, 1:11-2:1은 ‘한 두목’이 나온 다음 세 자녀 ‘이스르엘’, ‘암미’, 그리고 ‘루하마’라는 이미 언급된 자녀들의 이름이 회복의 관점에서 다시 언급되고 있는 절들이다.
나의 분석은 다음과 같다. 즉, 호세아는 어떤 단어를 통해 의미/들을 전달하는 기법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1:2b를 보면, ‘음란’이라는 단어를 통해 이스라엘의 음란죄를 지적 (2c)한다. 이 절에는 ‘음란한 (히브리어로 제누님)’ 아내와 ‘음란한 (제누님)’ 자식들이 나오고, 이 나라가 ‘크게 행음함 (자노 티즈네: 동일한 어근을 두 번 사용, 즉 부정사 절대형과 미완료형을 결합해 의미 강조) 이니라’라고 하여 같은 단어를 사용하여 기술적으로 특정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법은 다음 절에도 계속된다. 1:3-4a 아들을 낳으매…이스르엘 (이즈레엘)이라 하라에서 ‘이스르엘’이란 단어를 반복하되 한 번은 심판을, 다른 한 번은 구원을 선언한다. 4b에는 ‘이스르엘’의 피…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라는 구절이, 5절에는 ‘이스르엘’ 골짜기에서…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라는 구절이 나타난다. 여기에는 이스르엘과 이스라엘 간의 언어유희 (word play)도 보인다. 5절은 언뜻 보면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 같지만, 이스라엘의 전쟁 수단을 없앰, 즉 평화의 때의 도래를 말하는 것이다 (참고. 2:18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이와 같은 방식은 6-7절에도 똑같이 나타난다. 딸을 낳으매…로루하마 (로+루하마)라 하라 에서 같은 어근이 6c와 7절에서 각각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에 사용된다. 즉, 이스라엘 족속을…긍휼히 여기지 않을 것임이니라 (로 아라헴: 여기서 아라헴의 어근은 라함)와 유다 족속을…긍휼히 여겨서 (아라헴)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똑 같은 방식이 마지막으로 1:8-9에 또 보인다. 아들을 낳으매…로암미 (로+암미)라 하라 에서 아들의 이름을 가지고 한번은 심판, 한 번은 구원을 말한다. 심판은 9b에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로+암미), 구원은 10ab에 이스라엘 자손 (베네 이스라엘)의 수가…셀 수도 없을 것이며…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로+암미) 한 그곳에서…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아들들 (베네 엘 하이)이라 할 것이라 로 나타난다. 여기서 베네 이스라엘과 베네 엘 하이는 암미와 병행을 이룬다. 최종적으로 이스르엘, 암미, 루하마라는 단어로 각각 구원 메시지가 선포된다. 즉,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가 바로 그것들이다.
정리하자면, 1장 (N1)은 선지자의 개인적 결혼과 자녀들의 출산 이야기를 통해 예언 메시지가 전개되는데 단어의 반복을 통해서 죄와 심판/구원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음란한’ (제누님)이란 단어는 아내와 자식들의 성품을 나타내는 단어인데 이 단어 ‘자나를 부정사 절대형+미완료형의 결합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의 죄를 강조하고 있다. 그 다음은 자녀들의 이름을 가지고 한편으로는 심판을 다른 한편으로는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고 (3회의 싸이클을 이룸) 마지막으로 자녀들의 이름의 긍정적 형태를 가지고 (이스르엘은 그대로) 구원 메시지를 한번 더 언급하고 이 단락이 마무리되고 있다. 즉, 이 단락을 단어의 반복을 통해서 볼 때 특별히 아내-자식들 중에 자식들의 이름이 메시지 전달을 위해 아주 우세하게 사용된 것이 이 단락의 특징이다.
이러한 분석과 기존의 분석 1:2-9 (심판)과 1:10-2:1 (회복)을 비교해 보라. 기존의 분석은 첫째, 죄-심판/구원으로 메시지가 전개되는 선지서의 일반적 내용 흐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그저 심판과 회복으로 구분할 뿐이다. 둘째로 그것은 3번에 걸친 심판/회복의 싸이클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셋째로 그것은 세 번째 심판/회복의 회복 부분 (10절)을 제일 마지막에 세 단어를 가지고 한번 더 회복을 강조하는 1:11-2:1의 부분과 뒤섞어버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존의 분석은 우리로 하여금 호세아서의 놀라운 글의 짜임새를 놓칠 뿐 아니라, 죄-심판/구원의 신학적 논리성도 간과하도록 한다. 나는 이러한 나의 분석이 독자 여러분에게 호세아서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최영헌 교수(알파 크루시스 칼리지)
Korean VET Director & Train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