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지서 해석(39)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 아모스서<1>
아모스는 몇 가지 면에서 특이한 사람이다. 첫째로 그는 남쪽 유다의 드고아 출신 (1:1)이나 북쪽 이스라엘에 가서 활동한 사람이요, 둘째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였는데 (7:14) 선지자의 소명을 받은 사람이요, 셋째는 이스라엘 왕을 모반한다는 역적의 누명을 쓴 사람이요 (7:1), 넷째는 구약의 선지자들 중 누구보다 돈 없고 힘 없는 자들 편에서 사치하고 방탕한 부유층에게 직격탄을 퍼부은 선지자이며, 다섯째로 신랄한 쓴소리가 너무 지나쳐 하는 말을 반대로 들어야 제대로 들은 것이 되는 사람이며 (4:4-5), 여섯째로, 보통 다른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그리고 그 다음에 열방에 대해 예언하나 그 틀을 엎어버리고 열방에 대해 먼저 예언하고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그 다음에 예언한 사람이요, 일곱째로, 자기 고향 사람들도 아닌 이스라엘 사람들을 심히 책망하되 그 마음 속에는 그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품었던 사람이며 (4:12, 5:4, 7:1-6), 여덟째로, 빗대어 말하는 데에 있어서는 명인이요 (2:13-16, 3:3-6, 12, 4:2, 5:19, 6:12, 9:2-3), 마지막으로, 그의 활동시기를 주전 760년경으로 추정할 때, 지금부터 2780년전쯤 벌써 요즘에나 잦은 ‘쓰나미’에 대해 예언한 사람이다 (5:8, 9:6).
특이한 아모스서
이미 위에서 여섯번 째로 언급하였지만 아모스 뿐 아니라 아모스서도 특이하다. 이 책이 얼마나 특이한지, 아홉 장으로 되어 있는 그다지 길지 않은 예언서이지만 아모스서의 내용이 어떻게 짜여 있는지를 확신 있게 말한 학자들이 없을 정도다. 이스라엘 보다 열방에 대한 예언이 먼저 나오고, ‘어느 나라’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라는 어구가 2:16까지는 패턴으로 나타나다가 그 다음은 더이상 나타나지 않으며, 4:6-11에서는 ‘내가…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가 반복해서 나타나며, 4:1-3, 5:8-9, 9:5-6은 비슷한 후렴구들이며, 뒤에 가서는 앞에 보이지 않던 환상들이 등장한다. 필자는 아모스서로 박사학위 논문을 쓴 사람들을 몇 명 만나보았는데 그들조차 아모스서의 짜임새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동시대 선지서 호세아서와 더불어 구조 분석이 어렵기로는 쌍벽을 이룬다.
주제들에 따른 3구분
아모스서의 구조를 이해하는 여러 시각들이 있겠으나, 필자는 주제들의 배열의 일관성을 따라 살펴보려 한다. 책은 전체로서 하나를 이루되 3부로 나눌 수 있다. 곧, 1:1 표제를 제외하고 1:2-3:15; 4:1-7:9; 7:10-9:15이 그것이다. 각 단락은, 가난한 자 압제, 다른 나라들과 비교되는 하나님-이스라엘의 관계, 예언 금지, 사치와 방탕 (궁궐, 궁전 등 모티프), 벧엘 등에서의 제사의 타락, 심판 등의 주제를 공통적으로 나타낸다. 그러면서도 첫 단락은 죄 (열방과 이스라엘)가, 둘째 단락은 회개 하지 않는 이스라엘, 회개 권면, 창조주와 만유의 주재로서의 여호와, 애곡 등이, 셋째 단락은 여호와의 날, 심판, 이스라엘에 대한 긍휼, 메시야 (다윗의 장막), 이방과 이스라엘의 회복 등의 주제들이 우세하다.
열방의 죄, 이스라엘의 죄
먼저 첫 단락을 살펴보면,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는데, 열방을 향하여 심판을 선고하신다. 다메섹, 블레셋, 두로, 에돔, 암몬, 모압 등 이스라엘 주변국들의 죄가 거론되고 그 다음은 유다, 이스라엘의 순으로 되어 있다. 아모스서의 열방을 치는 설교는 그들의 죄에서 시작하여 심판으로 끝맺고 있는데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이 본문의 내용은 한결같이 각 나라 처음에 “서너가지 죄”가 나타나고 마지막에 “궁궐을 사른다”는 내용이 나타난다 (물론 끝에 “사로잡힌다”는 내용이 나오는 것도 있으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여기서의 ‘궁궐’로도 번역이 되었지만, ‘성채’ (히브리어로, 아르메노트)를 의미하는데 영어로는 citadels (Holman), fortresses (NIV, NLT), strongholds (ESV), palaces (KJV, Jubilee Bible 2000)로 나타난다. 이 단어는 유다의 심판에도 (2:5), 이스라엘의 심판에도 (3:10, 11)에도 보이는데, 따라서, 보통 학자들이 하듯이 2:16까지로 첫 단락을 끊어버리면 이스라엘의 심판에도 이 단어가 마땅히 나타나야 하는 점이 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열방의 죄는 무엇인가. 그들의 죄는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 범한 죄들이다. 언약 백성에 대한 홀대는 언약주 여호와에 대한 무시를 의미하는 것이 성경의 어법이다. 이스라엘의 죄가 언약주 여호와에 대한 범과, 언약주를 의지하지 않고 자기 성채를 의지한 죄라 한다면, 이방들의 죄는 그 언약백성과의 관계를 신실히 유지함으로 그 관계 속에서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가져야 함에도 그렇게 하기는커녕 그 언약백성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깰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는 그 백성을 유린하는 행위가 그들의 죄인 것이다. 그리하여 이방 나라들의 자기 보호 수단의 대표적인 것인 그들의 ‘성채’는 여호와의 보내시는 ‘불에 살라질 것이다’.
내가 의지하는 인간적 수단, 나의 ‘성채’
핍절한 상태에서 주님께 기도하여 주님께서 내게 ‘성채’를 주실 때 그 ‘성채’에 안주할 때부터 영적인 여러가지 탈이 생긴다. 왜 성채에 안주하는 것일까. 그것이 튼튼해 뵈니까 그렇다. 하지만 그 튼튼해 보이는 것이 일순간에 무너져 버린다. 그러니 ‘성채’에 거하면서도 안주하지 않고, 나의 참 튼튼한 성채가 되시는 여호와께 거하는 것이 제일로 좋은 것이다. ‘성채’에 안주하다가 ‘성채’가 없어지는 날 후회에 빠진다면 처음부터 ‘성채’를 받지 않는 것이 더 낫다. 8세기 이스라엘은 잘 살고 잘 먹었다. 그들에게는 튼튼한 성채들이 있었다. 궁궐들이 있었다. 겨울 궁, 여름 궁, 상아 궁들, 큰 궁들 (3:15, 히브리어로 베트)이 있었다. 그들은 거기에 안주하였다. 많은 한국교회들이 이 성채들에 안주하고 있다. 아모스서에 따르면 이 성채들은 불에 살라질 것이다.
최영헌 교수(알파크루시스 신학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