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지서 해석(42)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 아모스서<4>
아모스서의 ‘메뚜기’, 계시록의 ‘황충’
사도 요한은 구약의 다른 부분들 뿐만 아니라 아모스서에서도 몇 가지 내용을 가져와서 종말의 심판 예언에 사용한다. 아모스 7장 이하에 나타나는 내용들은 특히 계시록과 연관이 깊다. 메뚜기가 땅의 풀을 다 먹은 환상 (암 7:2)은 아모스 당시로 보면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관련된 예언이다. 이것을 종말의 예언과 관련해서 본다면 (우리가 요엘서에서도 보았듯이) 계시록의 일곱 나팔 재앙 중에 다섯 번째 황충 재앙 (계 9:1-11)과 관련되었다고 할 것이다. 우리가 잘 알듯이 계시록의 황충들은 크기부터가 다르다.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준비한 말들 같”다고 했으니 (계 9:7) 아모스서의 메뚜기의 확대판이다. 이는 영적으로 악한 세력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일단은 ‘무저갱’ (無底坑)에서 올라온다는 점때문이다. 이 무저갱은 계시록에서 몇 군데 나오는데, 17:8을 보면 ‘적그리스도’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가 있던 곳이다. 이 적그리스도는 13:1에 의하면 ‘바다’에서 올라온다고 되어 있는데, 이 ‘무저갱’이 ‘바다’에 있다면 ‘무저갱’으로 말하든, ‘바다’로 말하든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다. 결국, 분명히 어딘가에 존재하는 영적인 특성을 지닌 장소임이 분명하다. 적그리스도 (짐승)가 이곳에 갇혀 있다가 나와서 ‘두 증인’ (복음 사역자들로 봄)을 죽여버리고 (계 11:7), 음녀를 태우고 활동하다가 “멸망으로 들어가게” 된다 (계 17:8). 사실, 이 장소는 재림하신 예수님의 1000년 통치 동안에 마귀가 결박되어 갇혀 있을 장소가 아닌가 (계 20:2-3, 헬. ‘아뷧소스’, 눅 8:31). 이 무저갱은 20:7에 다시 ‘옥’ (감옥, 헬. ‘퓔라케’)이라고 풀어 설명했으니 영적 존재를 가두어 나오지 못하게 하는 감금의 장소가 틀림없다. 결국 무저갱은 하나님이 설정하신 영계의 감옥이요 또한 이 적그리스도와 마귀 같은 존재들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제한된 시간 동안 활동하되 결국은 멸망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계시록의 이 무저갱에서 나온 황충들의 공격 대상은 불신자들이다.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친다 (계 9:4). 불신자들이 5개월 동안 괴롭힘을 당하게 되는데 이 괴롭힘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 같은” 것이며, 황충에 쏘인 불신자들은 죽고 싶어도 못죽는 처지가 된다 (계 9:5-6).
황충 재앙, 셋째 화, 휴거의 시기
이 황충 재앙과 관련하여 계시록의 종말 사건들을 일람해 본다면, 이 황충 재앙이 ‘첫째 화’이며 (9:12), 유브라데 전쟁이 ‘둘째 화’ (계 9:12-21)임이 분명한데, ‘마지막’ (셋째) 화 (11:14)는 일곱 대접 재앙(15:1; 16:1-21)을 가리키는 듯하다. 나팔재앙과 대접 재앙은 여러 면에서 연결점들 (우주 심판과 유브라데-아마겟돈 전쟁을 인한 사람들의 죽음)이 있으므로 적그리스도의 3년 반 통치 말기에서 그 시기 직후에 나타나는 천체의 격변 (여섯째 인 재앙 계 6:12-17; 마 24:29) 및 휴거 사건 (인자 예수님이 곡식 추수를 하심, 계 14:14-16; 추수된 곡식들이 하늘에서 찬양을 드리고 있음15:2)과 맞물려 있는 듯하다.
휴거 사건이 언제 일어날지는 분명치 않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일곱 대접 전으로 보는 시각이다. 우리가 고린도 전서 15장 51-52절을 보면, 성도들의 부활의 시점은 ‘마지막 나팔’의 시점이다. 헬라어로 ‘엔 테 에스카테 쌀피기’로 되어 있는 원문은 ‘그 마지막 나팔에 at the last trumpet’이라고 직역이 된다. 이는 계시록 10:7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그의 종들 곧 선지자들에게 선언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와 관련된다. 사도 요한은 여기서 일곱 째 나팔 (그 마지막 나팔)의 때를 ‘하나님의 그 비밀’과 관련시킨다. 놀라운 것은 사도 바울도 ‘그 마지막 나팔에’를 말할 때 시작하는 말은,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고전 15:51)이라는 것이다. 두 하나님의 종이 ‘비밀 (뮈스테리온)’과 ‘그 마지막 나팔’을 똑같이 관련시킨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은, 이 구절 계 10:7은 11:15과 연결된다는 점이다. 11:15는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라고 되어 있고 19절에는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고 되어 있다. 11:19의 이 내용은 또, 15:5-8과 연결된다. 즉,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영원토록 살아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들에게 주니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와 연결된다. 즉, 마지막 나팔의 시점이 고전 15:51-52에서 말하는 부활의 시점이라면, 그리고 계 14:14이하의 인자 예수님의 곡식 추수와 15:2의 짐승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을 이미 부활하여 휴거된 자들로 본다면 휴거의 시점은 일곱 대접 재앙 직전이 된다. 다시 말해서, 성도들은 일곱 대접 재앙 전에 이미 하늘에 가 있는 것으로, 즉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노래를 불러” (15:2-3)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성도들은 예수님이 아마겟돈 전쟁을 위해 이 땅에 강림하실 때 세마포를 입은 하늘 군대로 예수님을 뒤따라 강림하여 천년 통치 (왕노릇)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휴거의 시기를 약간 더 나중으로 볼 수 있기도 하다. 고전 15:51의 ‘마지막 나팔’을 일곱 대접 재앙들이 쏟아지기 전에 부는 마지막 째 곧 일곱 째 나팔로 보지 않고 예수님이 하늘 군대를 데리시고 강림하시는 어간에 하나님이 부시는 (마지막의) 나팔 곧 이 때의 나팔은 아마겟돈 전쟁을 통한 심판을 위해 하나님이 부시는 나팔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되었다고 생각되는 본문이 바로 살전 4:16, 17이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여기서 ‘호령’ (헬. 켈류스마티)은 NIV에서 a word of command로 번역했고, 천사장은 archangel로 나타나니 곧 미가엘을 말하는 듯하다. 이는 곧 전쟁을 위한 호령, 전쟁을 위한 천사장의 개입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것은 비슷한 주제들인 미가엘, 대환난, 부활 등을 나타내는 다니엘서 12:1, 2와도 연결된다고 할 것이다. 이는 계시록과 관련하여서는 19:11-21의 아마겟돈 전쟁과 이 사건에 이어진 부활에 대한 언급 20:4-6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어느 시점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일곱 대접 재앙과 음녀 바벨론의 멸망 후, 공중에 임하신 예수님께로 성도들이 부활, 휴거되어 올라갔다면 예수님 (계 19:11-13, 15-16)과 그분을 따르는 ‘하늘에 있는 군대들’ 곧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은 자들 (19:14)은 강림하시어 지상의 짐승과 그 군대들을 멸하고 천년 통치로 들어갈 것이다.
과연 마지막 나팔이 일곱 나팔 중 마지막 나팔을 가리키는 것인지, 아마겟돈 전쟁 때 하나님이 부시는 나팔이 마지막 나팔인지는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전자라고 봄). 어느 것이 됐든지 간에 휴거의 시기는 이 둘 중의 하나임에 분명하다. 일곱대접 전이라면 후 3년반이 지나고 나타나는 전무후무한 환란 전에 성도를 휴거시키시는 것이요, 일곱대접 후라면 아마겟돈 전쟁 직전일 것이다. 이 때든지 저 때든지 우리는 이 구절들을 보면서 부활과 휴거가 확실하니 그리고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의 아름다움의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니 끝까지 믿음의 담대함을 나타내자는 것이다.
메뚜기 재앙 외에도 아모스서의 불이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함 (7:4), 온 땅이 강의 넘침 같이 솟아오르며 애굽 강 같이 뛰놀다가 낮아짐 (8:8; 9:5), 해가 대낮에 지며 백주에 땅이 캄캄하게 됨 (8:9) 등이 보이는데 암 7:4는 계 8:8-9의 둘째 나팔 재앙과, 암 8:8; 9:5의 지각의 융기는 슥 14:10과, 암 8:9의 태양이 어두워짐은 계 8:12의 넷째 나팔 재앙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북이스라엘이 망할 때도 이런 일들은 부분적으로 있었을 것이나 또한 이 재앙들은 종말의 재앙들을 예언하는 재료로 요한에 의해 다시 사용되었다고 본다.
최영헌 교수(알파크루시스 신학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