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지서 해석(44)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 아모스서(6)
암 9:11-12, 다윗의 장막
이 구절을 히브리 맛소라 본문에 근거하여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 (쑤콧)을 일으킬 것이고 그 틈을 막을 것이고 그 몰락한 것을 일으킬 것이고 옛날들처럼 그것을 건설할 것이므로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불리우는 모든 이방 나라들 (고임)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70인역은 아마도 맛소라 본문과 다른 히브리 저본을 사용하여 번역하였을 것인데,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Brenton의 번역을 직역). “그 날에 내가 무너진 다윗의 천막을 일으킬 것이고 (아나스테쏘), 그것의 몰락한 것을 중건할 것이고, 파멸된 그것의 부분들을 세울 것이고, 옛날들처럼 그것을 건설할 것이므로, 사람들의 남은 자가, 그리고 내 이름으로 불리우는 모든 이방인들이 간절히 찾게 될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을 행하시는 주께서 말씀하신다.” 야고보는 행 15:16-18에서 70인역을 약간 해석적으로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이 모든 일들 후에, 내가 돌아올 것이고, 내가 무너진 다윗의 천막을 재건할 것이고, 그 몰락한 것을 재건할 것이고 그것을 ‘회복할’ 것이므로, 사람들의 남은 자가, 그리고 내 이름을 부를 모든 이방인들이 ‘주님을’ 찾게 될 것이다. 예로부터 이 일들을 알도록 하시는 주께서 말씀하신다.”
다윗의 장막이 무엇이냐
우선, 언급할 것은 암 9:11의 ‘다윗의 장막 (쑤콧)’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이는 역대상 16:1 (하오헬, 그 ‘장막’), 17:1의 (예리오트, 예리아의 복수, ‘커튼들’ 혹은 ‘휘장들’)과 우선 단어가 다르다. ‘쑤콧’은 보통 영어역에서 booth로 옮겨지는데, 이사야 1:8에 나오는 포도원의 ‘망대’ (원두막 같은 것), 요나가 니느웨 성읍 동쪽에 지었던 ‘초막’ (욘 4:5)에 쓰였고, 이스라엘의 추수 때의 절기인 초막절 (하그 하쑤콧, 레 23:42, 신 31:10 등)에도 사용되었다. 즉, 이 건축물은 정식 거처가 아닌 대강대강 만들어 놓은 허름한 구조물인 것이다. 이것은 다윗이 언약궤를 오벧에돔의 집에서 (대상 25) 레위 사람으로 메어 올려 다윗성에 안치했을 때 만들었던 ‘오헬’이나 ‘예리아’와 동일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물론 언약궤를 안치한 장막 혹은 휘장도 임시성을 띈 것이기는 하지만, 오두막이나 원두막이나 나뭇가지들을 모아 만든 간이처소와는 아주 다른 것이라 할 것이다. 여기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윗의 쑤콧’은 다윗의 가문 곧 한때는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여 하나님의 평화를 누렸으나 우상 숭배와 온갖 악행으로 ‘포로와 수치를 당하여 남루한 누더기 상태가 된 바로 그 다윗의 가문’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 ‘피난살이 판자집 같은 다윗의 가문’을 흥기시키시겠다는 것이다. 이는 아모스 시대에서 보면 이스라엘의 심판 (포로) 후 많은 날들이 지나 이루어질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원사적 행위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윗의 자손에서 메시야를 일으키시겠다는 것’이다. 아모스는 폐허가 다시 복구되어 어엿한 건물이 건축되듯, 멸망한 유다 왕국에서 하나님이 세우시는 다윗의 자손, 곧 만왕의 왕이신 영원한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방인들 중 남은 자들 (암 9:12)이 구원 받고,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 (9:8, 14-15)도 구원 받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야고보는 이 구절로 이방인들도 유대인들처럼 퇴락한 다윗의 가문에서 나신 하나님의 약속의 메시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행 15:11)로 구원 받음을 확증한다. 그는 이방인들도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 사람들의 입을 막아버린다.
다윗의 장막과 24시간 기도
근래에 어떤 사람들은 아모스서의 ‘다윗의 장막’이라는 용어를 잘못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이들은 이 용어를 다윗이 언약궤를 안치한 다윗성의 ‘장막’을 ‘다윗의 장막’이라고 부름으로 듣는 사람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 옛날 다윗이 레위인들을 세워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했던, 그래서 하루 24시간 늘 하나님의 임재를 맛보았던 장소를 ‘하나님의 (임시) 장막’이 아니라 ‘다윗의 장막’으로 부르니 이런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있어 ‘다윗의 장막’을 회복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하루 24시간 기도함으로 그 임재를 맛보고 그 기도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다. 물론, 다윗이 여호와의 장막을 사모한 것은 틀림 없다. 그가 이 장막에 안치된 언약궤 앞에서 제사를 드리며 레위인들로 기도케 하고 찬양케 한 것은 정말 아름답고도 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을 쓰는 나도 그러하기에 다윗의 시편 27편과 84편을 정말 좋아한다. 24시간 기도 운동, 24시간 감사 찬송 운동을 누가 나쁘다 하겠는가. 그러나 이 시편들을 읽어보면 ‘장막’에 사용된 단어는 ‘쑤콧’이 아니라 ‘오헬’ (시 27:5, 6) 혹은 ‘미슈칸’ (‘미슈케노테카’ your tabernacles, 84:1)이다. 이 장막은 여호와의 집이나 그의 성전 (시 27:4)과 같은 말이고, 좀더 넓은 범위로 언급되기도 하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 큰 왕의 성, 시온 산 (시 48)이다. 시편 48편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를 ‘시온 산’으로 말하다가 좀더 좁혀서 ‘당신의 전’ (히브리어 본문으로 48:10, your temple)으로 말하기도 한다. 아모스서의 다윗 언약의 성취인 ‘다윗의 장막’의 회복을 언약궤를 두었던 장막으로 오해하고 그 장막이 24시간 임재를 뜻하기 때문에 24시간 기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역대상에서 언약궤가 놓인 장막을 무심코 ‘다윗의 장막’으로 불렀다면 이해할 수는 있다). 여기서 더 언급해야 할 것은, 신약시대에 이 하나님의 성전은 곧 우리 믿는 자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전인이 매일 매시간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24시간 기도 운동하는 단체들도 많이 생길수록 좋다. 다만 성경 구절을 주의깊게 사용하자는 것이고, 모든 주의 일들을 성경의 가르침대로 하자는 것이다. 괜한 오해를 불러 일으켜 소모전을 할 필요가 없다.
아모스의 다윗의 장막과 제3성전 (에스겔 성전)
다른 한편으로, 어떤 사람들 (특히 세대주의자들)은 이 ‘다윗의 장막이 회복될 것’이라는 행 15장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첨예하게’ 나누어 설명하거나 그 구원 경륜에 ‘유대인 중심성’을 정당화하는 데에 사용한다. 물론 하나님이 먼저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고, 그 이스라엘과 이방을 구원하시는 사역에는 양자에 대한 경륜이 있음도 확실하다. 그러나 이 부분을 너무 강조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말이다. 그들의 그릇된 ‘환난 전 휴거설’이나 ‘환난 중간 휴거설’ 등은 차치하고라도, 1000년 왕국을 다윗 왕국의 재건으로 보아 이때에 회복된 다윗의 장막인 제3성전 (에스겔서의 새성전 환상의 성취로 봄)에서 구약적 제사가 재개된다는 것, 1000년 왕국 때 깨닫고 돌아온 유대인들이 전세계를 통치하게 된다는 것 등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들이다. 고신의 한정건 교수가 쓴 얇은 책, 67쪽을 참조하라. 만약 얼마 안가서 이스라엘에 제3성전이 세워진다면 그것은 에스겔서의 비전의 성취가 아니라 기독교와는 무관한, 유대교 전통을 따른 성전이 될 것이다. 아무리 에스겔서의 식양대로 짓는다고 해도, 아무리 그곳에서 구약적 희생 제사를 재개한다고 해도, 이것은 신약이 말하는 성전이 아니다. 모퉁이돌 예수님을 기반으로, 믿는 이방인들과 믿는 유대인들이 둘이 하나가 되어 (엡 2:16)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으로 서로 연결되어 지어져 가고 있는 마당에 (엡 4:20-22) 무슨 성전을 또 짓는다는 말인가!
최영헌 교수(알파크루시스 신학대학교)
yunghun.choi@ac.edu.a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