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지서 해석(6)
지금은 절개 (節槪)를 구할 때: 호세아서<6>
지난 이스라엘 학술답사 (2015. 11말-12중순) 중 많은 곳을 들렀지만 그중 깊은 인상을 받은 곳을 고르라면 나는 이스르엘을 고르겠다. 우리가 하롯샘, 곧 하나님께서 기드온과 함께 미디안과의 전투에 나갈 300 용사를 뽑으시던 장소에 갔을 때였다. 가이드 하던 자매는 갑자기 손을 들며 건너편을 가리켰다. “여러분, 저기를 보세요. 저기가 어디일까요?” 기드온 동굴이라는 곳 앞에 맑게 솟아나와 흐르는 물에 정신이 팔린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들어 저편을 바라보았다. 저편이 어딘지 아는 사람이 있을 턱이 있겠는가. 아무 말이 없었다. “저기가 바로 아합의 궁전이 있던 자리에요.” “아하!” 사람들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안다는 시늉을 하였다. “여러분, 그럼 그 앞에 있는 평지는 누구의 땅이었을까요?” 재차 질문이 나오자 역시나 이번에도 사람들은 잠잠하였다. “정말 아는 분 없으세요?” 아가씨가 다시 물었다. 묵묵부답이었다. “바로 나봇의 포도원 자리랍니다.” “아하!!” 사람들은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경탄하였다. 그 땅은 실로 비옥하였다. 넓고도 기름진 땅 이스르엘 평야가 이어져 있는 곳, 아합은 자기 궁전 창밖에 펼쳐진 포도원에 한없이 탐스럽게 익어가는 포도송이를 해마다 목도하였을 것이다. ‘저거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 그를 사로잡은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그 다음 우리가 아는대로의 사건이 벌어졌다. 하나님이 주신 땅을 지키려는 나봇, 그 나봇을 거짓 송사하도록 하여 아합의 처 이세벨은 그 땅을 남편 아합에게 주려고 그를 돌에 맞아 죽게 한다. 엣바알의 딸 이세벨이 이스라엘의 무죄한 자의 피로 이스르엘 평원을 붉게 물들인 것이다. 이스르엘에서 생산한 포도와 무화과와 곡식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바알이 준 것이라는 거짓말로 하나님의 백성의 영혼을 끝없는 어둠의 심연으로 끌고 들어간 이세벨이 이를 갈면서 하나님 명령을 따르는 자 나봇을 치고, 서슬 퍼런 눈으로 엘리야를 협박하던 곳이 바로 저 건너편이었다. 그곳은 그렇게 우리 눈에 보기 좋은 땅이건만 그 옛날은 살륙의 피가 얼룩진 곳이었다. 요사스럽게 화장을 하고 예후를 맞던 이세벨이 산채로 아래층 바닥에 던져져 피가 튀던 장소였고, 그 이세벨이 개에게 뜯어 먹히고 개들이 그녀의 피를 핥아먹은 장소였고, 예후가 수많은 바알 마귀 제사장들을 몰살시킨 장소였고, 하나님의 세우심을 받지 않은 비류들이 서로 왕이 되려고 심심하면 유혈 쿠데타를 일으킨 저주의 터였다.
당시 이스라엘은 아합이 마귀의 딸과 결혼하듯 바알과 영육을 섞었다. 송아지상에 입을 맞추고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음행을 하였다. 그러면서 노래하기를, ‘우리의 포도주와 무화과와 곡식과 금과 은은 바알이 준 것이다’ 하였다. 그리하여 그곳은 하나님의 진노로 사람들의 피가 튀었다. 마치 한국교회가 그녀의 치마를 걷어올리고 오직 주 예수 구원은 마치 없던 일처럼 여기면서 종교다원주의의 초혼제를 치르고, 호화건축자재로 예배당을 꾸미고, 촛불을 켜놓고 묵주를 돌리며, 힌두교의 신인합일의 영성과 우상숭배를 연습하고, 신학교 졸업식도 아닌데 큰 벼슬을 한 양 디민의 까운을 망또처럼 걸치고 주일 설교를 외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것과 같다. 차라리 창녀는 돈을 받기라도 하지만 한국교회는성도들의 고혈을 물쓰듯 써가며 이스라엘처럼 외국에서 기둥서방들을 불러온다.
2장의 구조를 다시 정리해 보자. 2:2-23 (히브리어 본문으로는 2:4-25)는 전반부(2:2-13; Heb. 2:4-15)와 후반부 (2:14-23; Heb. 2:16-25)로 나누어진다. 전반부는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심판이, 후반부는 회복의 말씀이 나타난다. 2:13 끝에 보이는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는 전반부 전체를 맺음 하는 문구로 보인다. 전반부 2:2-13은 다시 2:2-7과 2:8-13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2:2-7은 다시 2:2-4와 2:5-7로 나눌 수 있다. 즉, 2:2에서의 어미의 “음란”과 “음행”이 제기되는데 이는 2:5에서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즉, 어미가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저희가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고 말한 것에 그 음행이 더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음행에 대해 야웨께서는 가시로 그 길을 막겠다는 의지를 드러내신다. 야웨의 심판을 통해 음행의 죄에 대한 조치가 이루어짐으로 이스라엘은 장래에 죄를 뉘우치고 본 남편에게로 돌아갈 생각이 들게 될 것 (2:7)으로 일단락 지어진다.
그런데 이러한 일련의 공급, 즉 떡, 물, 양털 등은 2:8이하에서 약간 변이를 이루면서 다시 한번 거론되고 있다. 야웨께서는 “곡식, 포도주, 기름, 은, 금, 양털, 삼”등은 바알이 준 것이 아니라 당신이 주신 것임을 말씀하면서 심판을 언급하시는데 심판은 내용적으로 더욱 확장되어 제의 폐지, 과실 맺는 나무들의 황폐화 및 그것들을 들짐승들이 먹게 될 것 등까지 취급하고 있다. 이러한 예언적 강화 (prophetic discourse)의 점층적 전개 기법은 앞으로 D 2 (곧 4-14장)에서 더 자세히 보게 되겠지만 호세아서에서는 아주 특징적인 것이다. 2:2-7에서 제기된 일련의 공급들 “떡, 물 등등”은 2:8-13에서 다시 한번 언급되다가 종결된다는 것이다.
이런 기법은 D1의 후반부인 2:14-23에서도 동일하게 사용되었다. 먼저 vv. 14-18에서는 여러 가지 주제가 나타나지만 “야웨께서 다시 이스라엘의 남편이 되실 것” (특히 v. 16)에 대한 주제가 두드러진다. 왜냐하면 앞에서 “본 남편을 떠나 연애하는 자를 따라간” 내용이 16절에서 반전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러한 회복을 통해 더불어 이루어질 회복들은 “이스라엘의 입에서 바알들의 이름이 제거될 것” (v. 17), “들짐승, 새, 곤충과 언약이 세워짐으로 이스라엘이 그것들의 해를 입지 않게 될 것” (v. 18a), “전쟁이 제거될 것과 평화가 도래할 것” (v. 18b) 등이다.
이렇게 16절에서 언급되었던 주제 “야웨께서 다시 이스라엘의 남편이 되실 것”은 vv. 18-23의 하위단락에서 다시 한번 약간의 변화를 주며 언급된다. 그것은 바로 vv. 19-20에 나타나는데 “야웨께서 의, 공평, 인자, 긍휼, 진실 등으로서 이스라엘에게 장가드실 것”이라는 주제이다. 이러한 언어의 변화를 통해 야웨-이스라엘의 재연합이 약속되면서 부가적인 회복들이 또 언급된다. 그것들은 이 결혼의 결과들 (혹은 자녀들)인즉, “야웨께서 하늘의 일기를 주장하심으로 땅이 복을 받아 곡식, 포도주, 기름 등의 소출이 생길 것” (vv. 21-22), “이스라엘 백성들이 야웨의 긍휼을 입게 될 것” (v. 23b), “이스라엘은 야웨의 백성이 되고 야웨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실 것”(v. 23c) 등이다. 따라서 vv. 14-23의 회복의 말씀은 두 개의 하위단락들 (vv. 14-18과 vv. 19-23)의 결합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2장 후반부를 보며 나는 다시 소망을 가져본다. 내가 밟았던 그 이스르엘 땅이 다시 의와 인자와 진실의 땅이 되길 바란다. 대한민국 땅도 호주 땅도 나봇의 땅처럼 다시 긍휼과 공평의 포도열매들을 주렁주렁 맺는 땅이 되길 바란다.
최영헌 교수 (알파크루시스 신학대학교)
